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정세(군사와 전쟁) | 그루지야 사태의 간략한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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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댄 글라제부룩 작성일08-09-30 00:00 조회1,521회 댓글0건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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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루지아사태의간략한정리080904.hwp (20.5K) 5회 다운로드 DATE : 2018-07-11 12: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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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루지야 사태의 간략한 정리
정세연구 편집팀
* 최근의 러시아/그루지야 교전 사태는 ‘신냉전의 서곡’으로 불리고 있다. 이 사태를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은 독자들을 위해 국내외 언론 보도를 간추려 그 전말과 성격을 서술한다.
사태의 경과 : 8월 8일, 세계의 눈길이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에 쏠릴 때에 그루지야 사카슈빌리 대통령이 남오세티야의 수도 츠한빌리에로 진격 작전을 발동했다. 그러나 러시아군이 즉각 개입하는 바람에 그루지야 군은 곧바로 퇴각했고 러시아군은 한때 그루지야 영토의 거의 절반을 점령하기에 이르렀다. 전투는 5일간 벌어졌고, 프랑스 사르코지 대통령의 중재로 16일 양국은 휴전협정에 서명했지만 러시아군은 약속대로 즉각 철군하지 않았다.
20일에는 그루지야 내 사실상 ‘자치주’인 남오세티야와 압하지야의 분리독립세력이 러시아에 ‘주권 인정’을 촉구했고, 러시아 상원이 26일 이들의 ‘독립 승인’을 의결했다. 러시아군은 남오세티야와 압하지야를 엄호한다는 명분으로 병력을 남겼고 이에 맞서 미국은 터키 정부의 협조를 얻어 흑해에 군함을 파견했다. 러시아는 “시리아에 미사일 배치를 추진하겠다. 베네수엘라와 군사협력을 강화하여 카리브해에 함대 진출을 검토하겠다”고 다짐하는 등, 맞불 작전에 나섰지만 서방과의 관계 악화로 국외 자금이 빠져나가고 주가가 급락하는 등 어려움을 겪었다.
8월 28일 타지키스탄에서 열린 상하이협력기구 정상회담에서는 러시아가 ‘미지근한’ 지지를 얻는 데 머물렀으며, 반면에 9월 1일 브뤼셀에서 열린 유럽연합 27개국 정상회담에서도 러시아 제재를 둘러싸고 의견이 엇갈려 ‘러시아가 그루지야에서 완전 철수할 때까지 유럽연합과 러시아의 파트너십 협상을 중단한다’는 (마찬가지로) 미지근한 제재만이 실행되었다.
각 주체의 태도와 이해득실을 따져 보자.
먼저 유럽연합. 폴란드와 체코, 발틱해 연안의 나라들, 영국과 스웨덴은 워싱턴과 보조를 맞춰서 G8국에서 축출, WTO 가입거부 등 러시아 제재를 강경하게 주장했다. 반면에 독일과 프랑스, 이탈리아는 제재 대신 대화로 풀 것을 주장했다. 후자는 러시아로부터 석유와 가스의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나라들이다. 정상회담 직전 독일 외상 프랑크 발터 슈타인마이어는 러시아 외상 세르게이 라브로프와의 긴 전화통화에서 ‘상황을 가라앉히는 데’에 동의했다. 독일의 한 언론인은 다음과 같이 썼다. “러시아와의 갈등이 커지면 우크라이나와 몰다비아에 영향을 미치고, 테러와의 전쟁이 더 어려워진다. 유럽이나 러시아나 세계적 경쟁 속에 있는데 서로 대결하면 힘을 낭비하게 된다.” 그 결과는 미국에만 득이 된다는 뜻이고, 그래서 미국과 교감하여 전쟁을 벌인 사카슈빌리에 대해 유럽의 많은 정치인들이 뒷전에서(‘오프 더 레코드’로) 분노를 표시했다. 유럽안보협력기구(OSCE)조차 사카슈빌리가 국제법을 위반했고 전쟁 발발에 책임이 있다고 결론지었다고 한다.
아무튼 친미 노선에 경도되지 않은 유럽 나라들에게는 그루지야 사태가 바라는 바가 아니었다. 전쟁초기 독일과 프랑스의 사민주의 정치인들은 곤혹스러움 속에 침묵했다. 그러나 이미 갈등이 더 커져버린 마당에 그들은 장기적 전망 속에 그들의 선조가 추구해온 공격적 대외 노선을 다시 강화할 수밖에 없다. 녹색당원이고 독일의 전 외상이었던 조쉬카 피셔는 ‘차이트’지에 이렇게 썼다. “제제가 능사가 아니고, 유럽과 러시아는 서로 협력하는 것이 양쪽에게 다 이익이다. 그러나 그러려면 유럽과 독일의 힘이 더 커져야 한다. 열강으로 복귀한 러시아에 대응할 길은 당장 대결하는 것이 아니라 유럽이 단결된 힘을 기르는 길이다.”
중국은 이 사태에서 러시아를 노골적으로 편들지 않았다. 전쟁이 치러진 때는 올림픽을 한창 치르던 때라 더 비껴설 수 있었고, 28일의 상하이협력기구 정상회담에서도 러시아에 대한 분명한 지지 표현을 삼갔다. 중국은 넓은 옆구리인 중앙아시아에 서방 제국주의 세력이 몰려오는 것을 두려워하기에 러시아의 힘이 약해지는 것을 바라지 않지만 한편으로 경제협력 상대인 미국및 유럽과 전면 대결하는 것도 원하지 않는다. 그들은 서방 제국주의 세력이 티벳과 신장 지역의 폭동을 자기들의 영향력 확장의 기회로 삼는 것을 두려워하므로 남오세티야와 압하지야의 독립이 중국 내 분리주의 운동을 고무하는 것을 잔뜩 경계한다. 신장에는 막대한 석유와 가스가 매장되어 있고, 이곳은 중앙아시아에서 중국으로 파이프라인이 들어오는 길목이다.
후진타오는 정상회담에서 균형된 입장을 취했다. 2014년 러시아 소치시에서의 동계 올림픽 보이콧을 미국이 떠들었지만 그는 소치시의 개최를 공개적으로 지지했다. 이는 지난 3월 유럽 지도자들이 티베트시위 진압을 항의하여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 보이콧을 선동했을 때 러시아가 중국을 지지한 데 대한 답례라 하겠다.
전운이 감도는 동유럽
미국과 그루지야는 이 전쟁에서 무엇을 얻었는가? 그루지야군은 불과 2만 8천명 밖에 되지 않는다. 그중에 2천명을 이라크전에 파병한 사카슈빌리는 미국의 ‘괴뢰’나 다름없다. 막강한 러시아의 개입이 분명한데 사카슈빌리가 미국과의 교감 없이 개전할 리 없다는 상식적인 의문이 나온다. 지난 4년 그루지야의 공식 로비스트로 일한 랜디 슈네먼이 미 공화당 매케인 후보의 선거참모로 합류한 사실에 주목하여 이 전쟁이 매케인을 돕는 네오콘의 기획작품 아니냐는 설이 나돌았다. 푸틴이 이 음모설을 강력하게 제기했고 실제로 그루지야 사태가 일어난 뒤 매케인의 지지도가 올랐다. 미국의 대다수 미디어들은 ‘소련의 공격’을 부각시키는 데만 바빴다. 그루지야 집권세력으로서도 전쟁 도발로 ‘러시아의 부당한 개입’을 세계에 알리는 효과를 거두었을 뿐 아니라 국내 반정부세력의 소리를 잠재우는 계기로 활용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러기는 해도 꼭 흡족한 결과를 얻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항상적인 대치상태에 들어간 그루지야의 NATO 가입을 받아주는 것은 유럽 나라들로서 너무 위험한 선택이다. 회원국이 침략을 받으면 NATO가 자동 참전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루지야의 NATO 가입은 물 건너간 셈이어서 그루지야와 미국으로서는 ‘소탐 대실’이 될 수 있고 NATO의 동진(東進)도 당분간 주춤거릴 것이다.
아무튼 그루지야의 전쟁 도발은 사실상 미국의 작품이나 진배없다. ‘개전’ 자체는 설령 사카슈빌리의 단독 범행이라 해도 말이다. 그루지야는 남오세티야에서 잔인한 학살극을 벌였다고 하는데 이는 사실상 미 제국주의의 야만성과 잔인함을 말해주는 것이다.
러시아는 이 전쟁에서 큰 전과를 거두었는가? 득실을 저울질하기가 간단치 않다. 군사적 승리야 분명하고 그리하여 ‘열강’으로 대접받게 되었지만 그에 대해 견제가 부쩍 심해졌고 한동안 외교적 정치적 고립의 어려움도 겪을 전망이다.
러시아에 이웃한 나라들은 이웃 강대국에 대한 피해의식이 크다. 이번 사태에서도 그루지야가 군사력의 절반이 박살날 정도로 몰리자, 비슷한 처지의 우크라이나, 몰도바와 아제르바이잔 등이 그루지야를 편들어 나섰다. 폴란드는 그루지야 사태를 구실로 삼아 8월 20일 미국과의 미사일방어(MD) 협정에 최종 서명했으며,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올해 안에 우크라이나의 NATO 가입을 실현시키겠다’고 다짐했다.
상하이 협력기구에 참가한 친러시아 노선의 중앙아시아 4개국(타지키스탄, 카자흐스탄, 키르키즈스탄, 우즈베키스탄)도 이번 사태에 양면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루지야의 남오세티야 진격을 규탄하면서도 남오세티야와 압하지야의 독립, 그루지야로부터의 분리는 명시적으로 지지하지 않았다. 그들 역시 내부의 분리주의 위협에 직면해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로서는 사카슈빌리의 국제법 위반을 성토하고 ‘코소보도 독립했는데 남오세티야와 압하지야가 독립하지 말라는 법이 있느냐’고 명분을 댈 수는 있지만 아직은 니카라과 등 중남미의 몇 나라만이 두 자치주의 분리 독립에 호의적이다.
러시아 자체는 또다른 자본주의 강대국일 뿐이다. 하지만 이 나라가 미 제국주의를 견제하는 세력으로 성장했다는 사실은 반제의 과제를 안고 있는 중동의 진보세력을 고무한다. 이들은 레바논의 헤즈볼라가 이스라엘을 격퇴한 사건, 미국의 협박 속에서도 이란 국가가 의연히 버티고 있는 것, 그리고 ‘열강’이 된 러시아를 지켜보며 ‘미국과 이스라엘에 맞설 수 있다’는 자신감을 높여가고 있다.
러시아가 얼마나 어려움을 겪을까? 서방의 경제적 제재조치는 설령 발동한다 해도 큰 타격은 되지 않을 것이다. 이를테면 미국은 러시아의 WTO 가입을 퇴짜놓겠다고 을러댔지만 러시아학자 보리스 카갈리츠키는 오히려 그것이 ‘전화위복’이 된다고 말한다. WTO 가입은 특히 세계적 불황이 깊어진 요즘 러시아 국내 산업에 ‘사형선고’나 마찬가지이니 그 ‘유예’를 해준 미국에 감사해야 할 것이라고 한다. 게다가 유럽 상당수 나라가 러시아에 에너지를 의존하고 있으니 강력하게 ‘제재’에 들어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서방과의 경제협력이 요긴한 시절에 서로 날카롭게 대치한다는 것은 러시아에게 부담을 주는 것이 분명하다.
이 교전사태는 어떤 결과를 초래했는가? 테러와의 전쟁, 즉 제3세계 국가/민중과의 대결이 주된 기조였던 시절에 미국/유럽연합과 러시아/중국 간의 대립은 깊지 않았다. 러시아와 중국이 온건 기조를 표명하기는 했어도 미국의 이란 제재에 두 나라가 순응해 왔던 사실이 이를 말해준다. 그루지야 교전 사태는 미국이 폴란드와 체코에 미사일방어(MD) 기지를 세우고 러시아 주변국가에 친미 정권을 세우는 등 러시아에 대한 압박을 강화한 데 따른 결과이자, 그 반발이다. 유럽연합과 중국은 양국에 대해 일정하게 거리를 두었고, 상하이협력기구의 결속력도 아직 약하다. 그러나 열강으로 행세하고 싶은 나라와 열강으로 대접받고 싶은 나라 간의 충돌을 막을 길은 없다. 미 제국주의는 자원 확보와 불황 탈출의 길을 정치군사적 패권의 추구에서 찾을 터이고, 유럽연합과 중국도 그들이 원하지 않는다 해도 미국과 러시아의 대립 구도에 점점 연루되지 않을 수 없다. 러시아 이웃 나라들의 뒤얽힌 지정학이 이 구도를 더 강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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