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된 노조운동을 지향하는 인도네시아 지역노조를 다녀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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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안상미 작성일01-11-30 00:00 조회807회 댓글0건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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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지역노조교류방문기안상미2001년.hwp (216.5K) 0회 다운로드 DATE : 2018-07-03 11:5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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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지역 노조활동가 7명과 APWSL 한국위원회는 지난 9월 13일부터 18일까지 인도네시아 수라바야 지역노조(SBR)를 방문해 인도네시아 노동운동 활동가들과 문화교류 및 노조운동의 경험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저는 아직 우리나라의 노동운동 역사와 문화도 잘 모릅니다. 그래서 우리 노조의 몇몇 사람이 추진해 온 인도네시아 노동자들과의 노동문화 교류방문에 함께 갈 것인지를 놓고 무척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그래도 다른 나라의 노동현장과 노동자들을 만날 수 있고, 지나온 노동역사에 대해 이야기하고, 들을 수 있다는 기대와 설레는 마음을 안고 9월 13일 인도네시아로 떠났습니다. 7시간의 비행 끝에 도착한 인도네시아의 수도 자카르타에서 다시 국내 비행기를 갈아타고, 두 시간쯤 후에 도착한 곳은 ‘수라바야’라는 거대한 공업도시였습니다.
숙소에 도착했을 때, 가장 먼저 우리를 반겨주고 또 다음날 우리가 가장 먼저 방문한 곳은 바로 수라바야의 지역노조인 SBR(Seriket Buruh Regional)이었습니다. 우리 방문단 중에 두 명은 지난해 이미 이 지역노조를 방문한 적이 있어 그곳의 활동가들과 매우 끈끈한 관계를 맺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소수 몇 사람만이 아니라, 앞으로 좀더 많은 노동자들이 함께 형제자매처럼 서로 정을 나누며 교류를 하자는 취지에서 이번 방문이 추진되었던 것입니다.
SBR에서 만난 많은 노동자들은 한결같이 살아 있는 맑은 눈빛들로 반짝였고, 한국의 노동운동을 하나라도 더 배우고자 하는 열정으로 가득했습니다. 너무나 진지한 그들의 모습을 보며 그들이 평소 잘못된 자신의 현실을 바로잡아 나가기 위해 얼마나 애쓰고 있는가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규모는 작지만 참된 노조운동을 지향하는 SBR과는 달리 우리는 1만 5천여 명의 조합원을 둔 마스피온이라는 대공장 노조도 방문하였습니다. 마스피온 노조 간부들의 관료화된 모습을 보면서 “아, 한국의 썩은 노동조합이 여기에도 있구나” 하는 생각에 너무 마음이 아팠습니다.
현장에서 고통을 나누던 동지들을 자신의 진급과 출세의 이용수단으로 삼고, 자본가들의 덫에 걸려 자본가와 함께 놀아나는 마스피온 노동조합.... 다른 노조와 연대하지 않고, 임금인상을 위해서만 투쟁하는 집단이기주의로 비치는 노동조합.... 그들을 보며 결코 머나먼 남의 나라 일로만 여겨지지 않았습니다. 관리자들과 노조간부들이 함께 한 그 자리는 그들의 관계가 사이좋기로 소문난 형님과 동생처럼 보여졌고 현장노동자들은 마치 형님댁 마당쇠처럼 느껴지기까지 했습니다.
씁쓸한 마음으로 SBR에서 마련한 ‘문화교류의 밤’ 사장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시내 한복판에 자리잡은 야외공연장은 해가 뉘엿뉘엿 넘어간 저녁시간이라 지나다니는 사람들로 붐볐고, 지역의 많은 노동자들과 거리의 아이들까지 한참 시끌벅적했습니다. 이 문화행사에서는 마스피온 노조 간부들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현장 노동자․민중을 접할 수 있었고, 앞서의 노조 간부들과의 씁쓸한 만남을 떨쳐버릴 수 있었습니다.
먼저 각 나라의 노동문화에 대한 간단한 소개가 있은 후, 한국 방문단의 공연이 있었습니다. 투쟁가요 메들리에 맞춰 한 동지가 힘찬 율동공연을 하였고, 9명의 일행은 미리 준비한 ‘임을 위한 행진곡’, ‘파업가’, ‘사람이 태어나’ 등의 노래에 맞춰 힘찬 율동공연을 하였습니다. 또 한국에서 미리 준비해 간 김치와 김, SBR에서 준비한 빵을 나누어 먹으며, 문화교류의 밤은 무르익어 갔습니다.
이어서 SBR 노동자들은 한국의 북과 자신들의 악기들을 신명나게 두들기며, 힘찬 노래공연을 하였습니다. 우리나라의 집회식 문화와는 다르게 생활 속에서 우러나오는 듯한 자연스러운 몸짓을 보며 무한한 가능성 같은 것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그들이 부르는 노래는 곡조가 매우 단조로운 편이라서 금방이라도 따라 부를 수 있을 것 같았는데, 한 곡도 배우지 못해 아쉬움이 남습니다.
곧이어 NGO에 소속되어 활동하고 있는 ‘거리의 아이들’이 나와 자신들의 현실을 극으로 꾸민 퍼포먼스를 보여주었습니다. 부모의 보호를 받으며 세상 모르고 뛰어 놀아야 할 어린나이에 술과 담배, 카드놀이나 하며 경찰들의 몽둥이에 이리 채이고 저리 채여 가며 거리에서 나뒹굴어야 하는 그들의 비참한 현실을 보며, 가슴이 저며오는 것을 느꼈습니다.
“나라는 부유한데, 왜 우리 인도네시아 민중들은 가난해야 하는가”라는 노래 가사를 생각하면 지금도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금할 수가 없습니다. 문화행사의 마지막 순서로 이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문화운동가들이 나와 자본에 찌들지 않은 자연의 소리를 내며 멋진 공연을 하는 것을 보며 우리는 점점 하나가 되어 갔습니다.
아, 이 시간이 계속되었으면... 자연스럽게 온몸으로 자신의 삶과 고뇌를 보여주고, 눈빛만으로도 서로 통하는 동지들을 뒤로 한 채 아쉬운 마음이었지만, 우리는 숙소로 향해야 했습니다.
저는 아직 우리나라의 노동운동 역사와 문화도 잘 모릅니다. 그래서 우리 노조의 몇몇 사람이 추진해 온 인도네시아 노동자들과의 노동문화 교류방문에 함께 갈 것인지를 놓고 무척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그래도 다른 나라의 노동현장과 노동자들을 만날 수 있고, 지나온 노동역사에 대해 이야기하고, 들을 수 있다는 기대와 설레는 마음을 안고 9월 13일 인도네시아로 떠났습니다. 7시간의 비행 끝에 도착한 인도네시아의 수도 자카르타에서 다시 국내 비행기를 갈아타고, 두 시간쯤 후에 도착한 곳은 ‘수라바야’라는 거대한 공업도시였습니다.
숙소에 도착했을 때, 가장 먼저 우리를 반겨주고 또 다음날 우리가 가장 먼저 방문한 곳은 바로 수라바야의 지역노조인 SBR(Seriket Buruh Regional)이었습니다. 우리 방문단 중에 두 명은 지난해 이미 이 지역노조를 방문한 적이 있어 그곳의 활동가들과 매우 끈끈한 관계를 맺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소수 몇 사람만이 아니라, 앞으로 좀더 많은 노동자들이 함께 형제자매처럼 서로 정을 나누며 교류를 하자는 취지에서 이번 방문이 추진되었던 것입니다.
SBR에서 만난 많은 노동자들은 한결같이 살아 있는 맑은 눈빛들로 반짝였고, 한국의 노동운동을 하나라도 더 배우고자 하는 열정으로 가득했습니다. 너무나 진지한 그들의 모습을 보며 그들이 평소 잘못된 자신의 현실을 바로잡아 나가기 위해 얼마나 애쓰고 있는가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규모는 작지만 참된 노조운동을 지향하는 SBR과는 달리 우리는 1만 5천여 명의 조합원을 둔 마스피온이라는 대공장 노조도 방문하였습니다. 마스피온 노조 간부들의 관료화된 모습을 보면서 “아, 한국의 썩은 노동조합이 여기에도 있구나” 하는 생각에 너무 마음이 아팠습니다.
현장에서 고통을 나누던 동지들을 자신의 진급과 출세의 이용수단으로 삼고, 자본가들의 덫에 걸려 자본가와 함께 놀아나는 마스피온 노동조합.... 다른 노조와 연대하지 않고, 임금인상을 위해서만 투쟁하는 집단이기주의로 비치는 노동조합.... 그들을 보며 결코 머나먼 남의 나라 일로만 여겨지지 않았습니다. 관리자들과 노조간부들이 함께 한 그 자리는 그들의 관계가 사이좋기로 소문난 형님과 동생처럼 보여졌고 현장노동자들은 마치 형님댁 마당쇠처럼 느껴지기까지 했습니다.
씁쓸한 마음으로 SBR에서 마련한 ‘문화교류의 밤’ 사장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시내 한복판에 자리잡은 야외공연장은 해가 뉘엿뉘엿 넘어간 저녁시간이라 지나다니는 사람들로 붐볐고, 지역의 많은 노동자들과 거리의 아이들까지 한참 시끌벅적했습니다. 이 문화행사에서는 마스피온 노조 간부들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현장 노동자․민중을 접할 수 있었고, 앞서의 노조 간부들과의 씁쓸한 만남을 떨쳐버릴 수 있었습니다.
먼저 각 나라의 노동문화에 대한 간단한 소개가 있은 후, 한국 방문단의 공연이 있었습니다. 투쟁가요 메들리에 맞춰 한 동지가 힘찬 율동공연을 하였고, 9명의 일행은 미리 준비한 ‘임을 위한 행진곡’, ‘파업가’, ‘사람이 태어나’ 등의 노래에 맞춰 힘찬 율동공연을 하였습니다. 또 한국에서 미리 준비해 간 김치와 김, SBR에서 준비한 빵을 나누어 먹으며, 문화교류의 밤은 무르익어 갔습니다.
이어서 SBR 노동자들은 한국의 북과 자신들의 악기들을 신명나게 두들기며, 힘찬 노래공연을 하였습니다. 우리나라의 집회식 문화와는 다르게 생활 속에서 우러나오는 듯한 자연스러운 몸짓을 보며 무한한 가능성 같은 것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그들이 부르는 노래는 곡조가 매우 단조로운 편이라서 금방이라도 따라 부를 수 있을 것 같았는데, 한 곡도 배우지 못해 아쉬움이 남습니다.
곧이어 NGO에 소속되어 활동하고 있는 ‘거리의 아이들’이 나와 자신들의 현실을 극으로 꾸민 퍼포먼스를 보여주었습니다. 부모의 보호를 받으며 세상 모르고 뛰어 놀아야 할 어린나이에 술과 담배, 카드놀이나 하며 경찰들의 몽둥이에 이리 채이고 저리 채여 가며 거리에서 나뒹굴어야 하는 그들의 비참한 현실을 보며, 가슴이 저며오는 것을 느꼈습니다.
“나라는 부유한데, 왜 우리 인도네시아 민중들은 가난해야 하는가”라는 노래 가사를 생각하면 지금도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금할 수가 없습니다. 문화행사의 마지막 순서로 이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문화운동가들이 나와 자본에 찌들지 않은 자연의 소리를 내며 멋진 공연을 하는 것을 보며 우리는 점점 하나가 되어 갔습니다.
아, 이 시간이 계속되었으면... 자연스럽게 온몸으로 자신의 삶과 고뇌를 보여주고, 눈빛만으로도 서로 통하는 동지들을 뒤로 한 채 아쉬운 마음이었지만, 우리는 숙소로 향해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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