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유주의의 본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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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삐에르 브르디외 작성일98-11-30 00:00 조회639회 댓글0건본문
실현 과정에 있는, 무한 착취의 유토피아
신자유주의의 본질
신자유주의란 무엇인가? 그것은, 순수-시장의 논리에 방해가 될 소지가 있는, 집단적 구조물들을 파괴하는 프로그램이다.
삐에르 브르디외(프랑스 대학 교수)
<편집자 주>
이 글은 르몽드 디쁠로마띠끄 1998년 3월호에 실렸던 글입니다. 다소 난삽하지만 신자유주의를 체계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요약되어 있다고 생각됩니다. 그래서 다소 난삽한 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번역·전재합니다.
1. 신자유주의 유토피아는 순전한 허구, 현실에 대한 과도하고 그릇된 추상에 의거한 순전한 허구(신고전파 경제이론)를 이론적 기초로 하고 있다
경제라는 세계는, 오늘날의 지배적인 담론이 그러했으면 하고 바라고 있는 것처럼, 정말로 순수하고(불순물이 하나도 섞이지 않은)도 완전무결한(완벽하게 잘 굴러가는) 질서인가? 그리고 이 질서는 [돌아가는 실상이 투명하게 외부에 알려지기만 하면] 그것의 귀결을 능히 예견할 수 있다는 논리(이것은 신고전파 경제학의 논리인데 : 역주)를 가차없이 펼쳐 보여주는가? 그리고 잘잘못에 대해 상벌을 가하는 방법에 의해서―시장기능의 자동적인 작동에 의해서든 또는, 그보다는 조금은 예외적으로, 국제통화기금(IMF)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같은 자신의 무장한 팔뚝들과 그 무장한 팔뚝들이 강요하는 정책들, 예컨대 노동력 가격(임금)의 저하, 공공지출의 삭감, 및 노동의 유연화 등을 매개수단으로 해서든―제반 잘못들을 제때에 바로바로 처벌함으로써 교정하는가? 과연 경제라는 세계는 참으로 그처럼 이상적인 질서인가?
경제라는 세계는 [그처럼 이상적인 질서이기는커녕 오히려] 실제로는 신자유주의라는 하나의 유토피아, [우리들이 최근에 경험하고 있는 바와 같이] “정책 프로그램”(신자유주의 사상의 원조인 하이에크가 이야기하는 바와 같은 ‘자생적인 질서’라기보다는 지극히 ‘인위적인 전략’인 : 역주)으로 전환된 하나의 유토피아, 그것도 자신이 내세우는 경제 이론(신고전파 경제이론 : 역주)의 도움을 받아서 자기자신을 현실에 대한 과학적인 묘사인 양 착각하는 지경에까지 이른(거짓 이데올로기화한 : 역주) 하나의 유토피아를 실행에 옮긴 것일 뿐이지는 않은가?
이 변호론(신고전파 경제이론)은 수학 공식의 형태를 띤 순전한 가공물이다. 그것은 애시당초부터 가공할 정도의 추상화(抽象化)에 기초하여 만들어진 하나의 허구이다. 그것은 ‘개인주의적 합리성’과 동일시되는 부류의 합리성을 사유(思惟)의 엄밀하고도 엄격한 기준으로 삼음으로써, 합리적인 지향들이 나오게 되는 경제적·사회적인 제조건들(처지로서의 조건들 : 역주)과 그러한 지향들을 실행에 옮기는 데 있어서 그 제약조건이 되는 경제적·사회적인 구조들을 [모조리] 괄호 속에 넣어버리는, 가공할 만한 추상화에 기초하고 있다.
신자유주의의 본질
신자유주의란 무엇인가? 그것은, 순수-시장의 논리에 방해가 될 소지가 있는, 집단적 구조물들을 파괴하는 프로그램이다.
삐에르 브르디외(프랑스 대학 교수)
<편집자 주>
이 글은 르몽드 디쁠로마띠끄 1998년 3월호에 실렸던 글입니다. 다소 난삽하지만 신자유주의를 체계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요약되어 있다고 생각됩니다. 그래서 다소 난삽한 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번역·전재합니다.
1. 신자유주의 유토피아는 순전한 허구, 현실에 대한 과도하고 그릇된 추상에 의거한 순전한 허구(신고전파 경제이론)를 이론적 기초로 하고 있다
경제라는 세계는, 오늘날의 지배적인 담론이 그러했으면 하고 바라고 있는 것처럼, 정말로 순수하고(불순물이 하나도 섞이지 않은)도 완전무결한(완벽하게 잘 굴러가는) 질서인가? 그리고 이 질서는 [돌아가는 실상이 투명하게 외부에 알려지기만 하면] 그것의 귀결을 능히 예견할 수 있다는 논리(이것은 신고전파 경제학의 논리인데 : 역주)를 가차없이 펼쳐 보여주는가? 그리고 잘잘못에 대해 상벌을 가하는 방법에 의해서―시장기능의 자동적인 작동에 의해서든 또는, 그보다는 조금은 예외적으로, 국제통화기금(IMF)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같은 자신의 무장한 팔뚝들과 그 무장한 팔뚝들이 강요하는 정책들, 예컨대 노동력 가격(임금)의 저하, 공공지출의 삭감, 및 노동의 유연화 등을 매개수단으로 해서든―제반 잘못들을 제때에 바로바로 처벌함으로써 교정하는가? 과연 경제라는 세계는 참으로 그처럼 이상적인 질서인가?
경제라는 세계는 [그처럼 이상적인 질서이기는커녕 오히려] 실제로는 신자유주의라는 하나의 유토피아, [우리들이 최근에 경험하고 있는 바와 같이] “정책 프로그램”(신자유주의 사상의 원조인 하이에크가 이야기하는 바와 같은 ‘자생적인 질서’라기보다는 지극히 ‘인위적인 전략’인 : 역주)으로 전환된 하나의 유토피아, 그것도 자신이 내세우는 경제 이론(신고전파 경제이론 : 역주)의 도움을 받아서 자기자신을 현실에 대한 과학적인 묘사인 양 착각하는 지경에까지 이른(거짓 이데올로기화한 : 역주) 하나의 유토피아를 실행에 옮긴 것일 뿐이지는 않은가?
이 변호론(신고전파 경제이론)은 수학 공식의 형태를 띤 순전한 가공물이다. 그것은 애시당초부터 가공할 정도의 추상화(抽象化)에 기초하여 만들어진 하나의 허구이다. 그것은 ‘개인주의적 합리성’과 동일시되는 부류의 합리성을 사유(思惟)의 엄밀하고도 엄격한 기준으로 삼음으로써, 합리적인 지향들이 나오게 되는 경제적·사회적인 제조건들(처지로서의 조건들 : 역주)과 그러한 지향들을 실행에 옮기는 데 있어서 그 제약조건이 되는 경제적·사회적인 구조들을 [모조리] 괄호 속에 넣어버리는, 가공할 만한 추상화에 기초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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