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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와 투쟁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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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정세(정치) | 4월혁명의 실천적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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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전태일노동연구소 작성일10-04-30 00:00 조회2,28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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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월혁명의 실천적 과제




<1> 확인의 지점: 4월혁명 이후 50년, 4월혁명은 완성되었는가?


  4월혁명 직후 많은 사람들은 4월혁명이 실패로 끝난 것이 아니라, 명백한 혁명이지만 아직 완성되지 못한 ‘미완의 혁명’이므로, 그 완성을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 1960년 4월 이후 50년이 지난 지금 4월혁명은 과연 완성되었는가? 그 당시 제기된 혁명과제가 해결되었는가? 아니면 여전히 그 과제는 미해결, 미완성 상태로서 그 실현을 위해 계속 투쟁해야 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4월혁명의 과제를 뭐라고 보느냐에 달려 있다. 단순히 관권에 의한 부정선거를 타파하는 것을 혁명의 과제였다고 본다면 이미 해결되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시민이 자유민주주의적 제 권리를 누리는 것, 형식적 민주주의인 자유민주주의가 실현되는 것을 과제라고 본다면 이 또한 웬만큼은 해결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고문이 없어졌고, 정보기관에 의한 통치가 없어졌으며, 공명선거가 실시되고 있다. 그리고 자유민주주의 헌법과 법률에 따라 나라가 통치되고 있다. 이명박 정권을 자본독재라고 부르고 있지만 군사독재 때처럼 파쇼통치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4월혁명이 제기한 과제는 자유민주주의의 실현 그 이상의 것이고 또 그것과 다른 것이다. 4월혁명은 “민주주의와 진정한 민족해방 실현을 위한 미완성의 민중혁명, 학생에 의한 대리혁명”이었다. 박현채는 “4.19는 민주주의와 진정한 민족해방의 실현을 위한 미완의 민중혁명이었으며, 민중 자신이 아닌 학생에 의한 대리혁명이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민중적 요구에 기초하면서도 민중 자신에 의해 주도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라고 4월혁명을 정의했다. ‘4월 민주혁명과 민족사의 방향’, “4월 혁명론” 한길사,1983. pp45~59.이 글에서 박현채는 민중이 정권의 교체를 실현한 것과 함께, 광범한 혁신세력의 대두와 노조의 민주화를 위한 노력 및 자주적 통일 문제의 제기 등 민중의 정치참여가 활발했던 것과, 사회적 불균형의 원인으로 된 매판적 부정축재자에 대한 환수 문제를 제기하고 부분적으로나마 실현시킨 것 등을 민중적 요구의 제기와 그 실현으로서 높이 평가하고 있다.
 민중은 자유민주주의를 넘어서는 “진정한” 민주주의 또는 “실질적” 민주주의를 요구했다. 이는 이 시기의 교원노조, 은행노조, 언론노조 등 민주노조운동으로 또 혁신정당 운동으로 표현되었다. 이는 또 짧은 기간에 수없이 많은 진보적 서적들이 간행되고 판매되고 읽혀졌던 데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이와 더불어 4월혁명 기간에 통일운동과 민족자주화 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났다. 중립화 통일론을 비롯한 통일논의가 활성화되었고, 민족자주통일중앙협의회가 만들어졌고, 학생들이 통일투쟁으로 떨쳐나섰다. 그리고 일반대중들이 이에 적극 참여했다. 한미경제협정을 반대하는 투쟁이 전개되었으며, 원조경제를 탈피하고 자립적으로 민족경제를 발전시키자는 노력이 시작되었다. “장면 정권은 경제제일주의 정책을 써서 민생을 하루속히 도탄에서 건져낸다. 남북통일을 하루속히 완수해서 막힌 담을 헐어버린다는 찬란한 약속들을 쏟아냈다.”, 강원룡, ‘민주혁명의 드라마 - 4월혁명 일주년을 맞이하여, 기독교사상 vol.5 no.4, 대한기독교서회,1961.  한편, 60년 11월 28일 미 국가안보회의가 작성한 대한정책 보고서 중에는 “미국의 안보이익과 일치하는 조건의 한국통일을 추진하고, 정치사회개발을 위하여 지도자들이 자유세계의 원칙과 부합하는 국가목표를 세워, 특히 학생들과 지식층 그리고 노동운동가들 사이에 점증하는 민족주의 의식을 개혁과 개발계획에 대한 지지로 연결시킴으로써, 그들이 맑시즘 혹은 중립주의로 경도되지 않도록 하는 것 등이 포함되어 있다.”,  이재봉, ’4월혁명과 미국의 개입‘, 조선대 사회과학연구 95 pp73~96. 미국과 장면 정권의 이러한 움직임은 모두 민중의 압박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렇게 볼 때 4월혁명은 당시 신식민주의 지배하에 있던 제3세계 나라들이 안고 있던 공통의 과제인 ‘민족해방민중민주주의’ 혁명과 맥을 같이했다. 이 혁명의 주체는 부르주아계급이 아니라 민중이었으며, 혁명의 목표는 근대화이되 근대 자본주의 사회를 건설하는 데 있지 않았다.
  하지만 이 혁명은 5.16 군사쿠데타에 의해 전복되었다. 그리고 비자본주의적 사회를 건설하려는 민중의 혁명적 지향을 압살하고 신식민주의 지배 하에서 근대 부르주아 사회를 건설하는 반민중적 지향이 식민지적으로 예속된 국가에 의해 위로부터 부과되었다.“제2차 세계대전 후 신흥독립국의 발전의 길은, 일단 가능성으로서는, 크게 비자본주의적 길과 자본주의적 발전의 길 두 가지로 나타났다. 이는 물론 민족해방투쟁의 과정과 그 이후에 있어 국내의 계급(계층)적 세력관계 및 제국주의에 의한 지배`종속(혹은 그 반대로 사회주의권의 지원)의 정도 등에 따라 차별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었다.” 박동철, ‘5.16정권과 1960년대  자본축적과정’, “한국자본주의 분석”(양우진`홍장표 외), 일빛, 1991. p33. 
 그리고 이러한 반혁명을 거꾸로 혁명이라고 부르도록 강요되었다. 

   그리고 나서 반세기가 지났다. 당시 강력하게 제기되었던 민족자주와 통일 요구는 아직 성취되지 못했다. 반면에 근대 부르주아 사회는 웬만큼 실현되었다. 그래서 민주화와 산업화가 둘 다 성공했다고 부르주아들은 자화자찬했다. 이를 발판으로 이제 이명박 정권은 선진국 대열에 들어서는 것을 국정목표로 삼고 있다. 하지만 그런 자화자찬이 상당한 동의를 얻고, 산업화의 설계․추진자로서 박정희가 긍정적으로 재평가되고, 선진화가 국정의 최고 목표가 된 것은 이명박 정권이 처음이 아니다. 지배계급 전체가 민간민주정부가 집권한 이후부터 그런 방향으로 움직여 왔다.
 그렇다면 그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4월혁명은 이미 완결된 것인가? 4월혁명의 과제를 민주화에 국한시키고, 또 그것을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실현에 국한시키며, 또 이를 가능하게 할 부르주아적 근대화 즉 자본주의 사회 건설로 등치시킨다면 그 같은 논리가 성립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4월혁명의 과제를 민족의 해방 즉 민족자주와 통일 및 그것과 결부되어 민중의 민주주의를 실현 -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부르주아적 근대화와는 다른 형태의 민중적 근대화 - 하는 것이라고 파악한다면, 4월혁명은 전적으로 미완의 상태에 있는 것이 된다. 


<2> 성찰의 지점: 4월혁명은 왜 여전히 미완성에 머무르고 있는가?  

  세계는 여전히 미 제국주의의 패권적 지배하에 있다. 그리고 이 땅에는 그들과 결탁한 친미 부르주아 세력들이 4.19 이후 오랫동안 무단적 파쇼통치를 해 왔다. 또 이들이 한국사회를 부르주아적 근대사회로 만들기 위해 즉 산업화와 민주화를 위해 치열하게 노력해 왔다. 그리고 지금도 그들은 선진자본주의 사회로 도약하는 것을 비전으로 삼고 치열하게 노력하 고 있다.
  이처럼 4월혁명이 완성되지 못한 것은 미 제국주의와 친미 매판세력들이 자신들이 추구한 반혁명이 성공하도록 자본주의적 근대화라는 대안의 목표를 설정하고, 그 목표 달성을 위해 선 경제건설 후 통일 전략을 수립하고, 그런 비전과 전략을 경제적`정치적`군사적 힘으로 강력히 추진, 관철시켰기 때문이다. 미 제국주의와 매판세력이 이런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그 결과 남한의 친미세력이 여전히 근대화하지 못한 “매판파쇼” 세력에 지나지 않는 상태에 머물렀다면 그 지배질서는 붕괴되고 말았을 것이다. 
  그와 더불어 4월혁명이 여전히 미완의 상태에 머무르고 있는 까닭은 주체적 측면에서도 부족했기 때문임을 겸허하게 인정해야 한다. 세상살이에 완전무오류라든가 완전무결이란 없기 때문이다. 

  혁명운동은 세계 전반적으로 자본의 위기를 과대평가하고 자본이 지닌 역동성을 과소평가했다. 자본주의는 20세기 후반 생산성 향상분만큼 임금을 올려주는 케인즈주의 분배로 국내시장을 확대하고 GATT에 의한 관세인하로써 국제시장을 확대하는 방식으로 축적을 지속했다. 이로써 선진자본주의 나라들 안에서 혁명운동이 쇠약해지고 개량주의가 우세해졌다.  다른 한편 무역과 원조로 제3세계 토착 부르주아를 지원(?)함으로써 신식민주의 지배를 받는 나라들에서 민중주도의 민족해방혁명을 저지했다. 쿠바혁명 직후 등장한 케네디 정권의 ‘진보를 위한 동맹’은 그런 개량의 의미를 가졌다. 
  이어, 자본주의는 30년 동안의 전후 황금기를 마친 이후 새롭게 스테그플레이션이라는 축적위기를 맞았으며, 이 때 신자유주의와 그것의 한 축인 세계화로써 이를 돌파해 왔다. 그 결과 시장은 전지구적으로 확대되어 명실상부하게 세계시장으로 되었다. 이 과정에서 봉건적, 반봉건적, 소생산자적 등 전근대적인 것들이 많이 타파되었다. 그리고 제3세계 각 나라들은 세계시장에 더 전면적으로 더 깊숙하게 종속적으로 통합되었다. 그리고 이렇게 세계시장으로 깊이 통합됨으로 인해 그 나라들에서 봉건세력의 지배는 약화 또는 해체되어 자본가계급의 지배로 대체되었다. 그리고 제국주의의 생산자본의 침투로 생산의 세계화가 이루어짐으로써 이 나라들 안에서 활동하는 자본은 생산적인 기초가 없는 매판자본이 아니라 외래자본이거나 선진자본주의에 비해 낮은 생산력을 가진 종속적 자본으로  되었다. 그리고 이런 종속 상태에서 자본의 운동이 이루어져 왔다.
  물론 그 자본운동은 종속으로 인하여 “저발전 - 생산력 수준도 낮고 성장의 속도도 느린 - 의 발전”이거나 잘해야 “종속적 발전”이었으며, 탈종속은 거의 없었다. 여하튼 그것은 봉건적인 것을 온존하는 것과는 달랐다. 차라리 대책 없이 봉건적인 것을 포함하여 전근대적인 것 일체를 해체하는 엔클로저 운동에 가까웠다. 그리고 이렇게 하여 창출된 프롤레타리아들이 자본주의가 발전하는 데 유리한 조건을 제공했다. 서양의 역사에서도 프롤레타리아의 창출이야말로 자본주의 생성에서 첫째가는 조건이었다. 마찬가지로 이 제3세계 나라들에서도 광범한 프롤레타리아가 창출됨으로써 낮은 생산력과 저임금을 결합하여 노동자를 초과착취하는 종속적 자본주의가 발전하게 되었다. 이런 모습은 오늘날 세계의 예외가 아니라 보편적 양상으로 되고 있다. 중남미의 멕시코나 브라질, 동아시아의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 서아시아의 인도와 스리랑카, 아프리카의 남아공과 나이지리아가 그런 신흥자본주의의 대표적 나라들이다. 

  이런 변화는 몇 가지 지점을 성찰하게 해 준다. 한국 혁명운동 안에서 자본주의의 위기와 약점을 과대하게 보면서 반대로 자본주의가 개량으로 돌파하는 능력을 과소하게 보는 파국론적 경향이 없었는가 하는 점이다. 이와 관련, ‘전반적 위기의 3단계’ 운운하며 “1957년 이후에 자본주의 체제가 지속적으로 몰락하고 해체되는 시대에 접어들었다”고 주장하는 이론이 한 때 유행했던 것을 상기하게 된다.
  반면, 자본이 위기를 극복하는 방법 중의 하나가 테러독재라면 다른 하나는 개량주의인데, 운동은 그 개량(물질적, 정치적)의 능력을 과소평가했다. 전투적 노동운동의 도전으로 유혈적 포드주의 축적체제가 위기에 처했을 때 독점자본은 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물질적 개량을 제공하고 포섭하는 방식으로 이를 극복했다. 또 군사파시즘의 통치능력이 한계에 이르러 혁명적 정세가 조성되었을 때 내외 지배세력은 이것이 민중혁명으로 귀결되지 못하도록 민주화 이행이라는 수동혁명으로써 효과적으로 봉쇄했다. 
 
  이런 오류의 밑바탕에는 식민지나 종속을 봉건성과 전근대성의 온존과 등치시킨 인식상의 오류가 가로놓여 있었다. 안병직 교수의 식민지 근대화론은 전혀 과학적이지 못한 이데올로기이지만 왜 그런 이론이 목소리를 내게 되었는지를 성찰해 보아야 한다. 식민지가 근대화를 억제하는 경향이 있지만 그것은 장기적이고 본질적인 경향이 아니다. 자본의 침투력이 아직 전근대 사회를 해체시키고 직접 지배할 정도에 이르지 못한 상태에서 식민세력은 토착 지배세력인 봉건세력과 손을 잡고 기존질서를 온존시키며, 그럼으로써 토착자본의 발전을 억제시킨다. 이것이 구 식민주의 지배방식이었다. 지금도 필리핀 같은 데서 이런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자본은 본질적으로 자기 이외의 모든 것을 해체시키고 자본관계로 이를 대체하고자 한다. 60년대 이후 신식민주의 지배방식 하에서, 그리고 80년대 이후 신국제분업이 이루어지면서 이런 본질적 경향이 관철되어 왔다. 
  요컨대 한국의 혁명운동이 국내 지배세력을 반(半)봉건 매판세력이라고 규정하면서 도저히 근대화하지 못하는 무능하고 부패한 존재로 고정적으로 인식해 오지 않았는가? 지금의 한국 초국적자본들을 제국주의 독점자본의 외연적 확장에 불과한 매판자본이라고 할 수 있는가? 한국사회를 반봉건적 관계가 지배적인 사회라고 할 수 있는가? 이런 인식으로는 도저히 현실을 과학적으로 포착할 수 없다. 이런 고식적 인식에 기초하여 실천할 때 존재하지 않는 대상을 향해 투쟁하거나 존재하는 대상을 인식에서 놓치게 되어, 결국 민중에 의한 국내 독점자본의 전유가 아니라 그것의 합리화 즉 봉건성, 매판성, 전근대성이라는 천민적 요소의 탈각과 건전한 독점자본으로의 정상화를 요구하는 데로 귀결되고 만다.   
  
3> 혁신의 지점: 종래의 민족해방민중민주주의 혁명관은 여전히 유효한가?  

  4월혁명의 과제는 민족해방민중민주주의 혁명이었다. 그 이후 50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리고 그 과제는 여전히 미완성의 상태에 있다. 그런데 현실은 많이 바뀌었다. 그런데도 그것이 여전히 우리 사회운동, 사회혁명의 과제로 되어야 하는가?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그 혁명은 여전히 인간해방, 인류진보를 위해 절실하게 필요하다. 그러나 21세기라는 시점에서 볼 때, 종래의 내용으로는 인간해방과 인류진보를 담보하지 못한다. 그것은 대내적으로 사회주의 지향을 분명히 해야 하며, 대외적으로 노동자계급의 국제주의에 의해 보완되어야만 한다. 그럴 때에만 혁명운동으로서 역할을 할 수 있다.   

  왜 민족해방민중민주주의 혁명은 여전히 절실한가? 구 소련이 붕괴되고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기승을 부리던 당시 민족주의와 민족적인 것들이 시대에 뒤떨어진 것 또는 진보에 역행하는 것으로 폄하되는 경향이 한때 있었다. 대표적인 예로 임지현은 “민족주의는 반역이다: 신화와 허무의 민족주의 담론을 넘어서”(소나무, 1999)라는 제목의 책을 냈다.
 세계적인 것은 곧 긍정적이라고 하면서! 진보적 지식인들 사이에서는 그렇게까지는 아닐지라도 세계화 시대에 맞게 민족주의를 추구해야 한다며 ‘열린 민족주의’로 변해야 한다는 주장이 많았다.
  이것들은 사실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관철시키고자 하는 제국주의의 이데올로기적인 공세였다. 그리고 그런 공세의 가장 중심에는 민족의 실체 자체를 부정하는 이데올로기가 자리잡고 있었다. 베네딕트 엔더슨의 말처럼 “민족이란 환상 공동체에 불과하다”는 것이었다. 만약 민족이 실체가 없는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면 민족주의니 민족해방이니 민족적인 가치니 하는 것들을 쫓는 것은 신기루를 쫓는 것이나 마찬가지가 된다. 그러나 세계화 공세가 주춤하면서 이런 이데올로기 공세도 다소 주춤해졌다.
  20세기에 이르러서부터 자본주의는 제국주의 단계에 접어들었고, 제국주의 나라들의 영토분할이 완성되는 시점에 이르면서 세계 모든 나라는, 몇몇 예외를 제하고 모두, 제국주의 모국이거나 식민지, 반식민지, 종속국으로 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러한 구조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제국주의 상호간의 경쟁에서 승리하여 패권국이 되고 제국주의의 식민지 지배 방식이 신식민주의로 바뀐 이후에도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신식민주의 지배 방식 하에서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관철된 결과 제3세계 나라들은  경제적, 정치적으로 재식민지화 되어 제국주의 나라들에게 더욱 심하게 예속 또는 종속되기에 이르렀다.
  이처럼 민족해방의 과제는 제3세계 나라들에서는 여전히 매우 절박한 과제이다. 한 때 반세계화 투쟁을 상징했던 멕시코의 사파티스타가 ‘민족해방군’ 이라는 명칭을 내걸고 있는 것이나 신자유주의 세계화로 매우 혹독하게 수탈당해 온 중남미 많은 나라들이 미 제국주의의 지배에서 해방되고자 미국을 배제한 국가연합을 추진하고 있는 것을 보면 이를 확인할 수 있다. 그들은 5백년에 걸친 식민지 지배와 예속으로부터의 해방을 시도하고 있다.  


   그러면 어째서 종래의 민족해방민중민주주의 혁명관으로는 충분하지 못한가?
첫째, 종래의 혁명관에는 정치경제 체제 문제가 매판적/파쇼적이 아니라는 것밖에는 확정되어 있지 않다. 즉 자주적 민주정부를 세우고 자립적 민족경제를 건설하며 평화통일을 추구하는 것이 과제로 제출되지만, 이 때 자주적이라는 점을 제하고는 민주주의는 어떤 민주주의인지 또 그 민족경제의 사회적 형태는 무엇인가가 분명하지 않다. 그리하여 혁명은 사회주의적인 것과 자본주의적인 것의 혼합으로서의 근대화를 의미하게 되며, 이는 쉽게 자본주의적인 것이 지배적인 근대화로 변질되도록 허용된다.
  근대사회는 경제적으로 기계제 대공업에 기초한 사회이다. 그리고 이런 근대적 경제와 생산은 자본주의적으로나 사회주의적으로나 둘 중의 하나로밖에 운영될 수 없다. 봉건적으로 또는 노예적으로는 운영될 수 없을 뿐더러 자본주의도 사회주의도 아닌 제3의 것으로, 예컨대 ‘국가주의 체제’로 될 수도 없다. 그 국가가 자본가계급의 국가인지 노동자계급의 국가인지에 따라 그 성격이 국가자본주의적 또는 국가사회주의적으로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사회주의 지향을 분명히 하지 않으면 이 혁명은 조만간 부르주아적 민족민주 혁명으로 변질되면서 배반당하게 된다. 그러므로 민족해방민중민주주의 혁명은 비자본주의적인 혼합경제를 실시하더라도 그 지향하는 방향을 애매하게 하지 않고 노동자계급이 지도적인 지위를 차지하는 사회주의 사회의 건설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 참고로 하면, 베네수엘라, 니카라과, 볼리비아, 에콰도르 등 중남미 나라들은 최근 제국주의로부터의 해방과 낮은 단계의 사회주의 건설을 병행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둘째, 종래의 민족해방민중민주주의 혁명관은 한 민족 단위의 혁명으로 그 전망이 제한되어 있다. 그리고 여타의 세계 여러 나라 민중들은 자기나라 혁명의 예비군으로 간주되어 왔다. 오늘날에 있어서도 혁명에서 국가권력의 쟁취는 필수적이고 이는 한 민족국가를 단위로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오늘날의 조건에서 그와 같은 일국적 사고에 입각해서는 혁명을 성공시키기 어렵다. 정치권력의 장악까지는 비록 일국적으로 이룬다 하더라도 사회경제적 혁명은 일국적인 틀 안에 국한되어서는 성공하기 매우 어렵다. 세계시장으로부터 배제되면서 국제분업의 혜택을 누릴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때 민족해방 국가는 장기간 고난의 행군을 감수하든 - 이는 긍정적 상태라고 보기 어렵다. - 세계시장에의 동참을 위해 자본주의적 요소를 확대하는 ‘개혁’을 하든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하게 된다. 이는 작은 나라의 경우나 중국 같이 큰 나라의 경우나 마찬가지이다. 
  세계시장에 참여하지 않고 민족해방 국가들끼리 긴밀하게 협력하면 고립을 탈피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면 비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할 수 있지 않을까? 그 동안에도 세계시장에서 제국주의 초국적자본에 의해 일방적으로 수탈당하지 않으려고 약소국들 간의 협력을 도모하는 국제협력체들이 만들어져 왔다. 그러나 그 국제교류/협력이 자본주의 시장 원리에 입각하는 한 지역시장 내의 교류만 허용하고 세계시장의 교류를 배제할 수 없을 뿐 아니라 - 이럴 경우 1, 2차 세계대전에서 보듯이 블록 간 전쟁이 벌어진다. - 그 지역 내 교류를 통해서도 나라 간에 불균등한 발전이 나타나게 된다. 그래서 그 가운데 앞선 자본주의 나라들이 지역의 패권을 행사하면서 아(亞)제국주의로 나아가는 경향을 보이게 된다. 그러므로 반제 민족자주적 국가들 간의 지역적(regional) 협력은, 그 협력이 시장원리에 입각하는 한 제한적인 해결책에 지나지 못한다.   
 
  민족해방 국가가 지속가능하려면 무엇보다 경제적으로 지속가능해야 하는데, 이는 시장원리에 입각한 국제교류에 의해서는 확보되기 어렵다. 중국과 북한의 관계만 보더라도 혈맹관계임을 과시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그 교류가 매우 제한적이었다. 그러므로 민족해방민중민주주의 혁명은 대외적으로 시장교환 방식이 아니라 비자본주의적 방식 즉 사회주의적 방식의 국제협력으로 보완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대내적으로 자본의 침투에 의해 시장이 확대되어 자본주의로 퇴화하는 것을 막을 수 있고, 대외적으로 제국주의나 아제국주의 나라에 예속되어 수탈당하지 않을 수 있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우리 아메리카 인민들을 위한 볼리바리안 동맹(ALBA)’와 같이 비시장적, 사회주의적 원리에 입각한 국제교류/협력뿐이다. 그러므로 민족해방민중민주주의 혁명의 충분조건으로서 노동자계급의 사회주의적 국제주의가 반드시 포함되지 않으면 안 된다. 

 
<4> 4월 혁명 완성을 위한 기본적 실천 과제(1): 미 제국주의 패권의 퇴조와 반제국주의 민족해방(자주/통일)    

  요즈음 미 제국주의의 유일패권이 무너지고 있다고 말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 그들 대부분이 달러 패권의 붕괴를 그 이유로 들고 있다. “달러가 사라진 세계”라는 제목의 책이 시중에서 베스트 셀러가 되고 있다. 통화 패권 없이 경제 패권 없고, 경제 패권이 없이 정치`군사적 패권도 유지될 수 없음은 긴 설명을 요하지 않는다. 그러나 미 제국주의의 유일패권이 무너져 내리는 문제는 경제적 측면으로만 환원될 수 없다. 경제적 패권의 상실로 정치군사적 패권이 상실되기도 하지만 정치군사적 패권의 상실이 경제적 패권의 상실을 가져오기도 하는 것이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미 제국주의의 퇴조에 대해 그 경제적 측면에 대해서는 익히 알려져 있다. 이번에 진행되고 있는 미 제국주의 패권의 위기는 자본주의 그 자체의 위기와 병행되고 있다. 이렇게 심각한 상황이므로 새로운 패권자가 등장하지 못할 가능성 뿐 아니라 혼돈상태 속의 혁명으로 제국주의 자체가 유지되지 못하는 상태가 도래할 가능성도 있다. 이런 점에서 다극화를 대세로 보는 것은 지배계급의 주관적 희망에 불과할 수도 있다.. 
  미 제국주의 패권의 위기는 무모한 전쟁정책으로 인해 앞당겨졌다. 미국을 정점으로 하는 세계자본주의의 위기는 새천년에 접어들면서 IT거품 붕괴라는 형태로 가시화된 바 있다. 당시 미국경제는 성장률이 2분기(1/4분기, 3/4분기)에 걸쳐 마이너스를 보였다. 그리고 9.11 사태가 터졌다. 부시 정권은 이를 계기로 ‘테러와의 전쟁’에 나섰고 그 틈에 경기가 일시적으로 회복될 수 있었다. 또 그런 회복 분위기 속에 부동산투기 거품, 금융투기 거품, 주식투기 거품 등이 조성될 수 있었다. 즉 이러한 거품들은 저금리와 규제완화 등 경제정책의 작용만이 아니라 미 제국주의가 아프가니스탄, 이라크를 비롯하여 중동지역을 정치`군사적으로 지배하여 민주화라는 이름으로 자본주의화 함으로써, 나아가 세계 전체를 그렇게 만들어 나감으로써, 더 많은 투자기회와 이윤을 가져다줄 것이라는 기대 위에 성립한 것이었다. 그러했기 때문에 막대한 군비지출로 인한 재정적자와 무역적자라는 쌍둥이 적자에도 불구하고 유휴자본이 미국에 쇄도함으로써 달러화는 강세를 유지할 수 있었고, 미국경제는 가공(fictious)의 소득에 의거한 소비를 지속하여 세계 자본주의의 기관차 역할을 계속할 수 있었다. 

  그러나 미 제국주의의 부도덕한 ‘테러와의 전쟁’은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민중들의 저항으로 난관에 부딪쳤다. 아프가니스탄에서는 패배하고 있고 이라크에서는 고전하고 있다. 그 모든 첨단의 무기에도 불구하고 빈약한 무기밖에 갖추지 못하고 있는 민중들의 게릴라 전투와 자살공격에 의해 그처럼 패배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세계의 다른 부르주아들의 미국의 달러화가 계속 강세를 유지할 것이라는 기대를 약화시켰고, 2007년 경에 이미 거품 붕괴가 시작되고 있었다. 말하자면 테러와의 전쟁 6년 만에 군사적 실패가 경제의 실패로 귀결된 것이다.
  이렇게 미 제국주의 패권의 몰락은 경제에서의 실패와 군사에서의 실패가 겹쳐져서 진행되고 있다. 그 파장이 어디까지 미칠지는 한마디로 단정하기 어렵다. 이런 정세 하에서는 객관적 예측도 필요하지만 의지의 낙관이 못지않게 중요하다. 미 제국주의의 패권이 흔들리고 있다면, 수동적으로 기다리기만 할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그것을 무너뜨리기 위해 떨쳐나서야 한다. 현 시기 민족해방민중민주주의 투쟁은 이 과제에 힘을 집중해야 한다.

  우리나라 혁명운동 안에서 민족해방파니 민중민주파니 하는 정파들이 있어 왔다. 그러나 그 둘은 원래 결코 별개의 정파로 나뉘어질 수 없는 것들이다. 한국사회의 혁명 과제가 바로 그 둘을 긴밀하게 하나로 결합하고 통일한 민족해방민중민주주의 혁명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처럼 두 블럭으로 나누어진 데는 반제국주의 민족해방을 외면하고도 민중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오류와, 민족해방을 하려면 민중민주주의를 부르주아 민주주의로 제한해야 한다는 오류가 맞물려 있었다. 그 결과 두 조류 모두 실천적으로 개량화되었고 한미 FTA반대 투쟁은 노무현 정권의 교섭력을 높여주는 압력행사로 전락하고 말았고, 평택미군기지 이전반대 투쟁은 해당 지역 주민들의 생존권 투쟁으로 수행되다가 유야무야되고 말았다.
, 민족해방민중민주주의 혁명투쟁은 무기력화되었다. 혁명운동 전반이 이처럼 개량화, 무기력화되면서 반제 민족해방 투쟁과제 또한 실종되거나 지지부진하게 되었다. 이 정파적 편향을 혁신해야만 반제투쟁을 활성화시킬 수 있다.
 
  지금 조`미간에 평화협정 체결문제가 의제에 오르고 있다. 남한의 혁명운동은 이 정세 속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 일각에서는 주한미군 철수를 평화협정 체결투쟁과 결부시키자며 분투하고 있다. 그러한 요구는 물론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지금은 군사적 침략자로서의 미국과 더불어 경제적 침략자로서의 미 제국주의와 나아가 문화적․정신적 침략자로서의 미 제국주의에 이르기까지 미 제국주의에 대한 총체적 반대가 요구되고 있다. 그럴 때라야 군사적 반대도 더 넓고 더 강한 민중의 지지와 참여를 이끌어 낼 수 있다.

  그와 더불어 반제 민족해방에 있어서 자주화 과제와 조국통일 과제를 밀접하게 결합하여 수행하는 것이 절실하게 요구된다. 미 제국주의는 남한 민중을 신식민주의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존재인 동시에 전 민족적으로 분할․분단함으로써 한편으로는 남한을 지배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북한 사회주의를 압박하고 있다. 이처럼 남한사회를 예속시키고 자주성을 유린하는 적도 미 제국주의이고, 북한 압박하는 것도 미 제국주의이며, 조국통일을 가로막는 적도 역시 미 제국주의이다. 그러므로 남북을 망라한 한반도 전체에서 남북의 민중이 굳게 단결하여 미제를 축출하고 조국을 통일해야만 민족과 민중이 미 제국주의로부터 해방된다. 이런 점에서 반제 투쟁 없는 통일운동은 민족동질성을 되살리는 의미가 크기는 해도 주된 적을 공략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한계가 뚜렷하다. 그러므로 반제 자주화와 조국통일 그 두 과제를 긴밀하게 하나로 합쳐서 미 제국주의를 겨냥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민족해방의 의미는 남한의 반제 민족자주화만을 뜻하지 않고 전 민족적 차원에서의 민족의 자주와 통일로 이해되어야 한다.
      
  <5> 4월 혁명 완성을 위한 기본적 실천 과제(2): 전 지구적 자본주의의 위기와 반자본주의 사회변혁(사회주의 지향의 비자본주의 사회로 바꾸는) 

  자본주의는 위기를 달고 다니는 체제이다. 따라서 위기를 과장하여 붕괴를 전망하거나 붕괴를 곧 변혁으로 이해해서 안 된다는 것은 변혁이론의 상식에 속한다. 사실 좌파 이론가들이 전반적 위기의 제3단계론을 펴면서 세계 자본주의 체제 붕괴론을 폈지만 막상 붕괴된 것은 세계 자본주의 체제가 아니라 세계 사회주의 체제였다.
  반면 우익 이론가들은 현실사회주의 체제가 붕괴한 이후 “역사는 끝났다”고 하면서 자본주의는 영원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뒤이어 미국 자본주의가 IT거품으로 일시적으로 호황의 조짐을 보이자 마치 1920년대에 그러했던 것처럼 오늘날의 “신자본주의에는 불황은 없다”며 세계를 향해 미국을 따라 배우라고 큰소리를 쳤다. 그게 1990년대의 풍경이었다. 그러나 이런 허장성세는 고작 몇 년도 가지 못했다. 1997~98년 사이에 전개된 동아시아 금융공황은 자본주의의 위기가 거품이 붕괴된 일본 같은 나라의 예외적인 현상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었다. 이 위기는 자본주의의 희망이라고 이야기되던 NICs 나라들에서 일어난 것이었다. 그리고 이 때 드러난 위기는 러시아, 브라질 등 전 세계로 확산되다가 새천년이 될 때를 즈음하여 세계 자본주의의 기관차 역할을 하던 미국 자본주의에서 IT거품 붕괴에 따른 위기를 만들어 냈다. 
  유명한 세계체제론 학자인 월러스틴은 일찌기 사회주의의 붕괴 직후 이 사태는 필히 자본주의의 붕괴를 가져올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은 바 있다. 이러한 비관적 전망을 입증하기라도 하듯 뉴 밀레니엄이라는 팡파레가 그치기도 전에 전 지구적 자본주의의 기관차에서 축적엔진이 작동을 멈추었다. 이 또한 예견되었던 일이다. 다수의 마르크스 분석가들은 1990년대 중반에 자본주의가 ‘만성적 위기’에 처해 있다고 진단하면서 그것이 언제 대폭발로 표현될지가 시간문제일 뿐이라고 말해 왔던 것이다.

  하지만 새천년의 IT거품 붕괴에 따른 위기는 9.11사태라는 우연적(?) 사건에 의해 유예되었다. 미 제국주의는 세계를 향해 폭력을 휘두를 구실을 갖게 되었다. 나라는 전쟁체제로 들어갔고 주가는 회복되었다. 월가의 주가는 군산복합체의 이윤만이 아니라 초국적 독점자본들이 전 세계에서 착취․수탈하는 이윤에 의존하며, 미국의 침략정책은 군산복합체의 이윤과 함께 석유자본을 비롯한 초국적자본들의 이윤을 증대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여 달러 강세와 주식거품이 조성되었다. 이와 함께 부시정권은 미 제국주의의 정치․경제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유력한 방도로서 거품에 의한 축적을 추구했다. 서민들에게 “내 집을 갖는 꿈”이라는 아메리칸 드림을 부추기면서 주택구매 붐을 조장했다.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금융거품도 조장했다. 금융거품을 확대하기 위해 규제를 풀었고 파생금융상품이라는 투기를 자유화했다.
  이러한 거품경제는 언젠가는 터질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생산과 시설의 과잉을 해소하지 못할 때 획득된 자본이 투자로 전환하지 못하고 즉 축적이 일어나지 못하고 부동하게 되며 이 과잉자본의 출구는 자본수출이 아니면 투기이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세계화로 인해 이미 전 지구적으로 생산과 투자의 과잉이 만들어지고 있었기 때문에 과잉자본을 다른 나라로 수출하는 것을 통해 해소하는 출로는 이미 한계점에 달해 있었다. 그래서 투기가 기승을 부리도록 허용하지 않을 수 없었고 그것이 위기를 키웠던 것이다.   
 그리하여 이번 공황은 대공황이 되었다. 이번 공황은 1930년대 대공황 이래 최대이고 아마도 그보다 폭과 깊이가 더 큰, 사상 초유의 대공황이 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자본은 경제적 수단만이 아니라 정치`군사적인 폭력수단을 적극 사용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자본주의는 오늘날 금융독점 단계에 도달해 있다. 금융독점자본은 생산에 기여하는 바 없이 잉여를 독차지한다. 그런 점에서 오늘날의 자본주의는 부도덕할 뿐 아니라 심하게 부패해 있다. 이때부터 자본주의의 성격은 진보적인 측면보다 반동적인 측면이 주된 측면이 된다. 나아가 자본주의는 그러한 금융자본의 탐욕을 충족시키기 위해 식민지 쟁탈전을 벌이게 됨으로써 야만성을 드러내게 되었다. 그러한 야만성은 두 차례의 세계 대전과 여러 차례의 식민지 침략전쟁로 거듭 확증되었다. 그리하여 21세기에 접어들면서 자본주의는 인류 역사발전에 비추어 그 정당성이 소진되었다.
  사실, 자본주의의 정당성은 출발부터 제한적이었다. 왜냐하면 봉건사회의 신분적 차별과 낮은 생산력을 타파하면서 자유, 평등, 동포애 등 근대적 가치를 표방했지만 노동자`민중에게는 실질적으로 그것을 부정하였기 때문이다. 착취와 억압 및 소외가 그 자리를 대신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자본주의는 근대성의 저차(低次)적 형태였다. 부르주아 혁명 시기에 공상적이지만 사회주의 이념이 등장했던 것은 자본주의의 이런 본질적 한계 때문이었다. 자본주의는 봉건제 타파 이후 오로지 생산력을 향상시키고 세계시장을 형성함으로써 민중의 물질적 조건을 개선한다는 점에서만 자신의 정당성을 주장할 수 있었다. 그러나 자본주의가 노쇠해 버린 오늘날 자본주의는 생산력을 발전시키지도 못하고, 세계적으로 노동자`민중의 물질적 삶을 개선시키지도 못하고 있다. 그 대신 갈수록 부패성과 야만성을 심화해 가고 있다. 그러한 정의롭지 못한 모습은 경제대공황을 거치면서 더욱 악화된 모습으로 나타날 것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자본주의를 혁명하는 것은 오늘날 세계의 보편적인 과제가 되었다. 뿐만 아니라 그것은 봉건제를 타파하고 나서 그 다음 단계에 추구해야 하는 과제도 아니게 되었다. 자본주의가 세계화한 오늘날 제3세계에서도 반봉건 혁명이 아니라 반자본 혁명이 기본적인  혁명과제이다. 
   한국사회의 혁명도 이런 세계적 혁명의 일부 - 그 특수성을 가짐에도 불구하고 - 이다. 그러므로 민족해방민중민주주의 혁명에서 반봉건 민주주의를 기본과제로 설정하는 것은 이제 기각되어야 한다. 이제 농민은 노동자계급(빈농), 소소유자 계급(중농)과 자본가계급(부농)으로서 구분지어 파악되어야 하며 뭉뚱그려서 농민으로 일괴암적으로 파악되어서는 안 된다. 중국에서도 토지혁명이 끝나고 사회주의 농업으로 변혁해 나가던 시기에 농민에 대해 이같은 계급적 구분을 했다. 그리고 노동자계급의 지도/주도 하에 소생산자 계급과 단결하여 자본의 독재에 맞서나가야 할 것이다. 즉 노동자를 주력으로 소농민`소생산자 계급과의 동맹에 의한 민중민주주의 통일전선을 형성해야 한다.     
 
 현 단계 한국사회의 혁명은 사회주의를 분명히 지향하지만 반제국주의 민족해방을 우선적으로 한다. 이는 제국주의 지배하에 있는 사회에서 그것이 국내 자본보다 더 큰 규정력을 행사하고 있으며 또 지금 미 제국주의가 추락하고 있는 정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에 대해 혁명적으로 도전할 세력은 노동자계급이고 그와 연합한 소생산자 계급이다. 때로 민족적 양심과 이해관계를 가진 부분이 여기에 가세할 것이며 자본은 독점자본이든 중소자본이든 계급으로서는 여기에 연대․연합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자본과 함께할 것을 기대하여 그 강령을 하향조정하는 것은 무익하다. 비자본주의 혼합경제를 하되 사회주의적인 우클라드가 우위를 차지하는 혼합경제를 추구해야 할 것이다. 정치적으로도 부르주아 민주주의 형태로써는 안 될 것이다. 부르주아 독재를 타파하는 것을 전제로 노동자․민중의 민주주의 형태가 추구되어야 할 것이다.
  반자본의 강령은 일반적으로 최소강령과 최대강령의 두 차원을 포함한다. 이 가운데 최소강령은 변혁적 성격을 갖지 않는다. 그런데 민족해방민중민주주의 혁명에서 반자본 사회변혁이 반제 민족해방과 결합될 때 반자본의 강령은 최대강령이 되지 않고 그 수위가 제한될 것이며 중간적 강령 내지 낮은 수준의 사회주의로의 이행강령의 모습을  띨 것이다
  물론 이러한 급진적 변혁은 주체적 조건이 튼튼하게 확보되어야만 공공연하게 추진될 수 있을 것이다. 여하튼 아직도 반봉건 또는 반(反)매판 민주주의를 목표로 하는 것은 현실의 변화`발전에 너무나 뒤쳐져 있는 것이다. 제국주의의 지배가 불변인 것만 보지 말고 한국사회 내부의 사회적 관계가 변화한 것을 보아야만 한다.  

   여기에서 반제 과제와 반자본 과제의 긴밀한 결합관계를 주목해야 한다. 반제 민족해방과 반자본 노동해방은 하나의 혁명단계를 이루어 긴밀하게 결합, 통일시켜 추진해 나가야 한다. 제국주의는 단순히 민족적인 적이기만 한 것이 아니다. 노동자`민중의 민족적인 적임과 동시에 계급적인 적이다. 국내자본(민족자본으로 존재하는 일부 진보적인 자본을 제하고) 또한 노동자․민중의 계급적인 적인 동시에 민족적인 적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계급적인 이익을 위해 반민족적, 친제국주의적인 쪽으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때로 미 제국주의보다 더 그들의 입장에 선다. 이처럼 제국주의와 자본주의는 민족적, 계급적 양면에서 노동자`민중과 적대하고 있으며 그 둘은 서로 기계적으로가 아니라 유기적으로 밀접하게 결합되어 있다.
  그러므로  반제 민족해방이 반자본 계급해방보다 선차적 또는 일차적이라고 하면서 그 유기적 결합을 간과하고 노동자계급의 계급해방에의 적극성과 민족해방에서의 주도성을 억제할 경우 자주․통일 운동은 동력을 상실하게 된다. 그 한 예가 진보적 부르주아 정권에게 자주․통일 운동의 주도성을 부여하는 것이다. 주력군인 노동자계급을 대표하지 않는 양심적 부르주아 정권이 자주․통일 과제를 주도할 때 투쟁의 동력이 약화되어 지지부진하게 된다. 나아가 동요성으로 인해 실패하게 된다.


<6> 4월 혁명 완성을 위한 기본적 실천 과제(3): 반(反)보수 민중권력 쟁취  

  반제 민족해방과 반자본 사회변혁은 그 과제를 담당할 주체들이 정치세력화하고 정권을 장악할 것을 요구한다. 정권 획득이 혁명의 최고 목표는 아니지만 그것을 우회하고는 혁명을 성공시킬 수 없다. 소련 붕괴 이후 “권력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제기된 바 있다. 그러나 권력을 완전히 우회해서 혁명하기는 어렵다는 쪽으로 점차 정리되고 있다. 혁명은 국가권력에 의해 강제적으로 노동자․민중에게 부과될 수 없다. 그러나 지배계급에게는 그러한 강제가 부과되어야 한다. 이렇게 낡은 권력을 몰아내되 새로운 권력에 의해 강제로 부과되지 않을 때, 즉 ‘노동자․민중의 민주주의’가 실질적으로 구현될 때 노동자․민중은 혁명의 주체로 능동적, 적극적으로 떨쳐나설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민족해방민중민주주의 혁명의 성공을 위해서는 제국주의와 국내 자본의 공동의 집행기관인 현 정치권력의 억압에 맞서 투쟁해야 할 뿐 아니라 반드시 민중권력을 쟁취해야 한다. 이를 위해 노동자`민중이 현존 정치권력을 직접 장악해야 하고 해체시켜야 하며 새로운 형태의 국가기구를 창출해야 한다. 이 때 민중권력의 성격은 무엇이고, 주인은 구체적으로 누구이며, 그 형태는 구체적으로 어떠한가가 문제로 된다.

  이 민중권력은 자주적 민주정부인가? 자주적 민주정부는 흔히 민족민주정부라고 하는 것이다. 이는 부르주아 진보파 또는 소부르주아 급진파가 주인인 권력으로서 노동자와 근로민중이 주인인 권력이 아니다. 따라서 그 자주성은 불철저하고 동요성이 심할 수밖에 없다. 그들의 계급적 이해관계가 민족의 자주성 및 민중의 민주주의와 반드시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이 노동자․민중 쪽으로 견인되고 합쳐질 때 민중권력으로 질적으로 전화될 수 있으나 그러지 못할 때 부르주아 권력으로 퇴화된다.
  그에 비해 민중민주주의 권력은 노동자와 민중에 의거하고 있기 때문에 자주성과 민주성이 철저하고 확고하다. 민중민주주의 권력은 굳이 자주적, 민주적이라는 형용사를 붙이지 않아도 계급적 이해관계상 민족자주적으로 되면서 진정한 민주주의를 추구할 수밖에 없다. 

  민중권력의 주인은 누구인가? 반제/반자본 민족해방민중민주주의 혁명에서의 혁명의 동력이 곧 새로운 권력의 주인이 되는 것이 지극히 당연하다. 그러므로 이 혁명투쟁의 주역인 노동자계급 - 노동자계급은 현존 지배질서 하에서 가장 선진적이면서 제국주의에 의해서나 국내자본에 의해서나 가장 심하게 지배, 착취, 억압, 소외를 강제당하고 있는 계급이기 때문이다. - 이 일차적으로 이 권력의 주인으로 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노동자계급의 뿌리이며 역사적으로 지배계급에 의해 오랫동안 고통을 강요당해 온 소농민(자본가적 부농을 제외한 중농과 빈농)과 노동자계급으로 하향분해를 강요당하고 있는 도시의 소상공인(소부르주아나 그 하층인 도시빈민)들이 노동자계급의 유력한 동맹군으로 된다. 그 다음으로 민족적․민주적 양심을 가진 각계각층의 여러 집단이나 개인들이 이 혁명에 함께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가운데는 물적 부나 권력보다는 지식을 주요한 사회적 자본으로 가지고 있는 여러 부르주아 집단이나 개인들이 양심세력으로서 상대적으로 더 적극적일 것이다. 그에 비해 자본의 이해관계를 직접적으로 대변해야 하는 자본가들은 예외적으로만 이 대열에 동참할 것이다. “자본가와 지주를 나는 결코 장밋빛으로 아름답게 그리지는 않았다. 그러나 여기에서 개인들이 문제로 되는 것은 오직 그들이 경제적 범주의 인격화, 일정한 계급관계와 이해관계의 담당자인 한에서이다. ... 개인은 주관적으로는 아무리 이러한 관계들을 초월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사회적으로는 여전히 그것들의 산물이다.” 이상은 마르크스의 주저인 <자본론> 제1판 서문에 실린 글이다. 
 이런 맥락에서 민중권력은 그 주인의 측면에서 노동자계급의 권력이면서, 근로민중의 권력이고, 나아가 광범위한 민족민주 세력의 권력이라는 3중의 차원을 가진다. 그리고 본질적으로 노동자계급의 권력이고, 내용적으로는 근로민중의 권력이며, 형식적로는 민중민주주의 권력이라는 다층적 성격을 가진다.
  여기에서 청년학생들의 역할과 지위에 관해 성찰해 볼 점이 있다. 종래의 운동에서는 청년학생을 혁명의 주력군으로 파악하고 나아가 일부 지도적 역할을 자임하는 경우까지 있었다. 근대사회에 들어와 사회변혁에서 청년학생의 역할은 매우 높았으며 따라서 이를 적절하게 평가해야 함은 물론이다. 청년학생들의 높은 역할은 식민지 나라들에 있어서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그 유명한 프랑스의 68혁명도 대학생들이 촉발했으며, 학생들이 오히려 노동자들을 이끌었다. 그러나 자본주의가 발달하여 대학이 보통교육이 된 오늘날 학생은 사상적, 정치적인 선각자로서가 아니라 예비노동자인 동시에 정의감이 높은 젊은층이라는 점에서 투쟁의 선전대 또는 선봉대로 그 지위와 역할이 설정되어야 적절할 것이다.  
 
  이 민중권력은 어떤 형태를 지녀야 할까? 그것은 부르주아 의회주의 형태의 권력이 되어서는 안 된다. 부르주아 의회주의 권력체제 하에서는 사법권이나 행정권이 국민의 참여나 통제 바깥에 놓여 있다. 사법권은 사법관료, 행정권은 행정관료의 손에 있다. 언론은 의회 밖의 행정권과 자본의 수중에 있다. 반면 노동자와 근로민중은 자본에 대해 아무런 참여권이나 통제권이 없다. 이런 상태에서는 아무리 의회권력을 차지해도 노동자․민중에게는 실권이 없다. 그러므로 민중권력은 의회와 사법, 행정 모두를 상시적으로 민중이 참여하고 통제하는 형태가 되어야 한다.
  나아가 직접적인 국가권력만이 아니라 공공성이 있는 언론, 교육, 문화와 같은 간접적인 국가권력 즉 사회적`문화적 권력에 있어서도 민중의 참여와 통제가 제도화되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경제에 있어서 사적 자본이든 국가소유 기업이든 경영자나 관료들에 의한 의사결정이 아니라 노동자와 근로민중에 의한 참여와 통제가 실현되어야 한다. 그럼으로써 향후 국가에 있어서나 사회 및 경제에 있어서나 노동자․민중의 자주관리(self-management)와 자기통치(self-government)로 발전해 나아갈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가야 한다.   

<7> 4월 혁명 완성을 위한 기본적 실천과제(4): 노동자 국제주의를 통한 노동자․민중의 국제적 연대․연합의 실현     

   20세기 후반을 거치면서 세계는 명실공히 지구촌이 되었다. 그리고 이로써 자본은 생산력의 발전과 함께 세계시장 형성을 자기의 역사적 임무로 한다는 마르크스의 통찰을 확인시켜 주었다. 자본주의는 세계시장을 형성하면서 또한 그것을 저지, 파괴하는 모순적인 역할을 한다. 이런 모순적 과정으로 세계시장을 형성한다. “그러므로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이 물질적 생산력을 발전시키고 이 생산력에 적합한 세계시장을 창조하기 위한 역사적 수단이라고 한다면,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은 또한 자기의 역사적 과업(임무)과 자기의 사회적 생산관계 사이의 끊임없는 충돌이라고도 할 수 있다.” 마르크스, 자본론 3권(김수행 역), 비봉출판사,  p300.
 문제는 세계가 하나의 시장으로 통합됨으로 인해 전 지구적으로 “만인에 의한 만인의 투쟁 상태”가 되었다는 점이다. 즉 인류적 수준에서 공동체(gemeinschsft)와는 거리가 먼 이익사회(gesellschaft)가 된 것이다. 이것이 결국 지구적 차원에서 경제적으로 불균등한 발전이 일어나면서 크고 작은 전쟁 - 예컨대 화폐전쟁, 무역전쟁 - 을 만들어내고 있을 뿐 아니라 군사적 전쟁을 야기하고 있다. 
  어떤 한 나라의 밖에서 이러한 전쟁 상태가 조성되어 있을 때 그것의 영향은 필연적으로 그와 관계를 맺고 있는 나라들 안으로 침투해 들어오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우리나라의 노동자․민중의 일상적인 삶이나, 민족해방민중민주주의 혁명에 관해서도 이런 외적 조건들과 분리해서 사고하거나 실천할 수 없다. 이 점은 자본주의가 제국주의 단계에 들어서면서 이미 그러했던 것이지만, 새천년으로 넘어오면서 자본주의가 전 지구적으로 확장되고 그 관련이 매우 긴밀해져서 누구의 눈에도 확연하게 뜨일 수 있을 정도로 되었다. 
  그러므로 21세기 세계 현실 속에서 민중의 삶과 실천은 일국적 틀을 상대화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자기 나라의 민족해방을 우선적 임무로 하지만 다른 민족들과의 연대․연합을 동시에 임무로 하지 않으면 안 되기에 이르렀다. 우리나라 반제/반자본 민족해방민중민주주의 혁명은 이미 세계 혁명의 중요한 일부분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마오쯔둥은 이렇게 ‘신민주주의론(1940)’에서 말했다. “그 후 또 하나의 세계혁명, 곧 프롤레타리아 사회주의 세계혁명이 시작되었다. 이러한 혁명은 자본주의국의 프롤레타리아 계급을 주력군으로 하고 식민지`반식민지의 피억압 민족을 동맹군으로 삼고 있다. 피억압 민족 가운데 혁명에 참가하고 있는 계급, 당파, 개인이 어떤 계급, 당파, 개인이든, 또 그들이 그 점을 의식하고 있든 말든, 주관적으로 그 점을 의식하고 있든 말든, 주관적으로 그 점을 이해하고 있는가 어떤가에 무관하게 그들이 제국주의에 반대하고 있다면 프롤레타리아 사회주의 세계혁명의 한 부분이 되고, 그들은 프롤레타리아 사회주의 세계혁명의 동맹군이 된다.” 그러나 제3세계 혁명이 비상하게 고양된 이후 피억압민족의 민족해방운동은 세계혁명의 주요 동력으로 발전했다. 
 따라서 다른 나라의 노동자`민중이 우리나라 혁명의 예비군 또는 국제적 지원역량이 될 것을 요구하는 동시에 우리나라 노동자․민중이 기꺼이 세계 다른 나라 혁명의 예비군 또는 지원역량으로 다가가는 것이 그 임무로 된다.
 
  이러한 임무는 어떻게 실천할 수 있는가? 열린 민족주의로 할 수 있는가? 지금의 역사발전 단계는 무계급사회가 아니라 계급사회이다. 따라서 사회의 제반 문제들이 계급적 이해관계라는 프리즘을 통하여 파악되고 평가된다. 따라서 한 민족과 다른 민족의 관계에 있어서도 자본가계급은 자본축적의 경쟁자라는 이해관계에 입각해서 서로 관계하게 된다. 그러한 한 그 관계는 서로 싸우는 형제들의 관계일지언정 결코 서로 돕는 형제들의 관계로 될 수 없다.
  소부르주아 계급은 자본주의 생산관계 속에서 자본의 이해관계를 따르거나 노동자의 이해관계를 따르거나 할 뿐 독자적인 이해관계를 갖고 있지 못하다. 그래서 이들의 이해관계를 반영하는 ‘열린 민족주의’는 결국 부르주아 국익론으로 귀착된다. 이라크 파병 문제에서 ‘열린 우리당’이 어떠했는가를 보라. 사적 이기적인 상호 대립관계가 아니라 그런 대립관계를 부정하는 노동자계급의 호혜적 유대관계만이 참다운 인류 공동체를 만들어 갈 수 있다.
  노동자 이외의 민중들인 소부르주아 제 계급이 타자(他者)와 그런 호혜적 상호관계를 이루려면 노동자계급으로부터 참다운 해방, 인간해방의 이념과 가치를 배워야 한다. 그런 전제 하에서 소농민이나 소시민들도 비로소 다른 나라 민중들과 호혜적 유대관계를 맺을 수 있다. 물론 그에 앞서 노동자계급이 자본의 이데올로기 지배에서 벗어나 자기 고유의 것인 참 인간해방의 이념과 가치를 재발견해야 하며, 자신의 역사적 사명을 자각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노동운동의 자기변혁과 그에 입각한 노동자 국제주의 실천이 필수적 선결과제다.

  그런데 이와 같이 노동자 국제주의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분명히 해야 할 것이 있다. 노동자가 국제적으로 단결한다고 할 때 각기 자기나라 자본에 적대하는 세력으로서 서로 단결한다는 점이다. 예컨대 제국주의 나라의 노동자계급은 자기나라 자본이 다른 나라를 침략․지배하는 데 대해 자국 민족자본의 편에 서서 지지하는 것이 아니라 침략․지배 받는 나라의 노동자․민중의 편에 서서 반대해야 한다. 다시 말해 국익이라는 이름 아래 각기 자기나라 자본의 들러리가 되고 희생양이 되는 잘못을 범하지 말아야 한다. 잘 알다시피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제국주의 나라의 개량주의 노동운동은 각기 자기나라 자본의 파트너가 되어 조국방위전쟁에 지지․동참했으며, 이로써 노동자계급들 사이의 형제살해를 저질렀다.
 이때 이 때 옹호되는 것은 자기나라 민족자본의 이익이 아니라 피압박 약소민족의 이익이며 나아가 전 인류의 이익이다. 또 이렇게 부르주아의 국익과 적대하는 것이 노동자계급의 진정한 이해관계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우리는 현재 한편으로는 미 제국주의에 군사적으로 점령․지배되어  있고 경제적으로 종속되어 있는 남한 국가는 군사주권이 없다. 그런 면에서 완전한 식민지에 가깝다. 전시작전권이 반환된다 해도 한미안보동맹조약이라는 형식 하에서 실질적으로 군사적 식민지 상태가 지속될 것이다. 반면에 경제적으로는 제국주의에 종속적이면서 아(亞)제국주의에 가깝다. 정치주권 또한 모순적이다. 군사`안보 주권은 없지만 그 이외의 분야에 대한 정치주권은 민주화를 거친 이후 남한 지배계급의 도구에 가깝게 되었다. 물론 남한 지배계급은 제국주의에 자주적인 것이 아니라 그에 종속된 독점자본이다. 그런 점에서 남한사회는 제국주의에 대해 경제적으로는 종속적이면서, 군사적으로 식민지적이고, 정치적으로는 반식민지적인 사회이면서, 밖으로는 미 제국주의의 종속적 파트너인 아제국주의적인 기형적 사회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때 또 하나 간과해서 안 될 것은 남한사회는 하나의 민족이 통일된 국가를 이루지 못하고 분단되어 있는 불구의 사회라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한마디로 모순 덩어리 사회이다.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여러 약소국들에 대해 상품만이 아니라 자본을 수출하고 있고 군대를 파견하고 있으며 - 반공을 이유로 해서가 아니라 국익을 위해서! - G20이라는 국제독점기구에 참여하고 있는 강국이다. 이런 상태를 무엇이라고 할까? 소(小) 제국주의 또는 아(亞)제국주의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손호철은 이미 1991년에 ‘신흥공업국의 국제정치경제학: 한국과 비(非)NICs개도국의 관계를 중심으로’라는 논문에서 한국경제의 제3세계에 대한 아제국주의적 성격에 대해 논했다. “한국정치학의 새구상”, 풀빛, 1991 참조, 
 남한 자본주의는 김영삼 정권 때 세계화를 표방하며 이에 도전했고, IMF사태를 극복하고 새천년에 접어들면서 이런 단계에 진입했다.
  그러므로 한국 혁명운동은 미 제국주의를 정점으로 하는 제국주의 일반과 함께 한국사회  안의 제국주의인 남한 제국주의에 대항하여 다른 피압박 민족의 노동자․민중들과 어깨걸고 함께 투쟁해야 한다. 이는 멀리 갈 것 없이 우리나라에 들어와 있는 이주노동자들의 권익을 옹호하는 데서부터 실천되어야 한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다른 약소민족의 노동자․민중들과 굳건히 연대․연합할 수 있을 것이다.    

 <8> 4월 혁명 완성을 위한 정세적 실천과제(1): 자본독재 통치형태의 파쇼화와 반파시즘 민주주의 투쟁

  반파쇼(또는 반권위주의) 민주화 투쟁만이 민주주의 투쟁의 유일한 형태는 아니다. 역사적으로 부르주아가 지배계급으로 등장하던 자본주의 혁명 단계에서는 반봉건 부르주아민주주의 투쟁이 있었다. 그렇듯이 사회주의 혁명 단계에서는 반자본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 투쟁이 있다. 이에 대해 ‘자본독재 반대’ 투쟁은 파시즘과 자유민주주의를 망라한 자본의 계급독재 통치의 타파를 그 내용으로 한다.     

 

  사상초유의 세계대공황이 다가오면서 제국주의와 자본주의의 위기가 날로 심화되고 있다. 그리고 이 위기를 헤쳐 나가고자 제국주의/자본주의 지배세력은 안으로는 파시즘적 테러통치로 밖으로는 식민지 침략전쟁으로 치닫고 있다. 이런 경향은 공황과 위기 정세가 심화되고 장기화될수록 더 빠르게 그리고 더 강도 높게 전개될 것이다. 이런 정세 하에서 혁명운동은 역사적으로 구조화된 지배질서를 타파하는 기본적 과제를 수행해야 할 뿐 아니라 이렇게 시시각각 움직이는 정세에 조응해서 요구되는 실천과제를 적극 받아안아야 한다.
  물론 경제공황은 이미 전면화 되어 한참 진행 중이지만 아직 파시즘과 전쟁이 전면화 되지는 않았다. 그런 방향으로 진행되어 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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