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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와 투쟁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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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 | 4.9열사 서거 50주년 기념 토론: 현 정세와 한국사회의 나아갈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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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5-04-18 18:11 조회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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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열사 서거 50주년 기념 토론: 현 정세와 한국사회의 나아갈 길

 

김승호(전태일을 따르는 사이버노동대학 대표)

2025년 4월 11일

 

1. 들어가며

 

발제자는 2019년 11월 어느 노동조합 조합원들을 상대로 ‘격변하는 세계와 인류의 미래’라는 제목으로 강연한 적이 있다. 그 때 이후 세계는 그야말로 격변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류가 홍역을 치렀으며, 세계경제에 장기불황이 계속되는 속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을 비롯한 제3차 세계대전이 임박해 왔다. 다른 한편 선진자본주의 권역에서 정치의 극우화가 빠르게 진전되고 마침내 미국에서 극우성향의 트럼프 정권이 집권했다. 트럼프 정권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형성된 국제질서를 무너뜨리고 있다. 경제적으로는 관세를 무기로 하는 공격적 보호무역주의로써 자유무역 질서를 무너뜨리고 있고, 군사·정치적으로는 그린란드를 탈취하고 캐나다를 합병하려 하는 등 영토존중 질서를 무너뜨리려 하고 있다. 이게 바로 다극화된 세계질서의 한 모습이다. 다극화는 이루어야 할 질서가 아니고 이미 이루어져 있는 질서다. 다만 어떤 성격의 다극화냐가 문제인데, 트럼프는 정글적인 다극화 세계를 추구하고 있다.

 

이렇게 격변하는 상황에서는 상황에 대한 인식이 매우 중요하다. 상황에 대한 인식이 그릇되거나 변화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여 정세를 착오하면 그런 실천은 십중팔구 실패로 귀결된다. 그런 의미에서 발제자는 지난 여러 해 동안 ‘격변기’라는 말을 자주 사용해 왔다. 오늘도 그런 상황인식을 가지고 발제하고자 한다. 우리 한국사회와 사회운동에서 그런 착오를 많이 봐왔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 4.9열사들의 고귀한 희생을 기억하면서, 그리고 열사들과 함께 투쟁했던 선배 동지들의 발자취를 떠올리면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된다. 아무리 정세를 바르게 읽고 이론과 전략을 잘 세우면 뭐하나 하는 생각이 그것이다. 우리 한국사회와 사회운동이 나아가야 할 길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 못지않은, 아니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나의 돈과 권력과 명예를 위해서, 그것이 아니더라도 나의 평안을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위해서, 만인을 위해서 사는 마음가짐, 자세 같은 것이 아닐까? 그런 주관적 요소의 변화가 더 중요하지 않을까? 발제자가 몸담고 있는 교육기관의 어느 정치경제학 교수가 졸업식에서 한 말이다. 그런 것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오늘의 심포지엄이나 발제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요즘 세태를 보거나 정치를 보거나 사회운동을 보거나 드는 생각이다. 이런 비관적 생각을 하면서도 민중을 믿고 민중이 만들어가는 역사를 믿는 낙관적 마음으로 오늘 발제를 하고자 한다.  

 

2. 현 정세 인식과 전망(1): 세계적 수준

 

1) 정세인식

 

<1> 포괄적으로: 미제의 쇠퇴가 아니라 글로벌 자본주의의 쇠퇴

 

여기에서 포괄적이라 함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 전체 즉 세계를 포괄해서 고찰함을 뜻한다. 또한 이렇게 전 세계를 포괄해서 살펴볼 뿐 아니라 그것을 역사적 변화의 시간 속에서 살펴봄을 뜻한다. 우리가 이렇게 현실을 포괄적으로 인식하려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 사실 우리나라 사회운동은 현실을 살펴봄에 있어서 우리나라 현실을 먼저 살펴보고 나서 그 다음에 세계 현실을 살펴보는 경향이 있었다. 그리고 지금도 다소간 그러하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접근해서는 우리나라 사회가 왜 이런저런 방향으로 나아가는지 그 이유나 원인을 제대로 알 수 없다. IMF 외환위기 당시에 우리는 얼마나 세계에 대해 무지했는가? 그래서 속절없이 IMF 신탁통치를 받아들이지 않았던가? 그런 혹독한 시련을 겪었음에도 아직도 우리 사회변혁운동에는 이론적으로나 실천적으로나 일국주의 경향이 많다. 이 또한 우리 사회변혁운동이 극복해야 할 과제라고 본다.

 

“세계는 물질로 통일되어 있다”는 유물론의 명제가 있었듯이 오늘날의 세계는 한 마디로 자본주의로 통일되어 있다. 1990년대 초 소련·동구 사회주의 체제가 붕괴한 이후 그렇게 되었다. 물론 예외 없는 법칙이 없듯이 몇몇 사회주의 체제를 견지하고 있는 나라들도 있다. 그리고 정치권력은 사회주의, 공산주의를 표방하는 정치세력이 지배하고 있지만 사회경제적으로는 자본주의 체제로 영위되고 있는 나라들도 있다. 그러나 후자의 나라들은 자본주의 세계경제 속에서 자본주의적으로 관계 맺으면서 살아가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른바 냉전시기와는 판이하게 다르다. 그러므로 오늘날의 세계를 자본주의 세계로 인식하는 것이 무리가 없을 것이다.

 

자본주의 세계는 20세기 초 이래 제국주의 단계에 접어들었다. 그리고 이런 제국주의 단계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이 현대 제국주의는 영토를 차지한다는 점에서 중상주의 시대나 자유무역 시대의 제국주의와 다를 바 없지만 자본수출을 위주로 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독점자본의 힘으로 자본주의 생산양식을 식민지에 이식한다는 점에서 하나의 독특한 단계를 이룬다. 즉 제국주의는 식민지에 전근대적 관계를 파괴하고 자본주의화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제국주의의 이러한 역할은 19세기 대영제국에서도 일부 있었고, 마르크스는 이 점을 주목했다. 이런 맥락에서 제국주의가 낡은 전근대적 사회구성체를 유지시킨다는 인식은 일면적이다.1) 자본주의 세계는 여전히 제국주의 단계이고 그 안에는 제국주의 모국과 식민지·종속국으로 나누어져 있지만 제국주의 모국에서도 식민지·종속국에서도 자본주의 생산양식이 지배적이고 또 지배적으로 되어 가고 있다. 단, 그 안에서 제국주의 모국의 정치경제가 지배적인 지위를 가지고 있고 식민지·종속국의 정치경제는 2차적 지위를 가지고 있다. 더구나 지난 10여년 사이에 식민지·종속적이었던 나라가 아(亞)제국주의와 제국주의 수준에 도달하여 기성 제국주의 세력의 패권과 주도권에 도전하고 있다. 세계는 이미 자본주의적으로 다극화되었다. 그런 각도에서 보더라도 세계는 지금 자본주의로 통일되어 있다. 세계체제론자들이 말하는 것과는 뜻을 같이하지 않지만 자본주의는 통합된 하나의 세계체제를 이루고 있다. 이에 관한 이론적 언급을 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사료되어 생략한다.

 

많은 사람들은 오늘날의 자본주의 세계를 살펴보면서 세계체제론자들이 말하듯이 패권의 교체를 중심으로 말한다. ‘글로벌 사우스’니 다극화니 하는 말들이 그것이다. 이에 대해 짧게 언급하면 ‘글로벌 사우스’라는 것은 미·서구 제국주의 권역 이외의 영역을 지칭하는 것인데, 그것은 실체가 불분명하다. 지금 세계가 미·서구 제국주의와 ‘글로벌 사우스’의 대립과 투쟁으로 굴러가고 있는지 의문이다. 선발 제국주의 안에도 모순이 있고 ‘글로벌 사우스’ 안에도 모순이 있다. 무엇보다 ‘글로벌 사우스’ 안에도 제국주의 또는 아제국주의화 한 국가들이 있고 여전히 개발도상국이나 저개발국 상태에 있는 나라들도 있다. 많은 사람들이 중국의 주장처럼 세계질서가 다극화로 재편돼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세계는 이미 다극화돼 있다. 오히려 그렇게 다극화된 질서 속에서 미국과 중국이 주도권을 다투고 있다.

 

이런 공시적 차원도 주목할 필요가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통시적 차원이다. ‘자본주의의 미래 안녕한가?’ 라는 지점이다. 사람들은 미 제국주의의 쇠퇴에 대해 말을 많이 한다. 그것은 무슨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소련이 붕괴한 이후 한때 네오콘들에 의해 미국의 유일패권이 주장됐지만 그것은 새천년 초입의 IT 거품 붕괴와 9.11테러로 타격을 받았다. 그리고 2007~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로 종언을 고했다. 발제자는 4월혁명 50주년 토론회에서 이 점을 지적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특히 민족주의적 경향에서는 미 제국주의의 쇠퇴를 주목하면서 그것이 중국의 득세라든가 ‘글로벌 사우스’의 도전에서 온다고 보는 경향이 있다. 미 제국주의의 쇠퇴는 그런 자본주의 불균등발전에서 오는 측면도 있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자본주의 자체의 쇠퇴이다. 미 제국주의 패권의 쇠퇴는 미 자본주의 자체의 쇠퇴에서 비롯되고 있고 미 자본주의 쇠퇴는 미·서구 선진 자본주의의 공통된 경향인 것이다. 자본주의는 지금 역사적 쇠퇴에 직면해 있고 사멸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물론 110년 전에 레닌은 이미 『제국주의론』에서 제국주의를 ‘사멸하는 자본주의’라고 규정했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그 이후 1세기 동안 살아남았다. 레닌은 그 책에서 자본주의가 왜 사멸하는지 그 인과관계를 명확하게 밝혀주지 못했다. 마르크스는 어떤 생산양식은 더 이상 생산력을 발전시키지 못하면 수명을 다한다고 언명했다. 자본주의는 어떻게 생산력을 발전시키는가? 하나는 세계시장을 형성하는 것을 통하여(상품관계), 또 하나는 더 많은 인간을 임금노동자로 만드는 것을 통하여(자본-임금노동관계), 그리고 자본의 축적을 추동력으로 하여! 그런데 이 추동력이 동력을 잃으면 자본주의는 쇠퇴하지 않을 수 없다. 자본축적의 추동력은 자본의 이윤이고, 자본의 이윤은 이윤율에 의해 좌우된다. 그래서 자본주의에서 적절한 이윤율은 생명과 같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자본의 이윤율이 서서히 저하하더니 드디어 2008년 리먼 브러더스 사태 이후 이자율이 0% 내지 마이너스가 될 정도로 평균이윤율이 낮아졌다. 이 경향은 자본주의 경제에 내재하는 경향이지만 그것이 겉으로 표면화된 것은 1970년대 초부터이고 1970년대에 뚜렷이 가시화되었다. 발제자는 이때부터 자본주의는 쇠퇴기에 접어들었다고 판단한다. 이때 이전까지 많은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들은 이윤율저하 경향은 법칙으로 성립하지 않는다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현실에서 이윤율은 저하하고 있었다. 이 지점을 아직 마르크스 경제학에서 깔끔하게 정리하지 못하고 있다. 발제자는 그 이유를 일차산업 부문에서의 노동생산성의 상대적 저조에서 찾는다. 그로 인해 생산재를 생산하는 Ⅰ부문의 가격(가치)이 Ⅱ부문인 임금재의 가격(가치)보다 상대적으로 높아져서 자본의 유기적 구성이 점차 고도화한다고 본다.

 

자본주의의 쇠퇴는 이윤율 저하의 단일한 효과에 의해 진행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윤율 저하에 따른 투자 저하와 그에 따른 경기침체를 극복하고자 자본은 케인스주의 처방대로 돈을 풀었지만 경기는 회복되지 않고 물가만 올랐다. 이게 스태그플레이션이다. 이 스태그플레이션 앞에 케인스주의 경제학은 파산했다. 그리고 자본의 이윤율을 회복시키는 정책을 뒷받침하는 공급주도의 경제학이 등장했다. 재정과 금융을 긴축하고 노조를 탄압하여 임금을 깎고 사회복지 지출을 줄이고 공기업을 민영화했다. 레이건과 대처의 이런 신보수주의 정책으로도 이윤율이 회복되지 않고 투자 기회가 열리지 않자 클린턴과 블레어는 노동시장 유연화와 생산과 금융의 세계화를 들고 나왔다. 이게 신자유주의 세계화다.

 

그러나 이 신자유주의 세계화도 자본주의의 쇠퇴를 막지는 못했다. 신자유주의 축적체제로 자본의 착취도(이윤몫/임금몫)는 높였지만 이윤율을 높이기 위해 정보화와 자동화를 추진한 결과 자본의 유기적 구성이 높아졌다. 그리하여 이윤율은 기대한 만큼 회복되지 못했다. 그리하여 침체2)의 늪에 빠지지는 않았지만 성장률이 극히 저조한 상태가 지속되었다. 한편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를 경험하면서 노동자들은 자본주의적 삶에 대해 더욱 실망하게 되었다. 1960년대 말부터 출산율이 인구재생산 수준인 2.1명 이하로 떨어지더니 갈수록 심해졌다. 1인당 소득도 감소하고 인구도 감소하는데 투자기회가 늘어날 수 없다. 이렇게 투자유인(이윤율)도 투자기회도 위축된 상황에서 자본은 고이윤과 투자기회가 보장된 시장을 찾아 해외로 나갔다. 이게 세계화였다.

 

이 세계화는 선진·선발 자본주의 경제의 쇠퇴를 재촉했다. 일본만 잃어버린 30년을 보낸 것이 아니라 서구 자본주의 전체가 장기불황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반면 이른바 신흥시장은 세계화 덕분에 상대적으로 높은 성장을 계속했다. 이로써 선발 자본주의와 후발 자본주의 사이에 불균등발전이 가속화됐다. 그 결과 제국주의는 다극화되었고, 다극화된 세계자본주의의 주도권을 놓고 미국과 중국이 치열하게 다투게 되었다. 그리고 이 주도권 다툼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 미국은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선출했고 트럼프는 마침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유일패권 재생산에 맞게 구축된 국제질서(팍스 아메리카나)를 파괴하려 하고 있다. 자유무역 질서는 물론 국제정치 질서인 유엔의 해체도 불사하려 하고 있고 캐나다와 그린란드 영토 탈취까지 기도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미국은 쇠퇴하는 반면 중국은 계속 성장하여 세계경제를 주도하는 나라가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그러나 중국의 고도성장은 세계시장 덕분에 이루어진 것으로서 선진자본주의가 미국발 금융위기에 빠진 이후 고도성장에서 중도성장으로 내려앉았다. 선진자본주의와 중국자본주의는 디커플링(decoupling) 관계가 아닌 것이다. 이처럼 세계자본주의가 침체하면 중국자본주의와 신흥시장들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타격받지 않을 수 없다. 이처럼 선진자본주의권이 장기불황으로 쇠퇴하면 중국을 비롯한 후발자본주의권도 타격을 받아 퇴조할 것이며(세계시장이 통합된 오늘날 decoupling[탈동조]은 없다!) 이에 따라 노-자간 계급모순도 첨예해질 것이다.   

 

이렇게 자본주의가 쇠퇴하고 있는 속에서 세계는 격변하고 있다. 발제자는 5년 전부터 격변이라는 용어를 사용해 왔다. 1년이 다르게 상황이 급변하고 있다. 이를 분야별로 살펴보자.

(이하 생략, 첨부파일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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