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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60년에 대한 하나의 해석 : 민주주의자의 퍼스펙티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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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장집 작성일05-11-30 00:00 조회64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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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를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1) ꡐ해방 60년ꡑ을 말한다는 것은, 2차대전 종전과 더불어 시작된 냉전의 결과로 분단된 지난 60년의 역사와, 우리가 ꡐ한국ꡑ이라고 부르는 남한의 국가가 그 자체로서 하나의 자족적인 국가이자 주권국가로서 성장한 한국현대사를 이야기하는 것이라 하겠다. 우리는 어디로부터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가, 또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를 오늘의 시점에서 전망해 볼만 하고, 또 그래야만 할 만큼 짧지 않은 긴 시간이 흘렀음을 전제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오늘의 시점에서 정부는 정부대로, 학계는 학계대로, 시민운동은 시민운동대로, 언론이나 출판은 또 그것대로 해방 60년을 중요하게 여기고 논의하는 것은 당연한 일로 보인다. 그런데, 정부가 주도하는 다양한 기념행사들을 비롯하여 여러 곳에서 해방 60년을 앞세우고, 언론과 방송매체를 비롯하여 다채로운 이벤트성 행사도 많고, 적잖은 예산이 고구려사 연구나 식민지시대 연구에 주어지고, 과거사청산 문제가 주요 정부정책으로 추진되고 있는 오늘의 시점에서, 한국 현대사가 제기하고 있는 문제들과 제대로 대면하는 성찰적 이해나 관심, 연구는 매우 역설적이게도 해체 또는 소멸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한다. 민주화로의 전환의 과정에서 운동의 역사적 기초를 이론적으로 뒷받침했던 한국현대사에 대한 비판적 이해가, 냉전 반공주의와 보수적 산업화를 주도했던 권위주의가 해체된 민주화이후의 시기에, 왜 소멸되고 있는가? 이는 한국에서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의 특성을 밝히는 데 매우 중요한 질문이 아닐까 한다.

(2) 최근 진행되고 있는 해방 60년을 주제로 한 행사나 논의들을 보면서, 대부분의 경우 ꡐ성찰 없는 현대사 이해ꡑ를 특징으로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전체적으로 보아 오늘의 한국사회, 한국민주주의의 문제에 대한 회피 내지 문제의식의 결핍을 나타내고 있기 때문이다. 역사에 대한 관심과 이해는 최근 년에 이르러 고구려사나 한일관계사와 같이 고대사나 조선후기에서 식민지시대에 이르는 시기에 관한 것으로 대체된 것처럼 보인다. 대학의 역사학과에서조차 해방 이후의 한국사, 다시말해 해방 60년사에 대한 교육이나 강의 자체가 공백으로 남아있다. 이탈리아의 역사가 베네데토 크로체는 ꡒ연대기적 역사는 죽은 역사ꡓ이고 ꡒ역사는 당대의 역사ꡓ (contemporary history)라고 말했다. 독일 관념론의 영향을 받은 그는 철학, 예술, 문화와 역사를 동일시하고, 현재를 한 사회의 문화발전의 가장 성숙한 단계로 상정하면서 그것의 실현 또는 표현을 역사라고 이해했다. 문화적 정신생활과 역사의 통일성, 그것의 발전적 과정으로서 역사를 생각하는 그의 관념철학적 역사관을 수용하지는 않지만, 과거가 현재를 규정하는 준거가 아니라 현재가 역사를 말하는 준거라는 점에서 그 말은 현재에도 큰 의미를 갖는다. 한국에서는 적어도 대학의 역사교육을 중심으로 볼 때 고대사나 근대사는 존재할는지 모르지만, 현대사란 존재하지 않으며, 그러므로 역사에 대한 크로체의 정의로 본다면 역사가 존재하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3) 10년 전 종전 50주년을 맞은 1995년 일본에서는 그 의미를 둘러싼 한 집중적인 토론이 있었다. 이와나미서점이 출간하는 월간지『世界』는 한일관계에 초점을 맞추어 ꡒ패전 50년과 해방 50년: 화해와 미래를 위하여ꡓ라는 주제의 특집호를 낸 바 있다. 두 나라가 종전에 대해 상극하는 문제의식을 갖는다는 것, 즉 일본은 종전을 패전으로 인식하고 한국은 종전을 해방으로 인식한다는 것으로부터 양국의 역사인식의 문제를 접근하려 한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접근이 종전 50년의 의미를 얼마나 잘 축약하고 설명할 수 있을까? 일본의 종전을 패전으로, 한국에 있어서 종전을 해방으로 정의한 것으로부터 이미 논의의 방향과 범위, 이를 둘러싼 이성적 사고과정과 그 결과는 규정되었다. 이 정의는 한일관계의 특징적 단면을 표현하는데 있어서는 좋은 정의라고 할 수 있겠으나, 그 이상의 것을 설명하는 데는 커다란 한계를 갖는다. 종전을 패전 50년으로 정의하는 것의 핵심은 체제의 연속성이라 하겠다. 그러므로 그 정의는 전후 일본의 정치 및 사회체제가 전전 체제와 상당한 연속성을 갖는다는 사실과 더불어 전후 보수적인 정치 및 사회체제가 구축되었다는 것을 함축한다. 한국의 ꡒ해방 50년ꡓ은 전전과의 단절, 비연속성을 핵심으로 한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이 경우 그것은 해방 이후의 사태에 대해 무엇을 설명할 수 있을 것인가? 많은 사람들은 분단과 남북한 대결구조는 통일된 민족국가건설의 실패 내지는 좌절을 의미하기 때문에 통일된 민족국가의 복원에서 해방의 의미를 찾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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