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정세(각국의 계급투쟁과 국제정치) | 네팔 마오주의당의 놀라운 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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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전태일노동대학 작성일08-04-30 00:00 조회1,617회 댓글0건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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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마오주의당의놀라운승리080421.hwp (35.5K) 5회 다운로드 DATE : 2018-07-11 12:4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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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최근의 제헌의회 선거에서 왕정을 일관되게 반대하여 무장투쟁을 벌여온 마오주의당이 제 1당으로 올라섬으로써 네팔은 민주혁명의 시대를 맞게 되었다. WSWS.ORG 4월 18일자에 실린 이 글은 국내외 반발세력에 맞서 마오주의당이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를 자세히 밝혀준다. 네팔 마오주의당의 집권은 인도의 20여개 주(특히 인도 동북부)에서 단호하게 반봉건 투쟁을 벌이고 있는 마오주의세력을 크게 격려하는 일이라서 주목할 가치가 있다. 글쓴이는 마오주의자들이 2단계 혁명론을 고수하고 사회주의로의 전망을 접어두고 있음을 옳게 비판하지만 그 비판은 다소 성급한 느낌을 준다. 앞으로의 전망은 두고두고 모색해갈 일이고, 지금으로서야 반동적인 왕정을 혁파하는 일이 소중한 과제일 터이다. 게다가 앞으로도 이들 마오주의당이 길들여지지 않는 한 미 제국주의가 ‘흔들기’를 계속할 것이니 네팔 민주화의 앞날은 결코 순탄하다고 할 수 없다. 항간에는 그동안 ‘왕정 고수’를 위해 미국 기관들이 벌인 정치사업에 한국 국가기관들이 동참하지 않았느냐는 의혹이 제기된 적도 있다. 아무튼 네팔의 정치적 변화는 아시아 대륙에서 변혁적 정치흐름이 높아져 가고 있다는 여러 신호의 하나로 읽힌다.
4월 10일 제헌의회 선거에서 네팔마오주의 공산당(CPN-M)이 예상밖의 압승을 거둔 것은 그 나라의 사회적 위기의 깊이, 왕정에 대해서뿐 아니라 기성 정당 모두에 대한 대중적 적대감의 정도를 말해준다.
선거 결과는 한동안 알려지지 않았는데 마오주의자들은 직접 선출되는 240 의석 중에 분명한 다수를 차지했다. 지금까지 판명된 218 의석 중에 그들은 116석을 얻었다. 근접한 라이벌 ‘네팔 의회(Congress)’가 34석, 네팔 통합맑스레닌 공산당(NCP-UML)이 31석을 얻었다. 소수민족에 기반을 두고 있는 ‘마드헤시1) 인민의 권리 포럼’은 24석을 얻었다.
또다른 335 의석이 여성, 소수민족, 낮은 신분(카스트)들에게 돌아가는 할당을 포함하여 비례대표 투표로 결정될 것이다. 마오주의당은 전체적으로 33% 남짓을 얻었는데 601석의 제헌의회에서 최대 정당이 될 것이다. 그러나 과반을 넘을지는 알 수 없다. 남아 있는 26 의석은 마오주의당이 지배하는 임시내각에서 지명할 것이다.
임시정부를 구성하고 새 헌법을 만드는 제헌의회를 구성하는 결정은 오래 이어진 정치적 위기의 산물이다. 2006년 4월, 절대왕정에 대한 정치적 항의가 결국 갸넨드라 국왕으로 하여금 네팔의회당, 맑스레닌당이 주도한 7당 연정에 권력을 넘기도록 강제했다. 2006년 11월, 마오주의자들은 12년간의 무장투쟁을 끝내고 제헌의회 선거에 참여하는 협상을 끝냈다.
마오주의당, 왕정에 일관되게 반대
지난주 투표 결과는 정치 전문가와 외교관들의 예상을 뛰어넘었고, 가장 놀란 사람들은 마오주의자들 자신이었다. 마오주의자들이 ‘선거 불참’ 위협을 가한 뒤로 선거는 두 번이나 연기되었다. 직접선출 의석에 승리하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에 마오주의자들은 비례대표 의석을 늘릴 것을 주장했으나 결국 타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알다시피 마오주의당은 농촌 근거지에서뿐 아니라 카트만두와 다른 부분에서까지 직접투표 의석을 휩쓸었다.
분명히 왕정에 대한 적대감이 중요한 요인이었다. 반대가 얼마나 극심한지는 2006년 4월, 왕의 하야를 요구하는 수만 명의 시위대가 경찰과 맞섰을 때 드러났다. 갸넨드라 국왕이 독재정치와 사치로운 생활로 증오의 표적이 되었기 때문에 대다수 민중이 절대 왕정을 끝장내자는 결론을 내린 것은 분명하다. 왕당파 누구도 오늘까지 (직접선출) 의석을 얻지 못했다.
마오주의자들은 왕정 폐지 요구를 가장 일관되게 주장했고 선거에 앞서 공화국부터 세우자는 제안을 의회가 받아들이도록 압박했다. 새 제헌의회에 의한 투표는 그 제안을 확인하는 것이고, 이는 수정 없이 결정될 것이다. 마오주의당 지도자, (‘프라찬다’라고 알려진) 푸시파 카말 다알은 갸넨드라 왕에게 ‘한 달 내에 사임하고 시민으로 돌아가라’고 최후통첩을 보냈다.
투표자들의 눈에는 기성 정당들, 특히 네팔의회당과 좌파인 맑스레닌당이 부패로 얼룩져 있고 국왕에게 정치적으로 굴복하여 네팔의 사회적 위기를 해결하는 데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1990년대의 대중적 저항은 전 국왕 비렌드라에게 의회에 일정 부분의 헌법권력을 양도하도록 강제했으나 궁극적 권력은 군부가 지지하는 왕정에 항상 남아 있었다.
네팔 의회당과 맑스레닌당은 지난 주 선거에서 참패했다. 임시정부 전 수상이자 네팔의회당 수 코이랄라는 의석을 유지했지만 코이랄라의 누이이고 전 내무부장관 크리슈나 프라사드 시투알라를 비롯해 주요정당 지도자들은 패배했다. 맑스레닌당 마드하브 쿠마르 네팔은 의석을 잃고 (당직을) 사임했다. 이 당은 ‘7당 연정’에서 철수할 것을 밝혔다.
더 근본적으로, 모든 정치적 제도에 대한 반대는 기본적 민주권리의 결핍뿐 아니라 뿌리깊은 사회적 위기를 반영한다. 3천만 인구의 31%는 공식빈곤선 이하의 삶을 산다. 1인당 평균수입은 미화 280 달러로 세계에서 12번째로 낮다. 문맹이 수두룩하고, 인구의 대부분이 농촌에 사는데 수도와 공중위생, 교육과 의료서비스 등 기본 시설이 결핍되어 있다.
세계적인 곡가 급등은 빈민들의 궁핍함을 악화시켰다. 식용유 값이 석달 만에 50%가 뛰어올랐다. 쌀과 육류, 콩의 가격이 현저하게 인상되었다. 한 통계에 따르자면 네팔의 4백만 ‘극빈층’은 그들의 가처분 소득의 75% 이상을 식품 구입에 쓴다. 네팔의 농업부문 투자는 하락하고 있다. 4월 2일 발표된 아시아개발은행 보고서는 연간 성장률을 인근 나라들보다 낮은 3.8%로, 인플레이션은 7%로 전망한다.
마오주의당, 나라 안팎을 설득하다
많은 투표자들이 민주주의와 평화, 그리고 번영의 시대를 안내해 줄 거라 희망하며 마오주의당을 지지했다. 하지만 이러한 환상은 곧 꺾였다. 마오주의당은 모든 것을 약속했지만, 그들의 프로그램의 중심에는 자본주의를 유지하겠다는 서약이 있었다. 스탈린의 2단계 이론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마오주의 지도자들의 선언은 놀라운 것이 아니다. 마오주의당(CPN-M)은 노동자 계급이 아닌 가장 가난한 시골 계급의 “부르주아 소작농 혁명”에 기초를 두고 있다. 1단계의 목적은 봉건주의의 잔재 - 군주제도와 카스트제도를 포함하여 -를 청산하는 것이지, 자본주의를 제거하는 것이 아니다. 사회주의는 머나먼 미래로 추방된다.
선거에 이긴 후 또 다른 마오주의 지도자, 프라찬다와 바그람 바타라이는 경제인들과 외국인 투자자들, 그리고 주요 권력자들에게 그들의 이익이 보호될 것이라고 확신시키느라 분주했다. 프라찬다는 일요일에 말했다. “우리는 이웃인 인도와 중국, 그리고 다른 국제사회 구성원들과 좋은 관계를 원합니다.” 그는 새로운 헌법을 만들기 위해 여러 정당들과 함께 일하기로 서약했다.
네팔 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바타라이는 설명했다.: “우리가 봉건주의를 끝낸다고 말할 때, 사적 소유관계를 끝내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경제 발전 단계는 우리 말로 민주적 부르주아 혁명에 있습니다. 즉, 집산화, 사회주의화, 국가화는 현 단계의 의제가 아닙니다... 우리는 모든 이들에게 확신을 주고 싶습니다. 마오주의자들이 일단 정권을 잡으면 투자 분위기는 좀 더 살아날 것이라고. 이 부분에 대해 불필요한 오해가 없었으면 합니다.” 프라찬다와 바타라이는 수요일에 네팔 상공회의소 연합과 만나서 비슷한 메시지를 전달했다. “10년 이내에 우리는 마법과 같은 경제발전으로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것입니다.” “우리는 사적인 투자를 허용할 것이고 외국인 투자를 장려할 것입니다. 우리는 산업을 손에 넣으려는 것이 아닙니다. 경제 번영을 이룩하려면 당신들의 협조가 필요합니다.”
DNA(인도 웹사이트)는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처음에는 경제인들이 마오주의의 잔혹성을 비난하는 등 서로 긴장감이 돌았다. 그러나 프라찬다가 예상 밖의 “자본주의적” 발언으로 청중으로부터 계속된 갈채를 받으며 마무리 되었다. “우리는 21세기 마오주의자들입니다.” 일부 경제인들의 불평에 대해 프라찬다는 부패를 청산할 것을 약속하며 ‘강한 국가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강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외국인 투자의 보기로 프라찬다와 바타라이는 말레이시아와 한국을 예로 들었다. 중국에 관해 질문이 나오자, 바타라이는 경제발전의 굳건한 토대가 된 마오의 “봉건제도” 척결을 칭송했다. “일단 우리가 국가를 재건하고 사적 분야를 포함시키면 빠른 경제 성장을 이룩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답변으로 보건대 마오주의당은 사회주의와 관련이 없으며, 또한 이들은 노동자계급이나 시골 대중들의 이해를 대변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 절대적으로 분명하다. 오히려 이들의 계획은 자유시장 경제를 촉진하고 외국인 투자를 위해 국가를 개방하는데 군주제는 실패한다는 사실을 말하는 것이다.
인구의 대다수에 만연해있는 사회 위기를 해결하는 것이 아닌 그러한 경제 조처들은 결국 부자와 가난한 사람들 간의 사회적 양극화를 심화시킬 뿐이다. 중국에서의 경우처럼, 프라찬다의 “강한 조치”는 불가피하게 소수의 부패한 관료들이 아니라 민주적 권리와 최소한의 삶의 질을 요구하는 노동자와 시골 대중들에게 시행될 것이다.
나라 안팎의 시선, 마오주의당의 앞날
마오주의 정권은 얼마나 지속될까, 심지어 정권을 제대로 잡을 수 있을까 하는 문제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는다. 12년간 농민 반란군들을 가차없이 억압해온 왕과 군대는 마오주의자들에게 매우 적대적이다. 군주제에 대한 반대 의견이 널리 퍼져있는 까닭에 제헌의회를 폐쇄하고 군사통치를 실시하려는 즉각적인 움직임은 일어날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그러한 방법들이 다시 등장하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하기도 어렵다.
군부는 전(前)게릴라들을 마오주의자들이 군대에 합류시키려는 방침에 극도로 반감을 가지고 있다. 현재 약 3만여명의 前 마오주의당 군인들이 유엔의 감독 하에 열악한 병영에 머무르고 있다. 이는 마오주의 정당의 지도력을 심각하게 훼손할 수 있는 잠재적 위협요소이다. 국민들의 요구를 받아들이겠다고 립 서비스를 하면서도, 군부 대변인 라민드라 체트리는 다음과 같이 발언했다.: “그들(마오주의 군인들)은 앞으로도 군대에 합류할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은 무장 해제되고 동원 해제되고 개조되어 사회로 통합되어야 한다.”
부시 행정부는 마오주의당을 “테러” 조직이라 낙인찍고, 마오주의에 대항한 네팔 군의 전쟁에 무기와 훈련을 제공하며 지원했다. 워싱턴은 2006년 4월 마지막 순간이 되어서야 왕에 대한 지지를 철회했고, 2006년 말 마오주의당(CPN-M)이 임시정부의 일원이 된 이후에도 테러조직에서 이름을 지우지 않았다. 선거 결과를 환영하면서도, 미국은 마오주의 정권의 형성에 대하여 어떠한 언급도 하지 않고 있다. 2006년 팔레스타인 선거에 있었던 이슬람 정당 하마스에 대항한 미 행정부의 책동은 미국이 네팔 마오주의 정당도 ‘흔들기’를 할 수 있다는 분명한 경고가 되고 있다. 미국 언론들은 이미 선거가 불법선거였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월스트리트 월요일 자에 실린 한 기사는 마오주의 정당의 선거 폭력을 집중적으로 다루었는데, 국제 옵저버들이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였다고 묘사했는데도 “국민들은 게릴라들이 전쟁터에 다시 돌아오지 못하도록 마오주의당에 투표하였다”고 다소 엽기적인 논평을 내놓았다.
네팔은 전략적으로 중국과 인도 사이에 있으며, 중앙아시아의 에너지 부자 국가에 인접해있다. 부시 행정부가 마오주의 정당에 대항한 전쟁을 지원한 것은 라이벌인 중국을 포위하려는 광범위한 전략의 일부로서 작은 히말라야 국가에서의 미국의 영향력을 증대하려는 목적이었다. 네팔에서 중국의 영향력이 확대되면 이는 미국이 마오주의자들을 공격하기 위한 자극제가 될 것이다.
마오주의당은 화해 무드를 찾고 있다. 프라찬다는 지난 주말에 선거를 지켜보기 위해 네팔에 머물러 있었던 전 미국 대통령인 지미 카터와 장시간의 대화를 나눌 기회를 가졌다.
네팔에 대한 중국의 정책은 전적으로 실용적인 것이었다. 마오주의자들의 폭동을 지원하기는커녕 ‘반역도’들을 공공연히 비난하고 네팔 정부에 무기까지 제공했다. 다른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중국도 충격적인 선거 결과에 대해 접근 방법을 조정해야 할 것이다. 타임지는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중국은 고집 센 티베트와 국경이 맞닿아있는 히말라야의 전략 지역에서 자신의 이해를 강화하고 있다. 중국 회사들은 수력 전기를 위해 네팔의 빙하 강을 처리하는 수지 맞는 거래를 공격적으로 추진하는 한편, 국가 관료들은 카트만두의 마오주의자들을 달래고 있다.” 이 지역의 다른 주요 국가는 네팔을 오랫동안 자신의 영향권 하에 있다고 생각해온 인도이다. 네팔에서 마오정당이 선전했던 것 중의 하나는 언제나 인도의 ‘팽창주의’에 대항한 것이었다. 마오주의당은 양국간의 자유 무역과 사람들의 왕래를 허용하는 1950년 인도-네팔 조약을 폐기할 것이라고 예전에 약속했었다. 네팔의 집권 엘리트들은 그 조약을 인도가 정치 경제적 영향력을 발휘하는 수단으로 간주해왔다. 육지로 둘러싸인 네팔은 무역과 운송에서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다.
인도 정부는 7개 정당 연합과 마오 정당 사이의 거래를 중재하는데 주요한 역할을 했다. 그러나 그 결과가 마오주의당이 정권을 잡는 것으로 끝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인도는 부분적으로 대부분의 지역에서 마오주의 게릴라들의 움직임에 역습을 가하기 위하여 네팔에서의 폭동을 끝장내기를 원했다. 인도는 카트만두에서 라이벌인 중국이나 파키스탄의 영향력이 증대되는 것에 극도로 민감하고, 또한 인도 내에서 불안이 높아지는 것도 마찬가지다.
프라찬다는 이러한 인도의 두려움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신속하게 움직였다. 수요일 마오주의 대표자는 네팔이 지리적, 문화적, 역사적으로 인도와 “특별한 관계”에 있다는 것을 재차 확인했다. 그는 이미 화요일에 “인도 관료와 장시간 진지한 회담”을 나누었다는 것을 밝혔다. 인도 외무부장관 프라납 푸크헤르지는 프라찬다를 뉴 델리로 초대했다.
외교적으로 의례적인 말을 나누는 것 이면에 긴장감은 여전히 남아있다. 프라찬다는 다음과 같이 경고했다.: “만일 소비자 공급과 다른 필수품들이 이 중대한 시점에 영향을 받게 되면 네팔과 인도의 관계는 장기간 영향을 받게 될 것이다.” 이 말은 네팔이 중국으로부터 무기를 구입하려고 시도한 뒤로 인도가 네팔에 무역 봉쇄 정책을 펼쳤던 1988년을 상기시킨다. 이러한 조치는 네팔 경제에 심대한 충격을 던져주고 인플레이션을 불러온다. 지난 주의 선거결과는 분명히 정치사회적 불안정성을 부추길 외교적 음모의 소굴로 네팔을 밀어 넣을 것이다(2008. 4.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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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남부 네팔 사람들을 일괄적으로 부르는 이름. 인도 동북부 민족과 종족과 문화가 가깝다. 구릉지역에 사는 '파하디’ 사람들과 대조되어 불리는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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