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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장수


이름

김장수

출생 및 사망연도

1957-09-04 ~ 1988-03-09

주요내용

 

 

김포 고려공원 묘지에 안장

1957년 9월 4일 충남 서산에서 3남 2녀 중 넷째로 출생
1975년 2월 인천 향도고등학교 중퇴 그후 극동운수, 조준택시, 안성화물, 유성화물 등에서 근무
1985년 9월 14일 경기교통(현재 보성운수) 입사
1987년 6월 15일 인천 경기교통 노동조합 조합장 활동 중 해고
1987년 8월 16-22일 파업농성으로 해고철회시키고 단체협약 체결
1987년 12월 31일 회사측의 사주를 받은 일부 간부들에 의한 반조직적인 행위 극성, 위원장직을 사임함
1988년 2월 24일 해고예보통보 받음, 부당해고 반대투쟁 벌임
1988년 3월 1일 부당해고 항의하며 오후 4시 회사에서 단식농성 오후 8시 50분경 분신
1988년 3월 9일 전신 70%, 3도 화상을 입고 오후 8시 15분 운명


<동지의 삶과 죽음>

인천 경기교통의 노동자들은 1987년 6월 15일 노조를 결성하였고 여기에서 김장수 동지가 노조위원장으로 당선되었는데 회사측은 바로 다음날 근거도 없이 김장수 동지와 최종렬 동지(총무)를 해고 조치하고, 단체협약에 응하지 않는 등 노조탄압의 신호탄을 올렸다.
8월 16일부터 있었던 6일간의 파업농성으로 해고가 철회되고 단체협약이 체결되었다.
그러나 농성이 끝나자마자 사장은\"내가 속은 것이다. 정신이 없어서 도장찍어 준 것에 불과하다\"며 합의사항을 일방적으로 파기하였다.
노조파괴에 혈안이 된 사장은 노조 조직력이 약한 틈을 타 부위원장을 매수하여 노조내부를 극도로 분열시켰다.
노조내부에 마찰은 심해지고 12월 23일 술자리에서 김장수 동지와 충돌이 있었는데 3일 후 부위원장이 앞니 두개가 부러졌다는 진단서를 끊어와 \"위원장에서 물러나면 고소하지 않겠다. 그렇지 않으면 고소하겠다\"고 협박하여 결국 김장수 동지는 고소하지 않겠다 는 합의서를 받고 위원장직을 사임했다.
그러나 위원장 직무대리가 된 부위원장은 약속을 어기고 고소하였으며 김장수 동지와 핵심조합원 6명을 노조에서 제명 조치하고 승무를 시키지 않았고 사장은 교육을 한다며 전체 노조원들에게 \"김장수씨가 200만원 주면 노조를 그만 두겠다고 했다\"며 어용집행부로 하여금 김장수 동지 해고 연판장을 돌리고 서명을 받게 하여 김장수 동지와 전 운영위원 공석용씨를 해고조치하였다.
이렇게 되자 김장수 동지와 공석용 동지는 민주노조를 파괴하기 위해 자행된 해고는 인정할 수 없다며 항의투쟁을 벌여왔고 김장수 동지는 3월 1일 오후 4시경 회사에 단식 농성하러 들어갔다가 8시 50분경 분신하게 된 것이다.

분신 당시 회사내에는 업무과장과 비번 기사들이 있었으나 이들이 당시 상황을 정확히 밝히지 않았으며 김장수 동지마저 입을 열지 못해 진상이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부인은\"오후 8시까지만 해도 『회사내에서 단식농성하고 있으니 동료들에게 연락해달라』고 전화까지 했던 남편이 왜 분신했는지 도저히 이해되질 않습니다. 이렇게 극단적으로 자기 생명까지 무릅쓰며 분신하였을 때는 분명히 무슨 일이 있었다고 밖에 볼 수 없습니다\" 라며 결코 자발적인 행위가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동료노동자의 말에 따르면 김장수 열사는 병원에 실려가면서 \"형! 나좀 살려줘요\"라고 울부짖었다고 한다.

한편 사장은 \"해고자라 나와는 상관없다. 치료비는 동전 한닢 줄 수 없다\", \"스텐드바에 다니며 노느라 빚이 300만원 있어 분신했다\", \"노동자들끼리 패싸움하다 안되니까 분신했다\"는 망언을 일삼으며 동료노동자들의 택시운영 거부에 구사대를 조직하고 일당기사들을 고용, 돈벌이를 계속하였다. 동부경찰서 자문위원, 시 정화위원, 새마을운동 간부 등 16개나 되는 감투를 뒤집어쓴 사장은 사고 이후에도 직접 얼굴 한번 내비치지 않고 구사대, 경찰, 근로감독관을 내세워 가족과 동료들을 위협하는데 급급할 뿐 이었다.

겨우 31세의 젊은 운수노동자 김장수 동지. 온종일 운전대를 잡고 거리를 누비는 힘든 생활 속에서도 노동자의 생존권과 단결권 보장을 위해 열성적으로 노조활동에 참가하였던 사람, 위원장에 당선된 후 전세금을 빼서 월세를 살고, 신혼 부터 부어온 적금을 해약하여 활동비로 쓰던 헌신적인 노동자. 그 무엇의 댓가이길래 그가 검게 타버린 숯덩이로 우리 앞에 돌아와야 한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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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보기

 

동지가 남긴 글.hwp (10 kB)
성명서.hwp (11.5 kB)
누가이렇게만들었는가.hwp (11 k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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