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와 좌절의 역사는 민주노동당에서 끝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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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찬식 작성일00-11-30 00:00 조회642회 댓글0건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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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동당에대한제언2000년.hwp (23.5K) 0회 다운로드 DATE : 2018-07-03 11:3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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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민중은 기존 정치권에 심판을 내렸다.
총선이 끝났다. 세상이 나아지기를 바라는 노동자․민중에게 이번 총선은 한마디로 “찍을 정당이 없는” 선거였다. 민주당이 이기면 김대중 정부가 신자유주의를 더욱 확실하게 밀어붙일 것이고, 그렇다고 김대중 정부를 심판하기 위해서 한나라당을 찍어주면 재벌을 비롯한 수구 기득권 세력들이 기세를 높일 것이기 뻔히 내다보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한나라당 이상으로 수구적이고 부패한 자민련이나 민국당을 찍겠는가? 최선이 아니면 차선이라도 선택해야지 신성한 주권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하지만, 차선이 아니라 차악(次惡)조차 가려내기 어려운 선거판이었다.
57.2%라는 사상 최악의 투표율은 바로 이러한 정치현실의 폭발이었다. 50%대의 충격적인 투표율을 놓고 정치에 대한 무관심의 표현이나 주권의 포기로 생각하면 오산이다.
일부에서는 우리나라도 이제 먹고 살 만해 지면서 정치에 대해 무관심해지고 그래서 투표율이 낮아지고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선진자본주의 나라의 경우만 보더라도 사실이 아니다. 보수 양당체제여서 기층의 노동자․민중이 찍을 당이 없는 미국에서나 투표율이 50%대를 밑돌지 보수-진보의 이념정당으로 나뉘어져 있는 유럽 쪽만 해도 투표율은 70%대를 넘어서고 있다.(예컨대 지난 95년 독일 총선의 투표율은 82.3%였고, 97년 영국 총선은 75%, 같은 해 프랑스 총선이 68.5%였다.)
다른 한편에서는 이런 유럽의 예를 들면서 우리나라에서 진보를 바라는 사람들이 너무 쉽게 주권을 포기하는 것 아니냐고 질타하는 목소리도 있다. 그러나 진보를 위해 누구를 선택한단 말인가? 시민단체나 일부 언론에서는 정당을 초월해서 수구적이고 부패한 인물을 깨끗하고 참신한 인물로 바꿔보자고 호소했다. 물론 물갈이가 아무 의미도 없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386을 포함해서 새로운 인물들도 기존 정당의 붕당체제의 보스에 줄을 대서 출세하려는 자들일 뿐이다. 그러기에 정치를 바꾸기는커녕 기존 정당의 색깔(신자유주의든 수구든)과 보스 지배체제를 바꾸기보다는 오히려 그것을 더 강화하는 데 들러리 역할을 할 가능성이 훨씬 높다. 그들을 찍어주는 만큼 정치권의 국민에 대한 헤게모니는 더 강화될 텐데 그래도 투표를 해야 한다는 말인가?
언론에서도 이번 총선에서는 역대 선거와 달리 부유층에 비해서 서민층의 투표율이 낮은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이번 총선에서 나타난 사상 최악의 투표율은 노동자․민중이 사실상 ‘투표 거부’를 통해 기존 정치권을 심판한 것이었다.
노동자․민중은 기존 정치권의 대변혁, 즉 물갈이 정도가 아닌 판갈이가 필요하다고 느끼고 있고 또한 그것을 바라고 있다. 누가 그것을 할 수 있는가? 노동자․민중을 대변하고 노동자․민중의 정치세력화를 실현하는 노동자 정당이 아니겠는가? 이 점에서 우리는 민주노동당이 왜 그에 부응하지 못했는지를 냉정하게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총선이 끝났다. 세상이 나아지기를 바라는 노동자․민중에게 이번 총선은 한마디로 “찍을 정당이 없는” 선거였다. 민주당이 이기면 김대중 정부가 신자유주의를 더욱 확실하게 밀어붙일 것이고, 그렇다고 김대중 정부를 심판하기 위해서 한나라당을 찍어주면 재벌을 비롯한 수구 기득권 세력들이 기세를 높일 것이기 뻔히 내다보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한나라당 이상으로 수구적이고 부패한 자민련이나 민국당을 찍겠는가? 최선이 아니면 차선이라도 선택해야지 신성한 주권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하지만, 차선이 아니라 차악(次惡)조차 가려내기 어려운 선거판이었다.
57.2%라는 사상 최악의 투표율은 바로 이러한 정치현실의 폭발이었다. 50%대의 충격적인 투표율을 놓고 정치에 대한 무관심의 표현이나 주권의 포기로 생각하면 오산이다.
일부에서는 우리나라도 이제 먹고 살 만해 지면서 정치에 대해 무관심해지고 그래서 투표율이 낮아지고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선진자본주의 나라의 경우만 보더라도 사실이 아니다. 보수 양당체제여서 기층의 노동자․민중이 찍을 당이 없는 미국에서나 투표율이 50%대를 밑돌지 보수-진보의 이념정당으로 나뉘어져 있는 유럽 쪽만 해도 투표율은 70%대를 넘어서고 있다.(예컨대 지난 95년 독일 총선의 투표율은 82.3%였고, 97년 영국 총선은 75%, 같은 해 프랑스 총선이 68.5%였다.)
다른 한편에서는 이런 유럽의 예를 들면서 우리나라에서 진보를 바라는 사람들이 너무 쉽게 주권을 포기하는 것 아니냐고 질타하는 목소리도 있다. 그러나 진보를 위해 누구를 선택한단 말인가? 시민단체나 일부 언론에서는 정당을 초월해서 수구적이고 부패한 인물을 깨끗하고 참신한 인물로 바꿔보자고 호소했다. 물론 물갈이가 아무 의미도 없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386을 포함해서 새로운 인물들도 기존 정당의 붕당체제의 보스에 줄을 대서 출세하려는 자들일 뿐이다. 그러기에 정치를 바꾸기는커녕 기존 정당의 색깔(신자유주의든 수구든)과 보스 지배체제를 바꾸기보다는 오히려 그것을 더 강화하는 데 들러리 역할을 할 가능성이 훨씬 높다. 그들을 찍어주는 만큼 정치권의 국민에 대한 헤게모니는 더 강화될 텐데 그래도 투표를 해야 한다는 말인가?
언론에서도 이번 총선에서는 역대 선거와 달리 부유층에 비해서 서민층의 투표율이 낮은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이번 총선에서 나타난 사상 최악의 투표율은 노동자․민중이 사실상 ‘투표 거부’를 통해 기존 정치권을 심판한 것이었다.
노동자․민중은 기존 정치권의 대변혁, 즉 물갈이 정도가 아닌 판갈이가 필요하다고 느끼고 있고 또한 그것을 바라고 있다. 누가 그것을 할 수 있는가? 노동자․민중을 대변하고 노동자․민중의 정치세력화를 실현하는 노동자 정당이 아니겠는가? 이 점에서 우리는 민주노동당이 왜 그에 부응하지 못했는지를 냉정하게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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