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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의 실업노동자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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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제임스 페트라스 작성일02-11-30 00:00 조회1,32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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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의 실업노동자 운동

 

 

 

 

 

 

제임스 페트라스, [먼슬리리뷰], 2002년 1월 호

 

* 제임스 페트라스는 아르헨티나 실업노동자 운동에 대한 연구와 더불어 지 난 11년 동안 브라질 무토지농업노동자운동에 대한 작업을 해왔다. 그는 헨리 벨트아이어와 [Globalization Unmasked: Imperialism in the 21st Century (Zed Books, 2001)]의 공동저자이며, 단편소설집 [Andando por el mundo (Altamira Publishing Group, 2001)]을 내기도 했다

 

* 이 글은 [인터내셔널뉴스] 152호와 153호에 기획연재된 것입니다

 

 

 

 

 

2001년이 저물어갈 무렵, 아르헨티나 경제는 심각하게 뒤흔들렸고 급기야 디폴트(채무불이행)를 선언하게 되었다. 수년간 경제위기에 시달리던 아르헨티나 실업자와 빈민들은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주류 언론에서는 이들의 행동을 무정부적인 ‘폭동’으로 묘사했고, 이들을 바라보는 상당수 좌파 지식인 또는 활동가들의 시각이 곱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여기에 대해 제임스 페트라스(James Petras)는 다른 시각으로 바라본다. 즉, 이들은 상당히 고도로 조직화되어, 자기중심적 운동을 넘어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로 나아가고 있으며, 정규직 중심의 기존의 노동운동의 한계를 넘을 수 있는 대안으로 실업자운동을 규정한다.

경제위기와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이 양산해낸 대량 실업과 고용 불안정화를 겪고 있는, 실업자와 비정규직의 조직화가 향후 노동운동의 미래를 좌지우지할 한국에, 제임스 페트라스의 글은 여러 가지 시사점을 던져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 속에서, [먼슬리리뷰]에 실린 페트라스의 글 ‘아르헨티나의 실업노동자 운동’을 2회로 나눠 연재한다.

-[인터내셔널뉴스] 편집팀

 

 

라틴아메리카에서는 지난 25년 동안 서로 겹치면서 상호연관된 세 가지 흐름의 사회운동이 있었다. 대략 1970년부터 90년 사이에 있었던 첫 흐름은, 소위 ‘신사회운동’이라 불리는 운동들이 대부분이었다. 여기에 인권, 생태주의, 여성주의와 소수민족 운동들, 그리고 비정부기구(NGO)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 운동들의 지도부는 주로 하위 중산층 전문가들이었고, 당시의 군부 및 문민독재 체제에 대한 도전이 이들의 정책과 전략을 이루었다.

두 번째 흐름은 1980년대 중반부터 현재까지 강력한 정치적 힘으로 발전했다. 주로 농민과 농업 노동자들이 구성하고 이끈 이 두 번째 흐름의 대중 조직들은, 자기 지지자들의 경제적 이해를 추진하고 수호하기 위한 직접 행동을 조직화해냈다. 이러한 운동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메히코의 사파티스따(EZLN), 브라질의 무토지농업노동자운동(MST), 볼리비아의 코칼레로스(코카나무 재배농장 농민-옮긴이)와 농민들, 파라과이의 전국농민연맹, 콜롬비아 무장

혁명군(FARC)와 에콰도르의 농민-인디언 조직인 인디오민족연합(CONAIE) 등이다. 이 조직들의 구성, 전술과 요구는 다양했으나, 모두 신자유주의와 제국주의, 즉 신자유주의적 경제 체제와 국내 또는 해외 엘리트에게 부가 집중되는 데에 반대한다는 입장에서 일치했다. 구체적으로, 그들은 토지 재분배와 인디언 공동체의 자치권을 위해 투쟁했으며, 코카 박멸 작전과 같은 방식의 미국 개입, 군부대에 의한 영토 식민지화, 국가 경찰 및 군부 기관의 침입, 그리고 플랜 콜롬비아 및 안데안 이니셔티브(Andean Initiative, 미국이 라틴아메리카 지역에서 ‘마약 근절’ 명분으로 벌이고 있는 6.6억 달러 규모의 군사작전-옮긴이)와 같은 사회분쟁의 군사화에 저항했다.

사회운동 중 세 번째이자 가장 최근의 흐름은 도시를 중심으로 일어나고 있다. 여기에는 역동적인 아르헨티나 바리오(barrio, 아르헨티나 빈민촌-옮긴이) 중심의 실업노동자 대중운동, 도미니카공화국의 실업자 및 빈민 운동, 그리고 베네수엘라 대통령 휴 챠베즈의 대중추수주의적(populist) 구호 밑에 모여든 빈민촌 거주자들이 포함된다. 빈민 운동과 더불어, 농장노동자와 중소농들을 통합시킨 대중 투쟁 중심의 새로운 다부문 운동들이 콜롬비아, 메히꼬, 브라질과 파라과이에서 등장하고 있다.

두 번째 및 세 번째 흐름의 특징, 운영 방식과 정치 행동 양식은 기존 자유주의적 사회과학과 후기-맑스주의적 정통론이 제기한 여러 전형과 가정에 도전장을 던진다. 예를 들어, ‘신사회운동’ 이론가들은 계급정치의 종말과 더불어, 민주주의, 젠더 평등, 정체성의 정치 등 문화적이고 ‘시민에 기반을 둔’ 시민운동의 부흥을 선언했다. 에릭 홉스봄과 같은 이론가들은 ‘인구학적’ 논리를 이용해 현대 정치 투쟁에서 농민운동의 중심성을 무시했고, 다른 이들은 주변적이고 분산된 고용 상태이거나 생산양식으로부터 단절된 도시빈민 대중은 제도화된 정치 권력에 도전하기에 무능력하다고 주장했다.

그 후, 라틴아메리카 전역에서 토지와 정치권력을 추구하는 농민 및 도시빈민 운동들이 폭발하였고 이는 기존 정통론을 깨부수었다. 경제적, 정치적 자유주의가 대중적 이데올로기 투쟁의 종말을 가져올 것이라는 생각은 사파티스따, FARC와 CONAIE의 등장과 함께 증발해버렸다. 이 운동들은 수십 년 간의 폭력적이고 부패된 반동적 지배에 저항하기 위해 대중 집회를 조직화했고, 그 과정에서 새롭고 확고한 직접민주주의 형식이 정의되기에 이르렀다. 직접 행동을 중심에 둠으로써 이들은 자본주의적 착취의 핵심을 찔렀으며, 빈번하게 신자유주의 체제의 재생산에 필수적인 생산과 제품의 순환을 마비시켰다. 그리고 에콰도르 인디언들이 2000년에 의회를 장악하면서 보여준 정치권력의 멋진 표현, FARC가 콜롬비아 지방자치제의 거의 절반에서 행사하고 있는 상당한 영향력, 그리고 MST는 브라질 24개 중 23개 주에서 세력을 형성했다는 사실은 홉스봄의 이론에 대한 반증이 되었다.

특별히 흥미롭고 중요한 현대 사회운동이자 이 글의 주제는 아르헨티나의 도시 실업노동자 운동이다. 도시 빈민은 개별화되고 무능하다고 가정을 확실히 뒤집는 이 운동을, 그것이 갖는 혁신적 특성과 기타 라틴아메리카 도시에서도 폭발적인 가능성을 제공해준다는 측면에서 탐색해 볼 필요가 있다.

 

아르헨티나 실업자들, 폭발하다

 

모든 사회 변혁의 중심은 산업 노동자계급이라고 정통 맑스주의자들이 주장한 핵심 이유 중 하나는, 생산 과정에서 노동자계급이 차지하는 전략적 위치 때문이다. 그래서 이 계급이 상대적으로 축소되는 것과, 불완전고용 노동자, 실업자, 비정규직 또는 “주변부” 도시빈민이 급증하는 것은 급진적 사회 변화를 저해하거나 심지어 불가능하게 만드는 과정이라 사고된다. 맑스주의자들은 도시빈민의 파편화된 직업 구조가 그들을 원자화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경제의 주요 부문으로부터 그들은 상대적으로 소외되기 때문에 축적 과정을 손상시킬 능력이 별로 없다고 한다. 맑스주의자들은 또한 도시빈민 대중은 임금을 낮은 수준에 유지시키고 고용 노동자들의 요구 수준을 떨어뜨린다는 측면에서 자본주의에 이익을 주기도 한다고 주장한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주류 사회과학자 몇몇과 NGO들은 이와 같은 고용구조의 변화가 도시빈민의 소규모 행동, 자립적 경제와 상호 교환을 통한 독립성의 증대를 가져왔기 때문에 긍정적이라 말하기도 한다.

아르헨티나에서는 안정적 고용의 부재, 생활 수준의 하락, 사회적 불만의 고조, 폭동의 증가와 바리오로부터 비롯되는 불법 경제 활동의 엄청난 증가는 주류 이데올로그가 그려낸 ‘자기 지원’이라는 이상적 그림을 우스꽝스럽게 만들어버린다. 하지만 조직화할 수 없다고 사고되던 집단이 세련되고 성공적으로 조직화했다는 점은 또한 맑스주의적 정통에 도전한다. 2001년 8월, 전국에서 10만 명이 넘게 고도로 조직화된 실업자들은 아르헨티나에서 300개가 넘는 고속도로를 폐쇄시켰으며, ‘불패’의 금융부문을 포함해 경제 전체를 마비시켰다. 그 이전 기간에는 전국적으로 발생한 폭력 충돌에서 연방 경찰은 5명의 피켓시위자들을 죽였고 3,000명 넘게 연행해갔다. 이와 동시에, 조직화된 실업자들은 조직의 독립성을 유지하면서도 수천 개의 최저임금 수준의 임시직, 식량 수당과 기타 보조를 국가로부터 쟁취해냈다. 2001년 9월에 이르러 실업자들은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수도 전역에서 대규모 고속도로 점거, 그리고 노동조합과 연계한 성공적인 총파업을 조직해내 정부 활동을 방해하고 주요 회사의 출입문을 봉쇄했다. 대단한 것은, 이와 같은 행동이 지방 상인, 지자체 피고용자, 연금생활자, 공중보건노동자, 교사와 특히 마드레스 드 플라자 데 마요(Madres de Plaza de Mayo, ‘5월 광장 어머니회’라는 뜻으로 실종되었거나 살해된 정치범들의 어머니들이 결성한 인권운동 조직-옮긴이)를 포함한 인권단체 등, 광범위한 시민층과 사회계층으로부터 지지와 참여를 유도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엄청난 최근의 성공은 수년간의 인내심 있고 때로는 까다로운 조직화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실업자들은 지자체, 주 및 연방 정부에 탄원서를 보냈다. 그리고 평화롭게 시위를 했다. 그러나 이러한 전술이 무시당했을 때, 실업자들은 주 정부 및 지자체 사무실을 점거하고 때로는 불을 지르기도 하는 등, 보다 직접적인 행동을 취하기 시작했다. 도로 점거와 대규모 피켓 시위가 내륙 도시 꾸트롤 코와 플라자 윈칼에서 1996년 6월에 시작됐고 1997년 4월에 또 일어났다. 이 시위들은 일자리 축소와 공장 폐쇄에 대항해 수천 명을 조직화해냈다. 1990년대 후반에 들어서 전기 및 전력 회사의 사유화로 인한 높은 전기료와, 전기료를 낼 돈이 없는 실업자들 집에 그 회사들이 전기를 끊어버리는 것에 저항하는 대규모 도로 점거가 노동자들이 주로 거주하는 부에노스아이레스의 교외 지역에서 일어났다. 2000년이 되자, 이전까지는 석유 생산지였던 네껜과 제네랄 모스코니에서 대중 시위가 일어났다. 사유화로 작업장이 폐쇄되고 광범위한 실업이 생겼고 정부는 대안적 일자리 형성을 위해 재정지원을 하겠다고 약속했으나 IMF의 재정 조건을 충족하기 위해 예산을 삭감했기 때문에 약속을 어겼던 것이다.

 

운동을 설명하기

 

아르헨티나 실업자 운동을 설명하는 데 있어 첫 단계는, 라틴아메리카 전역에서 노동자 및 농민들의 삶을 파탄내버린 신자유주의 프로젝트의 맥락에 이 운동을 위치 짓는 것이다. 아르헨티나 정부는 자유시장 이데올로그들이 그어놓은 선을 건너면서 예측가능한 결과를 가져올 정책들을 배치했다. 공기업들이 매각되었고, 새로운 소유주는 수천 명의 노동자들을 해고시켰다. 광물이나 에너지 등 수익성이 떨어진다고 판단된 사업은 폐쇄되어 유령 도시가 생겨났고 이는 모든 사회경제적 부문들에 심각한 영향을 끼쳤다.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임금과 노동 조건은 추락했고, 많은 노동자들이 해고되었다. 수천 명의 공공부문 노동자들은 임금이 체불된 채 몇 달을 지냈다. 노동조합은 공격당했고, 조합원은 해고되었다. 사회서비스가 엄청나게 축소되어 연금생활자나, 사교육 또는 의료서비스를 받을 돈이 없는 사람들 모두에게 파장이 갔다. 해외자금 유입은 무분별한 투기로 이어졌고, 이는 곧 금융 시장에서의 폭락을 야기했으며, 아르헨티나 부르조아지는 1,300억 달러(국가 공공채무 규모와 같은 액수)

를 해외로 유출시켰다.

1997년에 경기 후퇴가 시작되어 2001년도에는 완전한 불황이 닥쳐왔다. 지역에 따라 노동인구의 30에서 80퍼센트가 현재 실업 또는 불완전 고용 상태에 놓여 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와 인근지역에서는 16-18퍼센트라는 공식 실업율이 곧바로 두 배가 되었다. 대다수의 고용노동자들은 임시 또는 불안정한 일자리로 생계를 유지해야만 했다. 노동자들이 주로 거주하는 교외 지역의 실업율은 30-50퍼센트에 이른다. 모든 곳에서 가정 대부분은 안 그래도 이미 매우 낮은 빈곤선 이하로 추락해버렸다.

경제적 어려움은 정치적 상황으로 더욱 악화되었다. 가장 최근의 대통령들 3명(라울 알폰신, 칼로스 사울 메넴과 페르난도 데 라 루아) 모두는 경제의 핵심부문을 아르헨티나 및 해외 자본가들에게 헐값에 팔아 넘겼고 현존하던 법률을 공격해 후퇴시켰을 뿐 아니라, 3만여 명에 이르는 죽음과 실종에 대한 책임이 있는 군관료들을 면제해줬다. 빈민들의 저항을 무마하기 위해 두 주요 정당들 -급진주의자들과 페론주의자들- 은 가끔씩 지지자들에게 식량을 배급하고 일자리를 줬으나 이는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이와 같은 경제적, 사회적 그리고 정치적 조건과 호기의 결합으로 실업자운동은 대중조직을 형성할 수 있었다. 여기에서 조직화에 이익이 된 상대적으로 객관적인 조건들과 조직 자체의 의식적 전략 사이를 구별지을 수 있다. 이익이 된 객관적 요소에 다음이 포함된다.

(1) 실업상태의 산업노동자들, 한 번도 고용되어 본 적이 없는 청년들, 그리고 하위 중산층의 영향을 별로 받지 않는, 다소 분리적이면서 동질적인 바리오의 여성 가장들의 비율이 매우 높았다.

(2) 바리오에는 노동조합과 집단 투쟁의 경험이 있는 실업 상태의 산업 노동자들이 상당히 많았다.

(3) 장기화된 위기는 가계를 완전히 파탄냈고, 여기에서 전투적인 여성 주체들(대부분 일 경험이 없고 미래가 불투명한 청소년들도 마찬가지이다)이 대거 형성됐다.

(4) 바리오들은 상품과 이동인구가 주요 도시 사이를 가로지르는 주요 고속도로들 근처에 있었다.

 

물론, 상황이 좋은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조직은 올바른 전략과 전술을 가지고 있어야만 한다. 오늘날 아르헨티나 실업자 운동의 성공은 과거 실패의 경험으로부터 배웠기 때문에, 즉 바리오를 기반으로 독자적으로 조직하는 속에서 노조 관료주의, 선거 정당과 국가 기관으로부터는 독립성을 유지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노동조합들, 특히 노동자총연맹(CGT)은 고임금의 억압적인 낙하산 보스들이 이끌고 있으며, 이들은 메넴 정부와 긴밀한 관계를 맺었고, 데 라 루아 정부나 정부의 억압적 정책들에 저항하기를 꺼려했다. 가끔씩 있는 정부 비판 그리고 심지어 총파업도 굴복하기 직전에 ‘화를 풀어주기 위한’ 무의미한 상징적 제의식이라는 점을 모두 -체제와 노동자 모두- 가 알고 있다. 예전에 실업노동자를 조직화하려던 노동조합의 무성의한 시도들은 -심지어 ‘전투적인 노동조합들’의 경우도- 실패하였다. 실업자들을 조직화해야 한다는 계획적 요구에도 불구하고, 모든 노조들은 조합비를 내고 있는 회원과 부문별 투쟁에만 에너지를 집중했다. 실업자가 그나마 조직화됐을 때에, 이들을 경제 또는 개혁을 쟁취하는 데 별다른 효과를 주지 못하는 1일 집회에서 ‘부차적’ 파트너로 배치했다. 직접적인 억압과 더불어 노동자들에게 선심 쓰듯 빵가루를 던져주면서 노동운동의 지도부를 흡수해버린 정당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실업자들의 새로운 조직화의 성공에 근본적이었던 것은 선거 정당 대장들과 노동조합 관료들의 ‘보호자’-‘피보호자’식 정치를 거부한 것 그리고 자기조직화 및 직접행동에의 의존한 것이었다. 실업노동자운동(MTD)은 바리오와 도시 거주자들이 조직화하고 이끈 풀뿌리운동으로 시작하였고 여전히 그렇다. MTD는 매우 탈중심적인 구조로 조직되어 있다. 각 시에는 바리오를 기반으로 한 조직이 있다. 그리고 바리오 내 여러 개 건물마다 비공식 대표와 활동가들이 있다. 활동 중인 모든 구성원들이 참여하는 시별 총회가 있다. 정책은 총회에서 결정되며, 도로 점거의 요구안과 조직화도 총회에서 집단적으로 결정된다. 수백 또는 수천 명의 여성, 남성과 아이들이 점거에 참여하며, 도로 옆에 천막과 간이부엌을 만들기도 한다. 경찰이 협박하면 주변 빈민촌에서 수백 명이 추가로 쏟아져 나온다. 정부가 협상에 응하면 운동은 협상이 시위대 전체가 있는 곳에서 이뤄질 것을 요구한다. 의사결정은 집단적인 총회를 통해 행동 현장에서 이뤄진다.

이전 경험에 의거해, 시위대는 대표단 -심지어 전투적인 지역 주민들- 을 파견해 개별적으로 정부 청사에 들어가 협상하는 것을 신뢰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한 시위대 지도자가 말했듯이, “그들은 일자리로 우리를 매수하기” 때문이다. 요구안 -주로 국가 지원으로 임시직을 할당할 것- 을 쟁취하면 가족의 필요와 점거 참여의 적극성을 기준으로 우선순위가 매겨지고 일자리의 분배가 집단적 의사결정을 통해 이뤄진다. 만약 실업자보다 일자리가 적으면 일자리 분배는 순환 식으로 이뤄진다. 대표 개인이 협상하고 일자리를 분배하면 가족 구성원이나 친지를 선호하게 되며, ‘후원집단’을 등에 업은 까우디요스(caudillos, 개인 명망가)가 돼버려 운동을 망친다는 것을 시위대는 역시 경험 속에서 배웠다.

도로를 봉쇄하는 전술 또한 MTD 성공에 핵심적이다. 생산의 도구를 노동자들이 내려놓는 것과 기능적으로 같은 것이다. 도로 봉쇄는 생산 투입물이든 국내 및 해외 시장에 내놓을 제품이든, 생산물의 순환을 마비시킨다. 그리고 교통 마비는 바리오 근처에서 일어나는 놀라운 사건이 된다. 이러한 마비를 조직화하는 사람들 -제네랄 모스코니의 페피노, 히피와 피꾸에테(아르헨티나의 유명한 도로점거 운동가들-옮긴이)와 같은 지역 노동자들- 은 발언을 하고 요구를 하는 데에 가장 용감한 사람들이다. 일반 대중은 지지해 주지만 발언하기를 두려워한다. 그러나 그들은 근방에서 벌어지는,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도로 점거에 대규모로 참여하고 경찰이 지도부를 구속하는 것을 막아낸다. 실업노동자는 빈곤, 사회적 미조직화와 기회주의적 수기(手技)의 수동적 피해자에서 자치적 풀뿌리로 사회적으로 조직화와 독립적 정치를 갖는 강력한 연대운동의 적극적인 성원이 된다.

 

지역이 운영하는 국가 지원 일자리에 대한 실업자운동의 즉각적인 요구에 다른 요구들도 뒤따른다. 즉, 식량 분배, 수백명에 이르는 실업자 투사들의 석방, 그리고 수도, 포장도로와 의료 시설에 대한 공공 투자 등을 요구한다. 고용에 대한 요구는 단순한 생존을 위한 임시직에 대한 요구를 넘어 생계가 될 만한 안정적인 고용까지 포함한다. 제네랄 모스코니에서는 운동 지도부가 빵집, 유기농 텃밭, 정화조, 바리오 내 응급 의료 시설과 기타 여러 프로젝트 등, 식량과 일자리를 만들 수 있는 3백여 개의 프로젝트 -이 중 몇 개는 성공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를 고안해냈다. 지역 관료들은 옆으로 밀려났기 때문에 지역 실업자 위원회가 시(市)를 사실상 통치하고 있다. 노동자들이 거주하는 교외지역 몇 곳에서의 실업자운동은 준해방(quasi-liberated) 지구 형성으로 이어져 운동의 힘이 지역 관료들의 힘을 중화시키거나 초월했고, 그래서 제기되는 특정 의제에 대해 주 또는 연방 체제에 도전할 수 있다. 제네랄 모스코니에서 제한적인 규모로나마 “평행 경제”가 등장함에 따라, 투쟁 기간 동안 대중적 지원을 지속적으로 받고, 실업자들이 자신들의 삶과 동네와 생계를 통제할 능력에 대한 전망을 갖게 되었다.

지역적이고 즉각적인 요구를 넘어, MDT는 외채상환과 긴축재정 계획 중단, 그리고 신자유주의 모델의 반전, 국가가 통제하고 재정을 대는 경제 발전의 재등장을 요구해왔다. 2001년 9월 초, 마탄자와 라 플라따에서 두 개의 전국 실업자 회의가 개최되었다. 실업자 조직, 노동조합, 학생, 문화 및 NGO 그룹 등 2,000명 이상의 참가자들이 모였다. 회의의 목적은 행동을 계획하고,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전국적인 프로그램과 투쟁 계획을 짜기 위한 것이었다. 라플라따 회의의 참가자들은 6가지 요구안에 합의했다. (1) 구조조정 정책, ‘제로 적자’ 정책(zero deficit,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임금 삭감을 통해 공공지출 적자를 해소하겠다는 정책-옮긴이) 및 연행되거나 기타 활동가들에 대한 법적 처리를 중단할 것, (2) 긴축재정을 철회할 것, (3) 16세가 넘은 모든 실업노동자에 대한 공공 고용 계획 및 식량 배분을 확대하고 이를 유지할 것, 그리고 실업자에 대한 대대적인 등록제를 회의에 참석한 실업자 조직들의 통제 하에서 실시할 것, (4) 중소농들이 땅을 경작할 수 있도록 한 헥타르 당 100 페소(페소=$1.00)를 지불할 것, (5) 정리해고를 금지시킬 것, (6) 제네랄 모스코니로부터 경찰을 즉각 철수시킬 것.

회의 참가자들은 이와 같은 요구에 힘을 싣기 위해 9월에 전국적인 도로점거 투쟁을 두 차례 일으켰다. 더불어, 회의 참가자들은 5가지 전술적 목표를 설정했다. (1) 불법적, 사기성 외채를 상환하지 않을 것, (2) 연금을 공공 관리할 것, (3) 은행과 전략적 기간산업을 재국유화할 것, (4) 소농의 부채를 탕감할 것과 그들 제품에 대한 생존가능한 가격을 책정할 것, (5) 굶주림을 초래하는 정권을 타도할 것과 정치인들을 재편할 것. 회의는 36시간 총파업에 적극적으로 돌입한다는 것과, 이 투쟁을 지도할 전국위원회를 반체제적 노동조합총연맹 ‘아르헨티나 노동자 중앙회’와 함께 결성한다는 것을 결의하면서 끝났다.

 

운동의 미래

 

MDT는 아르헨티나에서 무시할 수 없는 세력이 되었다. 이 운동은 살타, 휘위와 마탄자스로부터 부에노스아이레스, 코르도바와 로사리오를 둘러싸고 있는 빈곤에 찌들은 교외 지역을 향해 바깥쪽으로, 그리고 내륙의 “유령의 도시들”로 급속히 확산되었다. 지역 단체는 위에서 언급했던 두 개의 전국 회의로 표면화된 전국 연맹을 건설했다. 이러한 성공은 수만 명의 실업노동자들을 조직화하고 수천 명의 노동조합 활동가들에게 동력을 부여하고 여성과 청소년들로부터 적극적인 참여(참여자 중 약 60%가 여성이다)를 유도한 데에, 그리고 (제한적이지만) 체제로부터 일정한 양보조치를 실제로 얻어낸 데에 기인한다.

그러나 운동의 힘은 이웃관계, 상호 간 신뢰와 확고한 요구 사항 등 주로 지역적 수준에서 유지되고 있다. 그리고 MDT의 가장 주요한 매력은, 이 운동이 끊임없는 구조조정(SAP), 예산 삭감, 저임금 일자리를 여러 개 가져야 하는 사실, 의회의 부패와 무능력, 그리고 집행 부서들의 권위주의적이고 엘리트적인 성질에 지친 사회에서의 행동 그것도 직접행동에 촉매역할을 해준다는 점이다. 실업노동자들은 이 모든 것에 반대하는 유일한 축이며, MDT는 직접행동 -즉, 최소한의 요구 사항이 받아들여질 때까지 고속도로를 점거하는 것- 이라는 유일하게 효과적인 전술을 사용한다.

실업자운동이 규모와 행동력에서 확장됨에 따라, 이들은 대학생, 반체제 노동조합, 인권단체와 소규모 좌파 정당들과 연대하고 있다. 가장 의미 있는 전술적 연대는 공공부문 노동조합(ATE)과 지역 교사 노조와 형성한 것이다. ‘5월의 광장 어머니회’나 좌파 학생 단체들은 이들에게 정신적 지지를 주면서 지지자들을 조직화해줬다. 그런데, 특히 노동조합과 연대활동을 하는 동안 실업자 운동은 어렵게 얻어낸 자율성과 행동의 자유를 혼을 다해 지켰다. 실업자운동은 자신들의 확산되어 가는 힘을 소유해보려는 전형적인 정치가들의 선동적인 개입을 거부했다.

실업자운동의 역동적이고 전례없는 성장 그리고 상품 이동을 마비시키는 도로 점거의 성공은 어떻게 운동을 진전시킬 것인가에 대한 열성적인 논의 및 토론과 나란히 간다. 운동에 관한 토론에서 몇 가지 기본 의제들이 제기되었다.

 

지역주의: 운동이 시작하고 지속될 수 있는 힘은 지역사회, 바리오 그리고 이웃과의 긴밀한 연계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그럼에도 국가는 살인, 대대적인 구속과 군사 점거 등 이 운동을 폭력적으로 탄압했다. 그리고 경제적 긴축이 진행됨에 따라 전국적 수준에서의 집단 행동만이 국가 폭력을 약화시키고 체제로부터 양보조치를 확보해내는 데 핵심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은 많은 활동가들에게 보다 명확해지고 있다. 그럼에도 대중적 참여를 확고히 자리매김하는 데 가장 성공적이었던 몇몇 지도자들은 전국적 회의와 조직을 거부하고 신뢰하지 않는다. 제네랄 모스코니의 운동이 그렇다. 지도부는 2001년 9월 초 두 개의 전국 회의에의 정식 참여를 거부했다.

 

경쟁 단체: 운동의 탈중심적 근원은 지역적 행동 및 지도력을 추진하고 여러 운동의 자율성을 수호하는 데 있어 필수적이고 중요한 요소로 작용해왔다. 그런데 향후 공동 행동을 약화시킬 수 있는 정치적이고 개인적인 차이들이 몇 가지 경우에서 드러났다. 실업자운동 대부분이 선거 정치를 거부하지만, 지도자들 몇몇은 좌파 정당, 특히 ‘사회적 축(Social Pole)’이라는 새로운 조직에서 자리를 제안 받은 바 있다. 또 다른 차이는 현존하는 반체제 노동조합과의 관계와 관련된 것이다. 소수의 실업자운동 지도자들은 전술적 협력 관계를 거부하지만 많은 이들은 CTA와 ATE가 결국 행동을 장악하고 진보적 노동조합 간부들의 중도적 의제에 맞도록 실업자운동을 왜곡시킬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다. 예를 들어, 8월 전국 행동의 날 중 하루, ATE의 영향을 받은 시위대는 핵심 도로를 점거하는 동안 우회 도로를 뚫어놓았다. 이와 같은 양보를 한 의도는 중산층 도로이용자들을 “설득시켜” 노동부에게 우호적인 손짓을 하려는 것이었다. 많은 실업 활동가들은 ‘우회 도로’을 열어놓는 전략을 도로점거의 목적을 효과적으로 약화시키고 실업자들의 사기를 저하시켜 전통적 노동조합식 줄다리기를 계승하게 만들기 때문에 거부해왔다.

 

전통적 정치가들의 침입: 운동의 강력한 추진력은 행동의 자율성으로부터 온다. 성공적인 조직화가 가속화되자, 명목 상 “야당”(페론주의자들과 기타)의 전형적 기회주의적 정치가들이 요구안 중 몇 가지를 수용하려 하면서 시위대 사이에서 “매개자” 역할을 하겠다고 나서고 있으며, 안정적인 일자리를 제의해 운동을 분열시키고 세력의 한 부분을 얻어 자신들의 잃어버린 병력을 채우려 한다. 운동은 여태까지 이 기회주의적 선동가들의 감언을 거부해왔다. 하지만, 억압이 더욱 심해지고 기본적 필요요건들이 충족되지 못하면, 운동은 정치적으로 더욱 급진화되거나 아니면 기존의 정치 보스들의 ‘매개’를 받아드리려는 유혹이라는, 분명한 선택을 직면하게 될 것이다.

 

학생들 -아군과 위험: 실업노동자들은 9월 7-8일 전국 회의를 소집했다. 그런데, 수많은 학생들, 문화 단체 그리고 심지어 자아지원(self help) 단체들이 나타나 회의의 사회적 구성도를 희석화시켰다. 학생 발언가들의 길고 많은 경우 까다로운 발제는 운동의 전망을 수립하는 데에 있어 그다지 뚜렷한 기여를 하지 못했다. 실업자운동 참가자들이 통제권을 유지하면서 학생과 기타 참가자들을 환영해주긴 했지만, 학생들이 전형적인 이데올로기적 분화를 소개해 행동을 마비시킬 수 있다는 우려들이 있었다. 실업자운동들과의 연계를 진지하게 모색하는 몇 개 학생 그룹들이 있는가하면, 회의에서 “왜 이 시기에 세계화는 결국 운동들을 망하게 만드는가”에 대해 장황하게 연설하는 학생들도 있다. 실업자 참가자들은 이 같은 개입을 거부하기로 만장일치로 합의했고, 실질적이며 즉각적이고 전략적인 요구안을 작성하는 일을 추진시켰다. 라누스의 실업자운동은 대중 시위 후에 나타나는 ‘신성하지 못한 연맹’에 대한 압력을 유의해야만 자율적 실업노동자 운동의 지도부가 유지될 것이라 주장했다.

 

점점 커져가는 이 같은 모순들은 운동이 현재 직면하고 있는 새로운 과제들을 드러낸다. 중요한 것은 문제가 있다는 점이 아니라, 실업자들이 이와 같은 사안들을 마을, 지역과 전국 수준의 공개 회의에서 토론하고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결론 

 

노동운동의 힘이 약화되고 있다는 근거 중 하나는 불확실한 노동의 급증, 비공식 부분의 증대, 그리고 실업자 수 증가에 주목한다. 노동조합 지도부에게 물어보면 그들은 실업자들을 조직화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경제 체제에 있어 실업자들의 미약한 힘, 그리고 집단 행동에 대한 실업자들의 무관심을 자주 제기하곤 한다. 아르헨티나에서 실업자의 조직화가 엄청나게 발달하고 있다는 점은 이런 가정들을 의문시하고 새로운 문제들을 제기한다. 아르헨티나의 사례는 실업노동자들이 조직화될 수 있고, 집단 행동에 참여할 것이며, 경제 체제를 마비시킬 수 있는 위력을 가지고 있고, 양보조치들을 협상하고 쟁취해낼 능력이 있다는 것, 게다가 노동조합들이 최근 이룩할 수 없었던 방식으로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것은 노동운동의 약화가 실업자 및 비공식 노동의 특성과 관련되었다기보다 오히려 노동조합의 구조와 접근 방식 그리고 지도 체계와 관련되었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실업자운동은 바리오에서 일대일 식으로 아래로부터 조직화된다.

노동조합 관료들은 조합비를 내지 않는 노동자들을 무시하고, 조직화할 때에는 “전문가들”을 들여보낸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실업자들의 신뢰를 얻는 데, 실제로 실업자들을 조직화하는 데에는 더더욱 실패하게 된다. 둘째로, 실업자운동은 지도부와 지지자들이 같은 계급 출신이며 공개적인 회의에서 평등하게 논의하고 논쟁하는 수평적 구조로 되어 있다. 노동조합들은 많은 경우 회사 사장에 버금가는 월급을 받는 상위 관료들에 대한 개인적 충성을 기반으로 하는 수직적 구조를 가지고 있다. 실업자운동은 연속성 있는 직접행동을 벌이며 공개된 회의에서 요구안을 집단적으로 협상한다. 노동조합 엘리트들은 상징적 투쟁을 하고 나서 닫힌 문 뒤에서 국가 또는 고용주와 협상을 하고, 노동자들의 주요 관심 사항을 무시하는 속에서 협상을 벌이고, 조합원들에게 협의 사항을 ‘팔아’ 넘기던가 아니면 그냥 강제하곤 한다. 결과적으로, 실업자운동 지도부는 운동 구성원들로부터 신뢰와 지지를 얻고 있지만 노동조합 보스들은 신뢰를 받지 못하거나 아니면 긴축만을 고려하는 국가 또는 고용주와 적극적

인 협력 관계를 갖는다는 혐의를 받는다.

실업자가 많은 노동시장은 ‘위로부터 아래’라는 기존 조직화 방식, 조합비 자동 납부와 공식적 조직에 대한 도전을 의미한다. 그 어떠한 노동조합 보스도 조직화한답시고 빈민촌의 진흙탕 비포장도로를 터벅터벅 걸어다니려 하지 않는다. 또는 얼었거나 더위에 찌는 임시방편 회의장에서 열리는, 지금 즉시 식량을 달라고 우는 아이들 및 여성 투쟁가들 또는 세계화와 실업에 대한 장황한 강연에 지루해하는 청년 실업자들 사이에 끼어 회의를 하려 하지 않는다.

노동조합 지도부는 고속도로를 점거하면서 새총을 들고 불타는 타이어로 만든 바리케이트 뒤에 서서 실탄이 장착된 무기를 대면하려 하지 않는다. 노동부 사무실에서의 30분 짜리 회의를 얻어내서 긴축 재정에 어떻게 완충지대를 만들 것인가, 통제를 어떻게 강화할 것인가를 의논하는 노사정위원회를 형성하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 사실상 오늘과 같은 형태로 조직화된 거의 모든 노동조합들은 공식적 정당과의 선거 시기의 연계에만 관심이 있고 실업자들을 조직화하는 데 완전히 무관심하던가 아니면 주된 장애물이 되기도 한다.

실업자운동은 시행착오 끝에 얻어낸 추진력과 사회적 창의력을 통해 시장과 생산 현장을 연결시키는 고속도로를 봉쇄함으로써 경제 체제에 압력을 효과적으로 행사하는 방법을 터득했다. 1996년 네껜의 유령 도시에서 실업 석유 노동자들이 도로점거에 일찍이 성공하였고 이러한 전술은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도로점거는 라틴아메리카 전역에서 착취당하고 주변화된 집단들이 취하는 일반적인 전술이 되었다. 볼리비아에서는 수만 명의 농민과 인디언 공동체들이 신용, 기간 시설, 코카를 재배할 자유, 그리고 보건 및 교육 예산 확충을 요구하면서 고속도로를 봉쇄했다. 에콰도르에서도 마찬가지로, 경제의 달러화와 산악지역에 공공 투자가 이뤄지지 않고 있는 데에 대해 대규모 도로점거를 수행했다. 콜롬비아, 브라질과 파라과이의 도로점거, 행진과 토지점거의 조합은 즉각적인 요구와 더불어 재분배 정책, 그리고 신자유주의와 외채 상환 반대 등을 요구하는 데 사용되었다.

이 모든 집단들이 공통으로 가지고 있는 특징은 이들이 경제에서 비전술적인 위치에 있음에도 경제의 전술적인 분야에서 행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수출 산업, 은행들, 광물 및 석유 산업, 제조업 일부는 (외채를 갚기 위해) 외화를 벌어들이는 주요 산업들이며, 엘리트에게는 매출과 수입이 창출되는 곳이다. 축적 과정을 통제하는 엘리트의 입장에서, 소농, 실업자, 인디언, 농민, 지역 상인과 제조업체들은 중요하지 않고 희생시킬 수 있는 자들이며, 수출, 금융거래, 사치품 수입과 같은 중요한 활동에 아무런 관계가 없다. 하지만 이와 같은 상품 및 자본의 흐름이 시장에 이르기 위해서는 도로를 통한 자유로운 이동이 있어야 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주변적인 집단들”이 전술적 행위자들이 된다.

이들의 직접행동은 엘리트의 순환로를 방해하며 축적 과정에 혼란을 야기한다. 실업자들의 도로점거는 산업노동자들이 기계와 생산라인을 멈춰 세우는 것과 기능적으로 같다. 하나는 이윤의 실현을 막는다면 다른 하나는 가치 창출을 막는다. 선거 정당과 관료적 노동조합 외곽에서 이뤄진다는 한에서, 공장체계 밖의 대중 조직은 이와 같은 전술의 유효성을 보여준다. 자율적 조직화는 아르헨티나 및 기타 라틴아메리카 지역에서 핵심적이다. 이러한 경험은 새로운 대중운동들이 투쟁을 지속하고 폭력적 탄압에 저항하고 임시적 또는 즉각적 양보조치를 쟁취해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아르헨티나에서 실업자 단체들의 전국 운영위원회 -그리고 라틴아메리카 전역에 퍼져있는 이와 비슷한 소농 또는 농민들의 전국 조직- 를 설립했다는 것은 지역 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될 수 있으며 국가를 대면할 힘이 된다는 것을 증명한다.

 

많은 의문들이 해답을 못 찾은 채 남아있다. 이러한 새로운 운동들이 전국적 정치 세력으로 단결해 국가 권력을 바꿀 수 있을까? 도시의 고용 산업노동자, 피고용자, 하향 이동하는 중산층 등과 동맹을 형성해 경제를 변혁시킬 블록이 될 수 있을까? 지역 의회가 의회 중심의 새로운 사회주의의 기반이 될 수 있을까?

아르헨티나 실업노동자 운동의 성공은 장기화되고 심화되는 불황 속에서 투쟁을 전진시키는 데 새로운 관점을 제시해준다. 라틴아메리카 전역에서 이와 비슷한 직접행동 운동들이 발달함에 따라, 이러한 “주변적” 계급들이 합류해 미제국과 국내 협력자들에 대한 강한 도전을 하는 것을 상상하기란 그다지 어렵지 않다.

 

*출처 : http://picis.jin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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