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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성호


이름

박성호

출생 및 사망연도

1961-11-25 ~ 1990-09-11

주요내용

 

 

1961년 11월 25일 강원도 태백 철암에서 출생
부모님 슬하 4남1녀 중 3남, 당시 미혼(29세)
현재 어머님, 형2, 남동생만 생존(아버지는 2004년 1월 투병생활 끝에 작고)
1980년 강원도 태백 철암고등학교 졸업
1987~88년 국가유공자(상이군)인 아버지를 대신해 태백 철암 강원탄광에 입사(채탄부가 아닌 간접부서인 공무과 운반선로 보수공으로 일함). 강원탄광에서 故 성완희 열사 투쟁 시 지역 단체에서 주관하는 교육강좌에 참여하고 유인물을 따로 챙겨 꼼꼼히 읽어보며 노조와 사회현실에 눈을 뜸.
1989년 7월 1일 경기도 안산 반월공단내 금강공업에 입사함.
1990년 8월 10일 노조결성 당시 노조부위원장으로 선출됨.
1990년 8월 30일 경찰의 폭력적 진압에 맞서 투쟁하다 전신 70%의 화상을 입음
1990년 9월 11일 오후 7시 45분 한강성심병원에서 운명.

\"빨리 일어나서 더 가난하고 어려움 속에서도 투쟁하는 노동자들을 위해 끝까지 투쟁하겠다던 박성호·원태조 열사를 생각하며\"

올해로 박성호·원태조 열사가 돌아가신 지 벌써 15년이 된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옛말처럼 그 당시 가슴 저렸던 투쟁들이 아득한 옛일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아침저녁으로 선선해지는 9월이 오면 어김없이 마음 한구석을 어지럽게 만든다.

90년 투쟁당시 노동자 종합교육문화공간인 “밝은자리”에 상담을 마치고 돌아가는 박성호 열사의 생전 모습을 본 적이 있었다. 아주 환하고 밝은 분위기에 잘생긴 얼굴로 정중히 인사를 하고 돌아가는데 생긴 지 얼마 안 된 금강공업노조 부위원장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당시 밝은자리 간사였던 분이 강원도에서 성완희 열사와 투쟁한 경험도 있고, 젊지만 너무 열성적이고 진지한 친구라고 칭찬을 했었다. 그런데 얼마 뒤인 8월 30일 회사가 직원들이 퇴근해버린 뒤 어린 조합원들을 기숙사에 감금하고 기계를 빼돌린 후 위장휴업에 들어가 조합원과 가족들이 정문 앞에서 농성을 한다고 하였다. 바로 공권력이 투입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반월공단 내 금강공업 앞으로 달려갔지만 이미 공권력이 장악해 접근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이어 들은 충격적인 소식!
당시로는 상상할 수 없는 충격이었다. 87년 노동자 대투쟁 이래 반월공단에서도 많은 공장에서 파업이 일어났고, 노조들도 생겨났다. 그러나 워낙 중소영세사업장이 밀집해 있는 특성상 기업주들은 무조건 노조를 깨고 보자는 식으로 나와 그동안에도 많은 노동자들이 구속되고 구사대와 공권력의 폭력에 무참히 깨져야만 했다. 그러나 단지 인간답게 살고 싶으니 노조를 인정해 달라 했다고 구사대와 중무장한 공권력을 투입해 10명의 노동자에게 중경화상을 입히고, 결국 두 분의 열사를 돌아가시게 만든 일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것은 나만이 아니라 안산지역 노동자, 시민 모두가 처음 겪은 참혹한 일이었다. 경악도 잠시 당시 전노협 산하 경기노련 안산지구협과 경기남부노동운동단체협의회가 중심이 되어 “금강공업노동자 집단분신 유발한 살인적 공권력 분쇄 경기남부 공동대책위원회”를 꾸리고 정말 가열차게 투쟁했다. 노동자들은 일이 끝나면 무조건 열사들이 치료를 받던 시흥병원으로 달려와 규탄대회에 참가하고 밤을 새워 규찰을 섰고, 9월 12일에는 공권력이 투입된 상황에서도 안산 라성호텔 앞에서 약 800여 명의 노동자와 시민이 모여 지역 역사상 처음으로 가두시위를 몇 시간에 걸쳐 치열하게 벌이기도 했다.

올해 초 점점 희미해져 가는 박성호·원태조 열사를 복원할 욕심으로 그 동안 전혀 찾아뵙지도 못했던 박성호· 원태조 열사 가족을 방문했다. 너무나 어려운 환경에서 제대로 먹이지도 못하고 키웠는데 한창나이에 불에 타 죽은 아들 때문에 박성호 열사 어머님은 한이 맺혀 그동안 밤마다 우셨다며 눈물과 통곡바람이시다. 어려서부터 바른 말 잘하고 불의를 못 참는 성격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며, 경찰의 협박과 회유로 장례식조차 제대로 치루지 못한 채 경기도 야산에 유골가루를 뿌려야 했던 당시를 회상하시며 또 너무나 가슴아프게 우신다. 잊어버리고 살려 했는데 이렇게 찾아와 또 밤마다 잠도 못 주무시겠다며 명예도 싫고 기념도 싫다며 어서가라고 손사래를 치셨다. 나는 그만 죄인처럼 어쩔 줄 몰라 하다 나왔다. 죄송스럽고 쓸쓸한 마음으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 애써 마음수습하시고 혼자 사시는 노모가슴에 다시 못을 박은 기분이었다. 일주일 전에는 투쟁당시 시흥병원에서 상주하시며 내 아들을 살려 내라고, 없이 사는 노동자들이 인간대접 받을 수 있게 해달라고 눈물로 호소하셨던 원태조 열사 어머님을 뵈러 갔으나 어머님은 못 뵙고 동생만 만나고 왔었다. 50이 다 되어가는 남동생은 살아생전 의리 있고 과묵했던 형님을 떠올리며 애써 터져나오려는 울음을 삼키느라 목소리를 떨었다.
나는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15년의 세월이 흐르도록 열사들이 그토록 갈망했던 민주노조 사수나, 노동해방된 사회를 만들지 못하고 멈춰서 있는 우리들을 질타하시는 것 같았다. 전신을 붕대로 칭칭감고 누워서도 자신보다 더 가난하고 어려움 속에서 투쟁하는 노동자들을 위해 빨리 일어나 투쟁하겠다던 두 열사의 정신을 과연 저들이 죽인 것일까 아니면 지금 현실에 만족하고 안주해 있는 우리들이 죽여 온 것일까. 오는 9월 30일이면 안산에서 15주기 추모식이 열린다. 무엇을 되새기고 생각한다는 것인가 다시 착잡할 뿐이다.
 

 

 사진보기

 



문서보기

 

사건경위.hwp (16.5 kB)
박성호육성녹음.hwp (15 kB)
추모시-조합원.hwp (11 kB)
추모시2.hwp (22.5 k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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