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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엄성의 반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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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존 홀로웨이 작성일98-11-30 00:00 조회69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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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새해 첫날에 존엄성이 일어섰다

1994년 1월 1일 사빠띠스따가 선언한 ‘이제 그만’(!Ya Basta!)이라는 구호는 존엄성의 외침이었다. 그들이 그날 치아빠스 주에 있는 산 끄리스또발 데 라스 까사스와 여섯 개의 다른 도시를 점령했을 때, 그들이 세계를 향해 뿜어낸 바람, 즉 ‘밑으로부터의 바람, 반역의 바람, 존엄성의 바람’은 ‘희망―존엄성과 반역을 자유와 존엄성으로 전환시키는 희망’을 실어왔다. 그 바람이 사라질 때, ‘폭풍이 누그러들고, 폭우와 화염이 지나가고 지구가 다시 한번 평화를 되찾았을 때, 그 세상은 더 이상 [지금의] 세상이 아니라 좀 더 나은 어떤 세상이 되어 있을 것이다.’
사빠띠스따의 지도조직인 ‘원주민 비밀혁명위원회(CCRI : the Comte Clandestino Revolucionario Indigena)’가 봉기 한 달 뒤에 다른 원주민 조직인 ‘원주민 저항 500년 회의(the Consejo 500 Anos de Resistencia Indigena)’에 보낸 편지는 존엄성의 핵심적인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강조하고 있다.

우리를 통합시키는 그 고통이 우리로 하여금 말하게 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말에 진실이 있음을 알았고, 우리의 혀(말)에 고통만 깃들어 있는 것이 아님을 알았으며, 우리 가슴 속에 아직도 희망이 살아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과 이야기를 나누고, 우리 스스로를 들여다보고, 우리의 역사를 바라보았습니다. 우리는 고통받고 투쟁하는 최초의 조상들을 보고, 투쟁하는 할아버지들을 보고, 울분에 차 두 주먹을 움켜쥔 우리 아버지들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모든 것을 빼앗긴 것은 아니었습니다. 도리어 가장 귀중한 것, 우리를 살아 있게 만들고, 우리가 식물과 동물 위로 걷게 하며, 돌이 우리의 발 밑에 있도록 만드는 것을 간직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형제들이여, 우리는 우리가 가진 것이라곤 존엄성(DIGNITY)뿐임을 알게 되었고, 존엄성을 잊어버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부끄러워하는 것이 숭고한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존엄성(DIGNITY)은 사람이 다시금 사람으로 되는 데 중요하며, 존엄성은 우리의 가슴 속에 되살아나고, 우리는 다시금 새로워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죽은 이들은 우리들이 다시금 새로워지는 것을 보았고, 그들이 우리를 존엄성으로, 투쟁으로 다시 불러냈습니다.

존엄성, 그것은 굴욕과 비인간화를 받아들이길 거부하는 것이고, 순응하길 거부하는 것이다. 존엄성은 사빠띠스따가 이룩한 혁명의 혁명(혁명에 대한 사고와 실천을 근본적으로 쇄신했다는 의미에서 혁명의 혁명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 역주)에서 핵심적인 것이다. 존엄성이라는 관념이 사빠띠스따에 의해 창안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사빠띠스따는 그에 대해 과거의 혁명이론에서는 담아내지 못한 풍부한 의미를 부여했다. 사빠띠스따가 들고 일어났을 때, 그들은 존엄성이라는 깃발을 치아빠스 봉기의 중심에, 더 나아가 저항 사상의 중심에 꽂은 것이다. 존엄성은 멕시코 남동부의 원주민들에게만 해당되는 개념이 아니다 : ‘존엄성과 반역을 자유와 존엄성으로’(기묘하지만 중요한 배치이다) 전환시키는 투쟁은 억압당하고 있는 사회에 사는 인간 존재의(그리고 인간 존재를 위한) 투쟁이다. 그것은 라깐돈 밀림 사람들의 투쟁에서와 마찬가지로 에딘버러, 아테네, 도쿄, 로스엔젤레스, 요하네스버그에 사는 사람들에게도 해당된다.

이번 장에서는 존엄성을 저항사상의 중심에 놓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규명할 것이다. 논의를 해 나가는 과정에서 ‘사빠띠스모(사빠따주의)’는 멕시코에 국한된 운동이 아니며, 점차 비인간화되어 가는 사회 속에서 그리고 그러한 사회에 대항하여 인간답게 살고자 하는 전 세계 수십억 인류의 투쟁 속에서 중심적이라는 점이 분명하게 드러날 것이다. (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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