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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체제의 위기와 거꾸로 가는 정치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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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전태일을 따르는 민주노조운동… 작성일98-11-30 00:00 조회68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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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시스템이 위기를 맞고 있다.

정치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하고 있다. 정치불신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이제 국민들의 정서는 실망과 배신감과 분노를 넘어서 환멸과 경멸, 혐오감으로 변하고 있다.
나라 경제가 파탄 나고 IMF 신탁통치가 몰아닥치고, 노동자·민중들은 거리로 쫓겨나고 죽음으로 내몰리고 있는 상황이다. 너나 없이 6·25 이후 최대의 위기라고 하고 있다. 그런데 어떻게 국민의 고통을 덜고 미증유의 민족적 위기를 헤쳐 나갈 지에 대해 토의하느라 날밤을 세워야 할 국회는 수개월째 기능정지 상태에 있다. 이를 두고 언론에서는 ‘식물국회’, ‘뇌사국회’, ‘잠자는 국회’라고 손가락질하고 있다.
그렇다고 국회가 열리지 않았느냐 하면 그게 아니다. 국회는 5월 이후 하루도 빠짐없이 열려 있었다. 한나라당이 네차례 단독으로 임시국회를 소집했다. 그러나 그것은 국정을 토의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회기중 면책특권을 이용하여 이신행 등 비리 의원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국정 최고의결기관을 범법행위에 대한 심판을 회피하는 방패막이로 삼은 것이다.
국회의장단 구성에 보여준 정치권의 모습은 그야말로 가관이었다. 한나라당이 소속 국회의원을 단속하지 못해 패배한 후 난리법석을 떠는 풍경도 그러하거니와 ‘박’자는 크게 ‘준규’는 작게 써서 표시했다는 저질적인 작태도 정치를 비웃음거리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더구나 의장단 후보의 면면들이 국회의장으로 있다가 부동산투기가 드러나 의원직을 내놓은 사람, 국회 비서관을 자신이 운영하는 지역신문의 기자로 써서 지역 시민단체들로부터 의원직 사퇴 요구를 받고 있는 사람, 공천 대가로 2억 원을 받아 벌금 500만 원과 추징금 2억 원을 선고받았으나 아직까지 추징금도 내지 않고 있는 사람 등 하나같이 문제투성이 인물들이다. 도덕불감증도 유분수고 국민을 무시해도 어느 정도이지 어떻게 이런 자들에게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 의장단을 맡긴단 말인가?
정경유착과 부정비리 의혹사건들도 하루가 멀다하고 터져나오고 있다. 정부는 기아 김선홍 리스트, 청구의 장수홍 리스트, 경성 리스트, 컴퓨터 게임 비리 등등 줄줄이 터져나오는 비리의혹에 대해 ‘철저한 수사’를 다짐하지만 그 말을 믿는 국민은 거의 없다. 사실 부정한 정치자금에 연루되지 않은 국회의원, 정치인이 얼마나 있겠는가?
눈뜨고 볼 수 없는 정치권과 정치인들의 행태를 일일이 열거하자면 한이 없다. 신문지상의 정치 칼럼들에도 실망, 불신, 배신감, 분노, 혐오, 환멸, 냉담 등 온갖 부정적 단어들이 넘치고 있다. PC통신 토론방에서는 더 적나라하다. “이젠 지긋지긋하다. 정치인들의 거짓과 위선, 자신들의 잇속만 채우는 것이···”, “국회의원들은 도대체 무슨 낯짝으로 우리들의 혈세를 꼬박꼬박 받아먹는가”, “의원세비를 압류하여 기상청에 슈퍼컴퓨터를 설치하자”, “국회의원을 퇴출시키자”, “차라리 국회를 해산하라” 등등.
지난 7.21 보궐선거는 일반 국민대중의 정치불신이 어디까지 왔는지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여·야 각 당은 이 보선이 정국의 분수령이라며 모든 당력을 총동원하여 선거에 매달렸다. 국민회의는 조세형 총재 권한대행을 광명을에 후보로 내세웠고 한나라당 조순 총재도 강릉을에 출마했다. 모든 국회의원들이 일개 동책으로 선거운동에 투입되었다. 그리고 금품살포, 향응제공, 청중동원, 흑색선전, 인신공격 등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죽기살기로 싸움을 벌였다. 그런데 결과는 40.1%라는 역대 최하의 투표율. 60%의 유권자가 국회의원 뽑기를 ‘거부’한 것이다. 특히 수원 팔달의 경우는 26.2%라는 경악할만한 투표율을 기록했다. 이런 선거에서 누가 당선되든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이것은 단적으로 여·야 모두의 패배일 뿐 아니라 정치권 전체에 대한 사실상의 사형선고이다.
요컨대 지금 우리나라 정치는 정치시스템의 총체적인 위기를 맞고 있다. 사회의 다양한 이해를 수렴·대변하고, 그에 기초해서 이념과 비전과 정책을 창출하여 국민에게 희망을 주며, 국민의 역량을 결집해 나가는 정치체제의 역할과 기능을 완전히 상실했다는 것이다. 국민의 불신과 혐오는 그 당연한 귀결이다.
그러나 정치권과 정치인에 대한 도덕주의적 비판만으로는 정치를 바로 세워 나갈 수 없다. 그것은 자칫하면 정치에 대한 냉소를 부추길 뿐이다. 정치에 대한 냉소는 타파되어야 할 현재의 정치체제를 유지·온존시키는 데 기여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도덕주의적 비판과 대안을 넘어서는 주체적이고 과학적인 진단과 대안모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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