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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자녀의 아버지, 50년을 이 세상에 존재했던 사람, 그 중에 21년을 두산중공업에서 일했던 사람, 고 배달호씨는 두산중공업 노동조합의 조합원으로서, 2002년 두산재벌의 부당한 해고와 징계 등 비인간적인 노동탄압에 맞서 싸우던 중 작년 7월 23일에 구속되어, 9월 17일 출소했으며 집행유예(징역 1년, 집행유예 2년) 기간 중에 있었습니다.
회사는 노조 활동을 이유로 고소, 고발하여 징역을 살게 하는 것도 모자라 또다시 고 배달호씨의 집 등 모든 재산과 임금을 가압류하였고, 이 때문에 생계가 어려워지자 배달호씨는 생계비 충원을 위해 회사 복지기금 대출을 요구하였으나 돌아온 것은 가압류자는 대출 불가라는 회사의 통보뿐이었습니다. 그후 정직 3개월의 징계를 받고 지난 12월 26일에 징계기간이 끝나서 현장에 복귀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현장에 복귀하자마자 단지 노조 활동을 열심히 했다는 이유로 회사에서는 관리자와 노무팀의 관리 대상에 올려놓고 배척과 통제, 감시를 끊임없이 진행되었고, 이 때문에 그의 곁에 있던 동료들도 쉽게 접근할 수 없어서 나 홀로 현장에서 하루하루를 힘들게 보냈다고 합니다. 이런 상황에 회사에서 노조활동 중단을 요구하는 각서를 요구하자 그 갈등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분신 자살한 것으로 추측됩니다. 결국 두산중공업이 배달호씨를 죽음으로 내몬 것입니다.
고 배달호씨의 시신은 1월 9일 두산중공업 사내 노동자광장에서 새벽 6시 30분경 동료 노동자에게 발견되었는데, 발견 당시 이미 사망한 상태였고, 배달호씨는 자신의 승용차 안에 유서를 남겼고, 유서에는 두산중공업의 노조탄압에 대한 울분이 담겨져 있었습니다.
<개인신상>
본적 : 경남 김해시
주소 : 마산시 회원구 회원2동
생년월일 : 1953년 10월 14일
입사 : 1981년 1월22일
<가족관계>
모친 : 1933년생
부인 : 황길영(1961년 1월 21일생)
자녀 : 2녀(84년생, 86년생)
형제 : 2남 4녀중 장남
< 상무집행위원 및 대의원 활동 약력>}
제 ? 대(1988년) : 대의원
제 ? 대(1993년) : 대의원
제10대(1995년) : 노사대책부장, 민영화 대책위원
제11대(1997년) : 대의원(제3지구대장), 민영화 대책위원
제12대(1998년) : 대의원, 파견대의원, 민영화 대책위원
제13대(1999년) : 대의원(제3지구대장), 운영위원
제15대(2001년) : 대의원, 파견대의원, 2002년 교섭위원
<출처: 배달호열사정신계승사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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