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유주의 구조조정에 맞선 화섬 노동자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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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주환 작성일01-11-30 00:00 조회717회 댓글0건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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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화섬노동자의구조조정저지투쟁.hwp (18.5K) 0회 다운로드 DATE : 2018-07-04 10:3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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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성 노조의 파업을 필두로 한 화섬 노동자의 저항
지난 5월 6일 새벽, 경찰과 회사 관리자들이 농성장을 기습 침탈하여 효성 노조 박현정 위원장과 2명의 간부를 강제연행하고 구속하자 노동조합은 즉각 구속결단을 하고 여성동지까지 삭발투쟁을 벌이며 5월 16일부터 일주일간 파업찬반 총회를 조직해 나갔다. 이에 당황한 효성자본은 14일과 15일 구사대 400여 명과 대구, 구미에서 동원한 100여 명의 용역깡패를 동원 해 상급단체의 출입을 막고 현장 내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면서 노골적으로 투표를 방해하였다.
효성자본은 정문에 철구조물로 바리케이트를 설치하고, 각 문에 콘테이너를 갖다놓고, 공장창문에 쇠창살을 치고 공장문에 자물쇠를 설치하는 한편 관리자를 동원해 조합원을 협박하는 과정에서 언양 공장은 150여 명의 조합원을 일주일간 휴가와 출장을 보내는 등 총회 방해책동이 극에 달하자 노조는 총회를 중단, 전면적인 투쟁을 선언하고 25일 총파업에 돌입하였다.
자본은 이에 전기봉 등 사제 무기를 소지한 조직 폭력배를 동원하여 노조를 무력으로 진압하려고 하였으나 조합원들과 연맹과 지역의 연대동지들의 단호한 투쟁으로 맞섰다. 사측은 결국 두손을 들고 용역깡패 철수, 바리케이트 철수, 상급단체 간부의 노조 출입을 허용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듯 효성자본이 수세에 몰리자 총자본은 효성자본을 지지․엄호하기 위하여 경총은 계속 공권력 투입을 요청하고 여론을 조성하여 나갔으며, DJ 정부는 6월 5일 새벽 침탈을 강행하였다. 그러나 이에 굴하지 않고 공권력 투입에 항의하는 연대투쟁을 조직해 울산지역에서는 1만여 명의 노동자가 집결하여 87년 이후 최고 수위의 가두투쟁이 연일 전개되었다. 화섬사업장은 고합울산과 태광이 12일 전면적으로 연대파업에 돌입하였으며, 구미의 코오롱과 한국합섬 노조가 부분파업에 돌입하고 전면파업을 결의하는 등 힘있는 연대투쟁이 이어졌다.
이렇듯 화섬노동자들이 6․12 연대파업투쟁에 중심으로 설 수 있었던 것은 우선 일방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에 대한 연대투쟁의 필요성이 절실하게 요구되고 있었기에 가능하였다.
지난 5월 6일 새벽, 경찰과 회사 관리자들이 농성장을 기습 침탈하여 효성 노조 박현정 위원장과 2명의 간부를 강제연행하고 구속하자 노동조합은 즉각 구속결단을 하고 여성동지까지 삭발투쟁을 벌이며 5월 16일부터 일주일간 파업찬반 총회를 조직해 나갔다. 이에 당황한 효성자본은 14일과 15일 구사대 400여 명과 대구, 구미에서 동원한 100여 명의 용역깡패를 동원 해 상급단체의 출입을 막고 현장 내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면서 노골적으로 투표를 방해하였다.
효성자본은 정문에 철구조물로 바리케이트를 설치하고, 각 문에 콘테이너를 갖다놓고, 공장창문에 쇠창살을 치고 공장문에 자물쇠를 설치하는 한편 관리자를 동원해 조합원을 협박하는 과정에서 언양 공장은 150여 명의 조합원을 일주일간 휴가와 출장을 보내는 등 총회 방해책동이 극에 달하자 노조는 총회를 중단, 전면적인 투쟁을 선언하고 25일 총파업에 돌입하였다.
자본은 이에 전기봉 등 사제 무기를 소지한 조직 폭력배를 동원하여 노조를 무력으로 진압하려고 하였으나 조합원들과 연맹과 지역의 연대동지들의 단호한 투쟁으로 맞섰다. 사측은 결국 두손을 들고 용역깡패 철수, 바리케이트 철수, 상급단체 간부의 노조 출입을 허용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듯 효성자본이 수세에 몰리자 총자본은 효성자본을 지지․엄호하기 위하여 경총은 계속 공권력 투입을 요청하고 여론을 조성하여 나갔으며, DJ 정부는 6월 5일 새벽 침탈을 강행하였다. 그러나 이에 굴하지 않고 공권력 투입에 항의하는 연대투쟁을 조직해 울산지역에서는 1만여 명의 노동자가 집결하여 87년 이후 최고 수위의 가두투쟁이 연일 전개되었다. 화섬사업장은 고합울산과 태광이 12일 전면적으로 연대파업에 돌입하였으며, 구미의 코오롱과 한국합섬 노조가 부분파업에 돌입하고 전면파업을 결의하는 등 힘있는 연대투쟁이 이어졌다.
이렇듯 화섬노동자들이 6․12 연대파업투쟁에 중심으로 설 수 있었던 것은 우선 일방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에 대한 연대투쟁의 필요성이 절실하게 요구되고 있었기에 가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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