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 계급투쟁이 노동일의 한계를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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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3-04-17 12:16 조회230회 댓글0건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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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급투쟁이 노동일의 한계를 결정한다.hwp (32.0K) 1회 다운로드 DATE : 2023-04-17 12: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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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노동뉴스에 연재되고 있는 김승호의 노동세상(4월 17일자) 글입니다.
계급투쟁이 노동일의 한계를 결정한다.
김승호(전태일을 따르는 사이버 노동대학 대표)
윤석열 정권이 노동시간을 유연화·탄력화한다면서 노동시간 연장을 꾀하다가 원숭이가 나무에서 재주를 피우다 떨어진 꼴이 됐다. 화물연대 노동자들에게 업무복귀명령이라는 이름으로 강제노동을 명령했음에도 여론조사에서 지지도가 상승하자 자신감이 넘쳤던 것. 임금제도를 연공급에서 직무·성과급으로 개편해 착취도를 높이려는 노동개혁(악)의 주목표를 달성하기에 앞서 탄력적 근로시간제라는 미명으로 자본의 필요대로 자유롭게 일 시키는 제도를 도입하는 꼼수를 부리다가 이렇게 됐다.
윤석열 정권이 추진하는 노동시간 탄력화에 무슨 문제가 있는지는 대중이 잘 알고 있다. 한국은 지금도 세계 최장시간 노동하는 국가에 속한다. 그런데 정부계획 대로 제도를 도입하면 노동시간은 더 길어진다. 노동시간과 비노동시간, 즉 노동자의 가처분시간에 대한 자본가의 결정권은 더욱 자유로워질 것이며, 노동자의 결정권은 더욱 쪼그라들 것이다. 물론 임금도 더 줄어들 것이다. 이게 현실이다. 그런데도 일 있을 때 밤낮없이, 휴일도 없이, 주 80시간(주 7일 근무할 때) 넘게 빡세게 일하고, 초과노동시간을 모아 뒀다가 일 없을 때 한 달간 제주도로 가족여행 간다고? 노동자의 90% 가까이가 헌법에 보장돼 있는 노동기본권인 노동조합을 결성할 권리조차 향유하지 못하는 천민자본주의 파쇼체제 아래서 노동자가 자유롭게 휴가시간을 사용한다고? 현실과 아득하게 동떨어진 이야기다.
한국의 노동시간은 10여년 전에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 가운데 최장이었는데 이제는 다섯 번째라고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보다 더 긴 시간 노동하는 나라들은 콜롬비아·코스타리카 같은 중남미의 개발도상국들이다. 이 나라들의 노동강도는 대체로 우리나라보다 낮다. 자본은 부득이 노동시간을 줄일 때 대개 노동강도 강화로 이에 대응한다. 이는 자본주의에서 법칙적이다. 예컨대 2013년 현대자동차 사측이 주간연속 2교대제 도입에 동의하면서 그렇게 했다. 노동강도를 감안한 실질적인 노동력 지출 면에서 보면 우리나라 노동자는 OECD에서 가장 많은 양의 노동을 하고 있다 할 것이다.
정부 발표에 따르면 한국의 연 노동시간이 1천900시간 남짓으로 지난 10년 사이에 10% 줄었다고 한다. 얼핏 보면 획기적 진보다. 그동안 꼼수로 주 68시간 상한제를 실시하다가 2018년 문재인 촛불정부에서 주 52시간 상한제를 정상화했다. 윤석열 정권의 노동시간 탄력화는 이 주 52시간 상한제를 무력화시키는 뜻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이 시기 동안 주휴수당·유급연차휴가·퇴직금을 지급하지 않기 위해 알바생의 노동시간을 주 15시간 이하로 줄이는 일이 늘어났다. 노동강도 강화에 의한 노동력 지출 증가와 초단시간 노동자의 증가를 감안하면 이 기간 동안 일반 노동자들이 지출한 노동력의 양은 통계수치만큼 줄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과로사(kwarosa)가 국제적으로 문제시되는 것 아니겠는가. 이런 점들을 무시하고 단순한 산술평균으로 노동시간이 10.3%나 단축됐다고 말하는 것은 통계의 허구다.
이 지점에서 노동시간 문제에 관한 정치경제학 고전의 분석을 소환하는 것도 무익하지 않을 것이다.
노동시간 문제의 성격 :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에서는 필요노동(노동력을 재생산하는 데 필요한 노동시간)은 항상 노동일의 일부에 지나지 않으므로 노동일은 결코 이와 같은 최소한도까지 단축될 수는 없다. 다른 한편으로 노동일에는 최대한도가 있다. 노동일은 일정한 한계 이상으로 연장될 수 없다. 이 최대한도는 두 가지에 의해 결정된다. 첫째로 노동력의 육체적 한계에 의해 규정된다. 인간은 24시간이라는 1자연일 동안에는 일정한 양의 생명력밖에 지출할 수 없다. 말도 날마다 일하는 경우 하루 8시간만 일할 수 있다. 인간은 하루 중 일정한 시간 휴식을 취하고 잠을 자지 않으면 안 되며, 또한 일정한 시간 그 밖의 육체적 욕구(밥을 먹거나 세수와 목욕을 하거나 의복을 입는 등)를 충족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노동일의 연장은 이와 같은 순전히 육체적인 한계 이외에도 또한 사회적 한계에 부딪힌다. 노동자는 지적·사회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시간을 필요로 하는데, 이들 욕구의 크기나 종류는 일반적 문화수준에 의해 규정된다.”(<자본론> 1권 309쪽)
우리나라 노동운동은 노동시간 단축보다 임금소득 증가를 우선시해 왔다. 이것은 노동자들이 계급투쟁을 통해 자본주의의 지배·착취·소외·억압을 타파하고, 노동자가 자본의 종이 아니라 사회의 주인으로서 인간적으로 해방되는 세상을 만들어가는 데 중점을 두지 않고 자본의 종으로 굴종하면서 눈앞의 금전적 소득 증가에 매몰된 것을 의미한다. 천민자본주의 초과 착취 체제와 더불어 노동운동의 이와 같은 계급의식 부재가 지금과 같은 장시간 노동체제를 지속시키고 있다. 나아가 젊은 세대들로 하여금 자본주의 세계관과 가치관에 사로잡히게 만들고 있다 하겠다.
“자본가와 노동자의 요구 : (자본가) 만약 노동자가 자본가의 처분에 맡긴 시간을 자기 자신을 위해 사용한다면 그는 자본가의 물건을 훔치는 것이 된다. (노동자) 당신은 노동일을 무제한 연장함으로써 내가 사흘 걸려 회복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양의 노동력을 하루 동안 써 버릴 수도 있다. 그리하여 당신이 노동으로부터 이득을 보는 것만큼 나는 노동실체를 잃어버린다. 나의 노동력을 이용하는 것과 그것을 약탈하는 것은 전혀 다르다. … 그러므로 나는 정상적인 길이의 노동일을 요구한다. 더욱이 나는 당신의 동정에 호소하지 않고 그것을 요구한다. … 당신은 모범적인 시민일지도 모르며, 동물학대 방지협회의 회원일지도 모르며, 거기다가 성인이라는 명성을 누리고 있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당신이 나와의 관계에서 대표하고 있는 그것[자본]은 가슴 속에 심장을 가지고 있지 않다. … 나는 표준 노동일을 요구한다. 왜냐하면 다른 모든 판매자와 마찬가지로 나도 내 상품가치를 요구하기 때문이다.”(같은 책 310-312쪽)
“모순의 해결 : 자본가는 노동일을 될수록 연장해 가능하다면 1노동일을 2노동일로 만들려고 할 때, 그는 구매자로서 자기의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 노동자가 노동일을 일정한 표준적 길이로 한정하려고 할 때 그는 판매자로서 자기의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다. 따라서 여기에는 권리 대 권리라는 하나의 이율배반(모순)이 일어나고 있다. 즉 쌍방이 모두 동등하게 상품교환의 법칙이 보증하고 있는 권리를 주장하고 있다. 동등한 권리와 권리가 서로 맞섰을 때는 힘이 문제를 해결한다. 그리하여 자본주의적 생산의 역사에서 노동일의 표준화는 노동일의 한계를 둘러싼 투쟁, 다시 말해서 총자본[즉 자본가계급]과 총노동[즉 노동자계급] 사이의 투쟁에서 결정되는 것이다.”(같은 책 312-3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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