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 <기고> 5월 1일, 집에서 죽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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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전혜정 작성일07-05-31 00:00 조회1,700회 댓글0건본문
5월 1일, 집에서 죽치다
-117주년 노동절 창원노동자대회 유감
전 혜 정 (동아대병원노조 전 지부장)
노동절이 지난 며칠 뒤, ‘올해의 노동절’을 비평하는 글을 써달라는 청탁을 받았다. 거절하기가 차마 어려워 수굿이 받았는데 막상 책상머리에 앉고 보니 앞이 캄캄하다. “세상에, 노동절 행사에 참가하지도 않은 사람이 어떻게 언감생심 ‘노동절 비평문’을 쓴다는 말인가. 남들한테 주워들은 이야기 조각들을 얼기설기 그러모아서 무슨 글이 제대로 되어 나오겠는가.” 뒤늦게 후회 막급이었지만 궁리 궁리 끝에 찾아든 생각은 ‘내가 왜 노동절 행사에 참가하지 않았던가(못했던가)’에 관해서나 써보자는 것이었다. 이 신변 잡기로 글이 변변히 만들어질지는 모르겠으나 아무튼 써 보기로 한다.
나는 올 노동절 집회에 참가할 생각이었다. 자신을 성실한 활동가로 자임하므로.^^^ 사실 일반 노동자들이 매년 찾아오는 노동절 집회를 꼬박꼬박 다 참가하기는 힘들다. 그러나 요즘 이러저런 이유로 흐트러져 있는 터라, 집회에 가서 기분 좀 다잡는 것도 좋겠다 싶어 ‘근무일’까지 바꿔 놓았는데 아니, 어느 한 군데에서도 ‘집회 가자’고 연락이 오지 않는 거다. 물론 내가 사는 부산 지역은 ‘창원으로 집결하라’고 중앙의 지침이 내려와 있었지만, 사람이 어디 덮어놓고 명령에 따르는 로봇인가.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누가 ‘가자’고 해야 마음이 동하는 법인데 누구도 내 소매를 붙잡지 않았다.
올해의 행사를 마뜩찮아 하는 이야기들이 슬슬 귀에 들어왔다. “창원의 노동자 통일대회를 한국노총과 함께 한다더라!” 작년 9월,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하나를 막으려고 정부와 ‘복수노조 3년 유예’와 맞바꾸기 야합을 한 한국노총과 ‘공조’를 그만 두겠다고 민주노총 대대에서 철석같이 결의한 것으로 아는데, 언제 다시 공조하기로 방침을 바꾸었던가?
4월 마지막 날, 민주노동당 지역위원장으로 있는 후배한테서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내가 노동절날 ‘아무 데도 갈 데가(또는 갈 생각이) 없다’는 것을 안 그가 나와 달라는 것이다. 지역에서는 노동절 집회도 없고, 창원에 가기는 그리 내키지 않고, 그렇다고 멀거니 하루를 죽일 수가 없어서 지하철 역사에서 간단한 문화제를 열려고 하는데 연사가 필요하다는 부탁이었다. 여성 노동자의 처지에서 시민들에게 말 한 마디 해 달라! 직장에서 쫓겨나 거리를 헤매거나 계약직, 비정규직으로 연명하는 숱한 여성노동자들에게 내가 무슨 뾰죽한 말을 할 수 있을까. 민주노총 위원장이 경총에 찾아가 ‘비정규직은 필요악’이라고 망발을 일삼을 때 나는 어떤 비판행동도 하지 못한 무력한 일개 조합원인데.
노동절날, 내가 사는 지역에 백 명 남짓한 노동자들이 들러서 ‘한미FTA 반대, 비정규직 확대법안 철폐, 노사관계 로드맵 분쇄!’ 구호를 외치고 갔다. 실종된 노동절을 되찾겠노라고 ‘부산 현장공동투쟁단’이 삼광사에서 김해로 장기투쟁 사업장을 돌았다. “하지만 나는 저 활동이 자기 만족을 위한 투쟁으로밖에 보이지 않아.”하고 옆의 동료에게 꼬집었더니 그는 관대했다. “누구도 자리를 펴주지 않으면 움직이려고 하지 않는데 그래도 저 사람들은 움직이잖니? 그래도 나는 박수를 쳐 주고 싶어.”
딴은 그렇기도 하다. 7월 1일 비정규 개악법 시행을 앞두고, 곳곳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쫓겨나고 있다. 그 뿐이랴. 기륭전자, KTX, 광주시청에서 숱한 노동자들이 기나긴 투쟁을 해오고 있다. 하지만 노동운동 상부에서는 이에 대한 관심이 엷어져 가고 있다.
117주년 노동절의 창원 노동자대회는 대회사에도, 연대사에도, 결의문에도 ‘이 땅의 노동자들이 벌여온 투쟁’ 이야기가 들어 있지 않았다고 한다. ‘남북의 노동자가 자본에 함께 맞서자’는 이야기도 없었다고 한다. 해마다 노동절 집회에 넘쳐나던 투쟁사업장 유인물 대신에 카드섹션 색종이가 선을 보였고, 투쟁구호 투쟁노래 대신에 “우리는 하나”라는 구호로 통일되었다. ‘분위기가 어땠느냐’고 묻는 내게 한 동료는 능청을 부렸다. “그게 남북 노동자대회였던가? 나는 축구만 열심히 구경하고 왔는데...” 최근에 어설프게 노조를 만들었다가 졸지에 장기투쟁 사업장이 되어, 죽어라 투쟁하고 있는 후배가 냉소를 보냈다. “비정규직 철폐 이야기는 한 마디도 없었어요.”
진보언론 대부분은 이번 창원의 노동자대회를 ‘통일운동의 이정표’라고 추어주었다. 물론 통일운동도 중요하다. 남북의 노동자들이 힘을 합해서 미국에 맞서자거나 자본에 맞서자고 소리를 높였다면 그것은 훌륭한 일이다. 그랬더라면 비정규직과 중소영세 노동자 이야기를 대회에서 따로 꺼내지 않았더라도 보아줄 만하다. 하지만 이미 남한의 지배층도 합의하고 있는 ‘남북 교류’ 하나를 외치기 위해 남한 노동자들의 투쟁 이야기를 잠재우는 것은 못내 수상쩍은 일이다. 북한 노동자들은 과연 이 통일대회에 와서 어떤 감동을 받고 갔을까?
어두운 이야기들이 잇따라 들려 온다. 금속노조 위원장이 장기투쟁 사업장의 집회 때 이런 말을 했다나? “평화 시위를 해야 한다. 과격한 행동을 하는 조합원은 징계하겠다!” 어느 집회에서 민주노총 아무개 부위원장이 ‘비정규법안을 폐기하라!’고 외친 뒤에 민주노총에 작은 소동이 일었다고 한다. 시행령을 협의 검토하러 정부에 들어간 상집 간부들이 달려와서 이 돌출 발언을 덮는 대책 회의를 열었다나? 그런데 창원 대회는 ‘밝음 일색’이었던 것이다.
까마득한 옛날에는 노동절날 ‘적기가’ ‘메이데이가’ ‘혁명가’를 불렀다고 선배들에게 들었다. 나는 ‘철의 노동자’라도 계속 부를 수 있는 그런 노동절 날이 되기를 소망한다. ‘철의 노동자’ 노랫가락이라도 들려 왔다면 나는 ‘오라’는 사람이 없어도 창원으로 달려갔을 것이다(2007. 5. 14).
“....단결만이 살 길이요 ♩♬ 노동자가 살 길이요,
♬ 내 하루를 살아도 ♬ 인간답게 살고 싶다....”
-117주년 노동절 창원노동자대회 유감
전 혜 정 (동아대병원노조 전 지부장)
노동절이 지난 며칠 뒤, ‘올해의 노동절’을 비평하는 글을 써달라는 청탁을 받았다. 거절하기가 차마 어려워 수굿이 받았는데 막상 책상머리에 앉고 보니 앞이 캄캄하다. “세상에, 노동절 행사에 참가하지도 않은 사람이 어떻게 언감생심 ‘노동절 비평문’을 쓴다는 말인가. 남들한테 주워들은 이야기 조각들을 얼기설기 그러모아서 무슨 글이 제대로 되어 나오겠는가.” 뒤늦게 후회 막급이었지만 궁리 궁리 끝에 찾아든 생각은 ‘내가 왜 노동절 행사에 참가하지 않았던가(못했던가)’에 관해서나 써보자는 것이었다. 이 신변 잡기로 글이 변변히 만들어질지는 모르겠으나 아무튼 써 보기로 한다.
나는 올 노동절 집회에 참가할 생각이었다. 자신을 성실한 활동가로 자임하므로.^^^ 사실 일반 노동자들이 매년 찾아오는 노동절 집회를 꼬박꼬박 다 참가하기는 힘들다. 그러나 요즘 이러저런 이유로 흐트러져 있는 터라, 집회에 가서 기분 좀 다잡는 것도 좋겠다 싶어 ‘근무일’까지 바꿔 놓았는데 아니, 어느 한 군데에서도 ‘집회 가자’고 연락이 오지 않는 거다. 물론 내가 사는 부산 지역은 ‘창원으로 집결하라’고 중앙의 지침이 내려와 있었지만, 사람이 어디 덮어놓고 명령에 따르는 로봇인가.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누가 ‘가자’고 해야 마음이 동하는 법인데 누구도 내 소매를 붙잡지 않았다.
올해의 행사를 마뜩찮아 하는 이야기들이 슬슬 귀에 들어왔다. “창원의 노동자 통일대회를 한국노총과 함께 한다더라!” 작년 9월,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하나를 막으려고 정부와 ‘복수노조 3년 유예’와 맞바꾸기 야합을 한 한국노총과 ‘공조’를 그만 두겠다고 민주노총 대대에서 철석같이 결의한 것으로 아는데, 언제 다시 공조하기로 방침을 바꾸었던가?
4월 마지막 날, 민주노동당 지역위원장으로 있는 후배한테서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내가 노동절날 ‘아무 데도 갈 데가(또는 갈 생각이) 없다’는 것을 안 그가 나와 달라는 것이다. 지역에서는 노동절 집회도 없고, 창원에 가기는 그리 내키지 않고, 그렇다고 멀거니 하루를 죽일 수가 없어서 지하철 역사에서 간단한 문화제를 열려고 하는데 연사가 필요하다는 부탁이었다. 여성 노동자의 처지에서 시민들에게 말 한 마디 해 달라! 직장에서 쫓겨나 거리를 헤매거나 계약직, 비정규직으로 연명하는 숱한 여성노동자들에게 내가 무슨 뾰죽한 말을 할 수 있을까. 민주노총 위원장이 경총에 찾아가 ‘비정규직은 필요악’이라고 망발을 일삼을 때 나는 어떤 비판행동도 하지 못한 무력한 일개 조합원인데.
노동절날, 내가 사는 지역에 백 명 남짓한 노동자들이 들러서 ‘한미FTA 반대, 비정규직 확대법안 철폐, 노사관계 로드맵 분쇄!’ 구호를 외치고 갔다. 실종된 노동절을 되찾겠노라고 ‘부산 현장공동투쟁단’이 삼광사에서 김해로 장기투쟁 사업장을 돌았다. “하지만 나는 저 활동이 자기 만족을 위한 투쟁으로밖에 보이지 않아.”하고 옆의 동료에게 꼬집었더니 그는 관대했다. “누구도 자리를 펴주지 않으면 움직이려고 하지 않는데 그래도 저 사람들은 움직이잖니? 그래도 나는 박수를 쳐 주고 싶어.”
딴은 그렇기도 하다. 7월 1일 비정규 개악법 시행을 앞두고, 곳곳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쫓겨나고 있다. 그 뿐이랴. 기륭전자, KTX, 광주시청에서 숱한 노동자들이 기나긴 투쟁을 해오고 있다. 하지만 노동운동 상부에서는 이에 대한 관심이 엷어져 가고 있다.
117주년 노동절의 창원 노동자대회는 대회사에도, 연대사에도, 결의문에도 ‘이 땅의 노동자들이 벌여온 투쟁’ 이야기가 들어 있지 않았다고 한다. ‘남북의 노동자가 자본에 함께 맞서자’는 이야기도 없었다고 한다. 해마다 노동절 집회에 넘쳐나던 투쟁사업장 유인물 대신에 카드섹션 색종이가 선을 보였고, 투쟁구호 투쟁노래 대신에 “우리는 하나”라는 구호로 통일되었다. ‘분위기가 어땠느냐’고 묻는 내게 한 동료는 능청을 부렸다. “그게 남북 노동자대회였던가? 나는 축구만 열심히 구경하고 왔는데...” 최근에 어설프게 노조를 만들었다가 졸지에 장기투쟁 사업장이 되어, 죽어라 투쟁하고 있는 후배가 냉소를 보냈다. “비정규직 철폐 이야기는 한 마디도 없었어요.”
진보언론 대부분은 이번 창원의 노동자대회를 ‘통일운동의 이정표’라고 추어주었다. 물론 통일운동도 중요하다. 남북의 노동자들이 힘을 합해서 미국에 맞서자거나 자본에 맞서자고 소리를 높였다면 그것은 훌륭한 일이다. 그랬더라면 비정규직과 중소영세 노동자 이야기를 대회에서 따로 꺼내지 않았더라도 보아줄 만하다. 하지만 이미 남한의 지배층도 합의하고 있는 ‘남북 교류’ 하나를 외치기 위해 남한 노동자들의 투쟁 이야기를 잠재우는 것은 못내 수상쩍은 일이다. 북한 노동자들은 과연 이 통일대회에 와서 어떤 감동을 받고 갔을까?
어두운 이야기들이 잇따라 들려 온다. 금속노조 위원장이 장기투쟁 사업장의 집회 때 이런 말을 했다나? “평화 시위를 해야 한다. 과격한 행동을 하는 조합원은 징계하겠다!” 어느 집회에서 민주노총 아무개 부위원장이 ‘비정규법안을 폐기하라!’고 외친 뒤에 민주노총에 작은 소동이 일었다고 한다. 시행령을 협의 검토하러 정부에 들어간 상집 간부들이 달려와서 이 돌출 발언을 덮는 대책 회의를 열었다나? 그런데 창원 대회는 ‘밝음 일색’이었던 것이다.
까마득한 옛날에는 노동절날 ‘적기가’ ‘메이데이가’ ‘혁명가’를 불렀다고 선배들에게 들었다. 나는 ‘철의 노동자’라도 계속 부를 수 있는 그런 노동절 날이 되기를 소망한다. ‘철의 노동자’ 노랫가락이라도 들려 왔다면 나는 ‘오라’는 사람이 없어도 창원으로 달려갔을 것이다(2007. 5. 14).
“....단결만이 살 길이요 ♩♬ 노동자가 살 길이요,
♬ 내 하루를 살아도 ♬ 인간답게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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