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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경제

<한국의 기본소득제도 도입전략>

강남훈, 곽노완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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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한국의 기본소득제도 도입전략






작성자
강남훈(한신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곽노완(서울시립대학교 도시인문학연구소 교수)









2008. 12. 1.





민노총 정책연구원
1. 기본소득(Grundeinkommen, basic income) 개괄


1) 기본소득의 정의와 21세기 자본주의의 조건

“기본소득은 심사와 노동요구 없이 모두에게 개별적으로 무조건적으로 지급되는 소득이다.”(BIEN, About Basic Income, www.basicincome.org/bien/aboutbasicincome.html)

‘기본소득’은 ‘무조건적 기본소득’의 줄임말이다. 무조건적이라는 것은 미성년자를 포함한 전체 사외성원에게 지급되며 심사절차나 어떠한 의무사항도 수반되지 않음을 뜻한다. 단, 연령이 높을수록 받는 금액이 증가한다. 따라서 명실상부 사각지대 제로의 보편복지제도라 할 수 있다. 이는 기존의 연금 및 실업급여‧사회부조금‧대학생 생활보조금‧집세보조금‧자녀양육보조금 등 현금지급형 사회복지제도를 대체하는 것으로, 심사절차가 없기 때문에 기존의 사회복지국가들에서 엄청나게 낭비되는 사회복지관리비용을 절감할 수 있으며(독일의 경우 연간 연금, 실업급여 등 현금지급형 사회복지비 관리비용만 인건비를 포함하여 1,000억 유로, 원화로 한국의 국가예산의 85% 이상인 180조 원에 이른다), 수혜자들도 신청서를 구비하느라 막대한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없다.
그렇다고 기본소득이 모든 사회복지제도를 대체하는 것은 아니다. 기본소득의 지지자들은 의료보험, 무상교육, 장애인보조금, 환자요양보험 등은 최소한 유지하거나 확대할 것을 동시에 주장한다.
서유럽의 경우는 추가세수 없이 기존의 현금지급형 사회복지만 기본소득으로 통폐합해도, 모든 국민이 2007년 기준으로 1인당 평균 매월 130만 원 정도의 기본소득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미국식 시장중심주의적 자본주의제도를 택하여 사회복지제도가 미비한 한국과 같은 나라들의 경우에는, 기존 현금지급형 사회복지비의 통폐합만으로 기본소득을 지급한다면 기본소득은 인간다운 생존이 아니라 기아를 면할 수준에 불과하다. 한국의 경우 각종 연금을 포함하여 2007년 기준으로 현금지협형 사회복지예산은 1인당 평균 매월 10만원 수준에 불과하다(곽노완, ｢대안사회의 경제적 시공간｣, 󰡔마르크스주의 연구󰡕 제5권 제4호, 2008). 따라서 한국에서 인간다운 생존을 보장해주는 기본소득을 도입하기 위해서는 추가적인 재원이 필요하다. 이 추가적인 재원은 자본주의적 불로소득 및 투기소득에 대한 세율을 인상하거나 세제를 신설하고 소득세율을 인상하여 조달할 수도 있다. 좀 더 급진적으로는 자본주의를 폐기하여 자본주의적 불로소득 및 투기소득 전체를 기본소득의 재원으로 충당할 수도 있다. 후자의 방안을 택할 경우, 한국에서는 2007년 기준으로 1인당 평균 매월 50만 원 정도의 기본소득이 가능하다(곽노완, 앞의 글).
지구적 차원에서 기본소득 논의는 기존 사회복지제도의 문제점과 한계에 대한 비판으로 시작되었다. 그리하여 크게 보아 보수주의자들이나 자유주의자들에 의해 주창되는 흐름과 사민주의나 전통사회주의보다 더 급진적인 정치세력들에 의해 주창되는 흐름의 2가지 상반된 모델이 있다. 하지만 이 두 가지 상반되는 모델은 서로 중첩되기도 한다. 앞에 제시된 기본소득의 정의는 이 두 가지 상반된 흐름에서 공통적으로 수용하는 내용이다. 보수주의자들이나 자유주의자들의 모델은 최저임금제 폐지와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노동유연화 등을 포함하고 있으며(독일의 거대 자본가 베르너의 모델 등), 급진주의자들의 모델은 최저임금제 강화와 비정규직 축소 내지 폐지 및 지구적 기본소득으로의 확대 등을 포함하고 있으며 탈자본주의적 대안경제체로의 이행전략의 성격을 갖고 있다(독일 녹색당 내 개혁파 및 독일 좌파당 내 ‘연방노동공동체 기본소득’ 그룹과 ATTAC 독일지부의 모델 등).
그러나 미국식 시장중심주의의 자본주의제도를 택하고 있는 한국 등에서는 보수주의자들이나 자유주의자들이 기본소득을 주창할 여지가 거의 없다. 왜냐하면 막대한 재원을 조달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자본가계급의 불로소득 내지 투기소득에 대한 중과세 및 소득세의 누진적 인상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에서 기본소득을 도입하자는 주장은 그 자체로 진보적인 내용을 담을 수밖에 없고, 진보적인 세력에 의해서 제기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최근 미국중심의 신자유주의적 지구화가 세계공황을 야기하면서 위기에 직면하자, 대안경제체제로의 이행전략에 대한 담론이 활성화되면서 급진적인 기본소득모델이 대안지구화운동의 한 축으로 급성장하고 있다. 2008년 일본, 멕시코 등 4개국에서 기본소득운동단체들이 급진적 흐름에 의해 주도되는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BIEN: Basic Income Earth Network)에 가입하면서 BIEN 지부가 있는 나라들은 16개국으로 늘어났다. 현재 기본소득 담론이 가장 대중화된 나라는 독일. 오스트리아, 스위스 등 독일어권 나라들이라 할 수 있다. 여기에는 2006년부터 자유주의적 모델의 주창자이긴 하지만 거대자본가인 베르너의 TV 토크쇼 등 언론에서의 센세이셔널한 맹활약이 큰 역할을 했다. 그리고 진보적인 흐름으로는 기본소득을 강령으로 채택하고 있는 ATTAC 독일지부 및 좌파당내 ‘연방노동공동체 기본소득’ 그룹 등 운동단체의 역할이 컸다. 진보적인 기본소득 담론은 서유럽에서 출발하여 현재는 나미비아, 남아프리카 공화국, 브라질, 멕시코, 아르헨티나, 일본 등 전 대륙으로 급속히 확산되고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한국에서 진보적인 기본소득 담론이 활성화되기 위한 대외적 여건은 이미 성숙되어 있는 편이라 할 수 있다.

2) 기본소득과 유사한 제도와 개념들

‧ 마이너스 소득세(negative income tax) 또는 자유 시민급여(liberales Bürgergeld): 마이너스 소득세는 최저생계비 이하의 노동소득에 대해 차액만큼 현금으로 보전해 주는 모델이다. 재원은 고소득에 대한 조세를 통해 마련되며, 수혜대상자는 노동을 하고 있거나 노동할 의사가 있는 성인 가장으로 국한된다. 이는 1940년대 줄리엣 리스-윌리암스가 제기했고, 1960년대에는 미국의 신자유주의의 대표적인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만이 수용했으며, 1967년 미국 공화당의 닉슨 정부도 도입을 검토했던 방안이다. 독일의 자유민주당은 이와 내용상 동일한 ‘자유 시민급여’ 모델을 강령으로 채택하고 있다. 이는 최저임금제를 폐기하고, 저임금 노동을 적극 유인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제도이다. 왜냐하면 최저생계비 수준의 소득을 보장받기 위해서는 저임금 노동이라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곧 이는 저임금 노동을 거부하여 자발적 실업자가 된다면 전혀 소득보상을 해주지 않는 모델이다. 따라서 최저생계비 이하의 저임금 노동을 수용하도록 노동자들을 강제하며, 자본가에게 최저생계비 이하의 저임금 노동을 최대로 활용할 수 있게 해 주는 모델이라 할 수 있다. 얼핏 보기에 이는 ‘무조건적인 기본소득’과 유사해 보이지만, 사실은 성인노동자로 수혜대상이 국한되어 있으며 소득심사를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무조건적인 기본소득’과는 정반대의 모델이다.

‧ 연대 시민급여(solidarisches Bürgergeld): 이는 보수적인 독일 기민당의 개혁파 중 한사람인 튀빙엔주 주지사 알트하우스가 제안하여 기민당 내부에서 공감대를 넓혀가고 있는 모델이다. 수혜대상자가 전체 국민이라는 점에서는 ‘기본소득’과 유사하지만, 고소득자의 소득세를 현재보다 인하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는 진보적인 ‘기본소득’ 모델과 정반대이다. 이 모델에 따르면, 국민들은 ㄱ) 많은 시민급여(월 800유로, 원화로 약 130만 원)를 받는 대신 50%에 달하는 고율의 소득세를 납부하거나, ㄴ) 적은 시민급여(월 400유로, 원화로 약 65만원)를 받는 대신 기존보다 낮은 25%의 소득세를 납부하는 두 가지 방안 중에서 각자에게 유리한 방안을 선택할 수 있다. 소득이 없는 사람들과 저소득자들은 당연히 첫 번째 방안을 선택하게 되고, 중간 및 고소득자들은 두 번째 방안을 선택하게 된다. 그러면 결과적으로 고소득자들은 저소득자들보다 낮은 소득세율을 적용받는 아이러니한 현상이 벌어진다. 이는 소득이 없는 사람들과 중간 및 고소득자에게 유리하고, 저소득자에게는 불리한 제도이다. 따라서 소득이 없는 사람들을 현금으로 유인하여 고소득자에게 최대의 이익을 보장하는 모델이라 할 수 있다.

‧ 필요지향의 기본보장(Grundsicherung): 이는 사민당 좌파 및 녹색당과 좌파당 당권파 및 요하임 비숍 등 고전적 마르크스주의자들 중 다수가 지지하는 모델이다. 이는 ‘무조건적인 기본소득’과는 달리 기존의 연금 등 현금지급형 사회복지제도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보완하는 제도이다. 이에 따르면 기준최저소득에 미달하는 소득을 올리는 성인들만 기준최저소득과의 차액만큼 소득을 보전받는다. 단 노동소득은 일부분만 계산소득으로 간주된다. 예를 들어 기준최저소득이 월 1,000유로라고 하자. 1,200유로의 노동소득이 올리는 노동자의 경우 계산 소득은 50%로 환산되어 600유로로 산정된다. 그러므로 1,200유로의 노동소득을 올리는 노동자는 ‘기준최저소득 1,000유로 - 계산소득 600유로 = 400유로’의 소득을 추가로 받게 된다. 이처럼 노동소득자에게 유리한 방법을 적용하는 것은 노동유인을 유지하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필요지향의 기본보장’의 수혜자에서 미성년자는 제외된다. 이 모델의 지지자들이 ‘기본소득’을 비판하는 논거는 고소득자에게 추가소득을 주는 것은 부당하다는 것이다. 반대로 ‘기본소득’의 지지자들이 이 모델을 비판하는 논거는, 기존 관료제적 소득조사‧심사절차를 강화시켜 결과적으로 기존의 높은 현금지급형 사회복지비행정관리비용(독일의 경우 현재 연간 1,000억 유로 수준, 원화로 180조 원)을 더욱 더 증가시킨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히려 행정관리에 낭비되는 비용을 ‘기본소득’의 재원으로 편입하면 ‘기본보장’보다 오히려 저소득층에게 더 많은 소득을 보전해 줄 수 있으며, 나아가 저소득층이 소득심사를 받기 위해 낭비하는 시간과 현금소득보전을 위해 신청서류를 준비하는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무조건적인 기본소득’이 ‘필요지향의 기본보장’에 비해 정치적으로 지지층을 더욱 넓힐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독일 청소년조직 연합체 및 실업자운동단체, 상당수 사회운동단체들 및 기독교 운동단체 중 상당수는 ‘기본소득’을 요구하고 있으며 독일 국민들 중 압도적 다수가 2006년부터 ‘무조건적인 기본소득’을 지지하고 있다.

‧생활임금(living wage): 이는 1891년 교황 레오 13세가 자유방임주의와 공산주의를 격퇴하려는 목적으로 주창하였고, 1990년대 중반 볼티모어에서 실현된 이래 미국에서 좌파 노동운동가들이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지역공동체 등이 시정부 등에 요구하여 지금까지 140개 시정부와 지역에서 시행하고 있는 정책이다. 생활임금이란 최저임금과 달리, 교통‧건강‧레크레이션까지 가능하게 하는 임금으로 당연히 최저임금을 상회한다. 미국의 생활임금운동은 지역공동체가 생활임금수준을 정하는 권리를 획득하여 시정부 등과 생활임금협약을 맺고, 시정부 등이 특히 정부지원을 받는 기업체에게 이를 강제하는 방식을 통해 확산되어 왔다. 하지만 이는 노동임금수준을 높이는 것으로 한정되어 있다. 따라서 노동과 상관없이 지급되는 ‘무조건적인 기본소득’과는 달리, 여전히 노동중심주의의 소득모델에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중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