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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 시대 유럽 노동자들의 선택과 노동운동의 새로운 경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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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병기 작성일02-11-30 00:00 조회77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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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 시대 유럽 노동자들의 선택과 노동운동의 새로운 경향

 

정병기

 

『현장에서 미래를』76(2002.04)

 

지난 3월 21일 독일 금속노조는 임금협상과 관련해 전국총파업에 들어갈 것을 경고했으며, 4월 16일 이탈리아의 3대 노조는 동맹총파업을 벌였다. 프랑스에서도 극우 민족전선의 대통령 결선투표 진출에 맞서 대규모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임금협상 관련 파업과 노동법 개악 반대 파업 및 정치적 이슈의 시민운동적 성격이라는 매우 다른 모습을 띄고 현상하는 저항운동들이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또한 각 수준에서 전개되듯이 그에 대한 반대투쟁도 직간접적으로 이와 맞물려 산업현장과 사회적 차원의 저항 및 직접적인 제도권 이슈로 다양하게 나타나는 것이다.

 

 

신자유주의 정치와 사민주의 정권의 등장

 

1980년대는 정치적으로 신보수주의 정권에 의한 신자유주의 정치가 전개되던 시기였다. 1970년대를 거치는 동안 확대된 재정적자와 새로운 경제위기에 직면하여 좌파들의 케인즈주의적 대안들은 더 이상 적합하지 못함이 판명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보수우파진영은 자유주의에 대한 강력한 믿음에 입각해 시장에 대한 정부의 개입은 최소화하되 시장의 자유를 제한하고자 하는 사회운동에 대해서는 강력한 제재를 가하는 '작지만 강력한 정부'라는 모토로 과거 노동자들의 투쟁 성과들을 허물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자체로 이미 자본주의 극복을 목표로 하는 정책은 아니었지만 완전고용과 사회복지국가의 건설과 지탱을 위해서는 중요한 이념적 기반이 되었던 케인즈주의조차 포기한 제도권 좌파진영은 어떠한 대안도 찾지 못한 채 부유하고 있었다. 이들의 기사회생은 다름 아닌 신보수주의의 실책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는데, 마침 그러한 기회는 1990년대 중반을 지나면서 찾아왔다. 영국과 독일,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 신보수주의자들의 시장 지상주의적 정책들은 자본축적의 위기를 해결하지 못했고 실업을 증대시키는 심각한 사회적 위기까지 증폭시켰다. 그에 따라 유권자들은 사민주의적 좌파들의 손을 다시 한 번 들어주었던 것이다. 그러나 대안 부재의 상황에서 우파의 신자유주의 정책을 답습한 사민주의적 좌파정권의 한계는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사민주의 정치의 실패와 노동운동의 수세기

 

4월 21일 독일의 작센-안할트 주의회 선거와 프랑스 대통령 선거에서 극우 민족주의의 돌풍이 불고, 이탈리아에서는 지난 해 총선에서 네오파시스트와 북부 지역이기주의 정당 및 재벌정당의 연정이 구성되었다. 반세계화 경향의 한 축이 시민사회운동의 국제적 연대흐름과 급진좌파의 성장이라면 다른 한 축은 극우 민족주의의 강화이다. 1980년대 이래 꾸준히 성장한 극우파의 유령은 이러한 세계화 경향의 가속화가 갖는 역편향이었던 것이다. 신자유주의에 따른 노동자 삶의 경제적 침탈이 극우 민족주의에 의한 시민권적 침탈로 중압될 위기의 시대가 되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의 성장기라 할 수 있는 1980년대 유럽의 노동조합들은 수세기에 놓여 있었으며 1990년대 좌파정권 등장 이후에도 간접적 지지와 침묵이 대세를 이루었다. 독일의 노동조합들은 주35시간제 쟁취를 노동시간 유연화와 교환함으로써 그 성과를 반감시켰고, 사민주의 정권 등장 이후에는 노사정협의에 대한 기대로 조심스런 반응을 보여 왔다. 영국에서는 노동당내의 신노선 등장에 따라 의사결정 과정에서 노동조합의 권한이 심각하게 제약되는 등 급격한 우경화를 노정했음에도 산업민주주의라는 테두리 내에서 경제적 활동에 제한된 노동조합의 역할 분담 논리를 벗어날 엄두를 내지 못했다. 프랑스와 이탈리아는 공산당을 포함한 연정이 영국과 독일에 비해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색채를 띄었으나 보다 큰 테두리에서는 이미 정책적으로 사회주의라는 수식어가 어울리지 못했다. 프랑스의 노동시간단축은 노동시간 유연화의 알리바이로 작용했으며, 이탈리아의 사회노동정책은 긴축재정을 통한 유럽통화연합 가입 명제 앞에 발이 묶여야만 했다.

 

 

유럽노동운동의 정치적 부활과 비판적 노동운동

 

유럽의 노동조합과 노동자들의 정치적 부활은 1980년대 신자유주의 성장기도 아니었고, 좌파정권의 집권기도 아니었다. 그것은 신보수주의의 정책적 실패가 드러나고 바야흐로 사민주의적 좌파로 정권이 교체되는 시기였다. 독일과 프랑스, 이탈리아에서 그러한 흐름은 보다 명확하게 드러났는데, 그 흐름은 노동조합 차원이라기보다 토대노동자들의 자발적 운동에 기반한 비판적 노동운동에서 비롯되었다. 1990년대 중반으로 접어드는 시점에 독일에서 '비판적 노동조합활동가 모임(KG)'이 결성되고, 프랑스에서 '연대/통일/민주(SUD)'라는 독립적 노조가 조직되는 한편, 이탈리아에서는 '노조의 본질(Essere sindacato)'이라는 비판적 그룹이 형성된 것이다.

 

독일의 '비판적 노조활동가 모임'은 독일 기성노조들의 관료성과 산별노조의 경직성을 비판하는 평조합원과 직장평의원 및 일반 노동자들로 구성되었다. 이들의 문제의식은 독일의 산별노조가 산별의 테두리 내에서 다른 노조들과의 연대성이 약하고 노조조직 자체가 상위간부 중심의 단협활동에 얽매인 채 현장노동자들의 입장을 대변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에 따라 이들은 지역별 모임을 가지며 작업장별로 구체적인 연대활동을 벌이고 기성노조활동과 무관한 여러 활동들을 지원하고 있다.

 

프랑스의 '연대/통일/민주(SUD)' 그룹은 1995년 철도파업을 계기로 기성 5개 노조들의 관료주의적 문제점을 지적하며 독자적인 노조로 설립된 것이다. 보다 전투적인 토대민주주의적인 입장을 대변하는 이 그룹은 이후 고속 성장하여 지금은 또 하나의 상급노조를 형성하게까지 되었다. 독일의 비판적 그룹이 비노조차원에서 성립된 것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독일의 비판적 모임이 단일 통합노조로서 노조의 활동이 사민주의적 경향을 보이는 노조지형에서 선택된 형태인 반면, 이데올로기적으로 파편화된 프랑스의 노조지형에서는 새로운 노조의 설립이 한결 용이했던 것이다.

 

이탈리아에서는 1980년에 이미 공산계 금속노조 내부에 비판적 활동이 고무되었는데, 그 결과 노조내의 그룹인 '노조의 본질'이 조직되어 상급노조인 공산/사회계 정파노조 노동총동맹(CGIL) 차원으로 발전하였다. 1960년대 말 자발적 파업이 활발하던 당시 파업참가자들을 노조에서 제명했던 독일과 달리 노조활동에 흡수하고자 했던 이탈리아 노조들의 경우 상대적으로 관료성이 심각하지 않다 하더라도 기성노조들의 권위주의적 성격은 이탈리아도 피해가지 않았다. '노조의 본질'의 문제의식도 기본적으로 여기에 입각하고 있다. 더욱이 1990년대 초반 이탈리아 정국의 지각변동은 노조지형에도 적지 않은 변화를 가져왔다. 프랑스와 마찬가지로 정당정치적으로 파편화된 정파노조의 지형에서 여러 정당들이 부침을 거듭하는 가운데 노조들의 독립성이 높아진 것이다. '노조의 본질'이 소속된 노동총동맹도 공산당의 개명논쟁과 더불어 독자적인 활동을 천명하고 공산당의 다수파 후신인 좌파민주당(DS)과 결별을 선언했다. 그러나 그 결별은 공산/사회주의적 전통을 유지하려는 것이 아니라 다른 우익계열 노조들과의 통합에 치중된 것으로 일정하게는 이념적 후퇴를 동반하는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노조의 본질' 그룹은 이러한 경향과 달리 공산주의의 전통성을 유지하려는 재건공산당(공산당 개명시 분리 건설)과의 관계를 지속하고 있다.

 

비판적 노동운동의 국제연대 활동 또한 가시화되고 있다. 1978년에 조직되어 1990년대 이후 비약적 활성화를 보인 '초국적 정보교환(TIE)'활동에 대한 이들의 적극적 참여는 이러한 측면에서 매우 주목되는 활동이다. 노동자 국제주의는 비판적 노동운동이 공통적으로 갖는 중요한 이념이다. 다국적 기업에 대항하는 정보의 교류를 넘어 반세계화 투쟁을 펼치는 '초국적 정보교환'은 이들에게 매우 중요한 국제연대의 틀이 되고 있는 것이다. '초국적 정보교환'의 한계가 각국의 개별노조들에 대한 정책이 효과적이지 못하다는 것으로 지적되기도 하지만, 비판적 노동운동의 활동은 이 한계를 극복하는 중요한 지점이 된다고 할 수 있다. '초국적 정보교환'은 이제 정보의 교류에 머물지 않고 노동운동의 장래에 대한 정치적 논쟁을 위해 활동가들을 모으는 차원으로 나아가고 있다.

 

 

조직적 차원에서의 새로운 경향

 

한편 조직적 차원에서의 새로운 경향은 프랑스의 새 노조인 '연대/통일/민주(SUD)'외에 독일과 이탈리아에서도 상이한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독일의 '비판적 노조활동가 모임(KG)'에서 제시된 바 있는 산별노조 극복과 새로운 노조 형태의 모색은 '평의회 노조'론이라 할 수 있다. 1990년대에 본격적으로 시작된 독일 노조의 공식적 조직형태 변화는 대산별노조로의 전환이다. 금속노조가 다른 연관 부문 2개 노조를 흡수하고 서비스 업종노조들이 대통합하여 서비스업종노조(ver.di)를 탄생시킨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반면 산별노조의 경직성과 노조 자체의 관료성을 비판하는 비판적 활동가들은 현장활동에 보다 주목하는 입장에서 평의회 형태의 조직을 구상해 왔다. 이들의 입장에서 볼 때, 독일노련(DGB)과 산별노조의 분업 및 정치적 파업 금지에 따른 상급노조의 무능력과 산별노조의 단협에 매몰된 활동도 문제지만, 직장평의회와 노조의 분리에 따른 현장성의 상실도 문제였던 것이다. 독일의 노조는 현장에서는 어떠한 법적 보장도 받지 못한 채 단체협상권과 파업권만을 가지고 있어 작업장에서는 공식적으로 노조활동을 할 수 없으며, 직장평의회는 조합원의 조직이 아니라 종업원 전체의 조직으로서 당해 직장의 종업원 입장을 대변하기 위한 상담과 주요 경영정책에 대한 감시․동의권을 소유할 뿐 파업권과 단체협상권을 보유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을 인식한 '평의회 노조'론 입장은 평의회를 노조화함으로써 현장종업원에 대한 노조의 토대민주성을 강화하는 한편 평의회의 권한을 신장하려는 것이다.

 

이와 유사한 문제의식과 노력은 이탈리아에서도 시도되었다. 독일의 '평의회 노조'가 성공할 가능성이 희박한 반면, 이탈리아에서는 일정하게나마 성공하였다. 1970년대 초반의 재통합운동이 실패한 이후 이탈리아 노조운동의 재통합은 일상적인 화두가 되어 왔다. 그러한 상황에서 1990년대의 정치적 지각변동은 정당의 약화를 초래한 반면 노조운동의 재통합을 위한 호기로 작용하였다. 그에 따라 1993년 세 노조는 '노조통합대표체(RSU)'를 조직하여 장차 성립될 통합노조의 토대로 삼고자 하였다. '노조통합대표체'는 이미 그 자체로 통합된 단위로서 세 노조의 공식적 하위조직으로 기능하고 있으며, 공산/사회계인 노동총동맹은 단위지부를 해체하고 '노조통합대표체'를 단위지부로 기능하게 하고 있다. '노조통합대표체'는 기존의 세 총연합 소속의 조합원이 1/3을 차지한다는 입장에서 '노조의 본질' 등 비판적 노동운동으로부터 강력한 비판을 받고 있지만, 비조합원들까지 포함하는 평의회 형태를 노조의 단위조직으로 인정한다는 점에서 커다란 진보가 아닐 수 없다. 또한 독일과 달리 기업에서의 노조 활동이 인정되고 기업, 지역 또는 산별 및 전국 차원의 단체협상권과 파업권이 인정되는 이탈리아에서 '노조통합대표체'가 수행할 역할은 자못 클 것이다.

 

 

비판적 노동운동과 노조 정치활동의 전망

 

기성노조의 관료성과 조합주의 경향의 성장을 볼 때 보다 새로운 노동운동이 지향해야 하고 노동자들이 선택해야 할 방향은 비판적 노동운동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토대로부터 이러한 운동이 가시화되는 만큼 기성노조들의 변화도 없다고 할 수는 없다. 1952년 정치적 파업이 금지된 이후 정치적 숙면을 취하고 있던 독일의 노동조합이 정권 교체기에 즈음하여 정치 활동의 재개를 천명하고 나선 것은 그 변화의 한 예이며, 이탈리아에서 10여년의 침묵을 딛고 베를루스코니 정부에 대항하는 시위를 조직하여 성공시킨 것은 명백히 정치적 부활의 대표적 사례라 할 것이다.

 

독일의 노조는 1950년대 후반 이래 전통적으로 정치적 중립을 지켜왔다. 1960년대 말에서 1980년대 초반까지 사민당 주도의 정부에서 민영화 논의는 중단되었으며 노동자들에게 상대적으로 우호적인 정책이 실시되었다. 그러나 사민당 집권 말기부터는 민영화 논의가 재개되고 신자유주의 정책이 시작되었다. 그렇지만 상술한 것처럼 1980년대는 노조운동의 수세기여서 효과적인 대응을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민영화 논의가 당시까지는 아직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 아니라고 한다면 그러한 소강기도 어느 정도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1990년대의 상황은 달랐다. 독일통일과 유럽통합이라는 지역적 세계화 논의는 거침없는 신자유주의 정책의 질주를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그 또한 크게 다를 바 없는 사민당 주도의 신자유주의 정치로 귀결되고 말았지만, 1998년 선거에서 '친근로자적' 정당을 위해 투표하라는 독일노련의 동원은 정치적 활동의 태동을 알리는 소리였다. 현 사민당 정부와 일정한 갈등을 통해 다소나마 정치적 주장을 할 수 있게 된 것은 그러한 태동기가 없이는 가능하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이탈리아 노조의 정치적 부활은 보다 직접적인 반정부시위로 표출되었다. 1994년 베를루스코니 정부의 연금법 개정에 대항해 연정의 분열을 끌어내고 결국 정권 교체까지 가능하게 했을 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재집권한 베를루스코니 정부와 다시 맞서 300만명을 동원한 시위를 성공시켰으며 100만명의 총파업을 벌였던 것이다. 베를루스코니 정부는 또다시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했다고 할 수 있다. 1970년대 '대리정당'이라고 불릴 정도의 정치적 투쟁력을 담보했던 이탈리아 노조의 부활을 상징하는 사건들이었다. 이러한 의미에서 이탈리아의 정치를 의회의 정치가 아니라 사회의 정치라고 할 수 있다. 제도권 정치에 모든 것을 위임하고 제도권에 진입하는 것을 우선적인 목표로 할 것이 아니라 사회운동의 힘이 제도권 정치를 강제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유럽 노동자들의 선택과 노동운동의 새로운 현상은 비판적 노조운동이 생성되어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에 대한 투쟁이 활발하게 전개되기 시작하고 이에 기반해 기성노조들의 자구 노력과 정치적 부활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흐름이 아직 대세로 이어지지는 못했으나, 그 필연성은 충분히 무르익었다고 할 수 있다.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에 올바로 대응하고 그 역편향인 극우파의 준동에도 효과적으로 맞서기 위해서는 좌파들의 단결이 요구된다. 그러나 기성노조의 관료성을 해결하지 못한 단결은 또 다른 수세기로 이어질 뿐이라는 것을 유럽 노동운동의 역사와 비판적 노동운동은 웅변하고 있다(2002.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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