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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일수


이름

박일수

출생 및 사망연도

1954-09-03 ~ 2004-02-14

주요내용

 

 

- 1954년 9월 3일, 경주 출생

- 2000년경 현대미포조선 하청업체 근무(대서공영, 건일산업 등)

- 2002년 3월,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업체인 인터기업에 입사.

- 한마음회라는 사내하청협의회(모임)에서 활동을 하며, 하청노동자들을 조직하고 동료직원들의 임금착취 부분인 연월차 퇴직금 등의 임금체불건을 맡아서 진정서를 제출하는 등의 활동을 해옴.

- 2003년 7월 22일, 현대중공업 전공장에 선전물 배포.

- 연월차, 퇴직금 등 체불임금 지급과 근로조건 개선 문제로 업체에서 동료들과 투쟁을 전개함

- 2003년 12월 원청은 해고통지서도 보내지 않은 상태에서 故 박일수 열사의 모든 전산자료를 말소시키고 강제 해고를 함

- 2004년 2월 14일 새벽, 분신사망


故 박일수(50) 열사는 현대중공업 사내하청노동조합을 결성하기 위한 한마음 이라는 사내하청협의회에서 활동을 하며, 하청노동자들을 조직하고 동료직원들의 임금착취 부분인 연월차 퇴직금 등의 임금체불 건을 맡아서 진정서를 제출하는 등 활동을 해왔다. 당시에는 우선 3-4 명의 진정서를 제출하여 그것의 해결 과정을 보아 이후 더 많은 하청노동자들의 권리를 찾으려 했다. 그러던 중 2003년 8월쯤 이를 알게 된 원청이 탄압을 가해왔고, 원청이 인터기업 사장에게 고 박일수 열사를 해고할 것을 종용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故 박일수 열사가 나머지 하청노동자들의 임금체불 관련 진정서를 일괄 보내겠다고 하자, 인터기업 사장 박진용은 타협안으로 임금체불액은 지불능력이 없어 시간을 줄 것을 요청하고, 원청에서 해고 압력이 들어오는 것에 대해 일단 휴직처리를 하고 이후 다시 일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는 내용의 각서를 체결하고 이를 비밀에 부칠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고 박일수 열사는 이러한 원하청의 탄압에 맞서 탄압 사실과 각서의 내용을 공개하는 유인물을 현장에 배포했다.

강제휴직기간 중에도 인터기업과 임금체불과 휴직철회 등을 내용으로 한 노사협의회를 진행하고 연월차, 퇴직금 등 임금체불 해결을 위한 하청노동자 서명을 조직, 현대중공업의 원하청 활동가들을 만나 연대를 호소하고 투쟁을 조직하는 등 고 박일수 열사의 활동은 활발히 진행되었다. 이는 현대중공업사내하청노동조합이 결성된 바로 후의 일이다.

사내하청노동조합 결성시 위원장으로 거론되기도 했던 고 박일수 열사는 노동조합 결성 후 원하청의 탄압이 거세어지자 타워크레인 고공농성을 준비하기도 했다. 그러나 농성자체가 무산되고 강제휴직상태에서 현장출입도 제한되는 상태에서 투쟁 전술의 폭은 좁아져만 갔다.

열사는 지난 김주익열사가 분신했을 당시 분신을 기도하려 했던 것으로도 전해졌다. 그러나 장기적 목표로 현장을 조직하고 투쟁을 준비하자는 주변 사람들의 간곡한 설득으로 간신히 분신을 막아냈다. 그리고 열사는 당시 노동조합 가입에 있어서 현재 처해진 자신의 조건에서 장기적 전망을 가지고 가기 위해서는 노조 가입이 먼저가 아니라 복직을 우선 관철시키고 현장에서 하청노동자를 조직하여 노동조합으로 가입해야 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활동가는 현장에 있어야 한다면서 물고기가 물을 떠나 살 수 없듯이 나는 조합원들 속에 함께 하지 않으면 살 수가 없다는 생각을 굳히고 현장으로 들어가는 것이 최우선 과제였던 것이다.

그러나 2003년 12월 원청은 해고통지서도 보내지 않은 상태에서 고 박일수 열사의 모든 전산자료를 말소시키고 강제 해고를 시키면서 열사는 현장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이 사라짐을 느꼈다. 출입증이 없어지고, 해고가 되어 현장출입 자체가 아예 불가능해진 것이다. 하루라도 빨리 현장으로 돌아가는 것을 염원했던 열사는 또다시 좌절을 느꼈다고 한다. 열사는 현장으로 돌아가 하청노동자를 조직하여 하청노동자도 인간답게 살수 있는, 노동의 대가를 온전히 받을 수 있는 현장을 하청노동자들과 함께 만들고 싶어했다. 그러나 몇 번의 투쟁전술이 무산되고 현장에 돌아갈 가능성이 계속 줄어들면서 열사는 희망을 잃어갔다.

그리고 바로 13일, 열사가 분신하기 몇 시간 전인 오후 9시 30분경, 평소 투쟁을 함께 고민하고 논의하던 한 동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다음은 그 통화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너도 알다시피 전산처리해서 삭제된 거 때문에 장기적인 것은 실현이 불가능하다라고 생각해. KBS추적60분에 경위서 및 자료, 유서 등을 소포로 보냈다. 내 목숨 귀한 것 나도 알아, 그런데 주어진 눈앞에 보여진 상황이 노동에 관련한... 중공업 하청문제의 곪고 썩어있는 것들이 모두가 껍데기뿐이니, 법에 호소해야 그리고 신고하면, 법적으로 처리해주는 형식적인 것이 지금의 현실 아니냐. 이것은 아니다 싶다. 갖고 있던 생각, 보고 느낀 것을 개선하고자 하는 의지는 있으나 한계에 부딪치는 것에 대한 현실을 바꾸기 위해서 다는 못 바꾸더라도 20-30%라도 바꿔진다면 그것으로 만족하고, 나의 죽음으로 사회가 개혁되길 바란다. 그냥 살아봐야 쥐새끼 같을 뿐이다.
과거에 몇몇 사람들 비정규직 문제, 정규직 문제 거론한 사람들이 있지만 구체적으로 기업안에 부정, 부패, 비리, 상납, 떡값주고 현금접대하는 돈이 어디서 만들어져서.... 하청노동자 고통줘서 쥐어짜서 주면 피해자는 누구냐 이거야. 자기 논 팔아서 자기가 하느냐 이거야. 지 챙길거 다 챙겨가고는 썩게 하느냐 이거야. 비정규직 문제 구체적인 해결은 10년이 가고 20년이 가도 안된다. 힘을 만든다는 것은 환상이고 이론인 듯 싶다. 나도 희망이 왜 없겠어.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아. 집에서 나오면서 다른 사람들한테는 이야기하지 않았다. 너와는 함께 계속 고민해 왔기 때문에 그나마 전화 한 통 했다....(형, 죽으면 안돼요. 살아서 하청노동자들과 함께 해야죠.....어디에요? 라는 질문에) 집에서 나와있으니까 찾지 마라. 유서는 집에 1통, 내가 1통, 믿을 수 있는 너에게 줄 1통은 개집 까만 봉투에 넣어 두었으니 아침 일찍이 가봐라. 사건이 터지고 사건에 대해 비하를 시킨다면 정리를 해서 바로 잡아달라.\"

그리고 14일새벽에 박일수 동지의 분신이 알려졌다. 전화를 받았던 그 동지는 소식을 듣자마자 故 박일수 열사의 집을 찾아갔지만 이미 경찰과 사내하청노조에서 집을 수색한 상황이었고, 유서가 있다는 장소에서는 유서를 찾을 수가 없었다고 한다.
 

 

 사진보기

 


문서보기

 

하청노동자도 인간이다-유서.hwp (16.5 kB)
박일수추모시.hwp (12 kB)
기구한 삶-박일수씨사연.hwp (15.5 kB)
박일수연맹홍보물.hwp (1.4 M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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