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일을 따르는 민주노동 연구소
정세와 투쟁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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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정세(노동운동 동향) | 출산파업과 21세기 인구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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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5-11-10 01:08 조회1,58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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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노동뉴스에 연재되고 있는 김승호의 노동세상(10월 26일자) 글입니다. 


출산파업과 21세기 인구론



                                                                                                        김승호(전태일을 따르는 사이버 노동대학 대표)
 

세계적으로, 특히 한국과 이른바 선진국 전반적으로 노동자들이 출산을 기피하고 있다. 그 결과 인구가 감소하고 노동력 공급이 절대적으로 과소해 자본주의 경제 운행에 심각한 지장이 초래되고 있다. 이런 과소인구 문제는 19세기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인구문제라고 하면 맬서스를 빼놓을 수 없다. 그는 목사이면서도 다른 사람들의 이론을 차용해『인구론』이라는 책을 펴냄으로써 유명해진 사람이다. 그는 노동자가 과잉해지고 그로 인해 실업과 가난에 빠지는 것은 노동자가 절제를 하지 않고 경제가 필요로 하는 수준을 넘어서 자식을 많이 낳기 때문이라고 했다. 과잉인구 문제는 상대적인 과잉 문제가 아니라 절대적인 과잉 문제로서 노동자에게 책임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과잉인구 문제는 노동자가 자식을 많이 낳기 때문에 발생하는 절대적 과잉 문제가 아니라 자본이 자본-임금노동 관계의 지속을 위해 부단히 구조조정을 통해 자본이 필요로 하는 규모 이상의 과잉인구 즉 상대적 과잉인구를 만들어내기 때문임을, 이 상대적 과잉인구 문제는 자본에 책임이 있음을 밝혔다. 탁견이다.


상대적 과잉인구 문제는 분명히 마르크스의 분석대로 자본축적의 논리에 의해 발생한다. 인구는 자본의 필요에 의해 조절된다. 그러나 21세기 자본주의에는 상대적 과잉인구 문제가 지속되고 있는 동시에 예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절대적 과소 인구’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원인: 20세기 후반에 이르기까지도 노동자들은 때가 되면 결혼하고, 결혼하면 출산하여 노동력을 확대재생산 했다. 이렇게 노동인구가 늘어나면 생산되는 가치총량이 늘어나고, 착취도가 저하하지 않는 한, 착취하는 잉여가치 량도 늘어난다. 따라서 인구문제 때문에 자본축적에 문제가 발생하지는 않는다. 아니, 노동인구의 증가가 자본축적을 확실하게 뒷받침해 주었다.


그러나 선진자본주의 나라들에서 20세기 4/4분기부터 인구 증가가 둔화되기 시작했다. 사회보장제도가 강화되고 복지국가로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되었다. 한국 자본주의에서도 20세기 말에 이르면서 이런 경향이 나타나게 되었다. 이것은 놀라운 반전이다. 그 이전에는 노동력의 지나친 증가가 경제운용에 부담이 되어 하나만 낳기 운동으로 인구증가를 억제했는데, 이 시기부터 인구증가가 둔화되어 저출산이 문제가 되기에 이르렀다. 이는 자본주의 체제가 자본의 필요에 맞는 수준에서의 인구 조절을, 노동자들이 체제의 필요에 순응하지 않음으로 인해,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원활하게 이루어내지 못함을 뜻한다. 그런 의미에서 자본의 착취에 대한 소극적 저항으로서 출산파업이라 부를 만하다.


그 원인에 대한 분석은 불충분하다. 하지만 최근 청년들 사이에서 3포, 5포, 7포 세대라느니 ‘헬조선’ 또는 ‘지옥불반도’ 같은 단어들이 유행하는 것을 볼 때, 이는 젊은 세대의 가치관의 변화에서 비롯되었다기보다 노동력 재생산 조건의 열악성에서 비롯된 것이다.

 
영향: 자본의 언론이나 학계에서는 노동력 공급 부족에 따르는 소비수요의 저하를 걱정하고 있다. 물론 출산이 줄고 인구가 줄면 먹는 것 입는 것과 잠자는 것에서 병원과 학교에 이르기까지 각종 소비가 줄어들 것이다. 그러면 자본은 생산한 상품의 가치를 실현하기 어렵게 된다. 이 경우 아베정권처럼 환율조작으로 수출을 확대하거나 군비지출을 대폭 늘리는 등 비정상적인 조치를 강구하지 않는 한 경제는 축소재생산으로 굴러 떨어진다.


그러나 문제의 심각성은 거기에 그치지 않는다. 자본주의 경제는 이윤획득을 목적으로 하여 영위되는 경제다. 자본가계급이 뭐라고 포장하건 이것이 진실이다. 삼성처럼 ‘인류를 위한 가치창조’를 기업이념이라고 하든, 박정희처럼 ‘조국 근대화’를 국가이념이라고 하든, 그들이 추구하는 것은 참된 목적은 이윤 획득이다. 그런데 이윤의 원천은 잉여가치(생산한 총 가치 - 노동력 가치)이고, 가치의 실체는 노동이므로, 잉여가치의 실체는 잉여노동이다. 잉여노동의 총량은 [노동자 수×노동일 수×부불(不拂)노동시간(하루 노동시간 - 임금으로 대가를 지불한 노동시간)]이다. 그러므로 자본주의 경제는 노동자 수가 절대적으로 감소할 경우 휴일을 줄려 노동일 수를 늘리거나, 하루 노동시간(정치경제학에서 ‘노동일’이라 한다.)을 늘리거나, 임금으로 대가를 지불하는 노동시간(정치경제학에서 ‘지불노동시간’이라 한다.)을 줄이거나 하지 않는 한 획득되는 잉여가치 량이 줄어들게 된다. 이것은 자본주의 경제의 존재 목적이 실현되지 못함을 뜻한다. 이는 자본주의 경제가 지속 불가능하게 되었음을 드러내는 한 징표다.
 

한국에서는 최근 제3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 시안이 발표되면서 “또 노예를 낳으라고?”라는 등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비판의 초점은 그런 상투적 대책으로 출산율을 끌어올릴 수 없다는 것이다. 더구나 출산율을 높이기 어려우니 정년을 65세로 늘리자거나 학령을 초등 5년 중등 5년으로 해서 2년 줄이자는 등 기상천외한 아이디어까지 제시되고 있다. 노동계급을 더 일찍 노동시장에 나오도록 하고 늙어 죽을 때까지 부려먹자는 말이다. 절대인구가 늘지 않으니 대안으로 요람에서 무덤까지 노동을 시켜서 노동하는 인구의 수를 유지하자는 비법을 내놓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착취당하고 있기 때문에, 착취가 너무 심해서 임금노동자의 삶이 노예의 삶처럼 절망적이기 때문에, 연애도 결혼도 출산도 포기하고, 취업도 내 집 갖기도 포기하고, 마침내 인간관계와 희망까지 포기하고 있는 젊은 노동자들을 우롱하는 헛짓거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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