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일을 따르는 민주노동 연구소
정세와 투쟁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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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정세(정치) | 미얀마의 재난을 기회로 삼는 서방 제국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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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승호 작성일08-05-31 00:00 조회1,66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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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이 글은 wsws.org 사이트 5월 27일자에 실린 피터 시몬즈의 글을 옮긴 것이다. 최근 미얀마 사이클론 이재민들에 대한 ‘국제사회’의 구호 노력을 미얀마 군부가 외면하고 있다고 비난하는 보도가 우리 언론들에 도배질되었는데 ‘진보’ 언론이라 간주되는 매체들도 그 논조가 별로 다르지 않았다. 티베트 시위사태에서와 비슷하게, 미얀마의 재난 구호를 둘러싼 갈등도 서방 제국주의 국가들의 정치적 의도를 함께 읽어야 온전하게 파악할 수 있다. 서방 국가들이 미얀마의 군부를 견제하고 아웅산 수치를 내세우려는 ‘주된’ 까닭은 미얀마 정권이 ‘친중국’으로 밀착해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근래 들어 남미 대륙과 이란, 미얀마 등에서 중국의 영향력을 배제하기 위해 더 노골적으로 나서고 있다. 조만간 이란을 공격하려는 조짐이나 볼리비아 베네주엘라의 우익 세력을 부추겨서 ‘분리 독립’을 획책하는 공작이 그것이다. 미얀마 사태도 이 맥락에서 볼 일이다.
 


    미국이 주도하는 ‘미얀마 이재민 구호 국제회의’가 지난 25일 열렸다. 그러나 그 회의가 넉넉히 제공해줄 유일한 상품(품목)은 자기이익, 냉소주의, 위선이었다. 국제회의는 240만명으로 추산되는 미얀마 사이클론 이재민들을 위한 원조를 끌어냈어야 하는데 미국과 유럽 정부들은 이 회의를 해외원조 노력에 대해 문을 열도록 미얀마 군부에 거듭 요구하는 기회로 삼았을 뿐이다. 돈은 거의 걷히지 않았다.



  회의에 앞서 미얀마 정부는 피해 복구를 위해 107억 달러를 호소했다. 직접적인 구제뿐 아니라 이라와디 델타의 농민과 어민들은 삶터 복구를 위한 긴급한 지원이 필요하다. 유엔 식량농업기구는 앞으로 몇 주 안에 새 농작물이 파종되지 않으면 올 농사를 망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테인 세인(Thein Sein) 미얀마 수상은 회의에서 쌀 종자, 비료, 고기잡이 배와 주택이 긴급하게 마련되어야 한다고 요청했다.

  응답은 보잘것없었다. 국제언론들은 5천만달러에서 1억5천만달러의 새 원조가 제공될 듯이 보도했지만 이것조차 의심스럽다. 통합지역정보네트워크(IRIN : Integrated Regional Information Network), 유엔 인도주의 업무조정국(OCHA)의 새 기관이 상세히 보고하지는 않았지만 “회의에서 많은 제공국가들은 그들이 이미 제공했던 원조만을 확인했고, 조건이 나아질 경우에 더 늘리겠다고 약속했을 뿐이다.”



  사이클론 이재민을 위해 2억 백만 달러의 비상원조를 요청하는 유엔의 긴급호소가 있었지만 고작 5700만 달러, 전체의 28%가 들어왔을 뿐이다. 유엔의 재정추적시스템에 따르면 또다른 4200만 달러의 약속을 받았으나 예전의 재난 때와 마찬가지로 구속력이 없다. 새 원조 약속이 실현될지는 분명하지 않다.

  회의의 주된 목적은 원조 제공을 미얀마 군부정권을 압박하는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이었다. 한 서방 관리는 IRIN에 다음과 같이 말했다. “회의장은 미얀마정부를 성토하는 장소였다. ‘당신들이 옳은 일을 한다면 우리가 지지할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우리가 해줄 것이 없다’는 식이었다.”

  ‘국민을 돕는 데 실패했다’고 미얀마 군부를 서슬 퍼렇게 꾸짖었던 부시 정부는 고작 2050만 달러 원조를 약속했다. 스코트 마르시엘 미국 공사는 워싱턴이 원조를 더 제공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랑군의 언론에 밝혔다. 그러나 그러려면 미얀마 정부가 상황을 조사할 국제재난원조 전문가들의 입국을 허용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미국의 동맹들도 마찬가지 태도였다. 이라와디 웹 사이트에 따르면, 영국 덴마크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 스웨덴 모두가 미얀마 정권에게 구호 일꾼들이 이라와디 델타에 접근하는 것을 무제한으로 허용하라고 재촉했다. 2700만 달러를 추가 제공함에 있어 유럽 위원회 대표 베르나르 슈레이너는 피해지역에 방해받지 않는 접근을 요구했다. 호주도 ‘국제적 조사’와 ‘무제한의 접근’이 허용될 때만 2500만 달러를 내놓겠다고 선을 그었다.

  프랑스는 더 단호했다. 회의가 열린 날 프랑스 정부는 해군함정 미스트랄호에게 태국 푸켓에 원조 물자를 내려놓고 미얀마해안 근처 국제수역을 순회하라고 지시했다. 내각의 성명서는 “천 톤의 인도주의적 원조가 직접 하역, 배분될 수 없다고 미얀마 당국이 거부한 것은 경악할 일”이라고 비난했다. 프랑스 외무장관 베르나르 쿠쉬네는 군사적 수단을 포함하여 (공식적으로 허용되든 아니든) 미얀마에 직접 개입하기 위해 유엔 안보리의 비상회의를 소집하는 요구에 앞장섰다.





        하나의 정치적 켐페인





  ‘나르기스’ 사이클론이 이라와디 델타를 파괴한 이래로 몇 주 동안 유럽 정부들은 미얀마 장군들이 충분한 원조를 제공하는 데 실패했음을 비판하고 구호 요원들과 외국 군대에 나라를 개방하라고 다그치는 켐페인에 열을 올렸다. 일요일 회의에서 추가원조 요청이 거부되었던 것은 미얀마의 비극이 군부정권에 대해 압박을 넣을 정치적 지렛대로 냉소적으로 활용되고 있음을 말해준다. 미국과 그 동맹국들은 미얀마의 장군들이 ‘이재민을 정치적으로 활용한다’고 비난하면서 정확히 그와 같은 짓을 벌이고 있다.

  ‘방해받지 않는 접근’의 요구는 가라앉지 않았다. 구호 요원들의 입국허용 요구는 이라와디 델타에 제한 없이 접근하겠다는 요구에 뒤따르는 것이다. 프랑스와 영국과 미국의 해군함정이 피해지역에 접근하겠다고 요구한 데 뒤이어, 미국 공군기의 랑군 착륙 거부를 비난하는 성명이 나왔다. 만일 프랑스 해군함정에게 미얀마 입항이 허용된다면 쿠쉬네는 군부를 비난하는 새로운 구실을 즉각 발견해낼 것이다.



  2004년 쓰나미가 빚어낸 파국에 대해 인도네시아, 스리랑카, 인도, 태국 정부가 그랬듯이 미얀마의 장군들도 구호 노력이 무성의하고 사이클론 이재민들에 대해 냉담하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해외 원조에 ‘개방’하라는 끊임없는 요구는 수십만 생존자들에 대한 관심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미얀마 군부정권을 뒤흔들고 불안정하게 만들며 궁극적으로는 그들을 축출하려는 야심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 비난 켐페인은 미국과 유럽 정권들이 미얀마 군부에게 아웅산 수치가 이끄는 이른바 ‘민주적 반대파’에게 권력을 넘길 것을 강요하려고 부과했던 경제 제재조치의 연장선에 있다.

  국제 언론들이 이 의도를 갖가지로 표현하고 있으며, 그들은 군부의 구호노력이 부적당하다는 것을 강조하는데 전적으로 초점을 맞추었다. 심지어 원조를 받은 사람의 숫자 발표조차 오락가락한다. 널리 알려진 한 보도에 따르면 240만 생존자의 23%는 어떤 원조물자도 받아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42%가 긴급 원조를 받았다는 또다른 유엔 통계를 제시했다. 유엔개발계획 책임자 카트린 크라베로는 이재민의 50%가 의미 있는 원조를 받았다고 추산한다.





        필요한 것은 ‘돈’이지 물자가 아니다





  미얀마에서 NGO들을 지원했던 한 영국인 사업가 폴 스트래찬이 구호 작업에 대해 흥미로운 통찰을 제공했다. 그는 지난 주말 ‘스코츠맨’(스코틀랜드에서 발간되는 신문)에 기고한 글에서 군부정권과의 대결을 끝낼 것을 호소하면서 가장 절실한 것은 식료품과 구호물자가 아니라 돈이라고 지적했다.

  “언론 보도와는 달리, 상당히 많은 원조 물자들이 피해 지역에 전달되고 있다. 여기서는 중국과 인도와 태국에서 운송된 필수품들이 쓸모 있다. 보급물자들은 쉽게, 값싸게 구해질 수 있다. 여기는 동남아시아 본토이고 미얀마는 저렴한 대량경제 국가들에 둘러싸여 있지, ‘암흑의 아프리카’가 아니다. 식량을 수송할 필요는 없으며 훨씬 가볍고 필수품을 살 수 있는 ‘화폐’가 필요할 뿐이다.”

  그러나 화폐는 일요일의 회의에서 제공되지 않았다. 물론 이 사실이 미얀마에서 커다란 비극이 발생했고 군부 정권이 그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미국과 유럽의 정권들이 최종 고려했던 것은 이재민들의 곤경이었다. 미얀마의 재난은 군부정권을 서방의 경제적 전략적 이익에 동조하는 정권으로 교체하려는 노력에 보탬이 되어줄 한갓 정치적인 도구였을 뿐이다. 특히 워싱턴은 미얀마의 장군들을 미국의 맞수로 커가는 중국과 밀착해 있는 것으로 간주한다. 미얀마가 원조에 문을 열어야 한다는 요구는 석유와 가스를 포함한 자연자원과 값싼 노동력을 찾아 들어오려는 해외 투자자들을 허용하라는 요구로 이어진다.



  미얀마를 압박하는 국제적 노력에는 식민지를 대하는 오만함의 표현 이상의 것이 있다. ‘로스앤젤레스 타임즈’ 5월 18일자에는 “구조자들로부터 우리를 구해 달라”는 제목으로 데이비드 리프가 기고한 글이 있다. 그는 미얀마에 대한 군사적 개입의 요구가 너무나 급속하게 표면화되었다고 지적했다. “원조가 필요하기는 하다. 그러나 ‘총’을 동반하는 원조는 결코 가서는 안될 곳으로 인도주의적 상업을 옮겨가게 한다. 그리고 사이클론 ‘나르기스’가 닥쳐온 시간에 인도주의적 ‘전쟁에 대한 요구’가 제기되었다는 사실은 개입주의가 (아무리 선의를 포함한다 해도)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말해 준다.”

  리프는 “19세기 유럽 식민주의의 동기도 인도주의적 관심에 근거한 지지자들에 의해 표출되었다”면서 말을 이었다. “누가 인도주의적 지평 위에서 군사적 개입을 말하는지 주목하자. 19세기의 두 거대 제국의 외무장관들이다. 그들은 어느 나라를 가리켜 ‘보호할 책임이 있다’고 말하는가? 지배하고 싶은 나라들이다.”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앙리 레비가 ‘토요(土曜) 호주’지에 적절하게 썼듯이 프랑스 식민주의는 최악은 아니었다. “미얀마의 잔인한 독재자들을 피고석에 세워라”는 제목의 그 글은 하나의 주장 이상의 저주였다. 레비에 따르면 미얀마 군부는 범죄적인 광기를 띠었고, 인종주의자이고, 피해망상에 사로잡혔고, 편집광이고, 자폐적이고, 마피아를 닮았고, 기괴하다.

  온갖 형용사를 다 늘어놓은 뒤 레비는 선언한다. “이 스펙터클, 죽음과 증오와 광기의 이 기계와 맞닥뜨려서 우리는 슬픔, 동정, 이들 암살자들을 국제형사재판소 앞에 대령시키고 싶은 욕구와 결국 프랑스가 정의를 창조하고 이 세계에 개입의 의무를 부과했던 날들 사이에서 머뭇거리게 된다.”

  인도차이나 전쟁과 알제리 전쟁 같은 공포를 이 세계에 퍼뜨린 프랑스 식민통치의 미덕 또는 좋았던 시절을 찬양하는 것! 이는 미얀마에 개입하려는 쿠쉬네의 켐페인 뒤에 깔려 있는 가장 분명한 함의이다(2008. 5.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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