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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윤기


이름

김윤기

출생 및 사망연도

1964-12-18 ~ 1989-04-03

주요내용

 

 

파주 금촌 공원묘지에 안장

1964년 12월 18일 서울에서 출생
1983년 3월 국민대학교 무역학과 입학
1986년 5월 5·3인천 투쟁에 참가하여 구속되어 1년형을 선고받음
1988년 7월 덕진양행 입사
1988년 11월 29일 덕진양행 노조결성, 위원장으로 선출됨
1989년 4월 3일 협상 결렬에 항의, 분신


동지의 삶과 죽음

5·3 인천투쟁에 참가하여 실형 1년을 선고받았던 김윤기 동지는 만기출소 후 노동자와 삶을 함께 하고자 1988년 7월 덕진양행에 입사하였다. 동지는 동료들과 함께 열악한 봉제공장 노동자들의 인간다운 삶을 찾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 끝에 11월 29일 남자 기숙사에서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위원장에 선출되어 회사측과 교섭에 들어갔다. 그러나 회사측의 야비하고 무성의한 태도로 교섭은 계속 결렬되었고 공장장과 구사대는 조합원을 구타, 폭행, 노조 집단탈퇴를 조직하며 단전, 단수, 전화 불통 조치를 취하고 업무집행 방해, 퇴거불응 명목으로 고발하는 등 숨막히는 탄압을 자행하였다. 급기야 1월 중순에는 ‘공장이전’이라는 신종노조 탄압을 성남지역에서 최초로 휘두름으로써 민주노조의 생명을 끊어놓으려 하였다.
이에 덕진노조는 김윤기 위원장을 중심으로 똘똘 뭉쳐 “경비절감 한다더니 땅값 비싼 서울이전이냐 서울이전 철회하라!” 외치며 2월16일부터 파업농성에 돌입하였다. 그 이후 지속적인 교섭결렬로 3월 30일 10차 교섭까지 결렬되자 파업투쟁 47일째인 4월3일 김윤기 동지와 노조지도부는 이 협상이 마지막이라는 굳은 결의와 각오로 협상에 임하였다. 그러나 사장이 계속 억지 주장만 되풀이 하며 또다시 협상이 결렬되자 이에 격분한 김윤기 동지는 공장 이전 철회에 대한 분명한 답변을 요구하며 자신의 몸에 신나를 끼얹고 항의 도중, 온몸에 펑하고 불이 붙어 쓰러져 병원으로 옮기던 중 운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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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보기

 

편지둘.hwp (16 kB)
동생추모시.hwp (11 k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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