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정세(정치) | 국가·정치·야당·문재인, 새 진보정당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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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승호 작성일15-02-28 00:00 조회1,601회 댓글0건본문
매일노동뉴스에 연재되고 있는 김승호의 노동세상(2월 16일자) 글입니다.
국가·정치·야당·문재인, 새 진보정당을 생각한다.
김승호(전태일을 따르는 사이버 노동대학 대표)
정치철학자 데이비드 이스턴은 ‘정치란 사회적 가치의 권위적 배분’이라고 정의했다. 사회적 가치라고 하면 물질적 부와 더불어 ‘님을 위한 행진곡’에서 언급하고 있는 사랑, 명예, 이름 등 비물질적 가치들도 포함된다. 그런 사회적 가치들을 폭력독점장치인 국가의 권력을 배경으로 권위적으로, 불평등하게, 배분하는 것이 곧 정치라는 것이다. 그러면 국가와 정치는 어떻게 영위되는가? 토대인 시민사회의 성격에 조응하여 영위된다. 노예제 사회에서는 노예제 국가가 성립하고, 민중을 노예로 착취하고 다스리는 정치가 이뤄진다. 마찬가지로 자본제 사회에서는 자본제 또는 임금노동제 국가와 정치가 이뤄진다. 그러므로 정치적 문제의 근원을 사회에서 찾아야지, 상식처럼 사회적 문제의 근원을 국가나 정치에서 찾지 말아야 한다.
며칠 전 ‘땅콩회항’ 사건에 대한 재판에서 판사는 “직원을 노예처럼 부리지 않았다면 결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조현아 부사장에게 징역 1년형을 선고했다. 이 판결문은 역설적으로 우리 국가에 법이 살아 있음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 노동자가 노예 같은 상태로 살아가고 있음을 폭로했다. 수년 전 삼성SDI에서는 노조설립을 막으려고 노동자들을 납치하고 전향공작을 벌였다. SK그룹 산하 회사에서는 1인 시위를 벌이던 화물노동자를 회사 대표가 사무실에서 야구방망이로 폭행하고 맷값으로 2천만 원을 주었다. 이렇듯 많은 독점대기업에서 직원을 노예처럼 여기며 마구 부리고 있다. 토대인 시민사회에서 이렇게 민중을 노예처럼 부리고 있다면 그 위에 세워져 있는 국가와 정치도 민중을 그렇게 노예처럼 여기고 대할 것이다.
지금 언론이나 야당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정치를 불통으로 비판하고 있지만 노동개혁에서 보듯이 그는 내외독점자본과는 잘 소통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의 정치를 그냥 불통이 아니라 내외독점자본의 이해관계와 결부지어 자본독재로 파악해야 제대로 된 비판이 된다.
사람들은 군대나 경찰처럼 제복을 입고 가공할 폭력을 휘두르는 행정부와 검은 법복의 사법부는 조금 다를 거라고 기대한다. 그러나 무전유죄 유전무죄라는 말이 있듯이 사법기관 역시 시민사회의 가치배분 질서를 반복한다. 나아가 시민사회의 가치배분 질서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라고 자처한다. 며칠 전 대법원에서 김정우 전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장이 도로를 무단 점거했으므로 유죄로 처벌받아야 한다고 판결했는데, 그 역시 시민사회의 질서에 조응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의회와 의원들에 대해서는 자기 손으로 뽑은 선량들이므로 민중의 이해관계를 대변해 줄 거라고 믿는 경향이 있다. 의원들은 각기 유권자의 표를 의식하며 열심히 법을 만들고 행정부를 견제하므로 그런 믿음에 근거가 없지 않다. 그러나 의원은 정당에 소속되고, 정당은 당근(정치자금 등)과 채찍(정당·의회·선거 활동의 규제와 정당 해산 등)으로 계급지배 질서에 조응, 복무하도록 촘촘하게 조절·통제된다. 요컨대 자본주의 사회에 조응하는 국가와 정치는 지배계급의 국가와 정치라는 점에서 그 이전의 국가들과 하등 다르지 않다.
하지만 세부적으로는 사뭇 다르다. 자본주의 국가의 가장 큰 차별성은 국가와 시민사회의 형식상의 분리다. 이로써 국가는 계급적 중립을 가장한다. 나아가 형식상 시민사회에서 분리된 국가 안에서 입법과 사법과 행정이 분립되어 상호 견제하며, 입법 영역에서는 복수의 정당들이 자유롭게 경쟁하며 국가권력에 접근한다. 그런 점 때문에 자본주의 정치는 지배계급의 독점물이 아닌, 민중이 자유롭고 평등하게 참여할 수 있는 민주정치처럼 보인다. 그러나 자본주의 국가와 정치 또한 자본주의 사회에 조응하고 지배계급의 이해에 복무한다. 다만, 그 작동 시스템이 한층 정교하고 속임수의 단수가 한층 높다는 점이 종래와 다르다.
의회정치를 보자. 여당과 야당으로 나뉘어 서로 죽일 듯이 싸우는 것 같지만 실은 초당적으로 내외독점자본에 복무하는 형제당들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지난 주 문재인 의원을 당 대표로 세웠다. 그 얼마 전 그는 <국제시장> 관람 후 트위터에 “가족끼리 노소가 함께 어울려서 보면 부모세대의 삶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좋은 시간이 될 거라고 강추한다”며, “영화를 보니 보수의 영화라는 식의 정치적 해석을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그 영화 스토리에는 주인공의 월남전 참전이 들어 있다. 하지만 <국제시장>은 그 침략전쟁 참전에 대해 아무 반성이나 비판 없이 가난 극복을 위한 자기희생으로 미화했다. 그런데도 비정치적 영화이므로 부모세대에 공감하라고?
그는 또 대표 수락 연설에서 “민주주의와 서민경제 계속 파탄 낸다면 박근혜 정부와 전면전을 시작할 것”이라고 목청을 높였다. 이미 그 둘이 다 파탄 났는데 무슨 전제조건이 필요한가? 새누리당 대변인은 “박근혜 정부는 민주주의, 서민경제를 파탄 낸 적이 없다”고 응수했는데, 어떻게 이에 응답할까?
그는 또 국민통합을 위해서라며 첫 일정으로 팽목항 분향소보다 이승만·박정희 묘소에 참배했다. 그가 추구하는 국민통합은 자본계급과 노동계급의 통합도 아니고 고작 노동계급을 배제한 자본계급 내 정파 간의 통합일 뿐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종속적 자본주의 사회에 조응하는 국가기구 안에서, 또 그 중 한 영역에 불과한 의회 안에서, 내외독점자본의 이해에 복무하는 양대 정당의 하나이고, 문재인은 그것의 수장일 뿐이다.
더구나 자본은 지금 세기적인 대불황 위기에 처해 있고, 국가와 정치는 그 위기극복에 전면적으로 복무해야 한다. 이런 자본 위기의 정세에, 노동배제의 현 정치체제 안에서, 지금 추진되고 있는 새 진보정당이 할 수 있는 역할이 기존 야당과 얼마나 다를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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