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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노동조합주의: 프랑스 SUD 노동조합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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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베르너 임호프 작성일01-11-30 00:00 조회1,00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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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노동조합주의: 프랑스 SUD 노동조합에 대하여

 

베르너 임호프(Werner Imhof) : 독일 노동운동가

(번역: 정병기)

 

 2000년 봄과 2001년도에 나는 여려 명의 노조활동가들, 정치활동가들과 함께 프랑스에서 2주일간 교육휴가에 참여한 적이 있다. 다양한 SUD 노조들(SUD 교원노조, SUD 철도노조, SUD 체신노조, SUD 화학노조) 및 ‘그룹 10’의 연대 노조연합 및 실업자운동 AC! 그리고 농업노조연합과 정치운동단체 ‘극좌’의 대표자들과 함께 우리는 최근 ‘사회운동’의 전형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한 전형에서는 특히 독일의 상황과 비교하여 공통점 또한 적으나마 간과해서는 안 되겠지만, 다른 점들이 더 많이 드러났다.

 

메이데이 시위에서 종종 “완전고용”을 주장하는 프랑스노동총동맹(CGT)의 구호가 눈에 띌 때, 사람들은 독일노련(DGB)의 구호인 “노동, 노동, 노동”을 떠올린다. 그리고 노동자투쟁(LO)과 공산주의혁명동맹(LCR)의 트로츠키주의자들의 구호인 “부의 분배”와 “이윤 내는 기업에서의 해고 반대”는 독일공산당(DKP)이나 독일맑스레닌주의정당(MLPD)의 개혁주의적 순진함도 보인다.

 

그러나 공통점은 여기에서 끝난다. 왜냐하면 프랑스에서 그러한 구호들은 ‘신자유주의’의 논리―점차적으로 자본의 논리도―를 거부하는 사회적 연대에 대한 요구와 임금의존대중들 속에 널리 퍼진 분위기를 피상적이며 퇴보적으로 표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분위기는 1995년 12월의 파업운동에서 표출되었을 뿐만 아니라, 매우 다양한 ‘사회적 운동들’을 결합하고, 의회주의적이고 관료주의적인(노동조합도 마찬가지로) 대의구조의 위기를 말하는 완전한 ‘대표성의 위기’로 발전해 갔는데, 이는 달리 표현하여, 증폭되는 투표기피현상(공식적인 선거결과에 따르면 투표에 전혀 참여하지 않았거나 처음으로 투표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수가 증가하고 있다)과 극좌에 투표하는 수백만의 저항투표로 나타났다.

 

그러나 “스탈린주의의 고아”인 트로츠키주의적 좌파는 어떠한 의미에서도 결코 “혁명적 전위”의 역할을 수행할 수 없다. 그들이 비록 ‘체제’의 개혁불가능성을 항상적으로 강조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대중추수적 개혁주의를 넘어서지 못하며, 프랑스공산당(PCF)이 상실한 표를 주워가기 위한 것밖에 되지 않는다. 그들은 2001년 초여름에 아주 특별한 수치스러움을 드러냈다. 이윤을 내는 기업에서 해고를 금지하라는 그들의 요구는 이윤을 내지 못하는 기업에서는 해고를 할 수 있다는 뜻을 함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이윤을 창출하지 못하는 노동은 (그 사회적 기능과는 무관하게) 보호받을 가치가 없다는 얘기이다. 막스와 스펜서(Marks & Spencer) 회사의 지사로서 손실을 내는 프랑스 지사의 종업원들은 자본측에서 볼 때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여러 차례의 폐업과 해고로 위협받는 다른 종업원들과 연계하여 초국적 자본에 대항하는 대규모 시위를 조직했던 것이다.

 

사회운동의 전위가 프랑스에 존재한다면, 그것은 정치조직이나 그 정파들에서가 아니라 노조운동에서 발견할 수 있는데, SUD 노조들이 그것이다. 그 첫 번째 조직이 SUD 체신노조(SUD PTT)인데, 이 노조는 300여 명의 활동가들이 우체부 파업에 참가했다는 이유로 CFDT에서 제명된 후 1988년 12월에 설립되었다. 처음에 이 노조는 유일한 SUD 노조였다가, 1947년 FO가 CGT에서 분리해 나올 때 자신들의 정치적 독립성을 주장하며 설립된 이른바 ‘기존 총연합에 가입하지 않은’ 노조들의 연맹체인 ‘그룹 10(Gruppe der 10: www.g10.ras.eu.org)’에 1989년 가입했다. 거대 노조인 CGT와 CFDT가 미테랑 대통령 시기에 정부의 지원부대로 발전해갔다는 이유만으로도 ‘그룹 10’은 특수한 좌파로 인정된다.

 

특히 공공부문에서 시작되어 민간부문과 대학, 그리고 해외와 스위스의 프랑스어 사용지역으로 번져간 다른 SUD 노조들의 설립 물결은 1995년 12월 이후(CFDT로부터의 대량탈퇴와 연결되어)에야 이루어졌다. 이러한 새로운 조직화 경향들이 독일에서는 프랑스 노조전통의 잘 알려진 전투성의 연장으로 인식되었다. 1997년 프랑크푸르트의 TIE 국제 회의에서 SUD 대표자들이 새로운 조직의 성공적인 건설을 이루어낸 그들의 활동을 소개하기 위해 초대되었다. SUD 노조들은 전통적인 노조조직들의 단순히 투쟁적인 변형 이상의 그 무엇이라는 사실이 당시에는 아무에게도 인식되지 못했고,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왜냐하면 강령적 내용을 담은 명칭인 ‘연대, 단결, 민주(solidaire, unitaire, democratique)’가 특별히 인상적이거나 각인될 만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그들의 로고에서도 나는 폴랜드 연대노조 Solidarnosc의 인상을 받았다). 나는 또한 그들이 평조합원에 기반하고 균등주의적이며 반관료주의적인 성격을 강조하기를 기대했다. 그렇지 않다면 인습적인 노조유형들과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를 비롯한 수많은 참가자들에게는 대단히 놀랍게도, SUD 노조들은 임금의존자들의 이익대변단체이기는 하지만, 이때 임금의존자들은 자신의 역할을 임금의존자의 역할에 머물거나 한정하지 않고, 그들 노동의 사회적 이용(‘사회적 통합’이 관련된 개념)과 소비자나 이용자의 요구에 책임을 지는 생산자로서 규정되는 사회적 생산자로 인식하는 사람들이었다. 지불능력 있는 구매자들에게만 관심을 갖는 ‘고객지향성’의 의미가 아니라, 가난하고 곤궁한 사람들을 포함해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의 이용이라는 의미에서 그들은 개인의 발전과 사회적 평등(egalite)에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이다.

 

SUD 교원노조(www.sudeducation.org)는 자신을 “교사노조”가 아니라, 유치원에서 대학교에 이르기까지 모든 교육시설에 종사하는 건물관리인에서 교수에 이르는 모든 교육부문 노동자들의 조직으로 인식하고 있다. SUD 교원노조는 교육 체계가 경제적 이익과 경쟁의 강제에 종속되는 현상에 반대하여 통일적이고 세계적인 무상 교육 체계를 주장하며(“신자유주의적 학교 반대”, “교육은 상품이 아니다”), “엄격한 중앙집중적 자코뱅주의”의 전통에 반대하여 해방적인 교육개념을 옹호한다.

 

SUD 철도노조(www.sudrailprg.free.fr)는 혼합 공공 교통체계의 건설을 요구하며, 택시와 화물운행에서부터 버스와 철도를 넘어 항공교통에 이르기까지 모든 운수부문의 노조연합체 건설을 위해 노력한다. 최근에 이 노조는 이윤을 창출할 수 있는 부문들의 민영화를 통해 철도부문이 세분되는 것을 막기 위해 투쟁하고 있다. SUD 철도노조는 소비자연맹과의 협력을 주장하며, 생산자와 이용자의 공동조직을 요구해 왔다.

 

SUD 화학노조(특히 제약노조, www.sudpharma.chez.tiscali.fr)는 제약회사의 “이윤논리”를 공격―“보건은 상품이 아니다” 또는 “인간에게 유용한 생산”이라는 구호와 함께―한다. 현재 이 노조는 제약산업의 휴업계획에 반대하여 투쟁하며, 특히 가난한 나라에 필요한 의약품의 발전과 생산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에이즈 반대운동: siehe www.lapetition.com).

 

SUD 체신노조(www.sudptt.fr)의 역사는 다른 모든 SUD 노조들의 전범이자 선구자로 인정되는 예이다. 두 개의 순수한 상업적 서비스업종기업―우체국과 프랑스 텔레콤―이 사실상 이용자들에게 유리하지 않은 가격독점을 행사하는 관공서인 국영기업으로서 민영화를 준비해가는 ‘우체국개혁’에 직면했을 때 투쟁은 아직 거의 조직되지 못했다. CFDT가 이 개혁을 적절한 현대화로 찬양했다면, CGT는 거부와 현상유지라는 순전히 수세적인 전략에 안주하고 있었다. 두 입장은 모두 ‘현대화론자’와 ‘전통주의자’간의 논쟁이라는 인습적인 노조정치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한계를 드러낸 것이다. SUD 체신노조가 볼 때, 두 입장은 공공부문의 미래를 위협하는 것에 다름 아니었다. 왜냐하면 CFDT는 현대화와 고객지향이라는 구실 아래 민간자본기업으로 자신의 존재기반을 전환시키려 했고, CGT는 자신의 모든 결함을 간직한 채 관료주의적 국가독점을 옹호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SUD 체신노조의 주장에 따르면, 우편과 원거리통신과 교육 및 보건, 대중교통수단, 에너지 부문 등과 같은 공공부문은 모든 사회구성원들이 이용해야 하는 문명의 성과물들이다. SUD 체신노조는 이러한 업무들이 그 용역을 이윤을 남기는 상품에 봉사하게 하고 이용자를 지불능력 있는 고객에 한정하는 시장의 수익성법칙에 종속되는 것을 금하고자 한다. SUD 체신노조는 또한 공공부문을 현상대로 유지하는 것도 반대한다. 공공부문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오히려 쇄신하고 활력있게 만들어야 한다―그러나 상업화와 민영화를 통해서가 아니라 종업원들과 이용자들의 동맹을 통해서―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SUD 체신노조는 개혁찬성론자의 모든 논리들과 내용적으로 논쟁하고, 종업원들과 이용자들의 토론을 조직하며, 다양한 형태의 파업운동으로 동원하고 있다. 그 활동―풀뿌리민주주의적 결정의 절대적 의무화(예를 들어 파업총회를 매일 개최)와 끊임없는 정보제공활동도―은 매우 성공적이어서 SUD 체신노조는 10년 안에 우체국 부문에서 CGT 체신노조 다음으로 가장 큰 노조로 부상하였으며, 텔레콤 부문에서도 CGT 노조와 대등한 입장에 올라섰다.

 

사회적 필요와 노동의 이용에 대한 SUD노조들의 경향성은 소박하면서도 명쾌할 뿐만 아니라 비인습적이기까지 하다. 전통적인 자기정체성에서 볼 때, 노동조합은 (민간부문이나 국가부문의) 기업들과 노동력의 가격과 사용조건을 두고 싸우는(“보호기능”) 임금의존자들의 배타적 이익대변단체이다. 임금노동의 사회적 역할은 (“가치 창출 행위”라는 일반적 규정과 무관하게) 이러한 지평의 외부에 놓여 있다. 소비자이건 스스로 생산자이건 그 이용자에 대한 관계는 단지 기업의 일이고, 경우에 따라서는 보편적인 이해관계가 관련되는 한에서만 국가의 명령이나 감독의 소관으로 간주된다. 구체적 노동에 대해서는 오직 기업조직과 임금구분의 대상으로서 관심을 가질 뿐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그 노동과 관련된 관점은 기존 노조들과 구별되는 기준이 된다.

 

전통적인 생디칼리즘(프랑스의 노동조합운동을 의미)은 자본관계를 자신의 존재조건으로 파악하며, 사회를 그 외부적인 존재로서, 즉 사람들이 살아가는 추상적인 더 높은 차원의 연관으로 인식한다. 따라서 생디칼리즘은 사회에 대해 요구하고 국가를 통해 자신들을 대변하지만, 사회의 이름으로 자신들의 노동을 주장하고자 하지 않는다. 반대로 SUD 노조들이 대변하는 생디칼리즘 유형은 사회를 인간들의 실천적인 연관으로 파악하는데, 그 속에서 임금의존자들은 객체일 뿐만 아니라 동시에 활동하는 주체이자 사회적 생산자로 규정되며, 이러한 성격에서 자본관계와 그것을 보호하는 정치는 장애요소이자, “짐(Ballast: Gramsci)”으로 인식된다.

 

 글 2001.11.16

 

번역 2003.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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