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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8년 6월 7일 부산 초량동 출생
1970년초 열사가 국민학교 5학년일 때 서울시의 도시미관정리계획에 따라 미아리일대의 빈민가가 철거됨에 따라 광주대단지(지금의 성남)로 이주.
1973년 서울 삼진 특수철 입사. 열사의 표현대로 밥만 먹고 일만하는 버러지생활을 함.
1974년 야학에 다니면서 사회현실과 노동현실의 문제점을 자각하기 시작.
1975년 8월 고입자격 검정고시 합격했으나 대입검정고시 포기.
1976년 3월 제일 산업중학교 졸업. 가나안 농군 학교과정을 수료하면서 앞으로 어떤 삶을 살 것이며 현실을 타개할 수 있는 길은 무엇인가 고민. 문제의 핵심에 노동문제가 자리잡고 있음을 깨닫고 여러 이론들을 배워나가던 중 동일방직 사건과 같이 노동법 공부를 하던 동료가 연행당하는 일이 발생. 이 충격으로 열사는 노동운동에 투신할 것을 결의하게 되고 전태일 선배의 모습이 더욱 뚜럿하게 가슴에 자리잡게 됨.
1977년 12월 금마실업 감원 퇴사
1979년 4월 방위병 입대. 그러나 그가 관계하던 야학이 깨지면서 군기교육대에서 한 달간 감옥생활을 함.
1979년 5월 제대 후 조나단 독서회 조직
1980년 6월 9일 오후 5시50분 경 방위병 차림으로 이화여대앞에서 노동3권 보장과 광주학살 의분을 호소하는 전단을 배포하고 분신, 운명.
광주 망월동 민족민주열사 묘역에 안장
<열사가 남긴 일기중에서>
나는 무엇인가
나는 정말 날카로운 현실 속에 금속성 마찰음을 들어가며 끈끈하게 살아본 적이 있는가.
끈끈한 삶.
진실된 삶. 사랑스런 삶을 영위하고 싶다.
또한 괴롭고 외로웁게 살아가면서도,
결코 유혹당하지 않는 삶을 살아가고 싶다.
누가 이것을 봐주기를 바라는가.
그것은 위선이다. 수치고, 나의 치부다.
이것은 나의 상처요, 발가벗은 몸뚱아리이다.
윤애를 사랑한다. 그러나 용기가 안 난다.
그 뒤 난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다.
사랑을 원한다.
이 비좁아터진 암흑의 공간에서 나는 나의 생을 돌이켜 본다.
사랑을 잊어버렸다. 빛을 잊어버렸다.
그렇다면 좌절인가. 좌절이라고 말하고 싶진 않겠지.
어리석은 감정에 휘어 감겨
타자의 혁명의 대열에서?
(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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