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일을 따르는 민주노동 연구소
정세와 투쟁방향
전태일을 따르는 민주노동연구소의 <정세와 투쟁방향>입니다.

분석 | 2015년 세계정세 전망과 진보변혁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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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승호 작성일15-02-01 00:00 조회1,75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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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세계정세 전망과 진보변혁운동


1. 전 지구적 ‘D(디플레이션)의 공포’


1) 디플레이션

 이미 2013년 11월에 <이코노미스트>지는 디플레이션 위험을 엄중하게 경고했다. 그리고 나서 1년이 더 지났다. 이 단어를 입에 올리기 싫어하던 우리나라에서도 지난 10월 중순부터 경제관련 담론에서 디플레이션이라는 단어가 빈번히 사용되고 있다. 이 단어는 오랫동안 주류 경제학에서는 사용하지 않아 왔다. 일본의 20년 장기복합불황을 설명하면서 예외적으로만 사용되었다. 그러나 2008년 미국발 세계금융공황 이후 이 단어는 더 이상 예외적이거나 사실과 무관한 것이 아니게 되었다. 전형적인 경우는 역시 일본으로서, 2013년의 아베노믹스는 경기회복과 더불어 디플레이션 탈출을 목표로 추진됐다. 유럽에서도 디플레이션 위험이 임박해 있고 이것이 세계최대의 걱정거리가 돼 있다. 미국도 디플레이션을 막기 위해 4조 달러의 양적완화를 해 오다가 작년 10월 말 이를 중지했지만 디플레이션 우려 때문에 초저금리는 유지하고 있다. 중국조차도 디플레이션 조짐을 보이고 있다. 모든 주요 자본주의 경제는 성장 회복과 더불어 인플레이션 촉진을 경제정책의 주요 목표로 삼고 있다. 그런데 물가상승 억제가 아니라 2%니 3%니 하는 물가상승이 경제정책의 목표라니 놀라운 일이 아닌가?

 이 디플레이션은 왜 일어나는가? 제로금리에다 천문학적인 돈을 찍어서 푸는데도 어째서 인플레이션이 아니라 디플레이션이 일어나는가? 세계 자본주의 경제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장기간의 경제성장 및 자본축적과 그것에 결부된 생산성 향상으로 인해 자본의 유기적 구성(물적자본 가치/노동력 가치)이 매우 고도화되어 있다. 그로 인해, 투하자본 금액이 커지면서 이윤의 총량은 늘어나지만, 단위 투하자본이 획득하는 이윤액이 줄어들고 이윤율(총이윤/총 투하자본 금액)이 저하하게 된다. 이에 자본은 이 이윤율 저하 경향을 저지하기 위해 노동 착취도를 높이고자 한다. 즉 생산된 순가치 금액(부르주아 경제학적으로 표현하면 부가가치. 마르크스 경제학적으로 표현하면 산 노동시간의 화폐적 표현) 가운데 임금몫을 줄이고 이윤몫을 늘이는 것이다.(이윤율 저하 경향 및 그 상쇄의 법칙)

 그러나 이런 분배 개악은 문제를 제거하지 못한다. 노동 착취도의 제고는 자본의 이윤율을 다소 회복시켜 주지만 노동계급의 소득을 줄여서 소비능력을 낮춘다. 결국 생산해 낸 노동생산물들이 수요 부족으로 팔리지 않게 되고, 기업은 상품가격을 적정한 값(비용가격[물건비+인건비]에 평균이윤율을 더한 값) 이하로 낮추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자본의 수익률은 떨어진다.
그리하여 자본은 상품에 대한 수요가 부족하고 수익률도 낮기 때문에 막대한 자금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신규투자를 하지 않는다. 노동자는 임금이 낮기 때문에 싼 이자로 신용을 제공해도 추가로 소비를 늘이지 않는다. 그러므로 소비와 투자를 합한 총수요의 부족으로 경제성장은 둔화된다. 그리고 공급과잉과 수요부족으로 생산재의 가격도 소비재의 가격도 오르지 않게 된다. 이것이 낮은 성장을 동반하는 물가상승률의 저하 즉 디스인플레이션(disinflation)이다.
이 상태가 일정 기간 지속되면 가계의 소비와 기업의 투자를 더욱 소극화시켜 어느 시점에서 경제성장을 마이너스로 떨어지게 만든다. 물가상승률이 추세적으로 낮아지면 자본은 더욱 투자를 기피하고 노동자는 소비를 더욱 주저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것이 진행되면 경제의 마이너스 성장 즉 경기침체(recession)와 물가하락 즉 디플레이션(deflation)이 동시에 진행된다. 이 때 경기침체는 다시 물가하락을 촉진하고, 그 물가하락은 다시 마이너스 성장을 촉진한다. 그리하여 디플레이션 악순환(spiral)이 일어나는 것이다. 이렇게 한번 디플레이션 악순환이 시작되면 경제는 좀체 적정 성장과 적정 인플레이션이 맞물리는 선순환으로 돌아서기 어렵다. 그래서 이 상황을 ‘디플레이션 늪’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이런 디플레이션은 오늘날 노동착취에 따르는 자본주의의 고유한 모순(낮은 이윤율과 낮은 소비력)이 누적되었다가 폭발하는 예외적인 상황에서만 일어난다. 그래서 낯설게 다가온다. 부르주아 경제학은 그 원인을 설명할 수 없다. 오직 노동대중의 소비심리나 기업가의 투자심리에서 원인을 찾는다. 그러나 노동자나 자본가가 왜 그런 심리를 가지게 되는지 설명하지 못한다. 마르크스 경제학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다.
이제 각 나라의 사정을 실증적으로 살펴보자.


2) 미국
 미국에서는 2008년 금융공황 이후 워낙 대규모(4조 달러 가량)의 양적완화가 실시됐기 때문에 디플레이션 위험을 주목하지 못했다. 그러나 최근에 들어 미국에서도 디플레이션 문제가 가시화되고 있다. 미국은 선진국 중에서 유일하게 경기가 회복되고 있는 경제라고 얘기되고 있지만 2009년 -2.8%년 이후 5년간 계속 1~2%대의 낮은 성장에 머무르고 있다. 2014년에도 이 문턱을 넘었을지 미지수다. 그와 동시에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009년 3월 이래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이하 줄여서 연준)가 내세운 목표치 2.0%에 도달하지 못하고 계속 1%대에 머물렀다. 이처럼 전형적인 저성장 저물가 상태이다.

 다들 미국 경제가 회복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경제성장률은 2014년 1분기는 -2.1%(연율), 2분기는 4.6%였으며 3분기에는 예상 밖의 호조를 보여 5.0%에 달했다. 이는 2003년 3분기 이래 11만의 최고치다. 이에 2014년 성장률이 모처럼 저성장을 벗어나 3%를 넘어설 거라는 낙관적 추계도 있다. 그러나 전 미 연준 의장인 그린스펀은 최근 2014년 4분기에 연율 3% 아래(2.5%)의 성장률이 예상된다고 낮은 전망치를 제시했다. 지난 4~6년 동안 가장 약세를 보인 곳은 장기투자 부문인데 “투자가 살아나지 않는 한 모두가 바라는 수준의 성장을 이뤄내지 못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채권왕’ 빌 그로스는 미국의 연간 성장률이 구조적으로 2%나 그 이하로 떨어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유가하락으로 셰일가스업계가 타격을 받게 됐다는 이유에서다. 그래서 금리인상을 서둘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미국경제도 아직 견조한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한편 소비자물가는 지난해 11월 전월에 비해 0.3% 하락했다. 2008년 12월 이후 6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내린 것으로, 전년 같은 달에 비해서는 1.3%대의 미약한 상승 수준을 보이고 있다. 미국의 소비자물가는 전월대비로 8월에는 -0.2%, 9월에는 +0.1%, 10월에는 0%였으며, 전년대비로는 계속 +1.7%였는데, 11월에 들어 각각 전월대비 -0.3%와 전년대비 1.3%로 급락한 것이다. 생산자물가도 전월 대비로 지난 9월 -0.1%, 10월 +0.2%, 11월 -0.2%를 기록했으며, 11월 생산자물가는 전년대비 1.4% 상승에 불과하다. 이처럼 미국의 물가동향은 아직 디플레이션이라고 규정하기는 어렵지만 분명한 디스인플레이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전문가들은 내년에도 역시 물가상승률 목표 2% 달성은 어려울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기본수요가 약해 성장률이 높지 않은 데다 달러강세로 인해 유가를 비롯한 수입물가가 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고용지표만 약간 개선되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낙관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다. 미국의 실업률이 떨어지고 있지만 임금인상률은 여전히 다른 경제지표에 비해 현저히 처지고 있다. 소득 분배가 개선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재닛 옐런 미 연준 의장조차도 "미국 내 빈부 격차가 점점 커지고 있다. ... 소득과 부의 불평등이 100년 만에 최고 수준에 근접했다"고 말하고 있다. 소득을 기준으로 상위 10% 대 하위 10%의 비율은 미국이 14대1로 OECD 평균인 9대1보다 매우 높다. 이와 같은 분배구조 상의 문제로 인해 고용이 느는 만큼 임금과 수요가 늘면서 그에 따라 생산이 늘고 또 이에 따라 고용과 임금 및 수요가 증가하는 선순환이 만들어지지 않고 있다. 따라서 미국경제는 아직 경기회복 국면이라고 보기는 이르고, 미국 역시 다른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로런스 서머스 전 재무장관이 전망하고 있듯이 만성적 수요부족으로 인한 “구조적 장기침체(Secular Stagnation)”를 우려해야 하는 상황이다. 


3) 유로존
유로존(유럽연합 중 19개국) 경제는 2008년 금융공황 이후 2010~2012년 그리스를 비롯한 남유럽 나라들(PIGS)에서 재정위기가 표면화되면서 주목받았다. 그러나 유로존에서도 이 재정위기와 동시에 전반적으로 디스인플레이션이 진행되어 왔다. 경제성장률이 낮아짐과 동시에 물가상승률이 낮아지는 상황을 말한다.
유로존의 경제성장률은 2011년 0.7%, 2012년 -1.0%, 2013년 0.5%로 매우 낮았다. 이런 가운데 유로존의 기관차 역할을 해 온 독일(독일이 유로존 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13년 기준으로 28.5%에 달한다.)의 2014년 2분기 성장률이 전분기 대비 -0.2%로 나타났다. 3분기 플러스 0.1%였고, 4분기에도 마이너스 또는 미미한 성장에 그칠 것으로 예측되었다. 국제통화기금에 따르면 유로존 전체적으로는 금년에 성장률이 0.8% 선에 그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2015년에는 금융공황과 재정위기에 이어 제3차 침체(트리플-딥)에 빠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그와 동시에 유로존의 물가상승률은 2011년 8월 3.0%를 정점으로 계속 하락하여 작년 9월에는 전년동월 대비 0.3%, 10월에는 0.4%, 11월은 0.3%로 낮아졌다. 그리스, 스페인, 포르투갈, 이탈리아, 슬로베니아, 슬로바키아, 불가리아 같은 나라는 이미 물가상승률이 마이너스를 넘나들고 있다. 따라서 유로존은 엄밀하게는 아직 디플레이션이 아니지만 ‘사실상’은 디플레이션 상태다. 2014년 12월 소비자물가는 전년대비 -0.1% 하락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그리고 2015년 유로존 물가상승률은 저유가 충격이 가세하면서 마이너스로 전환될 것이라는 전망이 유력하다. 그렇게 되면 디플레이션이다.

 이런 상황에 대응하여 유럽 중앙은행은 지난 9월 기준금리를 0.15%에서 사상 최저 수준인 0.05%로 낮추고, 시중은행들이 중앙은행에 맡기는 초단기 예금 금리는 사상 최초로 마이너스(-0.2%)로 낮추는 등 강도 높은 처방을 동원했다. 하지만 금리인하만으로 디플레이션을 막는 데는 한계가 분명하다는 것이 드러나고 있다. 이에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가 최대 1조 유로(1,350조 원)의 양적완화를 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하지만 대규모의 양적완화는 아직 이루어지지 않고 있고, 설사 양적완화가 이루어지더라도 인플레이션 기대치를 끌어올리고 유로화 가치를 떨어뜨리는 데 도움이 되겠지만 상황을 바꿀 근본적 계기(게임 체인저)는 되지 못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한편, 유럽중앙은행은 오는 1월22일 열리는 집행이사회에서 양적완화를 본격 논의할 예정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확고한 합의에 도달하지 못하고 있다. 양적완화 규모가 드라기 총재의 1조 유로 공언과는 달리 5천억 유로에 그칠 거라는 예상도 나오고 있다. 유로존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독일 측에서 양적완화 정책에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독일은 그 동안 유럽중앙은행의 국채매입에 대해 “유로 조약에 어긋난다.”며 반대해 왔다. 또 “유럽중앙은행의 통화정책 권한 밖에 있고 재정적자국에 대한 지원을 금지하는 조항에 위배된다.”며 반대의견을 유럽사법재판소에 전달하기로 결정한 바 있다. 이런 어정쩡한 상황이 지속된다면 유럽 경제가 디플레이션 늪으로 굴러 떨어지면서 유로가 붕괴할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이런 가운데 지난 연말 그리스에서 대통령 선출(의회에서 선출한다)에서 보수적인 집권여당이 패배하면서 1월 25일 총선에 들어가게 되었다. 총선에서는 마르크스주의 경향의 야당 시리자가 승리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고, ‘시리자’(급진좌파연합)가 집권할 경우 '트로이카'(유럽연합EU, 유럽중앙은행 ECB 및 국제통화기금 IMF)에 재협상을 통한 채무탕감과 긴축완화를 요구하면서 충돌하게 되어 있다. 이 과정에서 그리스가 유로존에서 탈퇴하는 ‘그렉시트’(Grexit: Greece와 Exit의 합성어)가 일어날지 모른다는 우려가 쏟아지고 있다. 연초 보스턴에서 열린 전미경제학회(AEA)에서 어느 경제학자는 만약 그리스가 유로존에서 탈퇴한다면 2008년 미국발 금융공황의 제곱이 되는 충격파가 일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4) 일본
 일본중앙은행(BOJ)은 2013년 4월 이후 물가를 끌어올리기 위해 매년 60~70조 엔을 푸는 천문학적 양적완화를 추진해 왔다. 이에 따라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지난 4월에 1.5%까지 높아져서 목표치 2%에 근접했다. 그러나 2014년 4월의 소비세 인상(5%에서 8%로) 이후 점점 낮아져서 소비세 인상분을 뺀 소비자물가(신선식품 제외) 상승률은 9월에는 전년대비 1%로, 10월에 0.9%로, 11월에는 0.7%로 낮아졌다. 전문가들은 이 비율이 2015년에는 0.5%로 더 낮아질 거로 예상하고 있다. 즉 디스인플레이션 상태이고, 디플레이션 직전 상태인 것이다.
경제성장도 계속 부진했다. 소비세 인상이 있었던 작년 2분기 성장률은 -6.7%를 기록했다. 이런 가운데 10월 말 미국이 양적완화 종료를 발표하던 시점에 일본은행은 10월 31일, 다시 양적완화 중지가 아니라 양적완화 확대 카드를 꺼내서 종전보다 10~20조 엔을 더해서 매년 80조 엔(GDP의 16%에 달한다)의 양적 완화를 하겠다고 발표했다. 국채 매입도 연간 50조에서 80조 엔으로 늘였다.(일본의 국가부채는 약 1000조 엔이다.) 3분기 경기상태가 매우 안 좋았던 까닭이다. 곧이어 11월 17일 3분기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 1.9%로 발표되었다. 2분기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한 것이다.(부르주아 경제학에서는 두 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하면 경기침체로 본다.) 이런 경기침체는 1994년 잃어버린 20년이 시작된 이후 6번째다. 이런 마이너스 성장에 따라 아베 정권은 마침내 2015년 10월에 실시하기로 했던 소비세 인상(8%에서 10%) 시기를 2017년 4월로 1년 6개월 연기하고 아베노믹스를 계속하는 것을 핵심공약으로 중의원을 해산하고 총선거에 들어갔다.
이 선거에서 투표율은 사상 최저였지만 아베정권과 여권은 2/3이상의 의석을 확보하는 압승을 거두었다. 이후 아베정권은 아베노믹스 재가동에 역점을 두고 재정을 확대하는 정책을 펴나가겠다고 밝혔다. 추가경정예산도 2조에서 3조로 1조 엔을 더 늘이기로 했다. 대기업의 실적은 사상 최고를 기록하고 있는 반면 가계는 소비세율 인상에다 물가상승까지 겹치면서 어려움에 빠져 있어서 경기가 하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아베노믹스는 이미 실패한 것으로 판명이 났다. 2014년 일본 경제는 마이너스 성장을 했을 것으로 추계되고 있다. 물가도 소비세 인상분을 제하면 0%대에 머물러 있다. 아베 정권은 아베노믹스로 경제를 살린다고 했으나 성장도 물가도 회복하지 못하고 또다시 디플레이션을 맞이하기 직전 상태로 추락했다. 그 결과 12월 1일 국제신용평가기관인 무디스에 의해 신용등급이 A1로 한 단계 강등돼 한국(Aa3)보다 못한 평가를 받기에 이르렀다.  


5) 중국과 신흥시장


중국

 선진 자본주의권의 불황이 장기화됨에 따라 이들을 향한 상품수출에 크게 의존하던 중국 경제도 성장이 둔화되고 있다. 미국을 필두로 한 선진경제권과 중국을 필두로 한 신흥시장권의 경기상황이, 선진국들에서는 불황이지만 신흥국들에서는 호황으로, 서로 다르게 진행된다는 탈-동조(decoupling)이론을 무색하게 만들고 있다.
중국의 2014년 3분기 성장률은 2분기의 7.5%보다 떨어진 7.3%에 그쳤다. 4분기 성장률은 3분기보다 더 둔화되어 7% 수준에 머물 것이며 내년에는 더 낮아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무엇보다 생산과 투자의 증가가 둔화되고 있는데, 11월 산업생산은 전년동기 대비 7.2% 증가에 그쳐 시장 전망치(7.5%)를 밑돌았다. 특히 철강 등 중공업 부문의 성장세 둔화가 돋보이는데, 이는 부동산 경기가 둔화되는 데 따른 투자 감소 때문이다.

 한편 지난 11월 신규주택 평균가격은 전년동기 대비 3.7% 떨어지면서 3개월째 하락했다. 전월대비로는 0.5% 하락하여 7개월째 하락세를 지속했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이런 중국의 경기둔화에 대해 부동산시장이 둔화되면서 투자자들의 소비심리도 얼어붙었고 그 결과 지표가 부진하게 나왔다고 분석했다.
성장 둔화는 또한 수출 둔화에도 영향을 받았다. 12월 8일 발표에 따르면 중국의 수출은 지난 11월 전년동기 대비 4.7% 증가했다. 이는 9월과 10월 증가율(각각 15.3%, 11.6%)은 물론 시장 전망치(8.0%)에 비해서도 낮은 수치였다.
이렇게 성장세가 꺾이면서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지난 9월 1.6%에 그쳐 5년래 최저치를 기록했으며, 이런 디스인플레이션 추세는 10월 1.6%, 11월 1.4%로 이어졌다. 전월대비로는 0.2% 내려 디플레이션 조짐까지 보였다. 생산자물가는 전년동월 대비 지난 9월 -1.8%, 10월 -2.2%, 11월 -2.7% 하락해서 33개월 연속 하락세를 이어갔다. 분명한 생산자물가 디플레이션 양상이다. 이렇게 되자 중국발 세계 디플레이션 우려와 함께 중국경제가 2008년 미국처럼 경착륙하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이에 중국도 작년 11월 21일, 28개월 만에 전격적으로 금리인하를 단행했다. 기준금리(1년 만기 예금금리)를 3%에서 2.75%로 0.25% 낮추었으며, 대출금리도 6.0%에서 5.60%로 0.40% 인하했다. 성장둔화 우려가 커지자 시중에 자금을 풀어서 경기부진에서 벗어나겠다는 뜻이다. 그러나 물가하락을 막겠다는 디플레이션 방지도 커다란 이유다. 이번 금리인하가 경기둔화와 물가하락이 과도한 부채와 연계되면 ‘부채 디플레이션'이라는 악순환을 만들어낸다는 ’피셔의 시나리오‘를 차단하기 위한 조치라는 분석도 있다. (중국의 총부채는 작년 6월말 기준 국내총생산의 251%) 
그러자 미국 일각에서는 2016년 중국발 ‘퍼펙트-스톰(perfect storm)’ 전망까지 내놓고 있다. 미국 콘퍼런스보드는 '2015 글로벌 경제전망 보고서'에서 중국이 5년 뒤에는 3%대의 성장으로 추락할 거라고 전망했다. 반면, 중국 측 분석가들은 "중국경제의 경착륙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미국 측 분석가들이 비관적으로 전망하는 반면 중국 측은 낙관적 전망을 펼치고 있다. 하지만 디플레이션과 경착륙 위험이 존재하고 있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기타 신흥시장

 신흥시장을 대표하는 것이 브릭스(BRICS: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공의 머리글자를 모은 것) 나라들이다. 이 나라들의 사정은 불균등하다. 중국에 대해서는 위에서 살펴봤고, 러시아와 브라질은 지금 아주 안 좋은 상태에 있다.
러시아는 에너지 수출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데, 최근 유가가 폭락하면서 큰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석유와 천연가스 수출이 총수출의 70%를 차지하고 재정수입의 50%를 차지한다. 거기에다 미국이 우크라이나 사태를 빌미로 경제제재를 가하고 있어서 외국자금이 대거 빠나가고  주가가 폭락했다. 이로 인해 루블화는 작년 12월15일 하루 동안 13%나 떨어졌고 16일 한때 달러당 80루블까지 하락했다. 하루 낙폭으로는 러시아가 외환위기에 처했던 1999년 이후 최대치였다.
이런 외환위기를 방지하고자 러시아는 작년 12월16일 금리를 10.5%에서 17%로 6.5% 대폭 인상했다. 12월11일 9.5%에서 1% 추가인상한 지 불과 5일 만이다. 러시아가 기준금리를 올린 것은 작년 들어 무려 6번째다. 이런 공격적 환율방어로 루블화 폭락은 다소 주춤해 있다. 하지만 루블화 가치는 지난 한 해 동안 달러당 33루블에서 60루블 가까이로 떨어져 연초에 비해 반 토막 난 상태이고, 위험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루블화 가치가 폭락하면서 수입물가 상승으로 일반물가가 급등하고 있다. 지난해 인플레이션은 10%를 넘은 것으로 예측되고 있고 경제성장률은 0.2%에 그친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말하자면 스태그플레이션 상태다. 반면에 경제상황 악화를 보면서 투기자금은 계속 도망가고 있다. 2014년에만 900억 달러가 도망갔다. 러시아의 현재 보유외환은 4,200억 달러다. 하지만 문제는 큰 손의 움직임이다.

 한편, 국제통화기금에 따르면 지난해 브라질은 성장률이 러시아와 비슷하게 0.3% 수준에 그칠 것이라고 한다. 브라질도 러시아처럼 자원수출국으로서 세계경제의 불황에 따라 철광석, 석유, 설탕, 콩 등 자국 수출품들의 수량과 가격이 모두 하락하여 타격을 입고 있다. 브라질도 러시아처럼 환율이 폭등하고 이에 따라 물가상승과 경기침체가 병행하는 스태그플레이션을 겪고 있다. 성장은 2014년 1, 2분기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했으며 3분기에도 제로 성장에 가까웠던 반면, 소비자물가는 억제 상한선인 6.5%를 넘고 있었다. 이에 브라질은 통화가치 하락과 물가상승을 억제하기 위해 작년 12월에 금리를 11.25%에서 11.75%로 0.5% 올렸다. 이에 앞서 브라질은 작년에 연초 10%로 시작해서 1월, 2월, 4월, 10월 등 여러 차례 금리를 인상하여 11.25%까지 올린 바 있다.


6) 산유국과 자원생산국

 전 세계적 불황으로 인해 생산과 소비가 정체하면서 자원생산국 경제들이 큰 타격을 입고 있다. 가장 주요한 자원인 석유가격이 폭락하고 있는데, 1년여 사이에 배럴당 110달러 선에서 50달러 선으로 반 토막이 났다. 서부텍사스산 원유에 이어 두바이유와 브렌트유 가격마저 약 5년 반 만에 50달러대로 떨어졌다. 이에 따라 석유판매수입에 의존하던 나라들이 수입 감소에 따른 디폴트 위험에 직면해 있다. 앞서 언급한 러시아와 더불어 석유수출이 전체 수출의 95%를 차지하는 베네수엘라와 나이지리아가 그런 경우이다. 이란, 이라크, 알제리 등 중동과 북아프리카의 다른 산유국들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비슷한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국가재정에서 원유수출이 자지하는 비중은 이라크 90%, 나이지리아 70~80%, 베네수엘라 60~70%, 이란 50~60%, 러시아 50% 등이다. 유가폭락으로 이 나라들은 국제수지 위기와 함께 재정위기를 겪고 있다.
석유와 천연가스만이 아니라 기타 지하자원을 수출하는 나라들, 그리고 농산물을 수출하는 나라들도 전 세계적 수요 감퇴와 가격하락에 따라 타격을 받고 있다. 전 세계적 불황으로 선진자본주의 나라들 뿐 아니라 세계의 공장 노릇을 해온 중국과 한국 등도 불황으로 일차상품 수입을 줄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들 일차상품 수출국들의 수출 감소는 이들 나라에 공산품을 수출하는 중국과 한국 등의 이차상품 수출국들의 수출에도 타격을 가하고 있다.
이 자원수출국들은 세계 자본주의의 약한 고리들이다. 러시아의 경우에서 보듯이 이 나라들은 국내 공업과 내수시장이 취약하고 수출과 수입 의존도가 높아서 세계시장에서 생겨난 태풍이 방파제 없이 그대로 밀어닥치기 때문이다.


7) 전망

이처럼 위기는 세계적으로 공통적이다. 다만 위기의 양상과 정도 및 그것에 대한 대처에서 약간씩 다르다. 위기의 양상과 정도에 대해서는 앞에서 살펴보았다.
위기에 대한 대처에 대해 보면, 유럽은 정치적으로 통합되어 있지 않아서 대규모로 양적완화를 하기 어려웠고, 일본은 이미 디플레이션 늪에 빠진 상황이어서 양적완화를 해도 효과가 미미했다. 반면, 미국은 그 점에서 유럽이나 일본보다 다소 유리했다. 무엇보다 자국 통화가 기축통화라는 강점을 가지고 있다. 이것이 미국 경제에게 대대적인 양적완화를 하고도 달러가치가 크게 하락되지 않게 뒷받침해 주었다. 그러나 이런 뒷받침이 무한정 이루어질 수는 없다. 그래서 미국은 경기가 채 회복되지 않았음에도 서둘러 양적완화를 멈추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미국도 위기의 종료가 아니라 계속이다.

 위기는 어떻게 전개될까? ‘뉴-노멀’이라는 말처럼 저성장, 저물가 상태를 지속할까? 2014년 세계 자본주의는 이미 그런 ‘뉴-노멀’ 상태가 지속될 수 없음을 보여 주었다. 그것은 자본의 희망사항일 뿐이었다. 세계 자본주의는 디스인플레이션을 거쳐 디플레이션으로 미끄러져 내려가고 있는 중이며, 다만 자본 측이 어떻게 그것에 대처하느냐가 숙제로 되어 있다. 잘 대처해서 제로 성장 제로 물가로 연착륙(Soft Landing)하게 될 것인가, 잘 대처하지 못해서 마이너스 성장과 마이너스 물가로 경착륙하는 ‘퍼펙트 스톰’이 되고 말 것인가? ‘뉴-노멀’이 그랬듯이 연착륙은 희망사항이고 현실은 경착륙 쪽으로 흐르고 있다.
파국이 언제 어디에서 폭발될 지는 장담하기 어렵다. 다만 많은 전문가들이 우려하고 있듯이  가장 위험한 곳은 유럽이다. 초국적 금융자본의 대변지인 <이코노미스트>지는 작년 10월 25~31일자에서 유럽을 "세계 최대의 경제문제(The world's biggest economic problem)"라고 부르며 중요하게 다루면서, 유로존의 디플레이션이 매우 임박해 있고 극히 위험하다고 역설하고 있다. 그리고 독일이 긴축기조를 고수함으로써 유럽중앙은행이 대대적인 양적완화를 하지 못하게 된다면 유로존은 조만간 디플레이션 늪에 빠질 거라고 경고하고 있다.

 그러나 언제 어디에서 먼저 파국이 일어날지 꼭 집어서 단정하기는 어렵다. 유로존이 될지, 일본이 될지, 중국이 될지, 러시아가 될지, 어느 산유국이 될지 장담하기 어렵다. 이런 파국 위험에서 미국과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그러나 2008년 미국발 금융공황 당시에 그랬던 것처럼 파국이 언제 어디에서 발발하건 어느 시점에 어느 한 곳에서 파국이 일어나면, 파국은 그 나라에 국한되지 않고 빠르게 전 지구적으로 전염될 것이다. 오늘날의 자본주의 경제는 선진 자본주의와 신흥시장, 자원소비국과 자원생산국이 긴밀하게 상호 의존하면서 전 지구적으로 통합되어 있을 뿐 아니라, 디플레이션 위기든 스태그플레이션 위기든, 기업파산 위기든 재정위기든 또는 국가부도 위기든, 또는 그 밖의 다른 종류의 위기든, 모든 경제들이 나름의 위기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2. ‘전 지구적 디플레이션’ 정세의 실천적 함의

2012년 초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에서 세계의 내 노라 하는 경제관련 이론가와 실행가들이 회동하여 의견을 나눴다. 당시 주제는 ‘서구 자본주의의 실패’였다. 모인 사람들은 이번 경제위기가 보통의 경기순환적 위기가 아니라 서구 자본주의 모델 그 자체의 실패에 따른 위기라는 진단에 동의했다. 다만 뾰족한 대안을 내놓지는 못했다. 
그리고 나서 만 3년이 지났다. 미국에서는 3차 양적완화를 실시해 보았고 일본에서는 아베노믹스를 실시해 보았다. 유로존에서는 그리스와 스페인에 구제금융을 제공하고 사상초유의 마이너스 금리를 실시해 보았다. 그러나 결국 경제성장률과 물가상승률이 동시에 마이너스로 굴러 떨어지는 디플레이션 직전 상태에 이르고 말았다. 이 지점에서 미국도 독일도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이제 쟁점은 세계 자본주의 경제가 과연 대불황으로 굴러떨어지느냐 아니냐가 아니라 언제 어떻게 굴러떨어지는냐 하는 것이다.
자본주의와 제국주의는 이런 상황에서 어떤 대안을 추구할까? 빌 게이츠가 선호하는 식으로  자선에 의해 소득을 재분배하는 자본주의 4.0일까? 토마 피케티처럼 부유세를 걷어 소득을 재분배하는 케인스주의형 수정자본주의일까? 피케티가 자문하고 지지했던 프랑스 사회당과 올랑드 정부조차 지난 정월 초하룻날 부유세를 폐지했다. 부유세를 피하기 위해 자본가들이 줄줄이 프랑스를 탈출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의 근본적 모순에서 비롯되는 원인에다 이런 정책적 요인들이 가세하면서 프랑스는 실업자 수가 350만 명으로 역대 최고에 이르고 경제성장률은 0% 부근에 머무르고 있다. 그와 대조적으로 이날의 부유세 폐지에 반발해서 피케티는 같은 정월 초하룻날 프랑스 정부가 수여하는 프랑스 최고훈장 레지옹 드뇌르의 수상을 거부했다.
이 에피소드가 말해주는 것은 자본과 자본가계급이 노동과 노동자를 지배하고 투자와 생산을 결정하는 자본주의 경제에서 자본과 자본가에게 이윤을 보장해주지 않는 제도나 정책은 명백한 한계를 갖는다는 사실이다. 다만 노동계급의 힘에 의해 강제될 경우에만 그런 진보적 제도나 정책은 도입, 실시될 수 있다. 그러면 노동계급이 그런 제도와 정책을 실시하라고 파업을 하고 시위를 하면 자본가계급에 의해 받아들여질까? 역사적으로 보면 그 정도의 압력 가지고는 자본이 양보하지 않는다. 케인스가 말했듯이 자본가계급이 다 내어 줄 것인가 반만 내어줄 것인가의 기로에 서 있을 때에만, 반도 내어주지 않겠다고 버티다가는 십중팔구 다 내어줄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했을 때에만, 자본가계급은 부분적으로 양보하는 선택을 받아들인다.
그러므로 노동계급은 개혁을 획득하기 위해서도 변혁을 목표로 투쟁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변혁을 목표로 투쟁한다면 개혁에 안주하면 안 된다. 역사적 경험에 따르면 개혁에 안주하고 정신 줄을 놓을 때 자본은 얼마 가지 않아서 다시 양보한 개혁을 무(無)로 돌리는 총공격을 가해 온다. 현재의 세계정세는 진보개혁주의 조류의, 사회민주주의 이념의, 케인스주의 경제학의 사탕발림에 현혹되지 않고 담대하게 노동계급의 역사적 임무를 받아 안고 나아갈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것이 현실적인 길이고 현명한 선택이다. 계급 없는 사회의 실현이라는 희망찬 대안을 향해 담대하게 도전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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