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유주의가 몰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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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홍세화 작성일98-11-30 00:00 조회708회 댓글0건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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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와세계민중운동서평.hwp (31.5K) 0회 다운로드 DATE : 2018-07-04 12:5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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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평> 『창작과 비평』98년 여름호
신자유주의가 몰려온다
『신자유주의와 세계민중운동』
(전태일을 따르는 민주노조운동연구소 편역, 한울, 1998)
홍 세 화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 저자
돌이켜보면 한국에서 신자유주의에 대한 논의는 별로 없었다. 물론 학계 일부에선 문제제기를 했겠으나 그 울타리를 넘지 못했다. 그것은 OECD에 가입한 때를 봐도 알 수 있다. 당시 OECD가 가입조건으로 내세웠던 게 다름아닌 금융시장의 개방이었다. 그런데 이 중대한 사안은 공론화조차 되지 않았다. 신자유주의에 대해서는 알아볼 것도 없이 선진국 대열에 진입하는 게 급급했다.
OECD 가입 직후 국회에서 ‘정리해고제’ ‘변형근로제’ ‘근로자파견제’ 등 이른바 ‘3제’를 새벽에 날치기로 통과시켰을 때에도 신자유주의에 대한 논의는 없었다. ‘노동의 유연화’라는 신자유주의의 핵심적인 주장과 관련되었는데도 그랬다. 프랑스의 언론들이 한국의 총파업을 ‘신자유주의에 대한 저항’이라고 불렀던 것과 대조되었다. 그런가 하면, 대우재벌이 프랑스의 국영기업 ‘톰슨멀티미디어’를 인수하려다 노조의 반대로 실패하였을 때, 한국에선 엉뚱하게 한국인을 멸시한 결과라며 민족감정을 들고 나왔다. 프랑스에서 중요했던 관점은 한국재벌로 대표되는 ‘봉건적 신자유주의’(néolibéralisme féodal)에 대한 거부에 있었다.
이처럼 한국에서 신자유주의는 가려져 있었다. 반면에 세계화란 구호는 요란했고 또 별 저항 없이 받아들여졌다. 김영삼정부가 정치적인 책략으로 이용했고, IMF‧IBRD‧OECD 등 신자유주의의 기구들이 계속 한국의 경제를 칭찬했던 배경도 작용했다. 그러다 느닷없이 공황이 덮쳤다. 구호로 던진 세계화가 부메랑이 되어 돌아와 가슴 한복판에 꽂힌 것이다. “신자유주의란 이런 거야! 몰랐어?”라고 외치면서.
이 책 『신자유주의와 세계민중운동』(전태일을 따르는 민주노조운동연구소 편역)을 받아보고 우선 반가웠다. 그 반가움은 한편 너무 늦게 나왔다는 느낌과 같은 것이었다. 이런 나의 느낌은 책에 인용된 갤브레이스(J.K.Galbraith)의 말을 들으면 누구나 동감할 것이다. 즉 “세계화란 다름아니라 금융의 고도화이며, 이렇게 고도화된 금융의 세계화이다. 이 세계화가 인간에게 가지는 의미는, ‘금융이 세계화된 세계’에서는 사상 최대의 파국을 향해 길을 닦아가는 사람들, 바로 그처럼 파괴적인 사람들이 극도로 존경을 받는다는 사실을 인식해야만 제대로 이해될 수 있다.”(190면)
실제로 그의 말처럼 되어버렸다. 해고‧실업‧임금삭감의 고통과 한숨이 있는 반대편에, 최대의 이윤을 쫓는 국제투기꾼 ‘조지 쏘로스’가 갑자기 나타나 구세주처럼 대우받았다. 우리는 이 책을 읽으면서 끊임없이 다음의 질문을 던지지 않으면 안된다. 인간성과 사회정의, 그리고 연대를 어떻게 찾을 것인가? 라는.
내가 이 책을 보고 반가웠던 데에는 이 책이 프랑스 월간지 『르몽드 디쁠로마띠끄』(Le Monde Diplomatique)에서 주로 뽑아 엮었다는 까닭도 있었다. 『디쁠로』는 세계의 문제를 다룬다. 당연히 ‘세계화된 세계’를 다루고 신자유주의와 끊임없이 부딪친다. 그것도 아주 정면으로 부딪친다. 또한 ‘시민을 위한 토빈세(Tobin稅, 모든 투기성 외환거래에 물리자는 국제연대세금)를 위한 행동’(ATTAC)이란 국제적인 비정부기구의 설립을 주도할 정도로 『디쁠로』는 실천적이다.
『디쁠로』의 주필이며 사장인 라모네(I.Ramonet)는 금융자본에 의해 장악되고 있는 새로운 세계체제를 전체주의체제라고 정의한다.(49~50면) 95년에 신자유주의를 지칭, ‘유일사상’(pensée unique)이라는 말을 처음 사용했던 사람도 바로 그였다.
실제로 그렇다. 세상에는 지금 신자유주의의 노선밖에 없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 우리는 지금 전체주의체제 아래 놓여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다만 ‘적응’(adaptation)하는 것뿐이다. 적응력, 즉 경쟁력을 기르는 것 이외에 다른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리하여 약 5만의 인간생명의 매일 굶주림으로 죽어가는 세계, 10억 이상의 인간이 극도의 빈곤 속에서 살아가는 이 비극적인 세계, 그리고 가장 부유한 358명의 재산이 지구촌의 가장 빈곤한 주민층의 절반 가량, 즉 약 26억 명의 연간 소득보다도 많은 그런 세계에서 “먼 훗날이 아니라, 바로 지금 여기에, 대안적인 삶의 방식을 실현하지는 못할지라도 그것을 상상할 수 있는 물질적‧주체적인 기초들이 충분히 확보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같은 대안적인 삶의 방식에 대해 추구하거나 전망하는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132면)
감히 단언하자면, 현재 지구상에는 신자유주의와 대결하고 있는 두 개의 중대한 전선이 있다. 하나는 『디쁠로』중심의 ‘펜’으로 여론을 움직여 싸우는 전선이고, 다른 하나는 직접 총을 들고 싸우고 있는 사빠띠스따(Zapatista) 민족해방군이 그것이다.
사빠띠스따 민족해방군의 부사령관인 마르꼬스(Marcos)가 「제4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었다」라는 글을 『디쁠로』에 기고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는 이 경탄할 만한 글에서, 제4차 세계대전이란 “신자유주의가 ‘인간성’에 대항하여 개시하는 전쟁, 그리고 가장 악질적이고 가장 잔인한 전쟁”(62면)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 책에서 독자들은 또한 국가를 사회변혁의 도구로 보지 않고 ‘참’과 인간의 ‘존엄성’으로 무장하고 인간해방을 추구하는 사빠띠스따의 ‘새로운 권력개념’을 소개한 홀로웨이(J.Holloway)의 글도 큰 흥미를 느끼며 읽을 것이다.
신자유주의라는 매우 복잡하고 폭넓은 주제, 그리고 이에 대한 세계 민중들의 저항사례를 담은 이 책을 단 하나의 촌평으로 논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무엇보다도 부디 많은 사람들이 이 책과 만나기를 기대한다는 말을 하고 싶다.
신자유주의의 정체를 모르면 IMF 신탁통치에 대처할 수 없다. 정리해고제를 내주었고 금융실명제가 날아갔는데 이제 토지공개념 또한 무너질 참이다. 한국에서는 지금 IMF의 감독하에 신자유주의가 착착 관철되고 있다. 그리고 OECD는 이미 3년 전부터 ‘다자간투자협약’(MAI)을 준비하고 있다. 이제 곧 ‘머독’에게 우리의 안테나까지 넘겨줘야 할지 모르는 판국이다. 신자유주의는 무섭게 우리를 덮치고 있는데 우리는 이에 대처할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다.
신자유주의가 몰려온다
『신자유주의와 세계민중운동』
(전태일을 따르는 민주노조운동연구소 편역, 한울, 1998)
홍 세 화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 저자
돌이켜보면 한국에서 신자유주의에 대한 논의는 별로 없었다. 물론 학계 일부에선 문제제기를 했겠으나 그 울타리를 넘지 못했다. 그것은 OECD에 가입한 때를 봐도 알 수 있다. 당시 OECD가 가입조건으로 내세웠던 게 다름아닌 금융시장의 개방이었다. 그런데 이 중대한 사안은 공론화조차 되지 않았다. 신자유주의에 대해서는 알아볼 것도 없이 선진국 대열에 진입하는 게 급급했다.
OECD 가입 직후 국회에서 ‘정리해고제’ ‘변형근로제’ ‘근로자파견제’ 등 이른바 ‘3제’를 새벽에 날치기로 통과시켰을 때에도 신자유주의에 대한 논의는 없었다. ‘노동의 유연화’라는 신자유주의의 핵심적인 주장과 관련되었는데도 그랬다. 프랑스의 언론들이 한국의 총파업을 ‘신자유주의에 대한 저항’이라고 불렀던 것과 대조되었다. 그런가 하면, 대우재벌이 프랑스의 국영기업 ‘톰슨멀티미디어’를 인수하려다 노조의 반대로 실패하였을 때, 한국에선 엉뚱하게 한국인을 멸시한 결과라며 민족감정을 들고 나왔다. 프랑스에서 중요했던 관점은 한국재벌로 대표되는 ‘봉건적 신자유주의’(néolibéralisme féodal)에 대한 거부에 있었다.
이처럼 한국에서 신자유주의는 가려져 있었다. 반면에 세계화란 구호는 요란했고 또 별 저항 없이 받아들여졌다. 김영삼정부가 정치적인 책략으로 이용했고, IMF‧IBRD‧OECD 등 신자유주의의 기구들이 계속 한국의 경제를 칭찬했던 배경도 작용했다. 그러다 느닷없이 공황이 덮쳤다. 구호로 던진 세계화가 부메랑이 되어 돌아와 가슴 한복판에 꽂힌 것이다. “신자유주의란 이런 거야! 몰랐어?”라고 외치면서.
이 책 『신자유주의와 세계민중운동』(전태일을 따르는 민주노조운동연구소 편역)을 받아보고 우선 반가웠다. 그 반가움은 한편 너무 늦게 나왔다는 느낌과 같은 것이었다. 이런 나의 느낌은 책에 인용된 갤브레이스(J.K.Galbraith)의 말을 들으면 누구나 동감할 것이다. 즉 “세계화란 다름아니라 금융의 고도화이며, 이렇게 고도화된 금융의 세계화이다. 이 세계화가 인간에게 가지는 의미는, ‘금융이 세계화된 세계’에서는 사상 최대의 파국을 향해 길을 닦아가는 사람들, 바로 그처럼 파괴적인 사람들이 극도로 존경을 받는다는 사실을 인식해야만 제대로 이해될 수 있다.”(190면)
실제로 그의 말처럼 되어버렸다. 해고‧실업‧임금삭감의 고통과 한숨이 있는 반대편에, 최대의 이윤을 쫓는 국제투기꾼 ‘조지 쏘로스’가 갑자기 나타나 구세주처럼 대우받았다. 우리는 이 책을 읽으면서 끊임없이 다음의 질문을 던지지 않으면 안된다. 인간성과 사회정의, 그리고 연대를 어떻게 찾을 것인가? 라는.
내가 이 책을 보고 반가웠던 데에는 이 책이 프랑스 월간지 『르몽드 디쁠로마띠끄』(Le Monde Diplomatique)에서 주로 뽑아 엮었다는 까닭도 있었다. 『디쁠로』는 세계의 문제를 다룬다. 당연히 ‘세계화된 세계’를 다루고 신자유주의와 끊임없이 부딪친다. 그것도 아주 정면으로 부딪친다. 또한 ‘시민을 위한 토빈세(Tobin稅, 모든 투기성 외환거래에 물리자는 국제연대세금)를 위한 행동’(ATTAC)이란 국제적인 비정부기구의 설립을 주도할 정도로 『디쁠로』는 실천적이다.
『디쁠로』의 주필이며 사장인 라모네(I.Ramonet)는 금융자본에 의해 장악되고 있는 새로운 세계체제를 전체주의체제라고 정의한다.(49~50면) 95년에 신자유주의를 지칭, ‘유일사상’(pensée unique)이라는 말을 처음 사용했던 사람도 바로 그였다.
실제로 그렇다. 세상에는 지금 신자유주의의 노선밖에 없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 우리는 지금 전체주의체제 아래 놓여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다만 ‘적응’(adaptation)하는 것뿐이다. 적응력, 즉 경쟁력을 기르는 것 이외에 다른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리하여 약 5만의 인간생명의 매일 굶주림으로 죽어가는 세계, 10억 이상의 인간이 극도의 빈곤 속에서 살아가는 이 비극적인 세계, 그리고 가장 부유한 358명의 재산이 지구촌의 가장 빈곤한 주민층의 절반 가량, 즉 약 26억 명의 연간 소득보다도 많은 그런 세계에서 “먼 훗날이 아니라, 바로 지금 여기에, 대안적인 삶의 방식을 실현하지는 못할지라도 그것을 상상할 수 있는 물질적‧주체적인 기초들이 충분히 확보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같은 대안적인 삶의 방식에 대해 추구하거나 전망하는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132면)
감히 단언하자면, 현재 지구상에는 신자유주의와 대결하고 있는 두 개의 중대한 전선이 있다. 하나는 『디쁠로』중심의 ‘펜’으로 여론을 움직여 싸우는 전선이고, 다른 하나는 직접 총을 들고 싸우고 있는 사빠띠스따(Zapatista) 민족해방군이 그것이다.
사빠띠스따 민족해방군의 부사령관인 마르꼬스(Marcos)가 「제4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었다」라는 글을 『디쁠로』에 기고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는 이 경탄할 만한 글에서, 제4차 세계대전이란 “신자유주의가 ‘인간성’에 대항하여 개시하는 전쟁, 그리고 가장 악질적이고 가장 잔인한 전쟁”(62면)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 책에서 독자들은 또한 국가를 사회변혁의 도구로 보지 않고 ‘참’과 인간의 ‘존엄성’으로 무장하고 인간해방을 추구하는 사빠띠스따의 ‘새로운 권력개념’을 소개한 홀로웨이(J.Holloway)의 글도 큰 흥미를 느끼며 읽을 것이다.
신자유주의라는 매우 복잡하고 폭넓은 주제, 그리고 이에 대한 세계 민중들의 저항사례를 담은 이 책을 단 하나의 촌평으로 논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무엇보다도 부디 많은 사람들이 이 책과 만나기를 기대한다는 말을 하고 싶다.
신자유주의의 정체를 모르면 IMF 신탁통치에 대처할 수 없다. 정리해고제를 내주었고 금융실명제가 날아갔는데 이제 토지공개념 또한 무너질 참이다. 한국에서는 지금 IMF의 감독하에 신자유주의가 착착 관철되고 있다. 그리고 OECD는 이미 3년 전부터 ‘다자간투자협약’(MAI)을 준비하고 있다. 이제 곧 ‘머독’에게 우리의 안테나까지 넘겨줘야 할지 모르는 판국이다. 신자유주의는 무섭게 우리를 덮치고 있는데 우리는 이에 대처할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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