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정세(경제) | 위기에 처한 세계 자본주의 part tw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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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앨런 우드 작성일08-10-31 00:00 조회1,895회 댓글0건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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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에 처한 세계 자본주의 - part two081020.hwp (62.5K) 22회 다운로드 DATE : 2015-08-10 16:3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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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에 처한 세계 자본주의 - 2
알란 우드(Allen Woods)
부르주아 경제학의 붕괴
경제학자들은 세계적 슬럼프는 있을 수 없다는 것, (술을 마신 사람이 숙취에 이른 뒤에야 교훈을 얻듯이) 과거의 경험으로부터 이를 배웠다는 오래된 환상에 고집스레 매달렸다. 그들은 금융위기는 미국에 한정될 것이라고, 미국 경제와 세계의 여타 국가 경제들은 탈동조화될 것이라고(이는 글로벌화에 관해 그들이 예전에 말했던 것들을 뒤집는 것이다), 유럽과 중국은 세계 경제의 새로운 성장 엔진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오늘날 이 주장들은 얼마나 공허한가! 부동산 가격이 세계적으로 하락하고 있으며 글로벌 경제가 침체하고 있다. 유럽 경제는 이미 분명하게 침체하고 있으며, 은행 파산과 가용자본, 신용의 부족을 피할 수 없는 가운데 이 과정이 지속될 것이다. 지금까지 이른바 신흥시장(이머징 마켓) 국가들이 성장을 계속해온 것은 사실이지만, 자본 흐름이 말라붙고 상품가격이 하락할 때에 그들이 일반적 위기와 무관하게 지낼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 물론 이 과정은 여러번(over time) 일어날 것이고, 균일하지도 않다. 위기에로 진입하는 속도는 나라마다 다르겠지만 결국 그들 모두는 위기에로 빠져든다.
어느 나라에서 위기가 시작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주된 것은 근대적 조건 하에서 그것은 한 주와 대륙에서 딴 곳으로 반드시 옮겨간다는 사실이다. 이 경우는 투기 매니아들을 극단적으로 몰고간 미국에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경제학자들의 예상과 달리, 위기는 늦든 빠르든 아일랜드, 스페인, 영국, 그리고 전유럽으로 퍼져나갔다. 그 영향은 남미, 아시아, 아프리카에 미쳐서, 다음 나라들이 도미노처럼 무너질 것이다. 중국은 아직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지만 그 나라도 피할 수 없다.
위기 속에서 자본가들은 축소된 시장의 한 몫을 차지하기(corner) 위해 비상수단에 호소하도록 강제된다. 그들은 경쟁자를 누르기 위해 할인판매, 덤핑 등 온갖 수단을 다 발휘한다. 그들은 이를 통하여 디플레를 촉진함으로써 위기를 더 악화시킨다. 사람들은 낮은 가격을 기대하여 구입을 늦추고, 그리하여 가격은 더 떨어진다. 우리는 주택 시장에서 이 현상을 분명하게 목도하고 있다.
악영향은 통제할 수 없는 유행병처럼 한 나라에서 딴 나라로 파급된다. 모든 나라가 과잉수출(즉 과잉생산)하고 과잉수입(과잉거래)했다는 것이 분명해질 것이다(자본론3권, 481쪽 참조). 그들 모두가 신용을 지나치게 늘리고, 무슨 고통이 따르더라도 꺼뜨려야 할 인플레와 투기의 불꽃을 지폈다는 것은 명확하다. 말하자면 그것은 한 나라나 은행이나 투기꾼의 문제가 아니라 시스템 자체의 문제다. 어떤 하강(downturn)도 영원히 지속되지 않는다는 것은 사실이다. 결국에는 새로운 균형에 도달하고, 가격이 안정화되고 이윤율이 회복되고 새로운 사이클이 시작된다. 그러나 이것은 아직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하강은 끝나지 않았다. 아니, 시작된 지도 얼마 되지 않으며, 얼마나 오래 지속될지 아무도 모른다. 그리고 어찌 되었든 케인즈가 말한 적 있듯이 “결국 우리는 모두 죽는다.”
사건을 겪은 뒤에 현명해지기는 쉽다. 부르주아 경제학자들은 이미 일어난 일들을 예측하는 데에 뛰어나다. 이 점에서 그들은 몇 백 년 전의 역사적 사건들을 정확하게 예견한 구약 성서의 저자들과 비슷하다. ‘여호와의 증인’들 같이 잘 속는 사람들은 이것에 크게 감명을 받아 그것을 성경의 신성한 영감의 증거로 인용했다. 의심 많고 과학을 추구하는 다른 사람들은 그런 예언을 듣고 큰 소리로 웃어댄다. 맑시스트들을 비웃고 위기는 없다고 우리에게 단언한 바로 그 사람들이 지금은 울부짖으며 자기 손을 쥐어 튼다. 그들은 우리가 ‘30년대 이후로 최대 위기 속에 있다’고 우리에게 실토하지만 그들이 불과 어제 말했던 것과 이것 간의 모순을 아무도 알아채지 못하기를 희망한다.
단순한 사실은 이것이다 ; 최근 20-30년동안 부르주아 경제학자들은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했고, 예측하지 못했다. 그들은 활황(붐)도 침체(슬럼프)도 예측하는 데 무능력했다. 그들은 경제 사이클은 소멸했고 대량 실업도 과거의 일이 되었으며 인플레라는 괴물도 유순해졌다는 식으로 우리를 설득하는 데에 수십년을 소비했다. 모든 개혁주의 정치인들은 자연스럽게 이 넌센스를 금과옥조(good coin)로 받아들였다.
영국의 고든 브라운은 “붐과 파산의 사이클은 사라졌다.”고 큰소리쳤다. 이제 영국 경제가 경기침체로 미끄러지자 그는 머리를 긁적이고 있다. 이 모든 것은 부르주아 경제학자들이 퇴보하고 파산한 체제를 정당화하는 것 빼고는 아무 쓸모가 없음을 보여준다.
우리가 예견한 것
맑시스트의 관점을 부르주아의 그것과 비교해 보자. 그들 자신의 프로파간다를 믿는 중대한 실수를 범한 부르주아 경제학자들과 대조되게, “the Marxist tendency"는 상황의 현실성을 설명했다. 1999년에 씌어진 “칼날 위의 기록 ; 세계경제 전망”에 우리는 다음과 같이 서술했다 :
“과거에 연준(연방준비제도이사회)의 역할은 당사자(party)가 스윙(swing)에 들어갔을 때 펀치볼을 제거하는 것이라고들 말했다(옮긴이 주: 펀치볼은 투수, 포수도 없이 벌이는 야구 비슷한 놀이). 그러나 이 말은 더 이상 사실이 아니다. 돈에 청렴결백하고 엄격하다고 그럴싸하게 늘어놓으면서 (연준 의장) 알란 그린스펀은 역사상 가장 큰 투기를 부추겼다. 비록 그는 그 위험을 인식해야 했지만. 그는 로마가 불타는 것을 즐겼던 네로 황제와 비슷하다. 사실, 그는 이자율을 0.25% 인상하여 불길에다가 휘발유를 부었다. 옛 격언이 새삼스럽다. “신들이 멸망시키기를 바라는 사람들, 그들이 먼저 미친다.”
그 글의 또다른 대목 : “근대의 생산력 발전에 근본적인 장애물은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와 국민 국가다. 그러나 한동안 자본주의는 세계 무역의 발달, 신용의 확장 같은 일련의 수단으로 이 장벽을 부분적으로 우회할 수 있었다. 맑스는 오래 전에 자본주의 체제에서 신용의 역할을 설명한 바 있다. 그것은 시장이 정상적인(normal) 한계를 넘어 운행될 수 있게 하는 수단이다. 같은 방법으로, 세계 무역의 확장은 한동안 탈출할 길을 열어준다. 다만 미래에 더 재앙적인 위기를 축적한다는 대가를 치르면서.”
“자본주의 생산은 끊임없이 이들 내적 장벽을 극복하려는 시도를 벌인다. 그러나 같은 장애물을 더 방대한 규모로 다시 만들어내는 수단을 통해서만 그것들을 극복한다.”
“자본주의 생산의 실질적인 장벽은 자본 자신이다.”(자본론 3권 15장)
“자본주의 생산의 회로는 신용에 의존한다. 사슬의 한 고리의 지불능력은 다른 고리의 지불능력에 의존한다. 사슬은 수없는 지점에서 깨질 수 있다. 이르든 늦든 신용은 현금으로 지불되어야 한다. 이 사실은 자본주의 상승과정을 통해 빚을 진 사람들이 너무나 자주 망각한다. 자본주의 확장의 첫 번째 국면에, 신용은 생산에 박차를 가하는 구실을 한다. : 생산과정의 발달은 신용을 확대하고 신용은 산업적 상업적 경영(operation)의 확장으로 이끈다.” (자본론 3권. 470쪽)
“그러나 이것은 동전의 한 면일 뿐이다. 신용과 채무의 급속한 확장은 시장을 그 정상적(normal) 한계 너머로 밀고 가지만, 어떤 지점에서는 이것은 그 반대로 전환한다. 붐 기간에 신용은 옛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풍요의 뿔’처럼 제한 없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위기가 나타나자마자 환상은 산산조각난다. 회수는 늦어지고, 상품은 시장에 팔리지 않고 쌓이며 가격은 떨어진다. 세계 시장의 발달은 이 근본적 과정을 변경하지 않으며, 신용이 자신을 표현하는 범위를 더 크게 넓혀줄 뿐이다. 마지막 분석에서 부채의 축적은 위기를 더 깊게 하고 연장한다. 일본의 최근 역사는 이 사실을 충분히 확인해준다. 급속히 증가하는 자산과 주식 가격으로 특징지어지는 십년의 붐 뒤에 이자율의 급등에 의해 거품이 터졌다.
상황은 그 무렵의 미국의 상황과 비슷했다. 1989년 12월 25일, 일본의 은행은 주식 교환의 첨예한 하락에 기인하여 이자율을 올렸지만, 땅값이 계속 올랐기 때문에 새 이자율 인상은 불가결했다. 결국 이자율은 6%나 인상되었고, 그해 말 주식 가격은 40%나 떨어졌다. 그 뒤로 일본의 은행은 이자율을 높게 유지했다. 그 무렵 경제학자들은 일본의 은행이 경제를 신중하게 운용하는 데 대해 찬양 일색이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십년간 경기침체를 지속한 것이었다.
“세계화로 나아가고, 신용과 금융거래에 대한 규제를 폐지했는데도 확장 규모는 더 커지지 않았지만 어느 쪽도 세계적 충돌의 잠재력(the potential for a worldwide crash)을 갖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것은 위기가 가공자본, 주식교환 속임수, 신용의 과도한 사용에 의해 초래되었던 사례는 아니다. 맑스는 자본론 3권에서 이것을 설명한다.”
“신용 시스템이 선호하는 이들 가짜 거래와 투기도 무시하자. 그러면 위기는 자본가의 소비와 그들의 축적 간의 생산의 불균형의 결과로만 설명될 수 있다. 그러나 현재 상태로는 생산에 투자된 자본의 대체는 비생산 계급들의 소비능력에 크게 의존한다. : 노동자들의 소비 능력은 부분적으로 임금 법칙에 의해, 부분적으로 그들이 자본가 계급에게 수익을 안겨주면서 고용될 수 있는 한에서만 그들이 사용된다는 사실에 의해 제한된다. 모든 실질적 위기의 궁극적 이유는 항상 가난과 대중의 제한된 소비가 생산력의 발달로 향한 자본주의생산양식의 드라이브에 대립된다는 것이었다. 마치 사회의 절대적인 소비 능력만이 그들의 한계를 구성하는 것처럼. ( 본론3권 472쪽)
“세계 무역의 확장과 아시아의 새 시장의 개방은 시의적절하게 경기 부양을 도왔다. 그러나 더 큰 붕괴를 촉진하는 대가를 치렀다. 사태는 이렇게 도래한다.”
위에 옮긴 글은 거의 십년 전에 서술되었고, 그때 부르주아 경제학자들의 압도적 다수는 세계 침체의 가능성을 아직 부인하고 있었다. 우리는 질문할 권리가 있다. 부르주아경제학과 맑스주의, 어느 쪽이 세계 경제의 과정들을 더 잘 이해했으며 올바로 예측했는가?
중국은 세계를 구할 수 있는가?
물에 빠진 사람은 지푸라기 하나라도 붙든다는 속담이 있다. 위기의 깊이에 놀란 부르주아지와 그 변호론자들은 자기들을 추락에서 구해줄 지푸라기를 찾으려고 두리번거리고 있다. 최근까지 그들의 희망은 아시아, 특히 중국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나 중국 경제는 세계시장에 견고하게 박혀 있으며 그것의 모든 휘발성을 반영할 것이다. 지오프 다이어(Geoff Dyer)가 최근에 파이낸셜 타임즈에 쓴 ‘베이징의 부담’이라는 기사는 부제가 “중국의 침체(slowing)는 세계경제에 나쁜 징조”로 되어 있다.
미국의 하강에도 불구하고 수출은 2008년 첫 8개월동안 22%나 늘었다. 설명의 일부는 중국 기업들이 다른 활황의 발전국가들 속에서 새로운 시장을 끊임없이 개척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위기의 지연일 뿐이다. 월가의 위기, 유럽과 일본의 경기침체 이래로 투자자들은 중국도 위기에 빠져드는 것이 아닌지 묻기 시작했다. 5년의 고속성장 이후 중국경제는 지금 뚜렷이 완만세(slowing)로 돌아섰다. 8%를 밑도는 성장률은 중국과 글로벌 경제에 큰 함축을 갖는다. 경제학자들은 중국의 은행 부문도 염려한다.
이미 수출시장에 문제의 징후가 있다. 광동의 의류 산업은 심각한 스트레스를 겪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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