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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사회운동의 재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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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크리스토프 아기통, 다니엘 … 작성일00-11-30 00:00 조회84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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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실업과 불안전 고용과 사회적 배제에 반대하는 유럽 대행진
-크리스토프 아기통 / 로벨 크레뮤 *1

행진은 1997년 4월 14일에 시작되었다. 하지만 그 존재 자체는 유럽 전체로 볼 때 일찍이 없었던 대사변이었다.
소국 룩셈부르크까지 포함한 유럽연합(EU)의 모든 나라에서 행진의 조직위원회가 설립되었다. 이들 위원회는 좌파 노동조합 대부분의 지지를 받음과 동시에 실업자 단체로 존재하는 모든 단체를 결집하고 있다.

-전 유럽으로
이 행진으로 유럽에서 약 1000여 도시와 지역에서(프랑스만 250여 도시와 마을) 집회를 개최할 있었다.
그것은 무리넥스*2 나 벨기에의 르노 빌보르드 공장, 오루리*3에서, 또한 수많은 유럽 기업에서 실업자와 임금 노동자가 서로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행진이 진행되면서 여러 단체들이 실업과 사회로부터 배제에 반대하는 투쟁을 전개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그리고 파리에서는 프랑스 은행을 점거하고, 그 결과 반(反)실업단체들이 트리슈 은행 총재와 회담하게 된다. 그 자리에서 은행 총재는 사실을 인정하는 첫 걸음으로 실업과 사회로부터 배제에 반대하는 단체들의 의견을 해마다 듣기로 약속한다. 이때 동시에 빈집 점거도 감행된다. 이에나 광장에 있는 크레디 리오네 소유의 연면적 15,000 평방미터의 아파트가 점거되었던 것이다.
이 행진의 영향은 유럽연합(EU)의 경계를 넘어 파급되었다. 스위스와 노르웨이에서도 행진이 진행되었다. 상징적인 출발이 사라에보와 츠즈라 사이에서 조직되고(8인의 보스니아인이 파리에서 암스테르담까지 행진에 참가함), 터키와 알바니아 대표 및 아랍국가, 그리고 미국에서 온 사람들도 6월 14일에 암스테르담에 결집하였다.
암스테르담 시위는 참으로 유럽적 확산을 지닌 운동으로서는 가장 중요한 사건의 하나가 되었다. 르노 빌보르도 공장폐쇄의 충격을 받은 후에 행해진 브뤼셀에서의 ‘고용을 위한 행진’에 집결한 인원는 7만 여명에 달했는데, 그 대열 대부분은 프랑스와 특히 벨기에에서 참가한 사람들이었다. 암스테르담에서는 그리스에서 수백 명, 핀란드에서 백 명 이상, 벨기에,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영국에서 수천 명의 대열이 합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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