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정세(각국의 계급투쟁과 국제정치) | 피델 카스트로의 기고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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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6-04-04 12:00 조회1,942회 댓글0건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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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델 카스트로의 기고글.hwp (26.5K) 34회 다운로드 DATE : 2016-04-04 12: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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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델 카스트로의 기고1)
오바마 형제에게
스페인의 왕들은 우리에게 정복자들과 노예주인(masters)들을 들여보냈습니다. 그들이 남긴 발자국이 강가의 모래에서 사금을 찾는 사람들에게 할당된, 무상으로 불하된 둥근 모양의 부지(敷地)들에 남아 있습니다. 그것은 낯가죽 두껍고 수치스러운 착취 형태입니다.2) 그 자취를 이 나라 도처의 상공에서 내려다보면 희미하게 알아볼 수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나라에 대한 관광은 대체로 아름다운 경치를 보고 즐기며 바다에서 나오는 맛난 진미를 맛보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언제나 늘 외국 대기업의 사적 자본과 합작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해서 벌어들이는 수익은, 그 액수가 수십억 달러에 달하지 않는다면, 어떤 주목도 받을 가치가 없습니다.
나는 내 자신이 직접 이 주제에 대해 언급할 의무가 있다고 판단했으므로, 나는 - 무엇보다 먼저 젊은이들을 위해서 - 인류역사상 이 유별난 순간에 극히 소수의 사람들만이 이런 상황의 엄중함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꼭 부언해야 하겠습니다. 나는 꾸물거리며 시간을 다 허비해 버렸다고 말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나는 우리에게 도전해 오고 있는 현실에 맞서서 대항하기 위해 우리가 반드시 가져야 할 지식과 의식을, 여러분에게나 우리에게나, 충분하게 알려주지 않고 있다고 주저 없이 단언합니다. 무엇보다 먼저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우리의 일생은 역사적으로 보면 한 순간이라는 것입니다. 게다가 그 짧은 시간의 상당부분을 인간존재라면 누구에게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조달하는 데 바쳐야 합니다. 이러한 인간조건이 낳는 특징 중의 하나는 그것 - 생존의 필요물을 조달하는 것 - 의 역할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입니다. 다른 한편, 이런 사실은 고상한 꿈을 체현하고 있는 사람들이 극소수라는 것과 대조됩니다. [1:99라는 말처럼!]
그렇지만 인간은 누구도 [사회적 환경을 떠나서] 순전히 인간 그 자체로서는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습니다. 우리들 중의 누구도 [태어날 때부터] 혁명을 하는 사회에서 우리가 떠맡아야 할 역할에 맞도록 디자인되지 않았습니다. 비록 쿠바인들은 호세 마르티라는 본보기를 가지는 특권을 누리고 있지만 말입니다. 나는 심지어 호세 마르티3)가 도스 리오스4)에서 “나한테는 지금이 [죽을] 때다.(For me, it's time)”라고 말하며 참호진지에서 견고한 화력선을 구축하고 있는 스페인 군대를 향해 돌격하면서 죽을 필요가 있었는지 아닌지 나 스스로에게 자문해 봅니다. 그는 미국으로 되돌아가기를 바라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를 미국으로 돌아가게 만들 수 있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누군가가 그의 일기에서 몇몇 쪽을 찢어 없앴습니다. 의심할 나위 없이 어느 부도덕한 책략가가 저지른 짓이 분명한 이 반역죄에 대해 누가 책임졌습니까? 혁명 지도자들 사이의 의견 차이는 잘 알려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결코 규율 없이 행동하지 않았습니다. “누구든 쿠바를 차지하려고 기도하는 자는, 싸움 과정에서 죽거나, 죽지 않는다 해도 단지 피에 흠뻑 젖은 흙먼지만을 거둬들이게 될 것이다.” 라고 독립전쟁의 빛나는 흑인 지도자 안토니오 마세오 장군5)은 말했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막시모 고메스 장군6) 역시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규율 있고 분별 있는 군 사령관으로 공인되고 있습니다.
이것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면, 보니파시오 바이른7)의 의로운 분노에 대해 우리가 어찌 감탄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망명지 미국에서 쿠바로 귀국하는 그를 싣고 오는, 육지에서 한참 떨어진 보트에서 그는 별 하나가 새겨진 쿠바 국기와 나란히 또 하나의 깃발이 내걸려 있음을 보고서 이렇게 외쳤습니다. “나의 깃발은 결코 용병의 깃발이었던 적이 없는 깃발이다. ...” 그리고 나서 그는 내가 지금까지 들은 문장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문장 하나를 덧붙였습니다. “비록 갈기갈기 찢겨졌을지라도 그것은 언젠가 나의 깃발이 될 것이다. ... 우리가 죽기를 각오하고 무기를 든다면 아직도 그것을 지킬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또한 까밀로 시엔푸고스8)가, 반혁명세력의 손에 들려 있는 미제 바주카포와 기관총들이 고작 수십 미터 떨어진 곳에서 그가 서 있는 테라스를 향해 겨누고 있는 상황에서, 그날 밤에 행한 그 통렬한 말9)을 잊지 않을 것입니다.
오바마는 그 자신이 설명했듯이 1961년 8월에 태어났습니다. 그때로부터 반세기 이상이 경과했습니다. 그렇지만 봅시다. 우리의 고명한 손님이 지금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한번 봅시다.
“나는 [전체] 아메리카 [대륙] 안에 있는 냉전의 마지막 유물을 땅에 파묻기 위해 여기에 왔습니다. 나는 쿠바 인민들에게 우정의 손을 내밀기 위해 이곳에 왔습니다.” 그는 곧 이어서 우리들 대부분에게 전적으로 생경한 개념들을 마구 쏟아냈습니다.
“우리 두 나라는 모두 유럽인들에 의해 식민지화된 신세계에 살고 있습니다.” 미국 대통령은 계속했습니다. “쿠바는 미국과 마찬가지로 부분적으로 아프리카로부터 이곳으로 데리고 온 노예들에 의해 세워졌습니다. 미국과 마찬가지로 쿠바 인민들은 자신의 유산을 노예와 노예-소유주 양자에게서 물려받고 있습니다.
오바마의 마음 속에는 원주민들은 전혀 존재하지 않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쿠바 혁명이 인종차별을 쓸어버렸다는 것을 말하지도 않습니다. 또 버락 오바마 씨가 만 열 살이 되기도 전에 혁명에 의해 모든 쿠바 인민들에게 연금과 월급의 보장이 선포되었다는 것도 말하지 않고 있습니다. 쿠바 혁명은 흑인 시민이 유흥시설에 들어가지 못하게 쫓아내기 위해 어깨들을 고용하는 증오스러운 인종주의 부르주아 관습을 쓸어버렸습니다. 이것은 흑백격리정책10)에 맞선 앙골라 해방전쟁을 통해 역사 안에서 계승될 것입니다. 이 전쟁은 10억 명 이상의 주민이 살아가는 한 대륙에서 핵무기의 존재에 종지부를 찍는 일이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연대가 [직접] 목적한 바는 아니었습니다. 우리의 목적과 목표는 오히려 앙골라, 모잠비크, 기니비소 및 기타 포르투갈 파시스트의 식민지 지배 아래 있는 나라들의 인민을 돕는 것이었습니다.
1961년에, 쿠바혁명이 승리하고 겨우 2년 3개월이 지난 다음, 미국 전함과 항공모함에 의해 훈련되고 그것들과 동반하며, 항공기에 의해 지원을 받은, 장갑한 포병 및 보병을 가진 일단의 용병부대가 우리나라를 기습 공격했습니다. 우리나라에 수백 명의 인명 피해(사망자와 부상자를 포함하여)을 초래한 그 배신적인 공격은 무엇으로도 정당화할 수 없습니다.
이 친-양키 공격 부대 가운데 단 한 사람의 용병이라도 철수할 수 있었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양키 전투기들이 반란을 일으킨 쿠바인들의 장비로 유엔 앞에 전시되었습니다.
이 나라의 군사 경험과 군사력은 매우 유명합니다. 그들 또한 전투에서 혁명 쿠바를 아프리카에서 쉽게 몰아낼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인종주의 남아공의 기동 여단들에 의해 남쪽 앙골라에서 침공이 시작되었고, 침공군은 이 나라의 서쪽에 있는 수도 루안다로 쇄도했습니다. 그곳에서 장장 15년 간 계속된 하나의 투쟁이, 앙골라 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만약 내가 아바나의 알리샤 알론소 대극장에서 행한 오바마의 연설에 대해 대응해야 할 기본적 의무를 가지고 있지 않다면, 나는 이 투쟁에 대해 입조차 뻥긋하지 않을 것입니다.
또한 나는 세세한 설명을 하려고 하지도 않겠습니다. 다만 인간해방을 위한 투쟁 가운데 명예로운 한 장(chapter)이 거기에서 써졌다고 강조하는 데 그치겠습니다. 어느 정도는, 나는 오바마의 처신이 올바를 거라고 기대했습니다. 그의 비천한 출신과 [대비되는] 천부적 지성은 명백합니다. 만델라는 평생 감옥에 갇혀 있었으며 인간의 존엄성을 위한 투쟁에서 거인이 되었습니다. 어느 날, 만델라의 일생의 일부를 이야기하는 책 한 권이 내 손에 전달되었습니다. 그런데 맙소사! 머리말을 쓴 것이 버락 오바마였습니다. 나는 책장을 빠르게 넘기며 훑어 읽었습니다. 만델라가 데이터를 육필로 노트한 소문자의 크기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아주 작았습니다. 만델라와 같이 학식이 풍부한 사람들은 가치와 쓸모가 있습니다.
남아공에 관련된 일화에 대하여 또 하나의 경험을 지적해야 하겠습니다. 나는 남아공이 어떻게 핵무기를 손에 넣었는지 그 방법에 대해 보다 더 상세히 아는 데 참으로 관심이 많았습니다. 나는 10개 내지 12개 남짓한 핵무기가 있다는 매우 정확한 정보를 가지고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믿을 만한 정보원 중의 한 사람이 교수이며 연구자인 삐에로 그레이헤세스 (Piero Gleijeses)였습니다. 그는 『갈등하는 임무: 하바나, 워싱턴, 그리고 아프리카, 1959~1976』이라는 매우 훌륭한 책을 저술한 사람입니다. 나는 그가 무엇이 일어났는지에 대한 가장 믿을 만한 정보 소스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그렇게 말해 줬습니다. 그러자 그는 그 책에서 자신이 그 문제에 관해 더 많은 것을 말하지 않았다고 응답했습니다. 그 이유는, 그 책에서는 당시 주 앙골라 쿠바대사였고 그의 협력자였으며, 그의 매우 좋은 친구였던 호르헤 리스께(Jorge Risquet) 동지의 질문들에 대답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나는 라스께의 근황을 알아 봤습니다. 그는 이미 다른 중요한 업무를 맡고 있으면서, 몇 주일이 남아 있는 하나의 강좌를 끝내 가고 있었습니다. 그 업무는 삐에로의 아주 최근에 있은 우리나라 방문과 시기적으로 일치했습니다. 나는 삐에로에게 리스께는 이미 나이가 들었고 그의 건강이 썩 좋지 않다고 알려 줬습니다. 그 며칠 후 내가 염려하던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의 건강이 악화됐고 그리고 쓰러졌습니다. 삐에로가 도착했을 때 그가 할 일이라고는 서원(誓願)하는 것, 명복을 비는 것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나는 이미 인종주의 나라 남아공이 레이건과 이스라엘로부터 받은 그 [핵]무기와 원조에 관한 정보를 그로부터 받았습니다.
나는 오바마가 이 이야기에 대해 지금 뭐라고 말해야 할지 알지 못합니다. 나는 그가 아는 것이 무엇이고 알지 못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모릅니다. 비록 그가 이 문제에 관해 아무것도 몰랐을 리는 거의 없지만 말입니다. 내가 작은 제안을 하나 하겠는데, 자기를 성찰하고 지금 쿠바 정책에 대해 이론을 가공하려 들지 말라는 것입니다.
중요한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오바마는 아바나 대극장에서 최상의 달콤한 단어들을 사용하여 연설을 했는데, 그 연설 속에서 이런 표현을 썼습니다.
"지금은 과거를 잊어버릴 때입니다. 과거를 뒤에 내버려야 할 때입니다. 우리 함께 미래로 눈을 돌립시다. 희망의 미래를 바라봅시다. 이것은 쉽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많은 도전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걸리더라도 포기하지 맙시다. 내가 여기에 머무는 동안 나는 더 많은 희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친구로서, 가족으로서, 이웃으로서 함께 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한 희망 말입니다."
미국 대통령으로부터 이런 말을 듣고서 우리 모두가 심장마비로 쓰러질 뻔 했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거의 60년 동안 계속된 무자비한 경제봉쇄 이후에11), 그리고 쿠바 선박과 항구에 대한 용병의 폭파 공격으로12), 승객을 가득 태운 쿠바 여객기에 대한 용병의 공중폭파로13), 피그스만 사건 같은 용병의 침공으로14), 그밖에 수많은 폭력행위와 무력행사 등으로 죽은 사람들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 한마디 없이?
이 위엄 있고 이타적인 나라의 인민들이 교육, 과학, 문화의 발전을 통해 쟁취한 영광과 권리와 정신적 부를 포기할 거라는 환상에 빠진 사람은 모두 그 환상에서 헤어나야 할 것입니다.
나아가 나는 우리가 필요로 하는 식품과 물질적 재부를 우리 인민의 노력과 지식으로 능히 생산할 수 있음을 [북아메리카] 제국에게 경고합니다. 제국이 우리에게 선물하는 것은 아무것도 우리에게 필요하지 않습니다.(“미 제국이 주는 선물 필요 없다”) 우리의 노력은 합법적이고 평화적일 것입니다. 이 지구상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 사이에 평화적이고 형제적인 관계가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이 우리의 결의이고 약속이기 때문입니다.
피델 카스트로 루스
2016년 3월 27일
오후 10시 2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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