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년 정세와 노동자 투쟁의 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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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승호 작성일07-11-30 00:00 조회628회 댓글0건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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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와투쟁방향070202.hwp (46.5K) 0회 다운로드 DATE : 2015-05-12 18:17:27
본문
1. 흔들리고 있는 한국의 지배체제
2. 흔들리고 있는 미 제국주의 유일패권과 세계자본주의 체제
3. 노동운동의 과제, 그리고 투쟁방향
1) 남한의 노동운동과 노동자계급은 지금 기로에 서 있다. 지배계급의 전면적인 노동 유연화와 무력화 공세에 소극적으로 대응하거나 굴종함으로써 사회·역사 속에서 기억되지 않는 존재로 사라져 갈 것인가? 아니면 다시금 변혁 또는 혁명의 기치를 치켜들고 지배계급 즉 자본의 무력화와 해체를 향해 과감하게 도전할 것인가? 지금으로부터 37년 전 전태일 열사가 행했던 바로 그 정신과 목표를 가지고 떨쳐나설 것인가? “인간을 물질화하는 세대, 인간의 개성과 참인간적 본능의 충족을 무시당하고 희망의 가지를 잘린 채 존재하기 위한 대가로 물질적 가치로 전락한 인간상을 증오한다. / 어떠한 인간적 문제이든 외면할 수 없는 것이 인간이 가져야 할 인간적 문제이다. /한 인간이 인간으로서의 모든 것을 박탈당하고 박탈하고 있는 이 무시무시한 세대에서 나는 절대로 어떠한 불의와도 타협하지 않을 것이며, 동시에 어떠한 불의도 묵과하지 않고 주목하고 시정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인간을 필요로 하는 모든 인간들이여, 그대들은 무엇부터 생각하는가? 인간의 가치를? 희망과 윤리를? 아니면 그대 금전대의 부피를?” “얼마나 위로해야 할 나의 전체의 일부냐! / 얼마나 불쌍한 현실의 패자(敗子)냐! / 얼마나 몸서리치는 사회의 한 색깔이냐! / 그렇다. 저주받아야 할 불합리한 현실이 쓰다 버린 쪽박이다! 쪽박을 쓰기 시작했으면 끝까지 부서지지 않게 잘 쓰든지 아니면 아예 쓰지를 말든지, 이것도 저것도 아니고 그저 무자비하게 사회는 자기 하나를 위해 이 어질고 착한, 반항하지 못하는, 마도로스 모자를 쓴 한 인간을, 아니 저희들의 전체의 일부를 메마른 길바닥 위에다 아무렇게나 내다버렸다./ 이 가엾은 인간은 처음 얼마간은 뜨거운 길바닥에서 정신을 못 차린 채로 얼마를 지내고, 또 정신을 차리고 얼마간의 시간을 보내고, 또 의지와 자존심으로 얼마를 보내고, 마침내 금이 간 쪽박은 뜨거운 열기에 물기가 증발되어 말라 비틀어져서 두 쪽이 난다. / 그 중 한 쪽은 자진해서 쓰레기통에 기어들어가 눈을 감고 죽어버렸다. 또 한쪽 떨어져나간 한쪽은 어떻게든지 물기를 다시 빨아들여 비틀어졌던 육체를 다시 펴고 어떡해서든 그 전체 속에 다시 뭉쳐보기를 희망하는 것일 거야./ 그런데 내 앞에 선 반쪽은 희망하는 것이 아니라 떨어져 나간 반쪽을 생각하는 것 같애. 지난날 그 많은 양의 물을 삼키던 그 반쪽을 말일세. 나도 예외는 아닐세. 그렇지만 그 속에 뭉치지를 않고, 그 뭉친 덩어리를 전부 분해해 버리겠네./ 오늘 나는 여기서 내일 하루를 구(求)하고 내일 하루는 그 분해하는 방법을 연구할 것일세.”(전태일 평전, 195~196쪽)
2) 조성된 정세는 무엇보다도 노동자계급이 미국의 경우처럼 자본가계급의 한 정치 분파(중도파 또는 중도좌파)에 대한 지지 세력이거나, 일본의 경우처럼 있으나마나한 미미한 정치세력이거나 한 것이 아니라 자본가계급에 맞짱을 뜨는 정치적 적수로 등장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지배계급은 지금 한국 노동자계급을 첫째 또는 둘째의 경우로 통제하는 방향에서 정치지형의 재구성을 추진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부르조아 정파들 간의 대화합, 대타협 또는 대연합을 추구하면서! 따라서 이러한 지배계급의 의도가 관철될 경우, 이는 곧 미국이나 일본과 같은 노동운동의 무력화와/또는 노동의 완전한 유연화로 귀착될 것이다. 지금의 조성된 정세 하에서는 노동운동이 경제투쟁과 정치투쟁 그 가운데 어느 한 쪽에만 의거해서는 자본의 공세를 극복할 수 없다. 경제투쟁에서는 비등비등하지만 정치투쟁에서는 분명한 열세라면 전체 계급투쟁에서 십중팔구 패배하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여당은 물론이고 야당도 정략적 이유로라도 노동을 변호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하 계급투쟁의 특징이다. 그리고 자본의 위기가 심화될수록 이러한 경향은 더욱 강화될 것이다. 더구나 패배하지 않는 것을 넘어 전체 계급투쟁에서 조금이라도 공세를 취하고자 한다면, 그리하여 노동자의 삶이 더 이상 황폐화 되지 않는 것을 넘어 조금이라도 자본의 지배력을 해체하고자 한다면, 경제투쟁에서도 갈수록 역관계가 밀리고 있는 상황에서 정치투쟁 전선에서의 역관계의 획기적인 변화가 필수적이다. 사실 이런 공세적 기세로 투쟁하지 않는 한 정도의 차이가 있을망정 패배하는 것은 기정사실이다. 이는 97년 체제 하의 10여 년 간의 경험이 명백히 증명하고 있는 바이다. 그러므로 이른바 포스트 87년 체제는 87년 체제와 달리 노동정치가 독립적이면서도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체제가 되어야 하며, 이것이 현 시기 노동운동의 핵심적 과제이다.
3) 2007년은 노동자 정치투쟁을 대대적으로 발전시키고 이를 통해 정치지형을 위력적인 보혁구도로 재편하며, 이로써 계급 역관계를 노자대등의 수준으로 재구성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다. “위기는 기회다”라는 말은 바로 이런 상황에 해당하는 표현인 듯하다. 자유주의(liberal) 개혁파는 신자유주의 개혁파로 됨으로써 유력한 정파로 계속 존립할 수 있을지 불투명한 상태이다. 그러므로 분명, 노동자계급의 특권적 부분과 노동운동의 출세주의적 부분은 또다시 그렇게 흡수될 것이지만, 노동자계급과 그 정치의 대세가 자유주의 정파의 지지세력으로 흡수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 한편 수구적 보수파는 개혁파의 무능과 반노동자적, 반민중적 정치로 반사적 이익을 얻고 있으나 그들 역시 신자유주의적이며 개혁파와 다른 정치적 내용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확고한 기반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오로지 과거를 우려먹는 성장신화로 대중을 조작할 수 있을 뿐이다. 그렇다고 현재의 민주노동당이 좀더 힘을 단합해서 적극적으로 발동하면 그러한 목표가 달성될 수 있을까? 민주노동당으로 표현되는 노동정치 또한 노동자·민중의 지지와 기대로부터 멀어지고 있다. 왜 그렇게 되고 있는가? 북핵 지지 때문인가? 일심회 사건 때문인가? 그런 지점들이 초래한 부정적 효과도 없지 않겠지만 보다 결정적인 것은 민주노동당으로 표현되는 노동정치가 계급대중을 대변하는 정치가 되지 못하고 민주노총 조합원을 대변하는 조합주의 정치에 머무르고 있기 때문이다. 주5일제 문제나 비정규법 문제에서 전형적으로 그러하다. 그와 동시에 전체 노동자·민중에게 지대한 관계가 있는 의제들에 대해서도 개량주의적인 정치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재벌문제나 부동산투기 문제와 관련해서 전형적으로 그러하다. 요컨대 지금과 같이 사회양극화가 계속되고 있는 조건 하에서 조합주의 정치, 개량주의 정치가 아니라 계급정치와 변혁정치를 해야만 선거투쟁이든 저항투쟁이든 힘 있는 정치투쟁이 이루어질 수 있으며, 그럼으로써 계급역관계를 변화시키고 노동자·민중의 인간다운 삶을 옹호할 수 있다. 물론 이 때 변혁이라고 할 때 계급적이라고 해서 곧 사회주의 변혁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한 지향을 갖는, 다시 말해서 자본의 소유·지배력을 침식하고 생산 노동자의 자기 소유와 결정이 이를 대체하는 방향 하에서 노동자대중이 주 동력이 되고 주체가 되는 노동자 민주주의 변혁을 말하는 것이다. 그 구체적 강령은 부르조아 혁명과 사회주의 혁명의 2단계론에 의해서가 아니라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 혁명으로부터 사회주의 혁명으로의 중장기적인 이행의 관점에서 주객관적인 조건에 맞게 구성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전문가들과 관료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충분한 대중적인 토의를 거쳐서 대중들에 의해 결정되어야 할 것이다. 후보선출 역시 그렇게 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그리고 이러한 적극적 대선투쟁은 한미 FTA 반대투쟁을 비롯한 대중정치투쟁들과 상호보완을 이루며 전개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한 대중정치투쟁 의제로는 주택문제, 교육문제, 연금문제, 의료문제, 고용문제, 빈민문제, 노동기본권 문제 등 생활상의 요구들을 중심으로 하면서, 재벌해체, 한미안보조약 개폐, 반민주악법 개폐, 반민주 국가기구 개폐 등 정치·경제 체제의 진보적 변혁 대안이 대선 강령 그 자체가 되어야 할 것이다.(2007, 2, 2)
2. 흔들리고 있는 미 제국주의 유일패권과 세계자본주의 체제
3. 노동운동의 과제, 그리고 투쟁방향
1) 남한의 노동운동과 노동자계급은 지금 기로에 서 있다. 지배계급의 전면적인 노동 유연화와 무력화 공세에 소극적으로 대응하거나 굴종함으로써 사회·역사 속에서 기억되지 않는 존재로 사라져 갈 것인가? 아니면 다시금 변혁 또는 혁명의 기치를 치켜들고 지배계급 즉 자본의 무력화와 해체를 향해 과감하게 도전할 것인가? 지금으로부터 37년 전 전태일 열사가 행했던 바로 그 정신과 목표를 가지고 떨쳐나설 것인가? “인간을 물질화하는 세대, 인간의 개성과 참인간적 본능의 충족을 무시당하고 희망의 가지를 잘린 채 존재하기 위한 대가로 물질적 가치로 전락한 인간상을 증오한다. / 어떠한 인간적 문제이든 외면할 수 없는 것이 인간이 가져야 할 인간적 문제이다. /한 인간이 인간으로서의 모든 것을 박탈당하고 박탈하고 있는 이 무시무시한 세대에서 나는 절대로 어떠한 불의와도 타협하지 않을 것이며, 동시에 어떠한 불의도 묵과하지 않고 주목하고 시정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인간을 필요로 하는 모든 인간들이여, 그대들은 무엇부터 생각하는가? 인간의 가치를? 희망과 윤리를? 아니면 그대 금전대의 부피를?” “얼마나 위로해야 할 나의 전체의 일부냐! / 얼마나 불쌍한 현실의 패자(敗子)냐! / 얼마나 몸서리치는 사회의 한 색깔이냐! / 그렇다. 저주받아야 할 불합리한 현실이 쓰다 버린 쪽박이다! 쪽박을 쓰기 시작했으면 끝까지 부서지지 않게 잘 쓰든지 아니면 아예 쓰지를 말든지, 이것도 저것도 아니고 그저 무자비하게 사회는 자기 하나를 위해 이 어질고 착한, 반항하지 못하는, 마도로스 모자를 쓴 한 인간을, 아니 저희들의 전체의 일부를 메마른 길바닥 위에다 아무렇게나 내다버렸다./ 이 가엾은 인간은 처음 얼마간은 뜨거운 길바닥에서 정신을 못 차린 채로 얼마를 지내고, 또 정신을 차리고 얼마간의 시간을 보내고, 또 의지와 자존심으로 얼마를 보내고, 마침내 금이 간 쪽박은 뜨거운 열기에 물기가 증발되어 말라 비틀어져서 두 쪽이 난다. / 그 중 한 쪽은 자진해서 쓰레기통에 기어들어가 눈을 감고 죽어버렸다. 또 한쪽 떨어져나간 한쪽은 어떻게든지 물기를 다시 빨아들여 비틀어졌던 육체를 다시 펴고 어떡해서든 그 전체 속에 다시 뭉쳐보기를 희망하는 것일 거야./ 그런데 내 앞에 선 반쪽은 희망하는 것이 아니라 떨어져 나간 반쪽을 생각하는 것 같애. 지난날 그 많은 양의 물을 삼키던 그 반쪽을 말일세. 나도 예외는 아닐세. 그렇지만 그 속에 뭉치지를 않고, 그 뭉친 덩어리를 전부 분해해 버리겠네./ 오늘 나는 여기서 내일 하루를 구(求)하고 내일 하루는 그 분해하는 방법을 연구할 것일세.”(전태일 평전, 195~196쪽)
2) 조성된 정세는 무엇보다도 노동자계급이 미국의 경우처럼 자본가계급의 한 정치 분파(중도파 또는 중도좌파)에 대한 지지 세력이거나, 일본의 경우처럼 있으나마나한 미미한 정치세력이거나 한 것이 아니라 자본가계급에 맞짱을 뜨는 정치적 적수로 등장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지배계급은 지금 한국 노동자계급을 첫째 또는 둘째의 경우로 통제하는 방향에서 정치지형의 재구성을 추진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부르조아 정파들 간의 대화합, 대타협 또는 대연합을 추구하면서! 따라서 이러한 지배계급의 의도가 관철될 경우, 이는 곧 미국이나 일본과 같은 노동운동의 무력화와/또는 노동의 완전한 유연화로 귀착될 것이다. 지금의 조성된 정세 하에서는 노동운동이 경제투쟁과 정치투쟁 그 가운데 어느 한 쪽에만 의거해서는 자본의 공세를 극복할 수 없다. 경제투쟁에서는 비등비등하지만 정치투쟁에서는 분명한 열세라면 전체 계급투쟁에서 십중팔구 패배하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여당은 물론이고 야당도 정략적 이유로라도 노동을 변호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하 계급투쟁의 특징이다. 그리고 자본의 위기가 심화될수록 이러한 경향은 더욱 강화될 것이다. 더구나 패배하지 않는 것을 넘어 전체 계급투쟁에서 조금이라도 공세를 취하고자 한다면, 그리하여 노동자의 삶이 더 이상 황폐화 되지 않는 것을 넘어 조금이라도 자본의 지배력을 해체하고자 한다면, 경제투쟁에서도 갈수록 역관계가 밀리고 있는 상황에서 정치투쟁 전선에서의 역관계의 획기적인 변화가 필수적이다. 사실 이런 공세적 기세로 투쟁하지 않는 한 정도의 차이가 있을망정 패배하는 것은 기정사실이다. 이는 97년 체제 하의 10여 년 간의 경험이 명백히 증명하고 있는 바이다. 그러므로 이른바 포스트 87년 체제는 87년 체제와 달리 노동정치가 독립적이면서도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체제가 되어야 하며, 이것이 현 시기 노동운동의 핵심적 과제이다.
3) 2007년은 노동자 정치투쟁을 대대적으로 발전시키고 이를 통해 정치지형을 위력적인 보혁구도로 재편하며, 이로써 계급 역관계를 노자대등의 수준으로 재구성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다. “위기는 기회다”라는 말은 바로 이런 상황에 해당하는 표현인 듯하다. 자유주의(liberal) 개혁파는 신자유주의 개혁파로 됨으로써 유력한 정파로 계속 존립할 수 있을지 불투명한 상태이다. 그러므로 분명, 노동자계급의 특권적 부분과 노동운동의 출세주의적 부분은 또다시 그렇게 흡수될 것이지만, 노동자계급과 그 정치의 대세가 자유주의 정파의 지지세력으로 흡수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 한편 수구적 보수파는 개혁파의 무능과 반노동자적, 반민중적 정치로 반사적 이익을 얻고 있으나 그들 역시 신자유주의적이며 개혁파와 다른 정치적 내용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확고한 기반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오로지 과거를 우려먹는 성장신화로 대중을 조작할 수 있을 뿐이다. 그렇다고 현재의 민주노동당이 좀더 힘을 단합해서 적극적으로 발동하면 그러한 목표가 달성될 수 있을까? 민주노동당으로 표현되는 노동정치 또한 노동자·민중의 지지와 기대로부터 멀어지고 있다. 왜 그렇게 되고 있는가? 북핵 지지 때문인가? 일심회 사건 때문인가? 그런 지점들이 초래한 부정적 효과도 없지 않겠지만 보다 결정적인 것은 민주노동당으로 표현되는 노동정치가 계급대중을 대변하는 정치가 되지 못하고 민주노총 조합원을 대변하는 조합주의 정치에 머무르고 있기 때문이다. 주5일제 문제나 비정규법 문제에서 전형적으로 그러하다. 그와 동시에 전체 노동자·민중에게 지대한 관계가 있는 의제들에 대해서도 개량주의적인 정치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재벌문제나 부동산투기 문제와 관련해서 전형적으로 그러하다. 요컨대 지금과 같이 사회양극화가 계속되고 있는 조건 하에서 조합주의 정치, 개량주의 정치가 아니라 계급정치와 변혁정치를 해야만 선거투쟁이든 저항투쟁이든 힘 있는 정치투쟁이 이루어질 수 있으며, 그럼으로써 계급역관계를 변화시키고 노동자·민중의 인간다운 삶을 옹호할 수 있다. 물론 이 때 변혁이라고 할 때 계급적이라고 해서 곧 사회주의 변혁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한 지향을 갖는, 다시 말해서 자본의 소유·지배력을 침식하고 생산 노동자의 자기 소유와 결정이 이를 대체하는 방향 하에서 노동자대중이 주 동력이 되고 주체가 되는 노동자 민주주의 변혁을 말하는 것이다. 그 구체적 강령은 부르조아 혁명과 사회주의 혁명의 2단계론에 의해서가 아니라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 혁명으로부터 사회주의 혁명으로의 중장기적인 이행의 관점에서 주객관적인 조건에 맞게 구성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전문가들과 관료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충분한 대중적인 토의를 거쳐서 대중들에 의해 결정되어야 할 것이다. 후보선출 역시 그렇게 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그리고 이러한 적극적 대선투쟁은 한미 FTA 반대투쟁을 비롯한 대중정치투쟁들과 상호보완을 이루며 전개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한 대중정치투쟁 의제로는 주택문제, 교육문제, 연금문제, 의료문제, 고용문제, 빈민문제, 노동기본권 문제 등 생활상의 요구들을 중심으로 하면서, 재벌해체, 한미안보조약 개폐, 반민주악법 개폐, 반민주 국가기구 개폐 등 정치·경제 체제의 진보적 변혁 대안이 대선 강령 그 자체가 되어야 할 것이다.(2007, 2,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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