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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정세(각국의 계급투쟁과 국제정치) | [남아공 4] 남아프리카공화국 론민(Lonmin), ‘자본주의의 용납할 수 없는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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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시포 롱과네 작성일12-08-31 00:00 조회1,69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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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프리카공화국 론민(Lonmin), ‘자본주의의 용납할 수 없는 얼굴

 

  

  

2012. 8. 20 02:22

 

시포 롱과네(Sipho Hlongwane)1) 

 

 

나중에 론민으로 이름이 바뀐 그 회사는 예전에 영국 수상에 의해 자본주의의 용납할 수 없는 얼굴이라 불렸던 적이 있다. 이 회사를 국제적인 거대기업으로 탈바꿈시킨 자인 타이니 로우랜드(Tiny Rowland)는 그 오명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마리카나 발포 사건으로 보건대, 그 회사는 타이니 로우랜드 시대 이래 크게 바뀌지 않았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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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2012년 8월 15일, 요하네스버그 북서쪽 100Km(62마일) 루스텐버그(Rustenburg)에 위치한, 남아공의 한 광산 밖에서 파업중인 광부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경쟁 노조 간의 싸움에서 10명의 사람이 죽은 후 생산을 중단한 이후에 마체테(날이 넓고 무거운 칼)와 막대기로 무장한 수천 명의 파업 광부들이 론민의 마리카나 광산에서 수요일 남아공 경찰과 대치했다. 세계 3위의 백금 생산업체인 론민은, 만약 3천 명의 착암공이 회사의 주력 광산인 마리카나에서 금요일[8월 10일]에 시작했던 임금인상 요구 비공인 파업을 종료하지 않는다면 그들을 해고하겠다고 협박하고 있다. 로이터/시피웨 시보케>

  

 

8월 16일 수십 명의 사람들의 죽음은 남아공을 분노와 비탄, 자성의 도가니에 빠뜨렸다. [19일] 제이콥 주마(Jacob Zuma) 대통령은 사건이 발생한 다음주[8. 20~26]를 국가애도 기간으로 선포할 것이라고 밝혔다. 론민 회사의 마리카나 광산(수직 갱도)―발포 사건이 발생했던 장소 부근에 있는―에서는 주말을 거치면서 사태가 진정되었다. 그러나 사망자들은 아직 신원이 완전히 확인되지 않았고 격렬한 비공인 파업(wildcat strike) 행동에 대한 타결책도 아직 마련되지 않았다.

  

 

일요일[19일]에 론민 회사는 자신의 고용인들에게 최후통첩을 보냈다. 즉 만약 그들이 월요일[20일]까지 작업에 복귀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즉각 해고될 수 있다고.

 

“최후통첩은 착암공(착암기로 바위를 뚫는 일을 하는 노동자)에게 작업에 복귀할 것인지 아니면 해고당할 것인지를 [선택할] 마지막 기회를 제공한다.”고 회사는 성명을 발표했다. “따라서 만약 고용인들이 최후통첩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그들은 해고될 수 있다.”

 

  

마리카나로부터의 보도에 따르면, 그 소식을 듣고 노동자들은 분노하고 있다고 한다. 만약 광부들이 요구하고 있는 임금 300% 인상을 따내지 않는다면 비공인 파업은 계속될 것이다.

 

  

회사측의 최후통첩은, 다치거나 죽은 광부들의 수많은 가족과 친지들이 발포 사건을 수습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와중에 전해졌다.

 

 

“런던에 소재한 론민 회사는 전 세계 백금 산출의 12%를 차지하고 있다. 그 회사는 이미 낮은 백금 가격, 취약한 수요로 고전하고 있고, 통상 3/4분기에 생산 실적을 최고로 올리기 때문에 [이번 비공인 파업과 발포 사건으로 인해] 연간 생산 목표 75만 온스를 달성하지 못할지도 모른다.”고 <로이터>는 보도했다.

 

  

최후통첩은 몰인정한 것으로 보이고, 이 회사의 [아프리카] 대륙에 대한 호의적이지 않은 뿌리[영국의 아프리카 식민지 지배]를 상기시켜 준다.

 

  

론민은 남아공의 노조들과 언제나 분규를 일으켰다. 그러나 이번의 특별한 사태는 그 회사가 예전에 결코 경험하지 못했던 규모의 대참사이다.

 

  

롤란드 ‘타이니’ 로우랜드(Roland \'Tiny\' Rowland)는 (인도의 왈터 푸르호프에서 독일인 부모로부터 태어난) 영국인이었다. 그는 2차 세계대전의 여파로 영국의 중과세 체제를 회피하고 (유럽 식민주의자들이 로디지아(지금의 짐바브웨)에서 누렸던) 더 높은 생활수준을 누리기 위해 남아공으로 왔다. 그는 곧 아프리카 정치인들의 환심을 샀다.

 

 

<인디펜던트>지는 “그는 고급승용차 딜러(중개인)로 생업을 꾸리면서 남부 로디지아에 있는 살리베리―현재 짐바브웨의 수도인 하라레―에서 사교모임의 명사가 되었다. 그는 자신의 의심할 여지 없는 매력과 현혹적인 미소가 (서구 자본과 노하우에 접근하고 좋은 평판을 얻으려고 열심인) 아프리카 정치인들에게 잘 통한다는 것을 곧 알아차렸다.”고 보도했다.

 

 

1961년에 그는 런던,로디지아 광업회사(Lonrho)를 책임지도록 선택되었고, 그는 재빨리 그 회사가 돈을 버는 방식을 변경시켰다. 그는 사업이 자신의 개인적 관계에 크게 의존하도록 만들었고 신속하게 사업을 다각화시켰다. 그 후, 그는 몇 개의 위험스런 가지급 계정 개설을 신청했고, 이는 [이 회사에 대한] 연기금 투자자들을 긴장시켜서 조사위원회를 꾸리게 만들었다. 그래서 그 회사는 로우랜드를 견제하기 위해 비상근 이사들을 임명했다. 그가 일부 재무 정보를 이사회에 대해 숨기려 하고, 이사들이 이 위험스러운 의장을 해임하기 위해 회사 주주들을 획득하려고 하면서, 확실한 싸움이 벌어졌다. 결정은 오히려 반대로 났다[그는 해임되지 않았다]. 그 일은 포승을 푸는 곡예사와 같은 수완가로서의 로우랜드의 명성을 굳혔다. 연기금 투자자들은 즉각 그 회사(Lonrho) 주식을 내다팔았다.

 

  

그 당시 영국 수상 에드워드 히드(Edward Heath)는 혐오스럽다는 듯이 론로(Lonrho)에 “자본주의의 무례하고 용납할 수 없는 얼굴”이라는 꼬리표를 붙였다. 로우랜드는, 널리 알려진 대로, 자기는 자본주의의 용납할 수 있는 얼굴이 되기를 원치 않는다고 응수했다.

 

  

론로의 아프리카에서의 거래들은 종종 [불법,부정 행위] 의혹을 샀다. 그는 종종 다양한 방식으로 평판이 좋지 않은 정권을 특히 [그 정권에 대한] 전 세계 여론이 극히 비우호적일 때 도와준 것으로 비난받았다.

 

 

“1980년대에 그는 모잠비크의 좌파 정부가 농업자원을 관리하는 것을 지원한 것으로 비난되었다. 그리고 그는 남아공의 아파르트헤이트[인종차별] 정부에 대한 제재가 여전히 진행중일 때 론로의 남아공 자산을 늘렸다.”고 영국 BBC 방송은 보도했다. “리비아 테러리스트에 의해 저질러진 로카비 폭파2) 사건이 일어난 지 불과 3년이 지난 1992년경, 로우랜드씨는 론로 소유의 일부 호텔 지분을 리비아 지도자 가다피에게 매각해서 논란을 일으켰다.”

 

  

론로 이사회는 가다피의 폭로[일부 호텔의 지분 매각에 대한; 역자]에 특히 분노해서 그를 1995년 10월 의장 자리에서 쫓아냈다. 그는 그 다음해에 자신이 거대한 복합기업으로 전환시켰던 바로 그 회사의 이사회에서도 쫓겨났다. 그리고 1998년에 죽었다.

 

  

그의 죽음 소식을 듣고서 아프리카 지도자들은 극히 아부하는 헌사를 바쳤다. “그는 남아공뿐만 아니라 아프리카 전체에 거대한 기여를 했다.”고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은 말했다. 만델라는 1996년 그에게 희망(봉) 훈장을 수여했었다.

 

  

로우랜드가 죽기 두 달 전, 그 회사는 둘로 분리되었다. 론로 유한책임회사(Lonrho Plc.)는비(非)아프리카 지역 사업과 광산 자산을 다루기 위해 설립되었다. 1999년 이 회사는 이름을 론민(Lonmin)으로 바꾸었고 남아공의 저(低)지대(부시벨트)의 백금 금속류로 사업영역을 축소했다.

 

  

론민은 북서 주(州) 작업장과 림포포(Limpopo) 주(州) 작업장 모두에서 끊임없이 노조와 분규를 일으켰다. 2011년 5월 북서 주의 도시 루스텐버그(Rustenburg) 근처의 카레(Karee) 광산에서 9천 명 이상의 노동자를 해고했다가 나중에 복직시켰다. 이 특별조치는 노조 내부의 세력다툼에 의해 비공인 파업이 벌어진 후에 내려진 것이었다.

 

회사의 현재 경영자(CEO)인 이안 파머(Ian Farmer)는 2008년에 임명되었다. <블룸버그 비즈니스위크>에 따르면, 회사는 2011년 그에게 1,220,629 파운드(15,860,000 랜드)를 지급했다. 그해 그의 급료는 론민의 마리카나 광산에서 일하는 착암공 소득의 293배에 달했다.

 

  

주마 대통령은 일요일에 성명을 발표했다. 그는 이 성명에서 북서 주(州) 주지사 탄디 모디제와 장관들―광물자원부 수잔 샤방구, 경찰부 나티 테투아, 사회개발부 바타빌레 라미니, 협동조합 관리부 리차드 바로이, 노동부 밀드레드 오리판트, 재향국방부 노시비웨 마피사-카쿠라, 보건부 아론 모촬디, 국가보안부 시아봉가 ??레, 그리고 내무부 코사자나 라미니-주마 등―이 죽거나 부상당한 광부들의 가족과 친지들을 조정하고 지원하기 위해 마리카나에 배치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때까지도 론민의 대표는 아직 마리카나 [광부들의] 무허가 막사에 얼굴을 내보이지 않았다. 파업행동의 대부분은 이 무허가 막사에서 집중적으로 일어났다. 그리고 대참사의 중심에 있는 회사인 론민은 이제 착암공들에게 새로운 협박을 발표했다. 백 명 이상의 사상자들이 아직 신원조차 확인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은 전혀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론민은 정말로 자본주의의 용납할 수 없는 얼굴이다.

 

 

 

 

 

1) 남아공 요하네스버그에 소재한 인터넷 언론 <데일리 마버릭(Daily Maverick)>의 기고가 및 칼럼니스트.

  

2) 로커비 사건은 1988년 12월 21일 런던 히드로 공항을 출발, 뉴욕으로 향하던 팬암 항공 소속 보잉 747기가 스코틀랜드 로커비 상공에서 공중 폭발, 270명이 숨진 참사 사건이다. \'팬암항공기 폭파사건\'이라고도 한다. 리비아 정부는 이 사건을 서구 정보기관에 의해 조작된 사건이라며 리비아 개입 혐의를 일관되게 부인했다.

  

  

* 출처:

http://dailymaverick.co.za/article/2012-08-20-lonmin-the-unacceptable-face-of-capital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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