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정세(정치) | 선거혁명론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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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6-04-11 12:06 조회1,424회 댓글0건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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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혁명론 비판-수정.hwp (19.5K) 19회 다운로드 DATE : 2016-04-12 10:3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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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혁명론 비판
김승호(전태일을 따르는 사이버 노동대학 대표)
20대 총선이 눈앞에 다가왔다. 그러나 투표하는 날이 나가왔는데도 느낌이 잘 들지 않는다. 그 이유는 막장정치 때문이다. 이것이 이번 총선의 첫 번째 특징이다. 공천부터가 막장으로 시작해서 막장으로 끝났다. 백미는 새누리당의 유승민에 대한 무공천이었다. 그 다음이 더민주당의 비례대표 셀프공천이었다. 막장공천 이후 표를 얻기 위한 선거운동도 막장극이기는 마찬가지였다. 새누리당이 대구에서 후보자들을 공원에 모아놓고 무릎을 꿇고 사과하는 퍼포먼스를 벌이더니, 더민주당 문재인 유력 대선주자도 광주 망월동 열사묘역에서 무릎을 꿇는 쇼를 연출했다. 이들은 똑같이 표를 얻어서 권력에 이르기 위해서는 무슨 짓이라도 하겠다는 속내를 보여줬다. 거기다가 국민에 대한 협박까지 서슴지 않고 있다. 우리를 당선시켜 주지 않으면 국정이 어려워지고 박근혜 대통령이 식물 대통령이 될 수 있으니 우리를 찍어줘야 한다거나, 나를 지지해주지 않으면 미련 없이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고 대선후보도 포기하겠다거나 하는 따위의 말들이 그것이다.
두 번째 특징은 국민에게 투표 참여를 압박하는 것이다. 위와 같이 국민을 선거와 정치에 정떨어지게 만들어놓고는 투표를 해야 한다고, 투표는 국민의 권리이면서 의무라고 몰아세우고 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인기가수 설현을 홍보대사로 내세워 투표를 독려하고 있다. 어느 언론사에서는 유명 연예인들을 릴레이로 인터뷰해서 투표를 독려하고 있다.1) 이런 홍보전과 더불어 군인을 비롯한 이러저런 사람들을 조직, 동원하여 사전 투표율을 높이고 있다. 그런 동원 가운데 특히 시선을 끄는 것이 ‘선거 혁명론’을 펼치는 것이다. <조선일보>가 이 캠페인에 앞장서고 있는 것을 보면 이 이론의 계급적 성격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2)
이 선거혁명론은 논리는 있으나 이론의 요건도 갖추지 못하고 있다. 그 논리 구조가 아주 단순하다. 첫째, ‘헬조선’이라는 말이 유행하는 것에서 보듯이 현실은 절망적이다. 그러나 절망하지 말고 희망을 가져야 한다. 둘째, 세상이 절망적인 원인은 자신이 ‘흙수저’이기 때문이 아니고 정치가 잘못돼 있기 때문이며, 따라서 정치를 바꿔야 한다. 그래야 세상이 바뀐다. 셋째, 정치를 바꾸려면 선거에서 투표해야 한다. 다른 방법은 없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 한다. 제5공화국 시기에 1985년 2.12총선에 참여하여 야당이 돌풍을 일으켰고, 이 돌풍이 87년 6월 민주항쟁으로 이어졌다고 한다. 하지만 5공 정권이 무너진 것은 박종철군 고문치사에 항의하는 민중의 저항이었지 투표가 아니었다.
어떤 사람은 마르크스를 들먹인다. 마르크스는 1848년에는 <공산당 선언>을 집필하고 혁명을 기도했지만 실패했고, 그 이후 <자본론>을 저술한 뒤로는 폭력혁명에 희망을 갖지 않았다고 한다. “마르크스가 꿈꾼 세상은 망치와 도끼에서 흘리는 피로 변할 수밖에 없는 공포스러운 디스토피아가 아닌, 선거를 통한 권력교체와 자산의 평등한 축적을 통한 유산계급의 확산을 통해서 이뤄지는 유토피아였다.”고 한다.3)
어떤 사람은 자신을 마르크스주의자라고 자칭하면서 선거가 가투(가두투쟁)보다 낫다고 설파한다. 아담 쉐보르스키라는 유명한 미국 정치학자가 그인데, 그는 김대중 정권의 정책위원장이었던 최장집 교수의 논문을 지도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또한 중남미와 동아시아 등 제3세계의 민주화이행을 주창한 사람으로 유명하다. “현직에 있는 자가 선거에서 패배할 수 있고, 패배하면 사무실을 떠나는 것이 민주주의다. 자유롭고 경쟁적인 선거가 없으면 민주주의는 존재하지 않는다.” 사회엔 언제나 갈등이 있을 수 있고, 그 갈등을 해결하는 방식으로서 무력으로 서로를 제압하기 위해 총칼을 동원하는 것보다 선거를 통해 대중의 지지를 결집하는 것이 더 낫다는 얘기다. 그래서 그의 저서 제목도 <Paper Stones>이다. 짱돌 대신 투표지를 택하라는 말이다.
이들에게 공통적으로 부재한 것은 진실과 과학이다. 그들은 자기 이론에 대해 일체 의문을 제기하지 않고 자기 논리만 일방적으로 펼친다. 결론은 전제돼 있다. 현실이 절망적이라면 왜 분노하여 투쟁으로 떨쳐나서지 않고 희망을 가져야 하는가? 절망의 원인이 어찌 정치에만 있는가. 자본주의 정치의 토대인 착취적 경제에 대해서는 왜 한마디도 말하지 않는가? 정치지형이든 정치인물이든 나아가 정치제제든 그것을 왜 선거로만 바꾸어야 하는가? 농노의 해방이 선거로 이루어졌는가? 그렇지 않다면 노동해방은?
무엇보다 선거로 정치를 바꾸고 세상을 바꾸는 것은 과연 현실적인지 진지하게 성찰해야 할 시점이다. 운동권보다 오히려 국민대중이 선거를 통한 변화나 변혁에 대해 회의하고 있기 때문이다. 투표장에 나갈 마음이 식어 있는 것이 사실 아닌가. 그래서 투표장에 끌어내려고 선거혁명론까지 들먹이고 있는 것 아닌가.
유럽과 미국에서 지금 선거혁명 비슷한 것이 진행되고는 있다.4) 그러나 그곳에서는 모두 이런 혁명적 변화가 일어나기 이전에 힘찬 대중정치운동과 대중정치투쟁이 있었다. 그 대중투쟁 경험을 기반으로 미국에서 버니 샌더스가 선전하고 있고 스페인의 포데모스도 약진했다. 그곳에서는 자칭 마르크스주의자 아담 쉐보르스키의 가르침을 따라서 선거로 대중투쟁을 대체하지 않았다.
게다가 대한민국에는 그런 대중운동과 대중투쟁을 조직할 기반이 매우 취약하다. 노동자가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단결`투쟁할 권리가 보장돼 있지 않다. 부당노동행위가 판을 친다. 그리고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 구속에서 보듯이 정치파업은 불법이다. 그런 파쇼적 조건을 그대로 둔 상태에서 계급대중이 합법적 정당이나 평화적 선거를 통해 정치세력으로 결집하는 데에는 한계가 분명하다. 더구나 부정 투개표로 선거를 해 놓고 정정당당하게 대통령에 당선되었다고 우겨도 사법부도 입법부도 언론도 모조리 거기에 굴종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곳에서는 짱돌 없이 투표용지로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처해 있는 특수한 조건 때문에도 종이 짱돌(Paper Stones)이 아니라 진짜 짱돌(Stones)이 필요불가결하다.
2) 그런 선동의 극치가 ‘봄, 혁명, 그리고 선거’라는 박성희 교수의 4월 6일자 칼럼이다.
3) 네이버 블로그, ‘헬조선, 우리의 삶과 자본주의 11 - 선거와 혁명, 마르크스’를 보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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