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정세(노동운동 동향) | 노동개혁, 개선으로 말하고 개악으로 듣는다 - 대안은 헬조선에 조종을 울리는 것.
페이지 정보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5-11-10 01:00 조회1,537회 댓글0건본문
노동개혁, 개선으로 말하고 개악으로 듣는다
- 대안은 헬조선에 조종을 울리는 것.
김승호(전태일을 따르는 사이버 노동대학 대표)
헬조선에서는 지금 땀흘려 일하는 사람들을 향해 노동개혁이라는 이름의 계급전쟁이 전개되고 있다. 박근혜 정권은 지난 9월 14일 이승만이 위원장이던 대한노총을 계승한 한국노총을 압박하여 ‘노동시장 구조 개선에 관한 노사정 합의’라는 것을 만들어냈다. 그 직후인 9월 16일 집권 새누리당은 그 야합 내용마저 묵살하고 더 개악된 내용의 5대 노동개혁 입법안을 발의했다. 그리고 정기국회 안에 처리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기로 다짐했다.
그들이 추진하고 있는 것이 겉으로 말하는 것과는 달리 개선이 아니라 개악임은 긴 설명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고용에서는, 정리해고나 징계해고 아니고도 자유롭게 해고할 수 있게 하는 것과 더불어 고용을 전면적으로 비정규직화 하는 것이다. 임금에서는, 정기승급제 폐지와 능력급제와 성과급제 도입으로 임금을 최저임금화 하는 것이다.
이런 개악 공세는 총자본만이 아니라 개별 자본 수준에서도 이미 진행되고 있다. 결코 묵과할 수 없다. 그런데 문제의식이 부족한 것은 자본이 왜 지금 이런 전면적 노동개악을 추진하는가이다. 집권당 김무성 대표가 표 잃을 각오로, 정권 잃을 각오로 꼭 성사시키겠다며 선두에 나서고 있는 이유 말이다.
노동개혁이든 공공, 교육, 금융을 포함한 4대 부문 개혁이든 노동의 요구에서 연원한 것은 없고 모두 자본의 요구에서 연원하고 있다. 혹 청년들의 요구에서 연원한 것으로 생각한다면 그것은 100% 착각이다. 노동개혁이 이루어진다고 청년들에게 좋은 일자리가 제공되고 그 결과 결혼이 빨라지고 출산이 늘어나서 생산가능인구가 증가하는 것이 아님은 자본도 다 안다. 오히려 그 반대로 감소한다. 이렇게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드는 데 대한 자본의 대책은 이주노동자 수입 확대다. 자본은 벌써 계절노동자와 가사 도우미를 수입하자고 나서고 있다. 재벌언론이 불법 이주노동자에 대한 온정을 주장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자본은 지금 전 지구적으로 대불황의 늪에 빠져 있다. 이 불황은 2008년 이래 8년째 지속되고 있다. 해마다 회복을 꿈꾸지만 꿈은 이루어지지 않고 불황은 계속 더 깊은 늪으로 미끄러지고 있다. 그래서 요즘 “구조”, “구조적”이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 수요가 “구조적”으로 부족하여 시장이 확대되지 않으며, 투자(즉 이윤을 자본으로 전환)할 곳이 “구조적”으로 늘어나지 않는다.
궁여지책으로 정상적인 자본주의라면 이윤추구 영역으로 삼지 않고 공공서비스 영역으로 남겨둬야 할 의료, 교육, 대중교통 등도 모조리 상품화하려 한다. 박근혜 정권이 작년 초 “규제는 쳐부술 원수, 도려내야 할 암 덩어리”라며 규제개혁을 선포한 이유다.
금년에는 노동개혁이라는 칼을 빼들었다. 시장이 확대되지 않는데다 디플레이션이 다가와 이윤도 늘어나지 않는다. 디플레이션 즉 물가의 전반적 하락은 노동자에게는 실질임금 향상으로 이어져 약이 되지만 자본에게는 이윤 감소로 이어져 독이 된다. 상품의 판매가격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런 이윤감소 추세에 대한 자본의 대책이 임금 몫을 줄이고 이윤 몫을 늘리는 소득분배 개악이다. 2015년에 박근혜 정권이 노동시장 개혁을 들고 나온 이유다. 자본은 이것들을 뭉뚱그려 구조개혁이라고 하는데, 이는 아베노믹스의 세 개의 화살에도 들어 있다.
이렇게 규제혁파 또는 규제개혁으로 상품시장이 확대되고, 노동시장 구조개혁 또는 노동개혁으로 착취도가 높아지면 자본은 투자를 확대해서 더 많은 이윤을 회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공공서비스를 개악하고(질은 저하하고 가격은 높아진다!) 노동조건을 개악한(고용과 임금이 모두 열악해진다!) 대가로 자본주의 경제는 디플레이션으로의 추락을 멈추고 잠시 숨을 돌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처방은 결국 경제를 회복시키기는커녕 대불황의 원인인 구조적 과잉생산 문제를 더욱 악화시킬 뿐이다.
이 과잉생산 문제는 자본주의 경제제도 그 자체에서 연원한다. 자본은 잉여노동을 착취하여 이를 독점적(사적으로든 공적으로든)으로 전유한다. 이 착취 자체가 과잉생산과 과소소비의 불균형을 낳는다. 노동인구가 추세적으로 계속 늘어난다면 이 문제는 잠시 덮어진다. 노동인구의 증가는 새로운 노동력을 제공함과 동시에 새로운 상품시장과 투자기회를 제공한다. 그러나 노동인구가 증가를 멈추거나 감소하면 이런 호조건은 사라진다.
한때 자본축적에는 자본 자체 이외에 한계가 없다고 얘기돼 왔다. 그러나 이 이론은 21세기 자본주의에 이르러 한계를 드러냈다. 어떤 학자들은 자연생태적인 한계를 지적하지만 더 결정적인 것은 인구생태적인 한계다. 자본이 노동에 대해 착취를 지속적으로 강화하면 노동자는 어느 지점에서 생명 재생산을 포기한다. 자살하거나 출산하지 않는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자본의 경제학이 내놓은 처방들은 모두 무용지물이 된다. 규제혁파도 노동시장 개혁도 소용이 없다. 4대 구조개혁도 마찬가지다. 노동에 대한 공격은 삶의 질 악화를 심화시키고 이는 노동력 재생산을 더욱 축소시킨다. 3포, 5포로, 5포에서 7포로! 자본축적의 제1법칙은 노동자의 증식인데 이 법칙이 작동하지 않는다. 자본은 축적될 수 없는 반면 산업예비군과 구호 빈민은 늘어난다.
이 국면이 지속되면 노동계급의 저항이 확대, 격화되고 자본이 주인인 세상에 조종이 울린다. 노동운동은 손 놓고 그날을 기다리기만 할 것인가? 헬조선에 조종을 울리는 일은 후세대에게 떠넘기고 눈앞의 내 안위만 걱정할 것인가?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