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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노조`정당 방문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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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전태일을 따르는 민주노동연구… 작성일05-11-30 00:00 조회1,03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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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여기에 수록된 9개의 면담록은 2005년 6월 20일 - 6월 25일까지 일본의 6개 노조단체(렝고, 전노협, 전노련, 국철노조, 건설연대노조, 전국유니온연합)와 구 사회당과 관련된 3개 정당(민주당, 사회민주당, 신사회당)을 방문하여 면담한 기록입니다. 이처럼 일본의 노조·정당을 방문·조사한 이유는 노무현 정부가 최근 추진하고 있는 민주노총·한국노총 통합 전략이 1989년 일본의 렝고(連合 : 전일본노동조합연합회) 결성을 모델로 삼고 있기 때문입니다. 일본의 렝고 결성과정을 좀더 구체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한국에서의 양 노총 통합전략에 대한 대응방향을 모색하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되어 면담록으로 묶어 발간합니다.

2. 일본을 방문하기 전 1989년 일본노동운동의 통합을 상징하는 렝고의 결성에 대해 사전에 공부하고 준비해 갔지만, 우리의 예상과는 다른 지점이 상당히 많았습니다. 9개의 노조단체·정당을 모두 방문하고 나서야 통합과정의 전체적인 윤곽이 대강 잡혔습니다. 일본노동운동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무력화되어 있었습니다. 노조운동도 그러하고, 특히 노동자정치운동은 거의 초토화되어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일본노동자계급은 현재 거의 해체 상태에 놓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리고 1989년 렝고로 통합된 이후에 일본 노동운동이 무력화되었다기보다는 197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긴 통합과정에서 자본과 정부의 탄압공세에 의해 노동운동이 무력화된 결과 1989년 렝고로 통합되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3. 면담록의 순서는 우리가 방문·조사한 순서대로 입니다. 우리가 면담과정에서 통합에 대해 이해한 만큼 질문과 답변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반복되는 것도 상당히 많습니다. 또 각 단체의 정치적 입장에 따라 통합과정에 대해 다르게 이야기하기 때문에 어느 한 면담만 가지고는 통합과정에 대한 총체적 이해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면담한 순서대로 읽어볼 것을 권장합니다. 면담했던 우리 자신이 통합과정에 대한 문제의식이 발전하고 점차 총체적인 이해에 도달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좀 답답하게 느껴지면, <전일본건설운수연대노조 고야노 서기차장 면담>을 먼저 읽어볼 것을 추천합니다. 건설연대노조는 통합과정에서 렝고는 물론이고 전노련, 전노협 등 어느 상급단체에도 가입하지 않고 독립노조로 남았던 노조로서, 우리가 볼 때 통합문제에 대해 가장 운동적 입장을 견지했고, 통합과정을 가장 일관되고 총체적으로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른 입장의 면담들도 자신의 정치적 입장에 경사되어 일면적이기는 하지만 통합과정의 한 측면을 잘 반영하고 있기 때문에 면담록 전부를 읽어보아야 통합과정의 전체상이 잡힙니다.

4. 이해를 돕기 위해 방문했던 노조·정당을 간략히 소개하겠습니다. 먼저 렝고(連合)는 현재 일본 노동운동의 주류인 총연맹 조직이고, 우파 노동운동을 대표하는 ‘동맹’(同盟)이 1970년대 후반부터 ‘우파 반공주의 노선’에 의거한 노동운동 통일을 주도하여, 1982년 발족한 ‘전민노협’(全民勞協: 전국민간노동조합협의회), 그리고 1987년 발족한 ‘민간렝고’를 전신(前身)으로 하여 1989년 11월 21일 결성되었습니다. 출범 당시 800여만 명의 조합원이었으나 현재는 640만 명으로 줄었습니다. 렝고는 신자유주의를 반대하지 않습니다. 예컨대, ‘좋은 규제완화’와 ‘나쁜 규제완화’ 가운데 ‘나쁜 규제완화’만을 반대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습니다. 렝고는 매우 느슨한 총연맹조직으로 실권은 단위산별연맹에 있고, 또한 산별연맹보다는 기업별노조인 대기업노조가 더욱 실권을 가지고 있는 전형적인 기업별노조의 총연맹조직입니다. 렝고는 민주당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전노련(全勞連: 전국노동조합총연합)은 일본공산당계열의 총연맹 조직으로 1989년 렝고와 같은 날짜에 렝고에 대항해서 일본공산당이 출범시킨 총연맹조직입니다. 출범 당시 조합원은 120만 명이었고, 현재 100여만 명으로 추산됩니다. 전노협(全勞協: 전국노동조합연락협의회)은 우파 반공주의 노선의 노동운동 통일에 반대하기 위해 1983년 발족한 ‘노동연구센터’를 전신으로 해서 1989년 발족한 공동투쟁조직이고, 출범 당시 조합원이 40만 명이었으나, 현재는 10여만 명으로 크게 줄었습니다. 전노협은 분할·민영화되어 소수파 노조로 전락한 국철노조가 중심사업장이며, 전노협 가입노조들은 렝고에도 동시에 가입되어 있는 이중가맹방식입니다. 전노협은 사민당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국철노조는 1960-70년대에 조합원 24만 명의 공공부문 노조로 ‘총평’(總評: 전국노동조합총평의회)의 구심으로서 가장 전투적인 노동조합운동을 대표하는 노조였습니다. 1982년 나카소네 총리가 분할·민영화를 전략적으로 추진했습니다. 1987년 분할·민영화 과정에서 정부의 철저한 탄압으로 7,000명의 활동가들이 해고되었고, 일부 구제되었으나 1,047명은 끝까지 복직되지 않아서 현재까지 복직투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이러한 탄압으로 인해 조합원이 24만 명에서 16,000명으로 줄어들었습니다. 전일본건설운수연대노조는 렝고, 전노련, 전노협의 어디에도 가맹하지 않는 독립노조입니다. 건설현장과 운수의 노동자들로 조합원 3,300명입니다. 건설운수연대노조가 상급단체 가입을 거부한 것은 렝고는 물론이고 전노련, 전노협이 모두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를 중심으로 한 노동운동이기 때문에 중소영세·비정규직 노동자를 조직하는데 장애가 되기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전국코뮤니티유니온연합회는 지역의 코뮤니티유니온(지역노조) 11개의 연합조직으로 8,000명의 조합원(공식추계는 3,300명)을 조직하고 있습니다. 이 노조들은 중소영세기업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조직하는데 적절한 조직형태인 개인가맹형식으로 1980년대부터 시도되어 왔습니다.
일본사회당은 1996년 민주당, 사회민주당, 신사회당으로 분열되면서 해체되었습니다. 일본사회당은 ‘총평·사회당 블록’이란 말이 있을 정도로 총평을 대중적 토대로 한 노동자정당이었습니다. 미국의 동서냉전 전략에 따라 미 점령군은 1950년 한국전쟁 직전에 ‘레드 퍼지’로 불리는 10여만 명의 현장활동가들을 ‘빨갱이’로 몰아 해고시켰습니다. 그리고 일본공산당계열인 ‘산별회의’를 파괴하고 대신에 ‘총평’을 조직했습니다. 이 총평을 대중적 토대로 해서 일본사회당이 건설됩니다. 그래서 전후 일본의 냉전질서인 ‘1955년 체제’는 ‘1.5당 체제’라 해서 자민당/사회당으로 구성되었고, 노조운동은 총평/동맹체제로 구성되었습니다. 처음의 총평은 산별회의를 파괴하려는 지배세력의 지원에 의해 만들어졌으나, 1950년대 초반부터 지배세력의 의도와는 반대로 전투적 대중투쟁을 통해 점차 전투적이고 계급적인 방향으로 발전합니다. 이를 일본에서는 총평이 ‘닭에서 오리로 바뀌었다’고 말합니다. 지배세력의 의도와 반대로 바뀌었다는 의미입니다. 총평과 대비되는 ‘동맹’은 민간 대기업노조를 중심으로 한 우파 노동운동, 또는 어용노조세력을 대표합니다.
일본사회당은 1970년대 전반기에는 일본공산당과 공조를 통해 제도정치에서 좌파 정치세력화를 상당한 수준까지 발전시켰습니다. 그러나 1975년을 전후한 경제위기를 계기로 노동운동이 무력화되기 시작하면서 점차 내리막길을 걷고 일본사회당 자체가 우경화되기 시작했습니다. 1989년 렝고 결성 당시에는 렝고로의 통합이 사회당의 대중적 기반을 강화할 것으로 기대했으나, 실제로는 정반대로 발전했습니다. 우파 반공주의 노선에 의한 노동운동 통합체인 렝고가 발족하면서 사회당은 더욱 우경화하고 변질되기 시작했습니다. 렝고는 보수양당체제와 야당연합정권을 요구하였고, 사회당은 1994년 자민당과 연합해서 연합정권을 수립하고 무라야마 사회당 당수가 총리로 취임합니다. 마침내 1996년 사회당의 다수를 이루었던 우파 정치인들은 사회당을 탈당하여 신자유주의 정당인 ‘민주당’에 합세하였습니다. 민주당은 자민당 탈당파, 미국 유학파인 ‘마쓰시다 정경숙’ 출신, 그리고 구 사회당 출신으로 구성되었는데, 주도권은 ‘마쓰시다 정경숙’ 출신들이 쥐고 있으며, 공식적으로 신자유주의세력을 표방하고 있습니다. 민주당 내에서 구 사회당 출신들은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고, 스스로도 신자유주의자로 변신해 가고 있습니다. 사회당에 잔류한 중도파는 당명을 ‘사회민주당’으로 개칭하였습니다. 그리고 사회당 좌파는 독립하여 ‘신사회당’을 결성함으로써 사회당은 사실상 해체되었습니다. 그 뒤 사회민주당과 신사회당은 점차 의석을 상실하게 되어 대중정당으로서 대중적 영향력을 거의 상실하게 되었습니다. 일본공산당 역시 점차 의석을 상실하여 대중적 영향력을 마찬가지로 상실해 가고 있습니다.(2004년 현재, 중의원의 경우 자민당 244석, 민주당 176석, 공명당 34석, 공산당 9석, 사민당 6석, 신사회당 0석, 참의원의 경우 자민당 115석, 민주당 82석, 공명당 24석, 공산당 9석, 사민당 5석, 신사회당 0석.)

5. 면담록을 볼 때 각 노조, 정당의 정치적 입장에 따라 통합과정에 대해 강조하는 사실이 다르고, 또한 사실에 대한 평가 자체가 다른 점들이 있습니다. 렝고의 경우에는 당시의 총평/사회당에 대해 ‘전투적이지 않았다’라는 평가에서 드러나듯이 깎아내리는 평가를 하며, 통합 자체에 대한 평가를 회피하고 통합을 옹호하는 입장을 명백히 표명합니다. 전노협은 렝고를 비판하면서도 전면적, 근본적인 비판은 삼가고, 렝고로 통합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일본 노동운동은 신자유주의 세계화나 젊은 세대의 개인주의에 의해 약화되었을 것이라고 평가하는 등 렝고에 대해 중간적 입장을 견지합니다. 이는 전노협 가입노조들이 렝고에도 가입하는 이중가맹의 현실을 반영한 것으로 보입니다. 반면 전노련은 렝고에 대해 근본적으로 비판하며, 자신들은 우파 노동운동에 의해 배제당한 피해자라는 입장과 별도의 ‘전노련’ 결성의 불가피성을 중심으로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사회당의 기만성을 폭로하는 데 중점을 두고 이야기합니다. 국철노조는 탄압에 의해 소수파노조로 전락한 입장에서 자존심, 자긍심을 강조합니다. 건설연대노조는 가장 원칙적이고 일관된 입장에서 통합과정을 비판적으로 평가하며 독립노조로서의 신념과 원칙을 강조합니다. 전국코뮤니티유니온연합은 신좌파 운동으로 중소영세·비정규직의 새로운 조직방식으로 지역노조를 강조합니다. 사민당은 통합과정에서의 기회주의적 입장을 스스로 폭로하고, 공산당과 전노련의 분파주의가 렝고의 우파통합의 한 요인이었음을 비난합니다. 신사회당은 사회당의 기회주의적 입장에 대한 자기비판은 하지 않으면서 지배세력의 음모를 폭로하고 공산당과 전노련의 분파주의를 비난하는 데 중점을 두어 이야기합니다. 민주당은 렝고 통합의 주류답게 신자유주의자임을 부인하지 않으며, 통합과정에서 사회당 우파의 입장을 그대로 드러내고, 렝고의 입장을 대변합니다.

6. 이 면담록은 9개의 노조·정당을 방문하여 면담한 것이기 때문에 명백한 한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선 면담에 응했던 사람들의 부정확한 기억이나 정치적 입장에 따른 치우친 평가들 때문입니다. 일본 노동운동의 실상에 정확하게 접근하려면 이 면담록은 객관적인 자료 등을 통해 보완될 필요가 있습니다. 따라서 이 면담록만으로 일본 노동운동을 재단하는 것은 피해야 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일본 내에서조차 일본 노동운동의 역사에 대한 일치된 통사나 렝고 결성과정에 대한 제대로 된 평가글이 없다는 현실은 일본 노동운동의 전체상을 객관적으로 파악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작업인가를 다시금 확인해 줍니다. 앞으로 자료 등에 입각한 더욱 축적된 연구를 통해 일본 노동운동에 대한 더욱 깊고 총체적인 이해를 위해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이 면담록의 그러한 한계를 감안하고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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