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가입

ID/비밀번호찾기

 

 

무료메일링 신청

 

 



 

 

 

   촛불집회동향
   월간정세연구

   열사정신연구실

   연구팀

   자료실

   회원방

   자료나눔터
   자유게시판

 

 

  강현중


이름

강현중

출생 및 사망연도

1963-04-27 ~ 1989-09-09

주요내용

 

 

부여 선산에 안장

1963년 4월 27일 충북 음성 출생
1981년 10월 5일 인천 제물포 고등학교 중퇴
1987년 12월 5일 경동산업 입사
1988년 5월 4일 <디딤돌>이라는 친목회를 구성하여 회장으로 활동
1989년 8월 17~30일 경동 노조 민주화 투쟁 파업에 참여
1989년 8월 31일~9월 4일 회사의 부당징계조치에 항의농성
1989년 9월 4일 노무이사와의 담판이 결렬되자, 노무이사에게 신나를 끼얹고 함께 분신한 뒤 불붙은 몸으로 조합원들에게 “경동의 동료들은 싸워 이깁니다” “노동자는 승리합니다”라고 절규
1989년 9월 9일 한강 성심병원에서 운명


동지의 삶과 죽음

경동산업 노동자 21명은 89년 회사측이 사내 친목써클인 <디딤돌> 간부3명을 일일찻집을 열었다는 이유로 징계위원회에 회부한데 항의, 89년 8월31일부터 복지관 4층옥상에서 농성을 계속해 왔다.
89년 임투에서 평조합원대표로 활약하는 등 평소 노동자들의 권익을 위해 앞장 서왔던 사람들이 주축이 된 디딤돌 친목회가 8월27일 해고노동자 돕기 일일찻집을 개최했다는 어처구니 없는 이유로, 디딤돌 회장 등 3 명을 징계위원회에 회부한 회사측은 농성자들의 대화요구를 거부하고 매일같이 구사대 200 여 명을 동원하여 폭력을 자행했다.
어처구니 없는 구실로 해고를 획책하며 가족들마저 야수처럼 짓밟는 관리자들을 보며 농성자들은 마지막으로 담판을 짓기 위해 [징계사건]의 주모자인 강의신 노무이사실로 간 것이다.
자신들의 마지막 징계철회 요구마저 태연스레 묵살하며 오히려 “징계를 받지 않으려면 구속을 시켜버리겠다”는 강의신 이사의 뻔뻔스런 모습을 보고, 격분한 노동자들은 그 자리에서 신나를 뿌리고 할복·분신 항거한 것이다.
 

 

 사진보기

 

문서보기

 

강현중유언.hwp (9.5 kB)
추도의 글.hwp (13.5 kB)
추모시강현중.hwp (16 kB)

 

 

 

 

 

 

 

 2005 (사)전태일을 따르는 민주노동연구소
  우) 140-160 용산구 남영동 104번지 청송빌딩 201호
문의전화 02-756-4726 팩스 02-756-4727
  E-mail: idtum@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