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변혁을 말하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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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승호 작성일10-11-30 00:00 조회645회 댓글0건본문
“왜 변혁을 말하지 않나”
노동세상 [38호] [현장 인터뷰] 김승호 사이버 노동대학 이사장
이춘자 발행인 | 정리 김조경민 / 사진 윤성희 기자
2010.08.09 23:38:57
김승호 사이버 노동대학 이사장은 달변이다. 듣는 사람은 빠져들거나, 꼼짝 못하고 몰리기도 한다. 혹 마음 불편해도 틀린 말이 아니기 때문에 반박하기는 쉽지 않다. 이번 인터뷰 때도 자리에 앉자마자 천안함 이야기로 필자를 꼼짝 못하게 했다. 예리하고 분석적인 시각으로 정부의 발표를 조목조목 반박했다. 백령도에 직접 가서 민심도 살피고 초기 방송 내용도 확인하고 왔단다. 전태일을 따르는 사이버 노동대학은 올해 10년이 되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사회주의 ‘의식화’의 끈을 놓지 않는 그는 인터뷰 내내 그 이야길 했다. 평등한 세상에 대한 꿈을 갖지 않고 자본주의의 본질을 알지 못하고선 ‘혁명’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질> 민주노총이 창립 15주년을 맞았습니다. 곁에서 본 그 과정에 대해 할 말이 많을 것 같은데요.
답> 민주노총은 등장 자체가 역사적 사건이기 때문에 역사적 맥락, 전망 차원에서 봐야 해요. 그런데 이전 논의들은 이런 지점은 일단 접어놓고 민주노총이 현재 주어진 활동을 어떻게 하고 있는가, 그 긍정성과 부정성만 이야기했다고 봐요.역사의 과정이 쌓여서 틀이 만들어지는 거죠. 그 틀이 수명을 다할 때까지는 계속 가죠. 그 안에서 잘할 수도 있고 못할 수도 있는데 그 틀만 봐서는 안된다고 생각해요. 그 너머도 바라봐야죠. 다시 말해 우리 사회에서도 혁명을 얘기하고 역사를 돌아봐야 합니다. 그렇게 보면 봉건제 안에서 아무리 정약용 선생이 잘해봐야 그건 봉건제를 더 잘하라는 것밖에 아니었다고도 평가할 수도 있겠죠. 갑오농민전쟁도 당시 개혁파에게 조롱을 받았지만 그 후 100년도 지나지 않은 지금 오히려 체제 내 개혁을 하자는 그런 세력이 비판받는 이치를 깨닫게 되죠. 요즘 개량이 대세인 듯 보여요. 민주화도 약간 진전됐고 물질적 토대도 조금 만들어져 노동 귀족층도 생기고. 그런 조건이 개량이 대세가 되게 했죠. 그것이 노동자의 지위를 사회·정치적으로 향상하는데 어느 정도 기여했느냐 안했느냐 이렇게 평가한다면, 더 잘할 수 있었는데 좀 못했다거나 그래도 어려운 가운데 잘했다거나 하는 평가가 다 가능하겠죠. 이제는 ‘틀’의 역사적 수명에 대해서까지 이야기할 수 있게 토론의 폭을 넓혀야 한다고 봐요. 생성이 있으면 소멸이 있고, 소멸 또한 또 다른 생성을 가져오는 조건이 되니까.
질> 틀 안에서의 평가는 긍정이든 부정이든 큰 차이가 없다는 건가요.
답> 평가를 둘러싸고 민주노총이 분열되어 있잖아요? 그런데 그것이 그렇게 극과 극의 대립을 할 만큼 그 평가가 과연 다르냐. 틀 안에서는 두 개의 평가가 나름 일리가 있고, 그런 것 아니겠어요? 그러면 무조건 비타협적인, 생존권적인 투쟁을 했으면 엄청나게 나아졌겠어요? 정규직들 가지고…. 내가볼 때 다른 변혁적 전망을 가지고 운동을 했을 때에만 지금 다른 결과가 만들어졌을 수 있는 것이지, 개량적 틀을 인정하는 바탕 위에서의 결과는 크게 차이가 없죠. 다들 주관적으로 자기가 개량이 아니라고 말하지만, 객관적으로 제가 봤을 때에는 좌파든 우파든 다 개량이거든요.
개량의 틀 안에서 좀 더 강성으로 투쟁을 한다고, 어떻게 보면 더 경제주의적이지. 노동운동이 그렇게 강성 경제주의적 운동을 했으면 지금 노동자계급이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훨씬 더 의식이 높아지고 지위가 높아졌겠느냐. 뭐, 높아지는 면도 있긴 하겠죠, 그러나 그런 것 가지고 질적으로 다른 운동을 만들어 내거나 어떤 정치이데올로기 지형을 만들어 내거나 할 수는 없었을 거라 봐요. 그래서 도토리 키재기지. 마치 보수 양방이 서로 싸우면서 노동자 민중이 변혁을 상상하지 못하게 하듯이. 난 그 두 흐름이 극단적으로 서로 대립하면서 대중으로 하여금, 활동가들로 하여금 변혁하는 노동운동을 상상하지 못하게 했다고 봅니다. 이런 이야길 하면 민주노총 부정하느냐는 말이 단박 나와요. 부정하면 안되나요? 운동하는 사람이.
질> 그렇죠. 모든 존재하는 것들은 부정될 수 있죠. 신성불가침은 없으니까요.
답> 수구세력들이 그런 말 잘 하잖아요? 애국가 안 부르고 국기에 대한 경례 등을 안 하면 “너희는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거냐.” 라고요. 이거랑 똑같은 거지. 그런 식의 논법이 우리 인식을 다 봉쇄했다고 봐요. 민주노총이 개량주의에 빠졌다고 비판하는 게 아니에요. 노동조합 자체는 개량이죠. 자본주의가 인정한 체계잖아요. 개량 속에서도 어떤 혁명적 계기를 만들어내고, 개량적인 지형 속에서도 대중을 어떻게 혁명적 의식 속으로 끌어올려 조직화하는 거잖아요. 민주노총의 가장 큰 문제는 변혁 또는 혁명적 의식화를 하지 않는다는 점이죠.
질> 민주노총의 가장 큰 문제는 의식화의 부재라고 보시는 건가요?
답> 요즘 우리가 잘 쓰지 않는 몇 개의 단어가 있어요. 혁명, 이 말은 보수 정치권을 포함해 사회 전반적으로 썼던 단어에요. 4.19 혁명, 5.16 혁명 그랬잖아요. 지금은 진보라는 말이 이것을 대신하고 있는데 맞지 않죠. 나아간다는 의미잖아요. 보수는 나아가지 않는다는 걸 전제하는 말이기도 하고. 근데 이번 선거 끝나고 한나라당 초선 의원들이 한나라당도 진보해야 한다고 말했죠. 심지어 홍정욱 같은 이는 ‘붉은 한나라’가 되어야 한다고도 했어요.
사회주의가 있어야 사민주의가 가능할 수 있듯이 혁명이 있어야 진보와 보수, 수구 세력 등이 구분될 수 있고 공존할 수 있는 거죠. ‘의식화’라는 말도 지금은 거의 쓰지 않잖아요. 민주노총 시대에 와서는 의식화, 조직화라는 개념, 특히 의식화라는 개념이 사라졌잖아요. 다들 교육이라고 하지. ‘의식화한다’라고 하면 지배 세력이 안 좋아하잖아요. 새로운 사상을 부여하고 근본적으로 사회를 뒤집는 꿈을 꾸게 하는 것이 ‘의식화’죠. 봉건제 시대에 동학농민군이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 그런 세상을 건설해야 한다는 천지개벽 사상을 사람들에게 퍼뜨린 것처럼.
지금은 의식화 한다는 목적의식 자체가 활동가나 지도부들한테 없어요. 그러니까 민주노총이 연수원 짓겠다고 결정한 지 11년이 됐는데도 진전이 없잖아요? 개량된 하나의 징표라고 봐요.
말은 의식의 표현인만큼 어떤 단어를 쓰느냐는 대단히 중요한 문제죠.의식화 없이 변혁(혁명)운동이 어떻게 있겠어요. 마찬가지지만 의식화를 안 하니 조직화도 안 하잖아요. 80년대는 운동단체들, 위장취업자들, 해고노동자들이 열심히 조직화를 했죠. 90년대부터 혁명의 전망을 서서히 갖지 않기 시작했어요. 혁명의 전망이 없는데 가서 인생 바쳐서 노동조합 만들어 잘 싸우라고 하면 할 사람이 누가 있어? 없죠. 조직화를 말하면 자기들은 다 했다고 말하겠지만, 객관적으로 봤을 때 지난 15년 사이에 오히려 조직률이 20%에서 10%로 절반이 됐어요. 그러니까 의식화와 조직화가 없는 운동이 어떻게 발전을 할 수 있겠어요.
혁명적 전망은 단기적으로 보면 안돼요. 긴 역사의 어떤 임무, 역사적 과제라고 하는 인식 속에서 그 문제를 봐야 된다. 뭐, 지위가 좀 높아졌으면 변혁적인 것을 좀 접어놓고, 해 놓은 것을 긍정적으로 평가해야 되나요? 그래서 얘기하기가 좀 어려워요, 사람들이 다 민주노총이라는 틀을 고정시켜 놓고 말하기 때문에.
질> 의식화가 없어진 것도 전망을 상실했기 때문이라고 보는데, 이걸 어떻게 만들어 낼 수 있을까요.노선이 불명확하고 목표도 명확하지 않은 상황이잖아요?
답> 일단 토론이 활성화돼야 해요. 사회주의면 어떤 사회주의로 할 거냐는 애기를 안 하고 그냥 과거처럼 사회주의로 가자라고 할 수는 없게 됐거든요. 현실 사회주의가 무너진 다음에 보따리 싸서 제도권으로 간 사람들도 있고, 아예 ‘대학’이라는 권력 안에 파묻히기도 하고. 그때 남은 사람들이 무슨 이야길 했냐면 ‘민주적’이라는 형용사를 붙였습니다. 민주(적) 사회주의하자, 그런데 민주적이라는 게 뭐냐, 그러면 선거하고 의회하자는 거 아니냐. 그건 부르주아 민주지요. 대부분이 부르주아 민주주의와 국가사회주의를 연결하는 사고에서 벗어나지 않았어요. 그것을 넘어가려면 사회주의에 대한 기초 공부를 해야 하거든. 창조는 모방에서 출발한다고 했듯이. 우리 운동은 그런 기초 공부를 하지 않고 머리로만 사회주의를 알고, 대충 사회주의는 소련에서 하는 거라고 생각했죠.
맑스주의적인 의미에서 사회주의가 무엇인가를 잘 몰랐다고 봐요. 짧게 사회주의를 설명하면, 정치는 프롤레탈리아 (노동자) 민주주의이고, 정치형태는 소비에트나 코뮌이고, 경제는 자유로운 생산자들의 연합에 의한 경제관리 아니겠어요? 그런데 그 가운데 민주적 사회주의라 할 때 민주는 주로 정치를 말하는데 그 정치는 의회주의하고 성질이 본질적으로 다른 것이죠. 코뮌과 소비에트는 정치자체가 자기 통치잖아요. 민중 스스로 일상적으로 밥 먹듯이 자기를 통치하는 것이지, 무슨 의회다 맡겨놓고 하는 게 아니죠.
의회주의에서 직접민주주의 아무리 해봐야 소환을 한다거나 국민투표로 한다거나 하는 수준, 즉 간접민주주의에 대한 보완이지 정말로 자기 통치는 아니란 말이죠. 민중은 뼈 빠지게 일만 하고 정치는 가진 자들한테 맡겨놓는 것은 직접이든 간접이든 다 부르주아민주주의를 말하는 거죠.
질> 그럼 지금 현재 소비에트나 코뮌으로 갈 수 있는 맹아적인 형태가 있나요.
답> 베네수엘라에서는 실제적으로 시도하고 있어요. 중앙정부가 하향식으로 조직하는 것이 아니라 밑에서 올라오는 것을 지원하는 것으로 아래로부터 꼬뮌을 생산하려고 하고 있죠. 쿠바도 지역단위에서의 자치통치를 아주 혁신하면서 강조하고 있잖아요. 예전에는 국가주의 틀 안에 있지만 지금은 지역 공동체에 권력을 넘기고 있는 중이죠. 그런데 중요한 건 이런 시도들이 대중 의식화, 사회주의 교양과 같이 가고 있다는 겁니다.
질> 학습과 토론을 열심히 해야 한다는 말인데.
답> 구소련이 붕괴되었으니 이후에는 사회주의를 한다면 그것과 어떻게 다른 것을 하자는 거냐, 적어도 그 얘기는 분명히 해야 하는데 많은 좌파들도 정확히 표현을 안 하고 있어요. 우리는 아는 게 별로 없어요. 예전엔 소련에서 나온 교과서 텍스트를 번역해서 잠시 봤고 대부분 유럽판 사회주의 서적들을 읽은 정도죠. 다른 나라에서는 2008년 세계 경제위기 후에 사회주의 학습의 기운이 굉장히 높아지고 있어요. ‘자본주의의 근본부터 알자’라고 하면서.
그런데 우리나라는 그런 흐름이 거의 없어요. 의식화가 없어지기고 있는 반면에 자본가들은 정말 끊임없이 자신들의 생각을 대중에게 주입해 왔잖아요? 아니 세뇌를 한 거지. ‘선진화’, 대~~한민국, 태극기에 대한 세련된 이미지 등. 이제는 자본주의가 가장 인간성에 부합하는 것이고 경쟁은 필연이라고 다들 생각하잖아요. 대중의 상상력을 자본이 거의 독점하고 있는 거지. 저들이 우리를 ‘좌빨’이라고 하면 아니라고 말하지 말고 “그래, 좌빨이라고 해라. 난 너희들을 수구꼴통이라고 할 테니깐. 좌빨이 맞는지, 수구꼴통이 맞는지 한 번 진검승부를 하자.”라고 얘기할 때가 되었습니다. 근데 우리도 세뇌가 되었는지 그렇게 받아치질 못하잖아요.
대중의 자발성이 중요하지만 이데올로기를 자발적으로 만들어내는 것은 매우 어렵죠. 대중들 앞에 판단할 수 있는 여러 가지의 사상들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상상력의 나래를 펴고 현실을 근본적으로 바꾸려는 노력을 하게 되지 않을까?
질> 의식화가 없어졌다는 지적 외에 민주노총의 다른 혁신 지점은
답> 산별체제가 만병통치약처럼 남용되고 있는 게 문제죠. 대부분의 활동가들이 산별전환만이 살 길이라면서 밀어붙였잖아요? 왜 그것이 살길인가에 대한 충분하고 납득될 만한 무엇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거라도 하자는 식으로 얘길 했단 말입니다. ‘그거라도 안 하는 것보다 낫진 않나’라는 식으로. 나는 사실 안하는 것보다 못할 거라고 봤어요.
금속으로 보면 민주금속 그대로 있는 게 낫지. 의식이 변화하지 않는 상태에서 형식적으로 합쳐놨을 때 오히려 더 나빠질 거다 했지. 지금 조직력이나 투쟁력이 다 떨어져 있잖아요? 얼마 전 대구 갔을 때도 동지들이 말했어요. 대구는 지역 금속이 나름대로 투쟁했던 전통이 있는 곳이거든. 근데 전체 금속이 이렇게 합쳐지고 나서 대기업 자동차노조만 부각되고 그들이 안 싸우니깐 지부인 대구가 단독으로 못 싸우잖아요. 지역 투쟁의 구심인 금속이 안 싸우니깐 연대 투쟁도 없어지고, 지역투쟁이 안 되잖아요.
역사적으로 보면 공상적 사회주의자들이 협동조합을 만병통치약으로 이야길 했거든요. 무슨 산별체제로 전환하는 것이 만병통치약인 것처럼 주장을 했는데, 결국 아니라는 것이 입증됐죠.
질> 분열, 대립하고 있는 활동가들에게 쓴소리를 한다면.
답> 저는 좀 “어른스러워야 한다.”라고 말하고 싶어요. 한나라당도 이명박도 확 가다가도 브레이크 걸리면 자기들 나름대로는 소통하겠다고도 얘기하고, 젊은 사람들의 기회를 4, 50대들한테 주겠다고도 하지 않습니까. 그런 속에서 붉은 보수하겠다는 놈도 나오고. 왜 우리는 진보 안에 좌빨이 있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어요. 진보 안에 좌빨이 없으면 진보가 제 역할 하겠어요? 오히려 그 부분, 고생한 부분을 가상하게 얘기해줘야 하는데 왕따시키죠.현실적으로는 때론 사민주의적인 수위조절을 하지만 기본적으로 자본주의를 넘어서려고 하는 목표를 안 세우고, 또 그것을 위해서 길게 보고 헌신하고 희생하는 사람들이 없이 무슨 운동이 되겠어요? 그런데 우리 운동 안에는 그 부분들을 아주 경원시하는 풍토가 만연되어 있어요. 특히 젊은 층들한테 항상 근본적인 문제의식을 갖도록 불러 일으켜주고 선배세대들이 이루지 못한 것을 딛고 나갈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더 통제하잖아요, 딱 눈치보고, 저 자식 좌빨에 물들지 않았나 하면서. 내가 봤을 때는 그래요, 운동풍토가. 그리고 이번 천안함 사태를 보면서 우리의 인식이 정말 개량화되고 자본의 포로가 되었다고 생각했어요. 사실 확인만 해 봐도 아는데…. 맨 초기 뉴스가 ‘훈련 중에 발생한 거다’라고 했거든요. 한국배가 좌초하거나 북한 어뢰가 와서 쏜 거라면 미국 배가 와서 구조한다고 난리치고 주한 미대사가 백령도 앞에까지 달려가고 그러겠어요? 상식적으로. 미국 제국주의자들은 자나 깨나 거짓말을 하는 집단이에요. 조금 멀리 가면 베트남 전쟁에 개입하려고 통킹만 사건을 조작했고, 가까이는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등에 대한 침략을 보자고요. 금융위기 그것도 다 거짓된, 허황된 미국 금융자본가들의 야심에서 나온 거 아닌가요? 그 집단에 이성과 양심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우리 국민은 정말 순진하다, 아니 운동권조차 그러고 있는 것은 이해할 수가 없어요. 계급적 관점도 민족자주의식도 없는 이 상황에서 무슨 그리 큰 차이가 있나요? 자본주의에 대한 근본 인식을 갖고 현재 제국주의의 총 본산인 미국에 대해 보다 정확한 인식을 갖자고 제안하고 싶어요
출처:노동 - “왜 변혁을 말하지 않나” from 월간노동세상(http://laborworld.co.kr)
노동세상 [38호] [현장 인터뷰] 김승호 사이버 노동대학 이사장
이춘자 발행인 | 정리 김조경민 / 사진 윤성희 기자
2010.08.09 23:38:57
김승호 사이버 노동대학 이사장은 달변이다. 듣는 사람은 빠져들거나, 꼼짝 못하고 몰리기도 한다. 혹 마음 불편해도 틀린 말이 아니기 때문에 반박하기는 쉽지 않다. 이번 인터뷰 때도 자리에 앉자마자 천안함 이야기로 필자를 꼼짝 못하게 했다. 예리하고 분석적인 시각으로 정부의 발표를 조목조목 반박했다. 백령도에 직접 가서 민심도 살피고 초기 방송 내용도 확인하고 왔단다. 전태일을 따르는 사이버 노동대학은 올해 10년이 되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사회주의 ‘의식화’의 끈을 놓지 않는 그는 인터뷰 내내 그 이야길 했다. 평등한 세상에 대한 꿈을 갖지 않고 자본주의의 본질을 알지 못하고선 ‘혁명’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질> 민주노총이 창립 15주년을 맞았습니다. 곁에서 본 그 과정에 대해 할 말이 많을 것 같은데요.
답> 민주노총은 등장 자체가 역사적 사건이기 때문에 역사적 맥락, 전망 차원에서 봐야 해요. 그런데 이전 논의들은 이런 지점은 일단 접어놓고 민주노총이 현재 주어진 활동을 어떻게 하고 있는가, 그 긍정성과 부정성만 이야기했다고 봐요.역사의 과정이 쌓여서 틀이 만들어지는 거죠. 그 틀이 수명을 다할 때까지는 계속 가죠. 그 안에서 잘할 수도 있고 못할 수도 있는데 그 틀만 봐서는 안된다고 생각해요. 그 너머도 바라봐야죠. 다시 말해 우리 사회에서도 혁명을 얘기하고 역사를 돌아봐야 합니다. 그렇게 보면 봉건제 안에서 아무리 정약용 선생이 잘해봐야 그건 봉건제를 더 잘하라는 것밖에 아니었다고도 평가할 수도 있겠죠. 갑오농민전쟁도 당시 개혁파에게 조롱을 받았지만 그 후 100년도 지나지 않은 지금 오히려 체제 내 개혁을 하자는 그런 세력이 비판받는 이치를 깨닫게 되죠. 요즘 개량이 대세인 듯 보여요. 민주화도 약간 진전됐고 물질적 토대도 조금 만들어져 노동 귀족층도 생기고. 그런 조건이 개량이 대세가 되게 했죠. 그것이 노동자의 지위를 사회·정치적으로 향상하는데 어느 정도 기여했느냐 안했느냐 이렇게 평가한다면, 더 잘할 수 있었는데 좀 못했다거나 그래도 어려운 가운데 잘했다거나 하는 평가가 다 가능하겠죠. 이제는 ‘틀’의 역사적 수명에 대해서까지 이야기할 수 있게 토론의 폭을 넓혀야 한다고 봐요. 생성이 있으면 소멸이 있고, 소멸 또한 또 다른 생성을 가져오는 조건이 되니까.
질> 틀 안에서의 평가는 긍정이든 부정이든 큰 차이가 없다는 건가요.
답> 평가를 둘러싸고 민주노총이 분열되어 있잖아요? 그런데 그것이 그렇게 극과 극의 대립을 할 만큼 그 평가가 과연 다르냐. 틀 안에서는 두 개의 평가가 나름 일리가 있고, 그런 것 아니겠어요? 그러면 무조건 비타협적인, 생존권적인 투쟁을 했으면 엄청나게 나아졌겠어요? 정규직들 가지고…. 내가볼 때 다른 변혁적 전망을 가지고 운동을 했을 때에만 지금 다른 결과가 만들어졌을 수 있는 것이지, 개량적 틀을 인정하는 바탕 위에서의 결과는 크게 차이가 없죠. 다들 주관적으로 자기가 개량이 아니라고 말하지만, 객관적으로 제가 봤을 때에는 좌파든 우파든 다 개량이거든요.
개량의 틀 안에서 좀 더 강성으로 투쟁을 한다고, 어떻게 보면 더 경제주의적이지. 노동운동이 그렇게 강성 경제주의적 운동을 했으면 지금 노동자계급이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훨씬 더 의식이 높아지고 지위가 높아졌겠느냐. 뭐, 높아지는 면도 있긴 하겠죠, 그러나 그런 것 가지고 질적으로 다른 운동을 만들어 내거나 어떤 정치이데올로기 지형을 만들어 내거나 할 수는 없었을 거라 봐요. 그래서 도토리 키재기지. 마치 보수 양방이 서로 싸우면서 노동자 민중이 변혁을 상상하지 못하게 하듯이. 난 그 두 흐름이 극단적으로 서로 대립하면서 대중으로 하여금, 활동가들로 하여금 변혁하는 노동운동을 상상하지 못하게 했다고 봅니다. 이런 이야길 하면 민주노총 부정하느냐는 말이 단박 나와요. 부정하면 안되나요? 운동하는 사람이.
질> 그렇죠. 모든 존재하는 것들은 부정될 수 있죠. 신성불가침은 없으니까요.
답> 수구세력들이 그런 말 잘 하잖아요? 애국가 안 부르고 국기에 대한 경례 등을 안 하면 “너희는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거냐.” 라고요. 이거랑 똑같은 거지. 그런 식의 논법이 우리 인식을 다 봉쇄했다고 봐요. 민주노총이 개량주의에 빠졌다고 비판하는 게 아니에요. 노동조합 자체는 개량이죠. 자본주의가 인정한 체계잖아요. 개량 속에서도 어떤 혁명적 계기를 만들어내고, 개량적인 지형 속에서도 대중을 어떻게 혁명적 의식 속으로 끌어올려 조직화하는 거잖아요. 민주노총의 가장 큰 문제는 변혁 또는 혁명적 의식화를 하지 않는다는 점이죠.
질> 민주노총의 가장 큰 문제는 의식화의 부재라고 보시는 건가요?
답> 요즘 우리가 잘 쓰지 않는 몇 개의 단어가 있어요. 혁명, 이 말은 보수 정치권을 포함해 사회 전반적으로 썼던 단어에요. 4.19 혁명, 5.16 혁명 그랬잖아요. 지금은 진보라는 말이 이것을 대신하고 있는데 맞지 않죠. 나아간다는 의미잖아요. 보수는 나아가지 않는다는 걸 전제하는 말이기도 하고. 근데 이번 선거 끝나고 한나라당 초선 의원들이 한나라당도 진보해야 한다고 말했죠. 심지어 홍정욱 같은 이는 ‘붉은 한나라’가 되어야 한다고도 했어요.
사회주의가 있어야 사민주의가 가능할 수 있듯이 혁명이 있어야 진보와 보수, 수구 세력 등이 구분될 수 있고 공존할 수 있는 거죠. ‘의식화’라는 말도 지금은 거의 쓰지 않잖아요. 민주노총 시대에 와서는 의식화, 조직화라는 개념, 특히 의식화라는 개념이 사라졌잖아요. 다들 교육이라고 하지. ‘의식화한다’라고 하면 지배 세력이 안 좋아하잖아요. 새로운 사상을 부여하고 근본적으로 사회를 뒤집는 꿈을 꾸게 하는 것이 ‘의식화’죠. 봉건제 시대에 동학농민군이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 그런 세상을 건설해야 한다는 천지개벽 사상을 사람들에게 퍼뜨린 것처럼.
지금은 의식화 한다는 목적의식 자체가 활동가나 지도부들한테 없어요. 그러니까 민주노총이 연수원 짓겠다고 결정한 지 11년이 됐는데도 진전이 없잖아요? 개량된 하나의 징표라고 봐요.
말은 의식의 표현인만큼 어떤 단어를 쓰느냐는 대단히 중요한 문제죠.의식화 없이 변혁(혁명)운동이 어떻게 있겠어요. 마찬가지지만 의식화를 안 하니 조직화도 안 하잖아요. 80년대는 운동단체들, 위장취업자들, 해고노동자들이 열심히 조직화를 했죠. 90년대부터 혁명의 전망을 서서히 갖지 않기 시작했어요. 혁명의 전망이 없는데 가서 인생 바쳐서 노동조합 만들어 잘 싸우라고 하면 할 사람이 누가 있어? 없죠. 조직화를 말하면 자기들은 다 했다고 말하겠지만, 객관적으로 봤을 때 지난 15년 사이에 오히려 조직률이 20%에서 10%로 절반이 됐어요. 그러니까 의식화와 조직화가 없는 운동이 어떻게 발전을 할 수 있겠어요.
혁명적 전망은 단기적으로 보면 안돼요. 긴 역사의 어떤 임무, 역사적 과제라고 하는 인식 속에서 그 문제를 봐야 된다. 뭐, 지위가 좀 높아졌으면 변혁적인 것을 좀 접어놓고, 해 놓은 것을 긍정적으로 평가해야 되나요? 그래서 얘기하기가 좀 어려워요, 사람들이 다 민주노총이라는 틀을 고정시켜 놓고 말하기 때문에.
질> 의식화가 없어진 것도 전망을 상실했기 때문이라고 보는데, 이걸 어떻게 만들어 낼 수 있을까요.노선이 불명확하고 목표도 명확하지 않은 상황이잖아요?
답> 일단 토론이 활성화돼야 해요. 사회주의면 어떤 사회주의로 할 거냐는 애기를 안 하고 그냥 과거처럼 사회주의로 가자라고 할 수는 없게 됐거든요. 현실 사회주의가 무너진 다음에 보따리 싸서 제도권으로 간 사람들도 있고, 아예 ‘대학’이라는 권력 안에 파묻히기도 하고. 그때 남은 사람들이 무슨 이야길 했냐면 ‘민주적’이라는 형용사를 붙였습니다. 민주(적) 사회주의하자, 그런데 민주적이라는 게 뭐냐, 그러면 선거하고 의회하자는 거 아니냐. 그건 부르주아 민주지요. 대부분이 부르주아 민주주의와 국가사회주의를 연결하는 사고에서 벗어나지 않았어요. 그것을 넘어가려면 사회주의에 대한 기초 공부를 해야 하거든. 창조는 모방에서 출발한다고 했듯이. 우리 운동은 그런 기초 공부를 하지 않고 머리로만 사회주의를 알고, 대충 사회주의는 소련에서 하는 거라고 생각했죠.
맑스주의적인 의미에서 사회주의가 무엇인가를 잘 몰랐다고 봐요. 짧게 사회주의를 설명하면, 정치는 프롤레탈리아 (노동자) 민주주의이고, 정치형태는 소비에트나 코뮌이고, 경제는 자유로운 생산자들의 연합에 의한 경제관리 아니겠어요? 그런데 그 가운데 민주적 사회주의라 할 때 민주는 주로 정치를 말하는데 그 정치는 의회주의하고 성질이 본질적으로 다른 것이죠. 코뮌과 소비에트는 정치자체가 자기 통치잖아요. 민중 스스로 일상적으로 밥 먹듯이 자기를 통치하는 것이지, 무슨 의회다 맡겨놓고 하는 게 아니죠.
의회주의에서 직접민주주의 아무리 해봐야 소환을 한다거나 국민투표로 한다거나 하는 수준, 즉 간접민주주의에 대한 보완이지 정말로 자기 통치는 아니란 말이죠. 민중은 뼈 빠지게 일만 하고 정치는 가진 자들한테 맡겨놓는 것은 직접이든 간접이든 다 부르주아민주주의를 말하는 거죠.
질> 그럼 지금 현재 소비에트나 코뮌으로 갈 수 있는 맹아적인 형태가 있나요.
답> 베네수엘라에서는 실제적으로 시도하고 있어요. 중앙정부가 하향식으로 조직하는 것이 아니라 밑에서 올라오는 것을 지원하는 것으로 아래로부터 꼬뮌을 생산하려고 하고 있죠. 쿠바도 지역단위에서의 자치통치를 아주 혁신하면서 강조하고 있잖아요. 예전에는 국가주의 틀 안에 있지만 지금은 지역 공동체에 권력을 넘기고 있는 중이죠. 그런데 중요한 건 이런 시도들이 대중 의식화, 사회주의 교양과 같이 가고 있다는 겁니다.
질> 학습과 토론을 열심히 해야 한다는 말인데.
답> 구소련이 붕괴되었으니 이후에는 사회주의를 한다면 그것과 어떻게 다른 것을 하자는 거냐, 적어도 그 얘기는 분명히 해야 하는데 많은 좌파들도 정확히 표현을 안 하고 있어요. 우리는 아는 게 별로 없어요. 예전엔 소련에서 나온 교과서 텍스트를 번역해서 잠시 봤고 대부분 유럽판 사회주의 서적들을 읽은 정도죠. 다른 나라에서는 2008년 세계 경제위기 후에 사회주의 학습의 기운이 굉장히 높아지고 있어요. ‘자본주의의 근본부터 알자’라고 하면서.
그런데 우리나라는 그런 흐름이 거의 없어요. 의식화가 없어지기고 있는 반면에 자본가들은 정말 끊임없이 자신들의 생각을 대중에게 주입해 왔잖아요? 아니 세뇌를 한 거지. ‘선진화’, 대~~한민국, 태극기에 대한 세련된 이미지 등. 이제는 자본주의가 가장 인간성에 부합하는 것이고 경쟁은 필연이라고 다들 생각하잖아요. 대중의 상상력을 자본이 거의 독점하고 있는 거지. 저들이 우리를 ‘좌빨’이라고 하면 아니라고 말하지 말고 “그래, 좌빨이라고 해라. 난 너희들을 수구꼴통이라고 할 테니깐. 좌빨이 맞는지, 수구꼴통이 맞는지 한 번 진검승부를 하자.”라고 얘기할 때가 되었습니다. 근데 우리도 세뇌가 되었는지 그렇게 받아치질 못하잖아요.
대중의 자발성이 중요하지만 이데올로기를 자발적으로 만들어내는 것은 매우 어렵죠. 대중들 앞에 판단할 수 있는 여러 가지의 사상들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상상력의 나래를 펴고 현실을 근본적으로 바꾸려는 노력을 하게 되지 않을까?
질> 의식화가 없어졌다는 지적 외에 민주노총의 다른 혁신 지점은
답> 산별체제가 만병통치약처럼 남용되고 있는 게 문제죠. 대부분의 활동가들이 산별전환만이 살 길이라면서 밀어붙였잖아요? 왜 그것이 살길인가에 대한 충분하고 납득될 만한 무엇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거라도 하자는 식으로 얘길 했단 말입니다. ‘그거라도 안 하는 것보다 낫진 않나’라는 식으로. 나는 사실 안하는 것보다 못할 거라고 봤어요.
금속으로 보면 민주금속 그대로 있는 게 낫지. 의식이 변화하지 않는 상태에서 형식적으로 합쳐놨을 때 오히려 더 나빠질 거다 했지. 지금 조직력이나 투쟁력이 다 떨어져 있잖아요? 얼마 전 대구 갔을 때도 동지들이 말했어요. 대구는 지역 금속이 나름대로 투쟁했던 전통이 있는 곳이거든. 근데 전체 금속이 이렇게 합쳐지고 나서 대기업 자동차노조만 부각되고 그들이 안 싸우니깐 지부인 대구가 단독으로 못 싸우잖아요. 지역 투쟁의 구심인 금속이 안 싸우니깐 연대 투쟁도 없어지고, 지역투쟁이 안 되잖아요.
역사적으로 보면 공상적 사회주의자들이 협동조합을 만병통치약으로 이야길 했거든요. 무슨 산별체제로 전환하는 것이 만병통치약인 것처럼 주장을 했는데, 결국 아니라는 것이 입증됐죠.
질> 분열, 대립하고 있는 활동가들에게 쓴소리를 한다면.
답> 저는 좀 “어른스러워야 한다.”라고 말하고 싶어요. 한나라당도 이명박도 확 가다가도 브레이크 걸리면 자기들 나름대로는 소통하겠다고도 얘기하고, 젊은 사람들의 기회를 4, 50대들한테 주겠다고도 하지 않습니까. 그런 속에서 붉은 보수하겠다는 놈도 나오고. 왜 우리는 진보 안에 좌빨이 있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어요. 진보 안에 좌빨이 없으면 진보가 제 역할 하겠어요? 오히려 그 부분, 고생한 부분을 가상하게 얘기해줘야 하는데 왕따시키죠.현실적으로는 때론 사민주의적인 수위조절을 하지만 기본적으로 자본주의를 넘어서려고 하는 목표를 안 세우고, 또 그것을 위해서 길게 보고 헌신하고 희생하는 사람들이 없이 무슨 운동이 되겠어요? 그런데 우리 운동 안에는 그 부분들을 아주 경원시하는 풍토가 만연되어 있어요. 특히 젊은 층들한테 항상 근본적인 문제의식을 갖도록 불러 일으켜주고 선배세대들이 이루지 못한 것을 딛고 나갈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더 통제하잖아요, 딱 눈치보고, 저 자식 좌빨에 물들지 않았나 하면서. 내가 봤을 때는 그래요, 운동풍토가. 그리고 이번 천안함 사태를 보면서 우리의 인식이 정말 개량화되고 자본의 포로가 되었다고 생각했어요. 사실 확인만 해 봐도 아는데…. 맨 초기 뉴스가 ‘훈련 중에 발생한 거다’라고 했거든요. 한국배가 좌초하거나 북한 어뢰가 와서 쏜 거라면 미국 배가 와서 구조한다고 난리치고 주한 미대사가 백령도 앞에까지 달려가고 그러겠어요? 상식적으로. 미국 제국주의자들은 자나 깨나 거짓말을 하는 집단이에요. 조금 멀리 가면 베트남 전쟁에 개입하려고 통킹만 사건을 조작했고, 가까이는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등에 대한 침략을 보자고요. 금융위기 그것도 다 거짓된, 허황된 미국 금융자본가들의 야심에서 나온 거 아닌가요? 그 집단에 이성과 양심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우리 국민은 정말 순진하다, 아니 운동권조차 그러고 있는 것은 이해할 수가 없어요. 계급적 관점도 민족자주의식도 없는 이 상황에서 무슨 그리 큰 차이가 있나요? 자본주의에 대한 근본 인식을 갖고 현재 제국주의의 총 본산인 미국에 대해 보다 정확한 인식을 갖자고 제안하고 싶어요
출처:노동 - “왜 변혁을 말하지 않나” from 월간노동세상(http://laborworl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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