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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해방의 기치를 치켜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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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승호 작성일03-11-30 00:00 조회69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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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초반에 걸친 기간 동안 우리나라 노동운동 안에서는 ‘노동해방’이 그 지향목표로서 보편적으로 표방되었다. ‘노동해방’이 새겨진 깃발이 펄럭였다. ‘노동해방’가가 널리 불려졌고, “노동해방 앞당기자!”는 구호가 널리 외쳐졌다. 질끈 동여맨 머리띠에도 ‘노동해방’ 네 글자가 선명히 새겨져 있었다. 88년 11월 13일, 최초로 열린 전국노동자대회에서는 흰 천에 손가락을 베어 피로써 쓴 ‘노동해방’ 네 글자를 앞세우고 4만 명의 노동자 군대가 21개의 대오를 이루어 연세대 교정에서 여의도 광장까지 힘차게 행진했다.
물론 ‘노동해방’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막연한 점이 있었다. 일부 이념적으로 급진적인 부분에서는 노동해방이란 곧 사회주의를 의미한다고 ‘해석’했다. 반면 노동자 대중들은 대부분의 경우 초과착취와 무단적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으로 이 말을 ‘이해’했다. 또 당면해서는 초과착취와 무단적 억압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을 추구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노동자가 주인 되는 세상”을 만들자는 뜻으로 이해되기도 했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서로 조금씩 달랐지만 노동해방이라는 단어 속에는 변혁을 향한 지향이 담겨져 있었다. 당면의 과제로든 근본적인 과제로든 노동자의 해방은 기존의 사회구조 틀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구조를 혁파하는 것을 통해서 이루어지며, 또 그렇게 이루어 가야 한다는 의식이 자리잡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 점에서 모두들 노동해방으로 통일되어 있었다.
그러나 노동운동의 이러한 진취적 기세는 90년대 초반 밖으로는 현실사회주의가 붕괴되고 안으로는 군사독재로부터 부르조아 민주주의 정치로의 이행--민주변혁을 향한 민중의 진출을 봉쇄하기 위한 위로부터의 수동적인 개혁으로서, 권위주의 요소가 온존하는 형태로 이루어진 통치형태의 변화--이 진행되면서 급격히 변화되었다. 이제 해방이나 변혁은 낡은 것, 시대에 뒤떨어진 것으로 치부되었다. 노동자 집회에서 ‘노동해방’이라는 구호가 사라졌고, 노동해방가가 불리지 않게 되었다. ‘노동해방’이라고 적힌 머리띠도 역시 사라졌다. 노동해방 대신 사회개혁이라는 단어가 보편화되었다. 민주노총 추진위원회가 출범을 선언하던 94년 11월 노동자대회에서는 ‘사회개혁’ 네 글자가 아로새겨진 현수막이 대회장을 장식했다. 이후 노동자들의 생활에서는 자동차가 필수품이 되고 한 동안 주식투자가 자랑거리가 되었다. 바야흐로 ‘개량주의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개량주의의 만개는 조만간 그 실효성을 상실하기 시작했다. 우선 국내적으로 총자본은 개량을 제공할 의향이 없었다. 또한 세계적으로는 현실사회주의가 붕괴했음과 더불어 현실자본주의도 위기에 처해 있었다. 축적위기에 처한 현실 자본주의는 돌파구를 찾아 신자유주의 세계화로 치닫고 있었고 이 파도는 97년 IMF 사태를 통해 이 땅의 노동자․민중에게 쇄도했다. 그리고 족쇄 풀린 초국적 금융자본이 추동하는 사유화(현대판 종획운동)와 유연화 초과착취 공세 속에서 자본의 양보와 타협을 끌어내어 개량을 만들어 가기 어렵다는 것이 분명해져 갔다. 자본의 양보 대신에 노동이 내어주는 양보교섭이 일반화되었다. 그러면서 개량주의 기세는 한풀 꺾이었다. 그러나 대안이 없으므로 사라지지 않고 지속되고 있다.
10여 년 전 개량주의가 노동해방을 청산했다면 이제 청산자를 청산해야 할 때가 되었다. 대안이 없다고 죽은 자식을 계속 품에 안고 있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남은 문제는 왜 그것을 땅에 묻지 않으면 안 되는가, 그리고 그것을 땅에 묻은 후의 대안은 과연 무엇인가 라는 지점을 곰곰이 성찰하는 일이다. 성찰하되 추상적인 논리로써만이 아니라 노동운동의 세계적, 역사적 경험들을 널리 참조해서 그렇게 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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