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동 연구소
노동운동자료실
전태일을 따르는 민주노동연구소 노동운동자료실입니다.
민주노동연구소의 회원들이 자료를 서로 공유하는 공간입니다.

임박한 공황과 노동운동의 대응 4

페이지 정보

작성자 전태일을 따르는 민주노조운동… 작성일97-11-30 00:00 조회726회 댓글0건

첨부파일

본문

7. 3 두 번째 질문 : 누구를 대상으로, 누구를 동력으로 하여 싸울 것인가?

(1) 대공황의 국면전환 : 경제 신탁통치로! 나아가 경제 식민지로!

대공황 정세는 또 한번 그 국면이 크게 전환되었다. 지난 주 말부터 본격화되던 공황은 이번 주에 접어들면서 급진전했다. 환율은 1,200원대를 넘어서 1,300원대에 육박했고(12월 3일 한 때, 1,290원까지 올라갔다), 주가는 300선을 향해 급속히 내려갔다.(12월 3일 한 때, 356.82까지 내려갔다) 이렇게 되면서 공황은 IMF의 “구제금융 지원”이 아니라, 구제금융 지원을 빙자한 “신탁통치”를 불러왔다. 우리 정부와 IMF간의 실무협상은 협상이 아니라 “협박”의 모습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IMF는 재벌을 비판하며 한국이라는 국가에 대해서는 우호적인 척하던 그 동안의 태도를 표변하여 자신들의 요구조건을 모두 받아들이지 않으면 구제금융을 제공할 수 없다며 “무조건 항복”을 강압했다. 그리고 한국의 지배세력은 간단히 백기를 들었다.
국제통화기금 총재 캉드쉬는 개선장군마냥 득의 만만해 했다. 그는 항복을 받아 낸 후 이렇게 말했다. “한국정부와 IMF 실무협상단이 오늘 한국 금융위기에 단호히 대처하기 위한 경제 프로그램에 관한 협상을 마쳤음을 발표하게 돼서 기쁩니다.”라고. 한 나라를 완전하게 굴복을 시켜서 “기쁩니다”라고. 경제주권을 빼앗아서 “기쁩니다”라고.
그가 1백% 관철한 요구조건이 무엇인지는 아직 다 밝혀지지 않고 있다. 정작 중요한 부분은 대외적으로 발표되지 않은 ‘기술적 이행문서’에 들어 있다고 한다. 그러나 밝혀진 부분만 하더라도 그것은 IMF가 그 동안 다른 나라들에서 구제금융의 조건으로 삼아 왔던 것과는 확연히 다른 것이었다. IMF는 경제성장률, 재정·금융, 국제수지 등의 거시 경제정책에 관한 것만이 아니라 민족경제의 대내외적 구조를 대대적으로 개조하는 것을 강요했다. 이번 외환위기의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한 금융부문의 개혁에 그치지 않고 재벌 지배구조의 개혁, 노동시장의 유연화 개혁, 기업 회계제도의 개혁까지 강요했다.(주146) 나아가서는 무역 및 자본시장의 전면적이고 완전한 개방을 강요했다. 더 나아가서는 정부 예산의 편성에 대해서까지 자기들의 요구조건을 강요했다. 예컨대 외신 보도에 의하면 IMF는 재정적자 축소를 요구하면서 군비 삭감을 강력히 요구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주147)

이러한 내용은 IMF가 국제 통화당국(‘국제통화기금’이라는 이름이 의미하는 바에 부합하는)으로서의 권한 범위를 넘어서는 것이다. IMF의 이번 폭거는 외환위기 또는 외채위기라는 약점을 빌미로 하여 해당 국가의 경제구조를 자신들의 의도에 맞게 개조하도록 강요한 ‘주권 강탈’로서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설사 우리들이 그것을 예상하고 있었다고 해도 그렇다! 특히 IMF가 스스로의 판단으로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미국이 일본과 보조를 맞추어 이렇게 되도록 배후에서 조종을 했다는 데서 이번 협상은 미·일 제국주의에 의한 명백한 “경제주권 침탈”로 규정되지 않을 수 없다.(주148)
최근 동남아 경제위기에서 초국적 자본 세력의 침략적인 모습이 많이 드러났지만 우리나라에 대한 것은 매우 특별했다. 그들은 태국에 대해서 십여 개의 금융기관의 신속한 폐쇄를 고집했으나 태국 경제 전체에 대해서는 재정 긴축을 요구하는 데에 그쳤다. 인도네시아에서는 금융개혁, 재정긴축과 더불어 상품시장의 개방을 요구하는 데 그쳤다. 그런데 우리의 경우 자본·금융시장을 포함하여 시장의 전면적이고 완전한 개방을 강요했으며(합의문서에 수입제한 조치의 “폐지”라고 되어 있다) 적대적인 기업 매수·합병 제도, 기업 회계제도, 정부예산 편성에 대해서까지 구조조정이라는 이름으로 그들의 ‘개조 프로그램’을 받아들이도록 강요했다. 그리고도 발표문에 밝히지 않은 중요한 사항들이 있다!
아마도 국방예산의 제한이라든가, 한국통신과 같은 공기업을 미국자본이 소유하는 것이라든가, 외국인의 토지 소유를 무제한 허용하는 것이라든가 하는 것들이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이러한 것들은 그들이 집요하게 요구해 온 것들임에도 이번 발표에 빠져 있는 것을 보면 충분히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캉드쉬는 막판에 “상당히 큰 것을 관철”시켰으며, 이에 캉드쉬는 ‘신변의 위협’을 느껴서 바로 이한 했다고 알려지고 있다.(주149)
이렇게 미국과 일본은 IMF를 앞세워 한국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한 나라라는 것을 이유로 하여 멕시코에 대해 그러했던 것처럼 경제의 완전 개방과 완전 자유화를 통해 ‘경제적 식민지’로 개편하는 전략을 강요하고 관철시켰던 것이다! 마치 멕시코가 OECD 가입 직후 외환위기를 맞고 95년 초 미국의 경제 식민지가 되기를 강요당했던 것처럼! 허파에 바람을 넣어서 붕 띄워 놓은 다음 한순간에 바람을 빼서 아래로 처박히게 만들고, 그 다음에 자신들의 경제 식민지로 재편한 수법이 너무나도 똑 같았다. 이처럼 누가 보더라도 동일 범인의 범행이라고 것을 금새 알 수 있다.(주150) 김영삼 정권이 멕시코의 살리나스가 그러했던 것처럼 OECD 가입을 업적으로 자랑하다가 임기를 전후로 해서 무참하게 추락하고 만 것까지도 아주 비슷하다. 그러나 문제는 그 개인의 추락에 그치지 않고 나라 경제를 파탄내고 나라를 제국주의 또는 신자유주의의 세력의 “경제 신탁통치” 그리고 “경제 식민지”로 만들어 놓고 말았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그 또한 살리나스처럼 해외로 도주하지 않으면 이 땅에서 온전히 살기 어려울 것이다.

뿐만이 아니다. 우리의 경우는 멕시코의 경우보다 더욱 참혹하다. IMF 총재 캉드쉬는 대통령 후보라는 자들 세 명 모두에게 “당선 이후에도 정부와 IMF의 협약 내용을 협의된 대로 준수하겠다”고 서약하는 각서를 제출하라고 강요했다. 그리고 집권에 눈이 먼 후보자라는 자들은 하나 같이 이에 응함으로써 최소한의 민족적 자주성조차 보여주지 못했다. 하기야 이같은 사태는 그들 모두가 한 목소리로 천민재벌들의 논리인 “경제를 살리겠다”고(바람 앞의 등불과 같은 민족과 민중의 운명을 구하겠다고 한 것이 아니라) 헛소리를 할 때부터 예상된 것이었다. 경제주권을 빼앗겼는데 무엇을 어떻게 살린단 말인가?
더욱 어이없는 것은 입법부의 수장인 국회의장까지도 각서를 제출했다는 것이다. 정부가 양해각서에서 약속한 대로 “금융개혁법, 은행법 등 IMF의 조건 이행을 위한 입법 조치를 연내에 처리하겠다”고! 대선 직후 국회를 열어서 관계 법률을 그들이 시키는 대로 개정하겠다고! 이 각서는 그 내용에 있어서 승전국이 패전국에게 요구하는 항복문서나 다름이 없다! 이것은 또 왕의 인장을 도둑질하여 식민지 강탈 조약을 합법으로 가장한 것보다 덜할 것이 하나도 없다! 오늘날의 주권자는 대통령, 대통령 후보자, 국회의장 따위가 아니라 국민이므로 국민의 도장이 없는 것은 무효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저들은 주권 없는 자들의 각서 쪽지를 가지고 합법적이라고 우기면서 양해각서라는 형식의 문건이 담을 수 없는, 조약에나 담길 수 있는 내용(국가의 주권에 관계되는 것)을 강요하고 있다!
이렇게 하여 한국 자본주의 경제는 하루아침에 초국적 자본의 식민지 경제로 전락했다! 신탁통치에 의해 경제 식민지로 재편되기 시작했다. 마치 1905년의 을사보호조약에 의해 1910년의 합방과 완전한 식민지로의 재편이 사실상 기정사실화 되었듯이 이제 IMF 신탁통치가 시작됨으로써 앞으로 신탁통치 3년을 경과하면서 완전한 경제 식민지로 재편되는 것이 기정사실화된 것이다. 사태가 이 지경으로 중대하기 때문에 사태의 심각성을 축소하기에 여념이 없는 제도권 언론들도 이 사태를 일제히 ‘경제 신탁통치’라고 보도하고 있다. 그리고 하나같이 12월 3일을 제2의 ‘국치일’이라고 말하고 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경제 식민지로 나아가는 데 그치지 않고 나라의 영토까지 빼앗기고 있다는 사실이다. “3일 정부의 한 관계자는 ‘일본 정부는 임창렬 부총리가 지난달 28일 자금 지원을 요청하기 위해 일본을 방문했을 때 자금 지원과 독도 문제를 연계시키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한다.”(주151) 이번 비밀협상과 비밀각서의 내용은 극히 중요한 부분들이 밝혀지지 않았다. 이것은 아주 중요하다. 민족과 민중의 장래에 극히 중대한 관련이 있는 사안이 아니라면, 그래서 밝혀지면 민중항쟁이 일어날 만한 중대사안이 아니라면 밝히지 못할 이유가 도대체 어디에 있겠는가? 재벌 지배구조의 개혁까지 밝히고 있는 판에.
사태가 이러한 데도 가장 민족주의적인 체 하던 조선일보는 “국치니 신탁이니 주권이니 하면서 자기비하(自己卑下)에 빠지는 것은 더더욱 창피한 일이다”라고 하면서 “이번 위기는 우리에게 아주 유익한 기회를 제공해 준 셈이다”라고 헛소리를 하고 있다. 그리고 나머지 언론들은 거의 모두 ‘국치’ ‘경제 신탁통치’ ‘경제 주권 상실’을 이야기하고 있으나 국민일보 하나를 빼고는 우리나라가 “경제 식민지”로 되기 시작했다는 진실을 이야기하지 않고 있다. 진보적이라고 하는 한겨레신문까지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일반 민중은 IMF의 경제구조 개혁 강요가 “치욕스럽다”는 것으로만 다가올 뿐 그 강요가 우리 나라로 하여금 경제적으로 미·일 제국주의의 식민지 상태로 들어가게 하는 출발점이라는 사실을, 그래서 우리 노동자·민중이 그들의 임금노예로, 노예적인 착취·수탈의 대상으로 전락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잘 깨닫지 못하고 있다.

지배세력은 그러한 사실을 은폐하는 데에 바쁘다. 그들은 그냥 이제부터 잘 하면 된다는 식으로 이야기한다. 신탁통치 하에서 무엇을 어떻게 잘 하면 된다는 것인가? 신탁통치가 아니고 경제적으로 주권이 있는 상태라야 무엇을 잘하고 말고 할 것이 아닌가? 이것은 일제 식민지 통치하에서 물산장려를 해서 민족경제를 살리자고 했던 것이나 다름이 없는 도덕주의적인 이야기이다. 도덕적으로는 좋은 이야기이지만 그렇게 해서 민족경제를 지키거나 살릴 수 없는 것이다. 그들은 국산품 애용조차도 자유로운 시장 질서에 위배된다고 못하게 금지할 것이다.
그런데도 제도권 언론들은 진실을 은폐하기에 여념이 없다. 가장 반동적인 조선일보가 여기에서도 가장 철저하다. 그래서 심지어는 마치 공황이 이제 끝난 것처럼 착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언론들은 “쉽게 재기할 수 있다”며 민심 수습에 나서고 있다. “마음만 먹으면 우리는 할 수 있다. 전쟁의 폐허 위에서도 우리는 ‘한강의 기적’을 이룩하지 않았는가. 실의와 좌절은 난국극복의 가장 무서운 적이다” “국난을 이기자” 등등. 한편 정치권은 마치 한숨 돌렸다는 듯이 IMF청문회 개최를 거론하면서 정부관료의 책임을 묻는 정치 공세를 개시하고 있다.
그리고 신탁통치 덕분에 5일자로 55억 달러가 입금됨으로써 국가부도는 피해졌다. 그리고 환율이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 그러다 보니, 좋아라고 주가가 막 올라가고 있다. 마치 공황은 이제 끝난 것처럼!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