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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와 투쟁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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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정세(군사와 전쟁) | [동영상] 리비아, 아프리카와 제국주의-댄 글라제부룩 발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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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전태일노동연구소 작성일11-11-30 00:00 조회1,62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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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상은 지난 10월 4일, 영국의 ‘전쟁을 멈취라 옥스포드 연합’(Oxford's Stop the War Coalition) 주최로 옥스퍼드 대학에서 있었던 “리비아, 아프리카와 제국주의” 제목의 공개 회합 중 댄 글라제부룩(Dan Glazebrook, 독립적인 정세분석가)의 발언 부분입니다.

 

미디어에서 보는 아프리카의 이미지는, 분명 일단의 진실을 포함하고 있지만, 아프리카가 지난 500년 동안 전지구적 경제의 성장에 중심적이었다는 사실을 제대로 못 보게 하고 있다.

일찍이 아프리카로부터 끌려온 노예 노동자들은 카리브 해의 설탕, 담배, 면화 농장들에서 일했고, 이는 산업혁명의 토대가 되었던 잉여자본을 공급했다.

19세기 이후, 금, 다이아몬드 광산들은 노예 또는 노예에 가까운 아프리카 노동자들을 헐값에 썼고, 오늘날에도 거의 비슷한 방식으로 서구 기업들은 그들이 소유한 농장들을 통해 엄청난 부를 얻고 있다.

우리는 아동 노동자들이 경제적 형편 때문에 온몸에 칼자국 상처가 난 채 온종일 일하고 있는 코코아 농장의 더러운 이야기들을 알고 있다. 광물들도 여전히 다국적 기업들에 의해 약탈되고 있다. 이 다국적 기업들은 서구 정부들을 움직여 콩고 등의 풍부한 광물자원을 약탈할 수 있도록 르완다나 우간다의 꼭두각시 정권을 지원하도록 한다.

아프리카 하면 흔히 사하라이남 아프리카를 떠올리지만, 아프리카에는 분명히 사하라 이북 지역도 있다. 영국이 북아프리카 여러 나라들을 오토만 제국으로부터 빼앗은 이래 그들은 꼭두각시 지배자, 꼭두각시 왕조를 세웠다. 그 이유는 이 대륙을 남과 북으로 나누기 위해서였다. 1969년 가다피가 영국의 지원을 받는 왕을 전복하는 혁명을 일으킨 이후, 리비아는 이집트와 이라크에 이어 영국이 세운 꼭두각시 왕조를 타도한 나라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새 리비아 정부가 가장 먼저 한 일 가운데 하나는 서구를 엄청나게 화나게 했는데, 그것은 바로 미국과 영국의 군사기지를 쫓아낸 것이었다. 이것은 단순히 상징적 행위 이상으로 중요했다. 가다피의 리비아에 대한 매우 드문 학술적 연구서인 조나단 베어맨이 1968년에 쓴 책을 보면, 그것을 잘 알 수 있다.

그에 따르면, “리비아의 전략적 후원자인 영국과 미국의 입장에서 볼 때 새 정부가 착수한 반식민주의적 경로의 가장 즉각적이고 충격적인 영향은 군사기지를 없애버린 것이었다. 그것의 중요성은 결코 사소한 것이 아니었다. 리비아에 있는 영국과 미국의 군사시설은 서구와 나토 동맹에게 특히 이 지역에서 있을 수 있는 개입과 관련하여 특별한 차원을 더해주는 것이었다.

윌러스힐과 알라뎀 주변 산맥은 다른 곳과 비교할 수 없는 군사훈련의 범위를 제공해 준다. 영국이 장악하고 있었고 대규모 연습에 이상적인 지역인 세러네이커에서 RAF(영국공군)와 USAF(미국공군)는 저고도 비행을 위해 거의 완벽한 조건을 누렸다. 따라서 군사기지 폐쇄는 중대사건이었다. 그것은 새 리비아 정권이 이전 식민주의 강대국들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지를 곧바로 보여주었다.”

1973년 아랍-이스라엘 전쟁이 발발했을 때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서구에 대해 석유 공급을 감축하는 유명한 결정을 내렸을 때, 이 문제는 더욱 뚜렷이 드러났다. 가다피가 선도한 이런 결정은 분명 이 지역에서 서구의 경제적 착취에 큰 타격을 주었다.

1979년 리비아 정부는 소련 모델과는 다른 유형으로 경제의 사회화에 착수했다. 앞에서 봤던 책을 다시 읽어보면, “자본가들로부터 몰수하고 난 다음에 실제로 일어난 일은 직접적인 정부의 통제가 아니라 협동 조합화의 과정이었다. 여기에서는 모든 노동자를 포괄하는 노동자직장회의가 구성되어 생산을 통제했다.

이전에 소유자에 의해 지명된 자가 책임을 지던 경영의 토대는 직장인민회의 성원들에 의해 선정된 인민위원회에 맡겨졌고, 때로는 전문 회계사나 기술자들은 이 인민위원회에 포함되지도 않았다. 이것이 1970년대 후반 리비아 경제의 새로운 기초였다.

부분적으로는 이러한 사회화의 결과로, 그리고 전반적으로 석유로 벌어들인 부를 유명한 수자원 개발 프로젝트 등 사회기반시설 건설에 사용함으로써, 리비아는 50년대와 60년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로부터 2010년 UN 인간개발지수에서 아프리카의 선두에 서는 나라로 발전했다. 예컨대 대륙에서 최고의 기대수명, 최저의 영아 사망률 등등.

서구의 관점에서 볼 때 이 모든 일들은 분명히 서구가 과거 식민지 나라들이 따르기를 원했던 그런 좋은 모델이 아니었다. 그리하여 1980년대 초부터 MI6(영국비밀정보국) 등이 지원하는 수십 건의 가다피 제거 음모가 이어졌다. 베일리 쉐일러의 증언으로 알려졌듯이, 1996년 MI6은 가다피를 암살하도록 알카에다에 돈을 주었으나, 다시 실패했다. 수년 전 이 사건이 발생했을 때 영국 언론에는 법적 제약으로 보도될 수 없었으나, 호주 언론에는 대대적으로 보도되었다.

좀 더 최근으로 와 보면, 가다피는 10년 전부터 아프리카연맹을 추동한 배후세력의 핵심이었다. 가다피 정부는 2007년 4억 달러를 제공하여 아프리카 최초의 위성 사업에 출자했다. 이는 아프리카를 오가는 전화에 이용되던 유럽 회사들의 위성을 대체함으로써 유럽 통신회사들에게 엄청난 소득 감소를 가져오게 됨을 의미했다. 따라서 리비아는 서구가 아프리카 대륙을 착취하는 데 계속 눈엣가시가 되었다.

이런 문제는 특히 지난 몇 년 사이에 아프리카연맹이 독자적인 금융기구를 시작했을 때 전면화 되었다. 주요 금융기구는 세 개다. 아프리카통화기금은 아프리카투자은행과 함께 설립되었는데, 아프리카에서 국제통화기금(IMF)의 헤게모니와 경쟁하기 위한 것이다. 주지하듯이 IMF는 제3세계로부터 보다 쉽게 부를 수탈할 수 있도록 신자유주의적 사유화 정책을 강제하는 데 부채 메커니즘을 이용했다. IMF는 제3세계가 점점 더 부채를 늘리도록 했던 것이다.

아프리카연맹에 의해 설립된 아프리카중앙은행이 독자적인 아프리카 금-본위 통화인 아프리카 디나를 출범시키려고 준비함에 따라, 이런 금융 기구들은 대륙에 대한 IMF의 통제력을 심각하게 위협할 것이었다. 리비아는 이런 프로젝트들의 가장 큰 재정적 기여자로서 대륙의 어떤 나라보다도 많은 300억 달러를 출자했다.

이것은 아프리카 착취에 있어 IMF의 헤게모니에 대한 실제적 위협이었을 뿐 아니라 중심통화로서 달러의 역할과 대륙의 중심적인 교역국인 프랑스에 대한 실제적 위협이기도 했다. 따라서 지난 500년 간 자본주의적이고 제국주의적인 지구경제에서 기본적으로 보조적인 역할이었지만 아프리카가 해 온 역할이 아프리카연맹 내에서 가다피와 리비아의 지도력에 의해 심각한 위협에 처하게 되었다.

여기에 더해 최근 들어 그리고 지금까지 아프리카의 사회기반시설과 제조업에 대한 중국의 대규모 투자는 위협을 가중시켰다. 아프리카가 산업화될 수 있다면, 아프리카로 하여금 값싼 원료를 생산해 서구에 넘기게 하고 서구에서 제조한 상품을 아프리카에 되파는 것을 통해 이익을 챙겨온 서구 금융기관들의 역할을 위협하게 될 것이다.

이렇듯 지난 10년간 역사상 처음으로 아프리카의 진정한 경제적 독립이 궤도에 오르기 시작했고 가다피는 그 배후에 있는 추진세력의 하나였다. 2007년 미국이 아프리콤, 즉 아프리카 대륙에 대한 미군의 개입을 위한 아프리카 사령부를 설치한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이다. 미국의 입장에서 문제는 어느 나라도 미군기지 유치를 바라지 않았다는 것이다.

새로운 미군기지 제안은 기본적으로 미국이 군사력에 의한 경제적 지배를 추구하고 강화하는 방식이다. 또 다시 가다피는 여기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는 어떤 아프리카 나라도 그들의 땅에 미군 기지를 허용하지 말자는 아프리카연맹의 결의를 제안한 사람 중의 하나였다. 이 결의는 2010년 통과되었다.

또한 양자 간 수준에서 미국이 기지를 유치하는 나라에게 얼마의 돈을 주려 하면 가다피는 다음과 같이 말했을 것이다. “미국이 천만을 준다면 우리는 2천만을 주겠다.” 이는 미국, 영국, 프랑스 정부와 금융기관들에게는 커다란 두통거리였다.

리비아 전쟁으로 돌아와 보자. 이 전쟁에 대해서 가장 혐오스러운 일 중의 하나는 전쟁의 구실로 시민을 구하기 위해서라는 주장을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한 나라를 폭격하면서 시민들의 생명을 구하려고 한다고 말할 때 이게 진짜로 뭘 의미하는지 생각해 보자. 그것은 그 나라 군대를 마지막 한 명까지 학살하겠다는 의미다.

정확히 그대로, 나토가 개입한 날부터 일어난 일은 대부분 북아프리카에서 온 매우 어린, 대부분 아직 10대의 청소년으로 구성된 군인들이 날이면 날마다 수백, 수천 명씩 죽어갔다는 것이다.

그들은 다른 나라를 점령한 적도 누구를 침략한 적도 없다. 그러나 그들은 6주간 대대적인 공습을 당했다. 이미 [텔레그래프] 지에 보도되었듯이, 영국의 관리와 군대는 최소한 3만 5천 명의 리비아인이 나토에 의해 학살당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뉴스들에서 군인들은 계산도 되지 않고 있다. 마치 시민들만이 가치 있는 생명으로 관심을 가져야 되는 것처럼.

사태의 진행에서 또 다른 혐오스러운 요소는 익히 알려져 있는 인종주의이다. 나토가 개입하기 전인 봉기 이틀째 50명의 아프리카 이주민들이 소위 반란세력에 의해 살해되었다. 반란세력은 스스로를 흑인 추방을 위한 부대로 자처하면서 리비아에 있는 흑인들을 사냥하고 있다.

아프리카 이주민들이 아니라 흑인 리비아인들의 마을인 터와가에서도 만여 명의 주민 모두가 살해되거나 터와가 밖으로 쫓겨났다. 이 일은 반란군 지도자들이 미수라타에서만 그런 일이 있었을 뿐 터와가에서는 그런 일이 없다고 한 후에 일어났다. 국가과도위원회(TNC) 지도자 지브릴이 “터와가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미수라타 사람들은 책임이 없다”는 것을 시인한 것을 감안할 때 반란군들이 흑인들을 죽이고 터와가에 있는 집과 사업체들을 체계적으로 불태운 것이다.

그렇다면 의문은 왜 나토가 이 사람들에게 권력을 주었냐 하는 것이다. 왜 그들은 이 인종주의자들에게 권력을 넘기기 위해서 대규모 공습을 감행했는가? 그것은 단지 우연이 아니다. 단순히 어떤 자들이 운이 좋았다거나, 그것만 아니라면 전적으로 가치 있는 자유의 혁명에 따르는 일종의 불행한 부산물이 아니다.

인종주의는 나토가 리비아에서 육성해 왔고 이제 권력을 부여하고 있는 세력의 내재적인 일부이고, 전략의 핵심 부분이다. 즉 북부 아프리카를 남부 나라들과 갈라놓음으로써 아프리카의 단결을 방지하는 분할지배 전략이다. 이를 위한 최선의 방법은 아랍의 반(反)-흑인 정서를 작동시키는 것이다.

반란세력이 한 일이 바로 이것이다. 나토가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권력을 잡은 반란세력은 인종주의자가 되어야 한다. 반란세력은 가다피가 추구해 온 아프리카 지역통합의 길을 거꾸로 뒤집고 사하라이남 아프리카와의 경제적 연계와 정치적 동맹을 파괴하는 사람들이어야 한다.

나토 나라들이 리비아 내 동맹세력으로 상당 기간 육성해온 세력들은 정확히 이런 인종주의자들이다. 예를 들어 국가과도위원회 서열 3위의 알라자위는 가다피 정부에 있었으나 2000년 반-흑인 학살 사건 와중에 흑인들이 질병과 범죄를 퍼뜨린다고 주장한 후에 축출된 자이다. 이렇듯 이들은 나토가 ‘인종주의에도 불구하고’가 아니라 ‘인종주의 때문에’ 육성하여 권력에 앉힌 자들이다.

또한 리비아 경제가 크게 의존해온 200만에 이르는 아프리카 이주노동자들을 죽이고 쫓아내는 것은 리비아의 경제에 치명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다. 따라서 나토에게 이러한 인종주의는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이루는 것이다. 하나는 약화되고 마비된 리비아 경제이고, 다른 하나는 리비아의 반-아프리카 외교 정책이다.

나는 여기에 있는 우리들에게 의미 있는 질문으로 이야기를 마치고자 한다. 영국에서 이 분명한 고전적인 제국주의적 학살에 대한 반대가 없다는 사실이 우리 자신에게 무엇을 말해주고 있는가? 나는 우리가 그런 체하는 것처럼 무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10년 전에는 미친 짓으로 보였지만 지금은 상식으로 된 일들이 있다.

첫째로 서구는 자원을 약탈하기 위해 제3세계에서 수십만의 민중을 학살했다. 누가 이것을 모른다고 주장하는가? 모두가 알고 있다. 둘째로, 서구의 금융기관들은 제3세계 사람들을 가혹한 노동력 착취의 현장에서 강제노동을 하게 함으로써 혜택을 입고 있다.

반세계화 시위가 있고 IMF와 WTO에 대한 항의가 있고 TV에서 노동착취 현장의 조건들에 대한 프로그램이 끝없이 나오고 있는 지금, 누가 이것을 모른단 말인가? 누가 제3세계 부채 메커니즘과 노동착취 현장과 아동노동에 대해 모른단 말인가? 누가 지금 이 모든 일을 모른다고 말할 수 있는가?

내 생각에 지난 10년 동안 우리 눈을 가리고 있던 연막은 다 벗겨졌다. 그래서 너무도 분명한 서구의 부와 권력의 원천을 가리기 위해 필사적으로 우리의 눈에 분칠을 하고 있다. 그 원천은 다른 어떤 것이 아닌 학살과 착취에 기초하고 있다. 서구가 개입을 정당화하기 위해 제3세계 지도자의 몰상식을 비난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바닥에 있는 진정한 동기를 모르기 때문이 아니라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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