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일을 따르는 민주노동 연구소
정세와 투쟁방향
전태일을 따르는 민주노동연구소의 <정세와 투쟁방향>입니다.

국내정세(정치) | 난세(亂世)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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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6-07-31 22:15 조회1,23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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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세(亂世)

 

 

김승호(전태일을 따르는 사이버 노동대학 대표)

  

 

금년 초 <시사저널>은 신년호에서 2016년이 난세가 될 것 같다고 전망하고, 난세를 살아가는 노하우를 신년호 커버스토리로 실었다. “2015년 말에 삼성그룹이 대거 구조조정에 돌입하면서 분위기가 얼어붙었습니다. 두산인프라코어는 희망퇴직 연대를 20대로 끌어내렸습니다. ... 2016년에 IMF가 다가오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이 우리 사회를 짓누르고 있습니다. ... IMF이후 한국은 많이 바뀌었습니다. 외형상 국민소득은 늘었고 외환보유고도 크게 늘었지만 내면을 보면 불행감을 느끼는 국민이 대폭 늘었습니다. 이유는 다 아실 테니 생략하겠습니다. ... 현재로서는 2016년이 난세(亂世)가 될 확률이 높아 보입니다.”라고 말하면서.

 

 

그 후 여기저기서 난세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최근 페이스 북에 지금 대한민국은 난세입니다. 난세를 평정할 장수가 필요합니다. 대통령께서 난세를 평정할 장수가 되었으면 합니다.”, “난세에는 요리조리 빠져나가는 만유가 필요한 것이 아니고 난세를 평정할 장수가 필요하다.”는 글을 올려서, 다음 대선에 출마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불러일으키면서, 뭇사람들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만유라는 단어는 한가롭게 여기저기 구경하며 돌아다닌다(漫遊)는 뜻도 있지만 기름칠한 장어(鰻油)라는 뜻도 있다고 한다. 그리고 기름장어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별명이라고 한다.

 

 

정운찬 전 총리도 최근 <중앙일보>에 실은 한 칼럼에서 난세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사마천(司馬遷)은 꿈과 희망, 믿음을 상실한 상태를 난세라고 했다. 난세에는 국가가 국민을 적으로 대하고 국민은 국가에 대한 믿음을 거둔다. 박근혜 정부 들어 국가가 국익이라는 이름으로 국민과의 충돌을 주저하지 않고 있다. 국가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라고 항변했다.

 

 

난세란 무엇인가? 사마천이 난세라고 했던 때는 중국의 춘추전국시대를 말한다. , , 주로 왕조는 바뀌어도 천하는 통일되어 있고 안정되어 있던 시대가 끝나고 통일된 왕조가 들어서지도 못하고 안정되지도 못하던 수백 년의 시절이다. 나라가 피치자를 적대하므로 피치자가 나라에 대한 믿음을 거둔다. 낡은 나라가 무너진다. 지배계급의 여러 분파들이 서로 나라를 차지하려고 하나 모두들 이전 왕조와 다름없이 피치자를 적대하므로 천하를 통일하는 안정된 나라를 세우지 못한다. 이럴 때 지배세력 사이에서 끊임없이 전쟁이 일어나고 백성은 도탄에 빠진다.

 

 

중국의 고전 삼국지에는 또 하나의 난세 이야기가 나온다. 삼국시대에 군웅(群雄)이 천하를 놓고 쟁패할 때 조조라는 인물이 있었다. 그가 한창 웅지를 품고 인생 출발하려고 하던 때에 자기가 어느 정도의 사람인가를 알고자 사람 잘 알아보는 허()소에게 가서 물었더니 허소는 자네는 治世(치세)의 能臣(능신)이요 난세의 奸雄(간웅)일세.”라고 했으며, 이에 조조가 크게 기뻐했다고 전한다. 치세는 천하가 통일되고 안정되어 있는 상태, 즉 국가가 피지배 민중에 대해 헤게모니를 지니고 있는 상태다. 이런 안정된 치세가 불안정한 난세로 바뀌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왕의 도덕적 잘못 때문일까. 그런 측면도 있겠지만, 국가란 원래 도덕적이었던 적이 없었고 계급지배를 위한 폭력독점장치였다. 따라서 단순히 도덕적인 문제 때문에 생긴 정치 혼란은 왕을 교체하거나 왕조를 교체하면 해결된다. 그런 교체가 빨리 잘 이루어지지 않고 불안정과 혼란이 지속되는 상태가 난세인데, 이것은 피치자인 민중의 경제적인 생산력의 발전 및 그와 결부된 인간적·사회적 지위 요구가 질적으로 높아진 데 대해 기존의 국가가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민중에게 종래의 열악한 지위를 계속 강요할 때 발생한다.

 

그래서 치세는 정치정세가 안정하여 보수파가 이기는 때요, 난세는 정치정세가 불안하여 혁신파가 성할 때라는 견해도 나오게 된다. 이처럼 낡은 사회와 국가는 난세를 거쳐 해체되고 새로운 국가와 사회질서로 대체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난세는 민중에게는 해방과 변혁의 기회이기도 하다.

 

 

모나지 않게 사는 것이 현명한 처세라는 말이 있어 왔다. 최근 <난세를 살아가는 직장인의 처세술: 치망설존(齒亡舌存)>이라는 책이 나왔다. CBS 논설위원장이 쓴 책인데, “조직에서 능력이 있고 똑똑할지라도 강직한 자는 齒牙(치아)처럼 부러지고 망가지기 쉬우나 설사 능력이 없고 똑똑하지 못하더라고 부드러운 자는 혀()처럼 오래 살아남을 수 있게 된다.”고 한다. 하지만 그런 자는 치세에는 몰라도 난세에는 성공할 수 없다. 세상이 뒤집어질 가능성이 많고 그러면 오래 살아남지 못하기 때문이다. 난세에야말로 민중은 부러지고 망가지더라도 똑똑하고 강직해질 필요가 있다.

 

 

또 예전부터 난세에 영웅이 나온다는 말이 있었다. 그래서인가 지구촌 정치권 거센 여풍(女風) ... 여성 리더들 난세를 구할까”(<동아일보>), “[김강중 칼럼] 이 난세에 영웅은 없는가”(<충남일보>)라는 제목의 글들이 발표되고 있다. 하지만 난세에 영웅적 개인이 나오던 것은 근대 이전 시대의 얘기다. 근대에 들어서면서 난세에는 단순한 반란이 아니라 혁명이 일어났고, 혁명 때에는 영웅적 계급이 역사무대에 등장한다. 자본주의 혁명 시대에는 부르주아 계급이, 사회주의 혁명 시대에는 프롤레타리아 계급이, 집단적 영웅으로 등장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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