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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와 투쟁방향
전태일을 따르는 민주노동연구소의 <정세와 투쟁방향>입니다.

기타 | <주간논평> 다시 전열을 가다듬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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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철순 작성일07-05-31 00:00 조회1,44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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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간논평>
                                     다시 전열을 가다듬으려면

                                                                                     김 철 순
 

 허세욱 열사가 눈을 감은 지 한 달이 지난 지금 5월, FTA저지 싸움은 어찌 되었는가? 민노당 게시판에는 ‘제발 좀 다시 싸웁시다!’하고 호소하는 글이 두어 편 올라왔다. “정부는 한EU FTA까지 벌인답시고 요란스레 대세론을 퍼뜨리는데 중앙당이나 의원단이나 범국본이나 어디에도 기획이 없고 진정성 있는 투쟁이 사라졌다. 우리 지역이라도 어떻게 해보자고 나섰는데, 유인물을 받아드는 시민들의 반응이 냉담하다. 다시 제대로 대응해 보자.” 그나마 노동자들이 약간 시늉을 한 것이 금속노조연맹에서 FTA로 6월에 총파업을 벌이겠다고 ‘결의’해 놓은 것 정도다.
 필자는 5월 초순 어느날, 서울 구로금천 사회단체들이 주최한 촛불문화집회에 가 보았다. FTA반대 선전을 열심히 하고 있었는데 그렇게 반대운동을 다시 일으키려는 ‘드문’ 노력은 정말 훌륭한 것이지만 안타깝게도 내용이 업그레이드되어 있지 못했다. 광우병이 낳을 끔찍한 결과, 그리고 농민들이 겪을 피해가 주로 거론되었을 뿐이다. 그 내용이 옳기는 해도 작년에 많이 선전된 이야기이고, 충분히 밝혀내지 못한 부분들이 아직 많지 않은가.
 최근 만난 남녘의 한 활동가는 내게 ‘더 팍팍 와닿는 선전물이 없다’고 한탄했다. 기존의 유인물들이 일반 시민이나 노동자에게 팍 가닿지 못하다는 이야기다. 이렇게 작년과 올해의 FTA 저지싸움은 허술한 것 투성이었다.     
 
 자, FTA싸움을 다시 일으키려면 어찌해야 할까? 우리는 여지껏 벌여온 반대운동을 겸허하게 살피는 일부터 해야 한다. 이를테면 지난 2월 ‘한국진보연대’에서 내놓은 문건의 한 대목을 보자. 
『 ㉮ 결렬될 경우 : 국민 승리로 규정...
   ㉯ 타결되고 국회비준이 2007년 상반기경 처리될 경우
 : 타결 양상이 굴욕적일 가능성이 크고, 2006년 운동의 성과와 동력이 유지되고 있으며 정계개편에 따라 정치권내에서도 공공연한 반대 입장이 표출될 것이므로 심각한 격돌 예상
 : 원천무효를 곧바로 선언하고 강력한 투쟁을 전개한다. 국민투표와 대선과의 연결 등 정치투쟁으로 발전시키고 역동적인 투쟁을 진행한다. 
  ㉰ 타결되고 국회비준이 2008년으로 이월될 경우
 : 2007년 대선에서 의미 있는 쟁점으로 부상할 것
 : 쇠고기 수입, 미국의 개방 압력 등과 관련해 정치여론전을 벌이고 다양한 대중운동을 추진한다.』

  정세 인식이 한가롭다. ‘협상이 결렬될 수도 있다’고 봤는데 투쟁 형편을 몰랐던가? 정권은 우리를 잘 알고 있을 터인데? ㉯와 ㉰의 전망도 터무니없다. 『‘비준을 앞둔’ 경우는 작년의 동력이 유지되고 있으니 격돌을 벌일 수 있고, 비준이 늦춰질 경우는 대선에서 쟁점화할 수 있다...』말이 좀 이상하다. 동력이 국회 비준에 따라 오락가락? 막중한 사실을 간과했다. 타결이 돼버리면 국민대중이 대세론에 빠져들고 운동 주체의 맥이 빠져버린다는 사실을! 이 패배의식을 어찌 걷어낼지, 숙고하지 않았다. “국회 비준이 닥치면 어떻게든 시늉을 할 것이고, 그게 늦춰지면 선거에서나 거론할 일”이라는 수동적인 생각이 숨어 있지 않은가. 지금 당장 밑으로부터 불길을 다시 지피겠다는 결의가 자취를 감추지 않았는가. 
 
 범국본은 투쟁의 일정표를 이렇게 그린다. 4-5월에는 조직을 갈무리하고 협상공개 요구투쟁을 벌이며, 9월에는 국회비준을 막는 싸움에 나서는데 ‘죽기 살기’로 하고, 11월에는 대선 국면을 맞아 총궐기를 한다! 올해에는 ‘일단 늦추기’를 목표로 하고 내년에는 완전히 막는다! 그런데 의식 있는 노동자 농민들이 얼마나 이 투쟁에 동참할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들의 마음을 사려면 어찌 해야 할까?
 
 이 싸움을 끌어가는 단위는 범국본이나 당과 노총의 지도부이지만, 승리의 열쇠를 쥔 단위는 그들이 아니다. FTA를 막아내느냐 여부는 곳곳의 현장에서 살아가는 활동가들이 얼마나 ‘떨쳐’ 나서느냐에 달려 있다. 이따금 시늉으로만 동참하는 활동가들이 얼마나 진정성 있게 힘을 모아낼 것인가?
 절박하게 성찰해야 한다. 그래야만 가까스로 다시 일어난다. 왜 싸움이 ‘함락 직전’으로 몰렸는지, 여러 모로 따질 것들이 많겠지만 주된 패인은 결국 우리에게 ‘비전’이 부족했기 때문이 아닐까.  
 범국본은 ‘광우병, 끔찍해’ 하고 외쳐댔고 얼마동안은 시민들이 솔깃하게 들었다. 그러나 그들이 싸움에 합세하지는 않았다. “FTA가 들어오면 감귤 농사가 망한다!” 그래서 농민들이 가장 치열하게 싸웠다. 그러나 ‘체결 발표’가 나오고 반대세력의 맥이 빠지니까 농민들도 흔들렸다. 게다가 그동안 “FTA가 체결되면 자본들이 대대적으로 정리해고에 나선다.”는 사실이 자세히 선전되지 못했다. FTA의 결과, 미국식 노동규범(해고의 자유, 근로기준법 폐지)으로 뜯어맞추는 헌법 개정이 뒤따를 예정임을 널리 알린다면 뒤늦게나마 노동자들이 거들어 나설 수는 있다. 그러나 이렇게 ‘FTA, 문제 있다’는 선전만으로는 한국과 미국의 지배세력이 합작한 대대적인 공세를 막아내기 어렵다. 싸움은 ‘독하게’ 해야 하는데 그동안 독하게 나선 부분이 얼마 없지 않았는가.

 사람은 어찌 해야 독하게 나서는가? 신념과 비전(대안)을 품었을 때에만 그렇게 나선다. “20 대 80으로 갈라지는 세상은 싫다! 그러므로 신자유주의를 반대한다!”는 정서적인  분노만으로는 부족하다. 지배세력은 이렇게 말한다. “FTA를 해서, 우리도 자본주의 선진국으로 가자! 다른 대안이 없지 않으냐?”
 대안 부재론은 참 무서운 말이다. 다른 대안체제를 믿지 않는 사람은 한동안은 싸운다 해도 끝까지 반대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우리는 신자유주의로 몰아가지 않고 자본주의 극복의 길로 가는 다른 길이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믿는다. 물론 더딘 길이지만, 세계 민중이 함께 나아가면 갈 수 있고 또 가야만 한다.” 이렇게 비전을 품은 사람이라야 끝끝내 FTA에 무릎 꿇지 않는다.
 그런데 유럽 여러 사민당이 보여주고 있듯이 ‘사민주의’는 이미 우리의 비전이 되어주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올해 들어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첫 걸음을 ‘연대 사회’의 개념과 경로로 구체화했는데, 그 자세한 소개는 다음으로 미룬다.  

 지배세력은 가짜 비전이기는 하지만 ‘선진국’을 노래하는데 우리가 미래에 대한 ‘청사진’도 없이 그저 반대만 외쳐서는 오랜 싸움을 버티기 힘들다. FTA 싸움은 어느새 우리 운동의 ‘활로’를 묻는 싸움이 되어버렸다! 어찌 해야 ‘비전’을 품는 사람을 늘릴 수 있을까?(2007. 5.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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