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 가난한 이들의 환대와 우정-중남미 5개국 순회공연을 다녀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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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5-05-12 19:09 조회4,103회 댓글0건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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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이들의 환대와 우정
-중남미 5개국 순회공연을 다녀와서-
임은혜 (극작가/나무닭움직임연구소)
2007년, 체 게바라 사후 40주년을 맞아 아시아-라틴아메리카 추모 사업으로 기획했던 연극 ‘체 게바라’를 갖고 중남미 5개국(페루, 쿠바, 베네수엘라, 볼리비아, 칠레)을 순회했다. 11월 5일부터 12월 27일까지, 7명의 공연진과 공연 일정을 따라가기엔 다소 길었던 반면, 그 역동적인 대륙을 찬찬히 음미하고 기록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기간이었다.
순회공연을 떠나기 전, 한국에서 공연했던 연극의 대사를 대폭 생략하고 움직임 중심의 공연물로 수정했다. 처음에는 스페인어 자막을 준비할까 생각도 했으나 연극의 언어는 ‘몸의 움직임’이라고 주장해온 나무닭움직임연구소(이하 ‘나무닭’)의 신념을 밀고 가기로 했다.
▲쿠바 산타클라라 실험극장에서 연극 ‘체 게바라’를 공연하는 모습
연극 ‘체 게바라’는 라틴아메리카 5개국의 대중과 소통하는 데 성공했다. 그들이 체 게바라를 잘 알고 있고 사랑해서일까? 그들의 삶에 노래와 춤과 놀이가 녹아 있어서일까... 한국 관객들에게 ‘어렵다’는 평을 종종 들었던 연극이 중남미 관객들에겐 쉽게 받아들여졌다. 그들은 칠레 원주민들의 상징 마푸체, 아르헨티나의 5월 광장 어머니들, 자본과 국가폭력으로 집단 학살당한 칠레의 광부들, 개발에 의해 사막으로 쫓겨나 그곳에다 마을을 일구어낸 페루의 살바도르 사람들을 다시 만났다. 그리고 한국의 전태일, 5월 광주와 제주 4.3을 함께 끌어안고 마음껏 소리치고 반응하며 제의연극에 동참했다. 눈물을 흘리는 관객도 많았다. 특히, 혁명에 대한 기억을 되살리려고 몸부림치며 밑바닥을 뒹구는 장면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했는데 그들의 땅에서 피 흘린 혁명가들과 실종당하고 학살당한 사람들이 떠오른다고 했다. 전 지구적으로 공유하고 있는 저항의 역사에 공감한다고...
신자유주의만이 국경을 초월하여 질주하고 있지 않다. 40년 전, 라틴아메리카 대륙의 혁명을 꿈꾸었던 체 게바라의 정신은 역사와 영토를 가로지르며 지구 반대편 사람들을 뜨겁게 연결해주고 혁명이 우리를 얼마나 가슴 벅차게 하는지 가르쳐주고 있다.
문화예술의 물물교환
우리는 각 나라에서 예술가들과 정치 그룹, 지역 공동체들을 만났다. 이들은 한결같이 자신들의 춤과 노래와 연극을 선보였다. 우리가 보여준 공연에 대한 물물교환이다.
페루 ‘살바도르’의 지역 주민에게 문화예술을 공급하고 있는 극단 ‘비차마’는 신자유주의 체제 속에서 독점화되어가는 ‘물’을 주제로 한 워크숍 공연을 보여주었다. 크리스틴(그 극단의 유능한 젊은 여배우)이 10대 청소년 20명을 지도한 작품이다. 아이들의 절제된 몸동작과 집중력이 돋보였다. 연극 작업을 통해 자신들이 살고 있는 지역과 더불어 전 지구적 문제를 들여다보는 그들의 성숙함에 놀랐다.
살바도르 지역의 학생들과 학부모, 교사들이 모여서 진행하는 전통춤 경연대회도 보았다. 이것은 한국처럼 점수와 경쟁이 작동되는 경연대회가 아니라 마을공동체가 함께 준비하고 즐기는 축제였는데 전통에 바탕을 둔 정체성의 확인, 공동체를 지탱해주는 문화유산의 계승이었다.
쿠바에서는 버려진 터널을 개조하여 극장과 연습실로 사용하고 있는 가난한 연극인들을 만났다. 쿠바 정부로부터 연습공간과 운영비를 보조받지 못하여 자신들의 손으로 직접 만들고 운영한다고 했다. 그러나 쿠바만큼 예술가들을 사랑하고 정성껏 육성하는 국가가 있을까? 쿠바 정부는 예술가들에게 매달 급여를 주고 있으며 연극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무상의료, 교육, 생활 복지가 보장되어있다. 한국의 배우들처럼 최저생계비조차 없어서 신문배달, 우유배달을 하거나 막노동을 해가며 연극하는 배우란 있을 수 없다.
쿠바 혁명의 근거지였던 산타클라라에서 연극 ‘체 게바라’의 공연진은 극진한 대접을 받았다. 그 지역의 요리사협회에서 우리의 점심과 저녁을 직접 만들어 주었고, 젊은 예술가들의 단체인 ‘헤르마노사이즈 협회’는 온 정성을 다해 공연준비물을 찾아주고 진행을 도왔다.
쿠바의 배우 지망생들과 연극 워크숍도 열었다. 아바나에서는 예술대학 연극과 학생들과 ‘나무닭의 연극 방법론’에 대한 워크숍을, 산타클라라에서는 예술 고등학교 연극 반 학생들과 워크숍을 가졌는데 풍부한 예술적 감수성과 탄탄히 다져진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가 숨 막힐 정도로 아름다웠다.
베네수엘라 차베스 정부는 카라카스의 빈민지역 바리오에서 공연을 하는 예술가들에게 차량과 인력을 지원한다. 바리오에서 주민평의회 주관으로 행사가 있다하여 가는데 그날 공연을 하기로 한 산디노(민중권력 학교의 활동가이자 배우)가 공연 짐도 없이 가고 있어서 이상했다. 바리오에 도착해보니 군인들이 공연 짐을 옮겨 놓은 것이다. 군인들이 스피커와 공연무대를 설치하고 공연을 앞둔 배우 로돌프와 산디노는 몸을 풀면서 공연시간을 기다린다. 이 얼마나 감동어린 지원인가... 이 땅의 예술가들은 가난한 민중과 함께 한다하여 외롭지 않을 것이다.
‘체 게바라’ 공연진들도 군용 지프차와 석유 국영회사(PDVSA) 차량으로 바리오에 있는 공연장을 오갔다. 범죄자나 정치범들을 실어 나르던 군용차에 한국 배우들과 베네수엘라 활동가들이 한가득 실려 간다. 순박한 얼굴의 군인 아저씨가 사다 준 음료수와 과자를 먹으며 흘러나오는 살사음악에 몸을 흔들며 사회주의를 추구하는 국가권력의 따뜻한 후원을 만끽해본다. 거리 곳곳엔 ‘차베스와 함께 헌법 개정을 (Si)’이라는 현수막과 깃발이 휘날리고 벽에는 빨간 색 페인트로 쓰인 찬성(Si)과 반대(No)라는 글씨들이 싸우고 있다. 운전을 하던 군인이 시장 앞에서 차를 멈춘다. 장사를 하던 중국인에게 말을 걸더니 우리에게 소개시켜준다. 같은 동양인이니 인사하라는 것이다. 우리가 서로 눈인사만 하면서 웃고 있으니까 그가 멋쩍어했다. 라틴아메리카의 국가들이 스페인어 하나로 소통할 수 있듯이 중국인과 한국인이 하나의 언어로 소통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베네주엘라 바리오에서 거리공연을 하고 있는 배우들
나무닭은 처음으로 권총을 찬 경찰과 연극 워크숍을 해봤다. 베네수엘라 민중권력학교에서 진행한 탈 워크숍 참가자 중에 경찰도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민중권력학교를 자유롭게 드나들며 그곳에서 진행하고 있는 사회주의 혁명 프로젝트를 지원하고 있다. 군인과 경찰에 대한 새로운 경험, ‘혁명은 그 스스로 민중의 아들, 딸이지만 기득권 세력의 이익을 지키고 오히려 민중을 학살하는데 동원되어야 했던 저주스런 운명의 족쇄를 던져버릴 기회를 군대에 부여했다.’는 말이 떠올랐다.
문화예술의 유기적인 변화와 발달은 고립이 아니라 교류, 교환을 통해서 가능하다. 공연에 대한 보답으로 공연료와 밥 한 끼 대접받는 관계에 익숙한 우리에게 라틴아메리카 예술가들과 지역 공동체가 보여준 ‘문화예술의 물물교환’은 눈여겨봐야 할 지점이다. 언제든지 내놓을 수 있는 공동체의 춤과 노래와 공연은 육신을 통해 피어나는 민중문화의 전형이다. 이것은 자본의 질서를 거부할 수 있는 힘의 근원이다.
기억 없이 정체성이란 없다
라틴아메리카 5개국 중 연극 ‘체 게바라’를 초청하겠다고 가장 먼저 나선 곳은 칠레다. 산타마리아 대학살 100주년 추모행사에 참가해달라는 것이었다. 산타마리아는 칠레 북부의 항구도시 이끼께에 있는 학교 이름으로 100년 전 12월21일, 초석 광산의 광부들이 혹독한 노동조건에 맞서 파업을 하다가 3천 명 가량이 집단학살 당한 장소이다. 100주년 추모 행사를 위해 칠레 전역의 활동가들과 예술인들이 모였다. 그들은 이끼께로 오는 길에 몇몇 지역을 들러 집회와 문화공연을 열었고 산타마리아 학교에 도착하여 추모의 촛불을 밝혔다.
행사 마지막 날 아침, 500여 명의 활동가들이 Hospicio(100년 전 학살된 광부들이 모여 살았던 마을로 지금도 그들의 자손들이 그들을 기억하며 살아가고 있다) 광장에 모였다. 공산당, 노동조합, 사회당, 여성 운동단체들의 깃발이 나부끼고 플레카드가 넘쳐났다. 100여 년 전의 광부들처럼 여기서부터 산타마리아 학교까지 걸어서 내려가는 행사였다. 3시간 가량 도로를 점거하며 행진을 해도 왜 교통을 마비시키냐, 시민의 발목을 잡느냐 핀잔주는 사람들이 없다. 오히려 건너편 차선의 자동차들이 경적을 울리고 환호하며 순례대오를 지지한다.
▲100년 전 학살된 광부들을 기억하며 이끼께를 향해 행진하는 사람들
이끼께로 내려가는 길, 오른쪽으로는 나무 한그루 보이지 않는 바위산이 계속되고 왼편 아래쪽으로는 사막이 펼쳐져 있다. 저 멀리 사막 너머로 펼쳐진 쪽빛 바다... 100년 전의 광부들이 아이들의 손을 잡고 이웃 가족들과 함께 걸었던 이 길을, 오늘 살아있는 자들이 가족과 동료들과 손잡고 걷는다.
내 옆에 걷고 있는 사라 아줌마의 얼굴을 본다. 당뇨병과 관절염을 앓고 있는 56세의 그녀가 미소를 머금은 얼굴로 3시간 가까이 걷고 있다. 100년 전 학살된 할아버지를 떠올리는 걸까? 평소 말이 많으시고 큰소리로 웃던 그녀가 묵묵히 앞만 보고 걷는다. 그녀는 돌아가신 할아버지와 공산주의자였던 아버지를 기억하면서 Hospicio 공산당에서 활동한다. 우리의 잠자리와 먹거리를 챙겨주고 공연 홍보와 진행을 도맡아 동분서주하던 아줌마와 남편 밀로, 행진할 사람들에게 나눠줄 피켓을 만들던 아들 파트리슈... 이들에게 가족은 혈연을 넘어 동질의 기억과 세계관으로 맺어진 작은 공동체이다. 라틴아메리카 활동가들의 가족이 거의 그러하다.
내가 본 라틴아메리카 문화예술운동의 핵심은 기억운동이었다. 지역 공동체에서 정치활동을 활발히 하고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맞서 치열하게 저항하는 단체들 대부분이 학살의 문제를 밝혀내고 혁명가와 열사들을 추모하는 기억 운동을 벌이고 있었다. 이들은 10대 청년부터 70대 노인에 이르기까지 활동가 층이 폭넓고 노래운동, 미술운동을 하는 예술가들과 유기적으로 관계를 맺으며 자신들의 마을에서 일어나는 신자유주의 정책에 맞서 적극적으로 대항하고 있다.
이들의 기억운동은 소박하면서도 강렬하고 인문학적 깊이가 느껴진다. 리마에서 강제 이주당한 사람들을 기억하기 위해 살바도르 마을 입구에는 ‘뿌리 뽑힌 나무’가 설치되어 있다. 리마 공원엔 1980년대 반정부 게릴라들과 정부군 사이에서 희생당한 민중들을 기억하는 ‘눈물 흘리는 돌’이 미로 한가운데에 놓여져 있다. 카라카스에는 차베스와 함께 혁명을 지켜내기 위해 피 흘렸던 민중의 형상물이 사람들이 오가는 혁명광장 가까이에서, 현재를 살아가는 이들과 호흡하고 있다. 아르헨티나 5월 광장 어머니들 역시 국가로부터의 보상이나 기념비 건립을 촉구하는 것이 아니라 대학을 세워서 사회 활동가들을 양성하고 방송국을 만들어서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며 기억을 현재화하는 문화운동을 진행하고 있다. ‘기억’은 깨어있는 일이고, 정치ㆍ문화적인 실천 행위인 것이다.
우리는 학살과 저항의 역사를 어떻게 마주 대하고 있는가? 광주와 4.3을 비롯한 역사 기념관과 거대한 조형물들, 삶과 동떨어진 박제되어있는 기념사업은 기억이 아닌 망각의 작업일 뿐이다.
맺으며...
한국의 많은 활동가들이 라틴 아메리카 좌파 정부들의 행보와 베네수엘라에서 전개하고 있는 21세기 사회주의 실험에 주목하고 있다. 포플리즘이냐, 혁명이냐, 사회주의냐 아니냐 논쟁도 많다.
나는 그러한 논쟁과 거리를 두고 있다. 라틴아메리카를 지나치게 체계적으로 이해하려 하고 추상화시키는 순간, 그 사회의 역동적인 상황들과 인간들의 구체적인 상호관계를 제대로 못 볼 것 같기 때문이다. 라틴아메리카에 관심을 두고 있는 한국의 활동가들이 사회주의를 향한 거대 계획에만 주목할 뿐 살아있는 풀뿌리 공동체의 구체적인 실천을 눈여겨 보지 않는 점 역시 아쉽다.
라틴아메리카를 떠올리면 가슴이 따뜻해지다가도 아파온다.
혁명의 역사를 사랑하고 자부심에 가득 찬 쿠바 친구의 얼굴이 떠오르다가도 ‘이 나라를 떠나고 싶다’는 말을 소원지에 적은 익명의 관객과 혁명은 이제 끝났다던 쿠바 노동자의 자조가 중첩된다. 셀리아(체 게바라와 함께 게릴라전에 참가했던 여성)가 이끄는 추모사업회의 후원으로 공연했다는 기쁨에 벅차다가도, 한쪽에서는 백인과 부자들이 모랄레스(볼리비아의 좌파 대통령)를 끌어내기 위해 기름을 동결해가며 극렬하게 시위를 벌이고 또 한 쪽에서는 길거리에서 온종일 춤을 추며 구걸하는 너댓 살의 아이들과 먹을 것을 찾기 위해 쓰레기를 뒤지는 볼리비아의 빈민들, 그리고 반 차베스 세력에 맞서 잠도 안 자고 끼니를 거르면서 헌법개정 운동에 열정을 쏟았던 친구들의 눈물이 떠오른다.
라틴아메리카 역시 인간과 자본이 대립하고, 투쟁과 저항, 억압과 착취, 가난과 불안이 공존하는 대륙이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을 느긋하게 끌어안고 새로운 사회주의로 변형시켜가는 힘은 어디에서 나오겠는가?
라틴아메리카의 활동가들과 예술가들은 사람과 사람이 어떻게 만나야 하는지를 잘 알고 있다. 그들에게는 혁명의 꿈을 함께 일구는 탄탄한 공동체가 있고, 느리지만 구체적인 실천이 있다. 그래서 그들의 사회주의는 감각되고 느껴지며 창조 가능한 삶 그자체이다.
돌아와 다시 몸 담은 한국 사회는 너무 춥다. 그 따뜻했던 땅, 가난한 이들의 우정과 환대가 문득 그리워진다.
좀더 많은 사진은 블로그 http://kr.blog.yahoo.com/namoodak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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