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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군사기지들과 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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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먼쓰리 리뷰 편집자 작성일02-11-30 00:00 조회95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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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기지들

인류 역사를 통해볼 때, 제국들은 외국의 군사기지들에 기반해서 그들의 통치를 강제해왔다. 그리고 이 점에서 팍스아메리카나(Pax Americana)는 팍스로마나(Pax Romana) 혹은 팍스브리테니커(Pax Britannica)와 다르지 않다.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그의 저서『America and the World Revolution』(1962)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로마제국이 자신의 정치적 패권을 구축했던 주된 방법은 이웃의 약소국들을 자신의 그늘아래 두면서 주변의 다른 강대국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이었다. 로마와 로마가 보호해주는 국가들 사이에 맺은 관계는 조약을 통한 것이었다. 그들은 법적으로는 자신들의 주권 독립을 유지하였다. 로마가 그들에게 영토에 관하여 요구했던 것은 로마 자신과 동맹국들에게 공동의 안전을 제공해주는 로마요새의 건설을 위해 땅의 일부를 내어놓는 것이었다.

이렇게 해서 로마제국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초기에 이러한 로마의 군사기지 시스템에 의해 안전이 보장되던 “로마의 한때 동맹국들이었던 나라들의 광대한 영토는” 시간이 지나면서, “로마가 합병해가던 적국 영토들의 확장이 감소한 정도만큼, 로마제국의 일부가 되어갔다.” (pp.105-106)
영국은, 19세기 자본주의를 주도하던 전성기에, 세계적 체계를 갖춘 군사기지에 의해 보호되던 광대한 식민제국을 통치하였다. 로버트 하카비Robert Harkavy가 그의 저서 『Great Power Competition for Overseas Bases』(1982)에서 설명하듯이, 이 군사기지들은 바다를 따라 구축된 네 개의 네트워크[영국 해상권력에 의해 지배되던]안에 배치되었다: (1)수에즈를 통과해 인도까지 펼쳐진 지중해; (2)남아시아, 극동지역 그리고 태평양; (3)북아메리카와 카리브해; (4)서아프리카와 남대서양. 대영제국의 전성기에 이러한 군사기지들은 35개 이상의 서로 다른 국가/식민지에 위치해있었다. 비록 영국 헤게모니가 20세기 초반에 빠르게 쇠퇴하였지만, 영국의 기지들은 제국 자체가 계속되는 동안 유지되었고, 심지어 2차 대전 동안에는 확장되기까지 했다. 그러나 전쟁 직후에 대영제국은 멸망했고 기지들은 반환되었다.
대영제국의 멸망은 곧 다른 제국의 등장을 의미했다. 미국이 영국을 대신해 자본주의 세계 경제의 헤게모니를 장악했다. 미국은 2차 대전 이후, 전에 없었던 광대한 군사기지 시스템을 가지고 등장했다. 이전에 합참Joint Chiefs of Staff 부의장 수석보좌관Senior Advisor to the Vice Chairman이었던, 제임스 블레이커James Blaker에 따르면 James R. Blaker, United States Overseas Basing(New York: Praeger, 1990), 9, 37. 블레이커의 연구에 대한 조사는 Office of the Secretary of Defense의 지원을 받았다. 그 연구에서 제공된 자료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점이 강조되어야 한다. 즉 군사 기지에 대한 일치된 정의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숫자 계산이 어렵다는 것이다. 블레이커는 군사기지를 군대에 의해 “지속적으로 사용되는” 시설로서 정의한다. 25마일 반경 이내의 모든 시설들은 가장 가까운 마을이나 시에 연결된 단일 군사 기지의 일부로 분류된다: 반면 25마일 밖에 위치한 시설들은 다른 기지로 분류된다. 시설과 기지들은 주로 설비의 자본가치(capital value of facilities)에 관한 자료에 근거해서 분류된다.
, 2차 대전 말기에 해외기지시스템은 100여 개의 국가들과 지역들에 주재한 2,000여 개의 기지들과 그 안에 위치한 30,000개 이상의 군사시설로 구성되었고, 북극 한계선에서부터 남극대륙까지 뻗어있었다. 미국 군사기지는 모든 대륙과 섬들 사이에 퍼져있었다. 블레이커는 “해외기지시스템은 미국의 핵무기 독점 다음으로 막강한 권력”이라고 쓰고 있다.
전후의 이러한 군사기지들에 대한 미국의 공식적 태도는, 기지들이 최대한 유지되어야 하고 더 많은 기지들이 건설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1945년 8월 7일 포츠담 회의에서 해리 트루만Harry Truman 대통령은 다음과 같이 선언했다:

비록 미국은 이 전쟁으로부터 어떠한 이기적인 이익도 원치 않지만, 모두의 이해와 세계평화의 완전한 보호를 위해 필요한 군사기지들을 유지시킬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군사전문가들이 방어를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기지들을 유엔 헌장에 따른 협정을 통해 획득할 것이다. C. T. Sandars, America\'s Overseas Garrisons : The Leasehold Empire(Oxford : Oxford University Press, 2000), 5에서 인용.


그럼에도 불구하고 2차 대전 말기부터 한국전쟁 때까지의 지배적인 추세는 미국 해외기지 수의 감소였다. 블레커에 따르면, “전쟁 기에 구축된 기지구조물의 절반은 일본점령 (V-J Day, Victory over Japan) 2년 사이에 사라졌고, 1947년까지 유지되었던 나머지 절반은 1949년에 해체되었다.”(p.32) 그러나 이와 같은 전후 해외 기지들 수의 감소는 한국전쟁과 함께 끝이 났다. 한국전쟁 때 그런 기지들의 수가 한번 더 증가했었고, 그 뒤를 잇는 베트남 전쟁 동안 더욱 증가했다. 베트남 전쟁 이후에 와서야 미국 해외 기지들의 수는 다시 한번 감소하기 시작했다. 1988년에 와서야, 이 기지들의 수가 한국전쟁 말기의 수보다 약간 작아졌지만, 이는 남아시아와 중동/아프리카에서의 급격한 하락을 수반했던 전후 초반에 비해 매우 다른 국제적 패턴을 반영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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