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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와 투쟁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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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정세(노동운동 동향) | 하이닉스 직권조인사태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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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문재훈 작성일07-06-30 00:00 조회1,64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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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닉스 ‘직권조인 사태’를 생각한다

 

문 재 훈(서울남부 노동상담센터 소장)

 

하이닉스매그나칩 비정규 투쟁(이하 하이닉스 투쟁)이 갓 출범한 완성 금속노조에 첫 번째 시련을 안겨 주었다. 기세 좋게 출범하여 산별노조 교섭체제도 마련하고 규모의 위력도 보이고 싶었던 정갑득 집행부가 휘청거린 것이다. 품은 포부를 펼치지도 못하고 주춤거리는 당사자들도 답답하겠지만 잘못된 길은 처음부터 막아야 한다는 비판자들의 마음도 절박해 보인다. 그러니 직접 당사자가 아닌 이들이 농성을 하고 성명을 내고 행동하는 것이리라. 이에 대한 의견을 말하기에 앞서, 내가 예전에 금속 게시판에 올린 글을 소개한다.

 

『장기 투쟁 사업장! 현장 복귀를 포기하고 돈으로 해결하는 것은 파멸이다.

(금속 자유게시판 303번)

 

....투쟁이 길어지면 생활고와 마음고생을 함께 겪는다. 경제적 어려움이 노조에 대한 희망을, 투쟁으로 돌파하기를 가로막는다.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는 오래된 상식(?)이 사람을 유혹한다. 물론 저들의 회유와 협박, 분열과 이간 책동이 그 유혹을 북돋는다.

그래서 결국 남는 것이 돈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일이다. 넉넉하게 얻을 수도 없는 돈에 매달리다 보면 노조가 사람답게 살자는 곳이 아니라 ‘실리를 쫓는 곳’으로 뒤바뀐다. 돈과 권력과 힘이 희망을 짓누른다. 어차피 돈 앞에서는 “그놈이 그놈”이라는 냉소와 “칼자루 쥔 놈을 이길 순 없다”는 패배주의가 퍼지고, ‘나만이라도 살자’는 생존 본능이 공동체를 무너뜨린다.

 

이런 마음 고생을 이겨내게 하려고 학습과 연대 실천에 나서지만 우리의 노력은 태풍 앞 촛불처럼 자꾸만 흔들린다. 돈으로 해결하고 끝냈다는 투쟁 소식이 한둘이 아니다. 자본에게는 가장 편한 길이요, 노조 얼굴에는 똥물을 끼얹는 길! 현장에서 노조 활동의 씨앗마저 깡그리 없애버리는 길을 ‘어쩔 수 없다’고 받아들인다. 그리고 이런 결말을 끌어내는 수단이자, 지도부에게는 ‘변명할 명분’이 되어주는 것이 바로 지칠 대로 지친 조합원들의 총의(총회 투표)다. 항복하고 싶은 지도부의 마음과 조합원들의 지친 마음이 서로 죽이 맞아(?) 불러내는 다수결이 과연 나무랄 데 없는 민주주의일까?

 

더 걱정스러운 일은 어느덧 돈으로 해결하는 것이 비정규직 장기 투쟁의 정형(定型)으로 굳어지는 것이다. 쫓겨난 노동자들은 사실 현장 복귀가 어렵다. 그래서 정규직은 비정규직으로, 비정규직은 도급 하청으로, 도급 하청은 사외 하청으로 밀려나는 것을 결국 인정하게 된다.

 

이렇게 승리하지 못하고 열악한 조건으로 타협하거나 금전 보상을 조건으로 결말을 맺는 일이 늘어나면 노조 운동이 자꾸 울타리 안에 갇힌다. ‘정규직화’는 더 이상 넘볼 수 없는 금단의 영역이라고 스스로 받아들이게 된다. 현실을 돌파하고 바꿔내는 게 아니라 현실에 안주하고 적응하는 과정이 이어지고, 세상을 바꾸기는커녕 세상에 노조를 맞추는 노조의 변질 과정이 보편화된다.....』

 

이러한 성찰까지 나아가지 않는다 해도 최근 하이닉스 투쟁을 둘러싼 노동운동의 동향은 당장 몇 가지 생각거리를 던져 준다. ‘투쟁을 계속하겠다’며 다시 일어선 하이닉스 노동자들이 하이닉스 직권조인에 항의 농성을 벌이는 다른 단체 동지들의 면담을 최근 거절한 일이 있다고 한다. 왜 이런 어긋남이 생길까? 또 하이닉스 지회 집행부가 깊이 침묵하고 있다. 독박을 썼으니 유구무언일까?

 

투쟁하는 동지들의 기대와 좌절 1

 

하이닉스 파행의 중심에는 현장노동자와 투쟁하는 동지들의 ‘기대’와 그 기대가 꺾인 곳에 피어난 ‘좌절’이라는 곰팡이가 있다. 장기투쟁(장투) 노동자들은 완성 금속노조가 출범하면 생계 걱정을 50%는 줄여주고 집중된 힘으로 일점돌파의 위력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출범 대대에서 결정한 것은 “집단 해고에 신분보장 기금을 적용하되 소급 적용하지 않는다.”는 기이한 내용이었다. 물론 말로는 대의원대회 결정의 문제점을 인정하고 특단의 대책을 세우겠다고 했지만 지금까지 특단의 조처를 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바가 없다. 생계 대책이 있느냐고 하이닉스 투쟁 주체들이 질문했더니 금속노조나 농성자들이나 다 묵묵부답이었다고 들었는데 장투 문제의 핵심이 어디에 있는지를 이 사실이 알려준다.

공무원 노조 해고자들은 해고 전 임금에 상당하는 생계비를 받는다고 들었다.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한다. 하지만 중소기업이나 대기업 비정규직이 그 만큼의 배려를 받았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이 없다. 누구를 탓하려는 게 아니다. 다만 장투 노동자들이 요구하는 생계비가 그렇게 막대한 액수가 아님을 말하려는 게다. 월 50만 원 남짓의 생계비라도 확보하자는 요구가 그렇게 불가능한 요구일까? 이런 기본 문제를 풀지 못하는 한, 현장의 투쟁은 낙관하기 어렵다.

실제로 자본들은 일사불란하게 고의로 투쟁을 길게 끌고 간다. 노조의 존재 자체를 부정한다. 노조를 했다면 적어도 1-2년은 고생을 각오해야 하는데 이는 주변의 미조직 노동자들에게서 노조 결성의 용기를 앗아간다. 단체협상 자리조차 목숨을 걸어야 하는데다가 고용보험 6개월이 지나면 투쟁과 투쟁기금 확보에 이중의 고통을 겪는다. 최저 생계도 꾸리기 어려운 조합원들이 떨어져나가고, 자본의 회유와 협박, 분열과 이간으로 투쟁의 피로도는 극에 다다른다. 자본은 노조 결성조차도 장기 투쟁으로 끌어가서 노동자에게 노조 건설의 어려움을 시위하고, 이웃 노동조합들이 연대와 지원을 보내는 것을 거북하게 만든다. 장투 사업장이 ‘계륵’ 신세가 되는 것이다. ‘연대와 집중을 통해 돌파하자’고 장투 사업장이 아무리 본조에 호소해도 본조와 투쟁 현장 간의 온도 차이는 선뜻 줄어들지 않는다.

 

연대와 단결 투쟁에서 기대와 좌절 2

 

또 하나의 좌절은 연대와 단결 투쟁의 좌절이다. 하이닉스 투쟁은 많은 관심과 지지를 받은 투쟁이라고 우리는 알고 있지만 이는 외부 사람들이 내린 판단일 뿐이다. 지지와 지원이 꾸준히 이어지기를 하이닉스 노동자들이 간절히 바라지만 현실이 어디 그러한가. 초기의 반짝하는 관심이 지나면 잊혀져 가기 마련이다. 투쟁 주체들이 쥐어짜듯 지지의 계기를 마련해야만 한다. 지부나 본조는 사안이 수없이 터지는 까닭에 한 군데만 집중하기 어렵다. 그래서 겉으로는 지지하지만 속으로는 꺼릴 때가 많은데 투쟁하는 대중들에게는 그 이중성이 예민하게 받아들여진다.

하이닉스의 경우, 지부와 본조 사이에, 지부와 지회 사이에 거리가 없다고 할 수 없다. 이런 작은 틈이 결정적인 순간에 감정의 질곡으로 작용한다. 상부가 “본조나 지부는 더 이상 투쟁을 지원할 여력이 없다. 우리가 감당할 투쟁이 이곳 말고도 많다”고 변명할 때 현장 조합원들은 단절감을 품게 된다. 그러니 “이번에 못 풀면 안 된다”라는 강박관념이 찾아들고 그래서 부랴부랴 꾸린 투쟁이 성과가 없거나 지지부진해지면 투쟁 주체들 내부에 심각한 동요와 방황이 일어난다. 그러니 충북 지부가 일이 벌어진 뒤에 사과문을 발표한 것은 그 진정성이야 넉넉히 알 만한 일이지만 이미 때가 늦었다. 조합원들이 운명을 걸고 고민할 때가 아니라 ‘자살’을 선택하고 저지른 뒤에 나왔으니 그 정치적 의미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합원 총투표의 허실

 

하이닉스 투쟁의 과정을 보며 우리는 민주주의와 투쟁의 관계를 재고하게 된다. 실리적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여기는 측이 노동운동의 상층을 차지한 것은 분명한데 묘하게도(?) 그들은 그런 자기들의 속내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지 않는다. 다만 마지막 파국적 결정의 책임을 현장에게, 투쟁 주체들에게 돌려버릴 뿐이다. 그것도 종종 전선(戰線)을 지키는 이들이 아니라 이미 한 발짝 물러선 이들더러 ‘다수’로 결정하라는 것이다. 이것이 조합원의 총투표라는 절차다.

‘자살을 하자’는 결정을 다수가 했다 하여 이를 수긍할 수 있을까? 이것이야 말로 ‘민주’라고 둘러대면서 지도를 포기하는 부정직한 관료주의의 모습이 아닐까? 상급 단체는 공식적으로는 원칙을 말하면서 비공식적으로는 ‘투쟁을 이어가기 어렵다’는 말을 퍼뜨려서 우리를 우울하게 만든다. 정말 긴박하게 지도 지침이 나와야 할 때, 현장이 흔들리고 어려워질 때 그 결정적인 순간에 지부와 본조와 지역이 침묵한다! 그리고는 일이 다 벌어진 뒤에 딴 쪽에서 ‘책임론’이 일어난다! 이런 일이 거듭되는 것도 투쟁하는 노동자들의 좌절을 부추긴다.

 

산별노조가 ‘교섭‧쟁의‧재정’의 최종 결정권을 지니고 있는데도 마지막 결정을 현장 지회의 조합원에게 미루는 것은 부당하다. 현장이 누릴 권리는 투쟁할 권리, 나아갈 권리이지 투쟁을 포기할 권리가 아니다. 포기와 후퇴를 막고 전진하게 하는 책임이 노조 지도부에게 있다. 그런데 투쟁의 동력이 있을 때는 열심히 결합하고 동력이 어려울 땐 거리를 두는 행태가 되풀이되고 있다. 이런 관료주의 작풍이 투쟁하는 주체들을 주춤거리게 한다.

 

비판과 평가는 투쟁을 도와주는가

 

또 하나의 생각 거리는 사후 책임론의 방향이다. 어느 장투 사업장 대표에게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투쟁을 생각하면 너무 막막하다. 지부와 본조, 심지어 대책위조차도 투쟁의 구체적인 전술이나 방향을 제시하지 않는다. 그저 투쟁하는 이들이 결정하라고 미루고, 강력하고 부담되는 투쟁은 절차 문제 같은 이러저러한 이유를 들어 가로막는다. 대책을 요청하면 투쟁 계획서를 제출하라고 한다. 투쟁 계획이 전체 노조나 지부 차원에서 구체적이고 집중적으로 제출된 적이 없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를 조합원에게 꺼내지 못한다. 정말 어려울 때 ‘금속노조가 우리와 함께 한다’는 사실이 그래도 힘이 되기 때문이다. 내가 앞장서서 지부나 본조를 비판하고 나서는 것은 제 얼굴에 침 뱉기랄까, 조합원들의 마지막 희망의 근거마저 거둬내는 일이다. 그랬다가는 장투 사업장이 계륵 취급을 받는 것을 넘어 아예 암 덩어리 취급을 당하지 않을지 걱정도 든다. 이 이야기는 그들의 속앓이하는 심정을 밝혀주지만 나는 그 말의 이면, 즉 투쟁하는 조합원들의 눈으로 보는 희망의 실체를 주목한다.

 

지부나 본조의 무책임과 오류를 비판하는 것이 물론 그를 리는 없다. 하지만 그 결과는 현장과 전선에 힘이 돼 주어야 한다. 치열한 비판과 항의가 또 다른 장투 사업장 투쟁에 외려 제약이 될 때가 많다. 투쟁의 방향이 집중되지 못하고 아예 투쟁을 손놓아 버리게 핑계거리를 준다. 대적 투쟁의 강화가 아니라 노동운동 내부의 ‘정파 투쟁’으로 쉽게 변질된다. 하이닉스의 논쟁의 진정한 맹점은 그 논쟁의 한 가운데에 하이닉스 노동자들이 없다는 것이다. 주체의 소외 현상이 극복되지 않는 한 아직 우리의 비판과 대응은 제 길을 찾은 것이 아니다!

 

우리는 흔히 비판이 비난이 돼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하지만 발본색원의 충동이 차고 넘치는 운동 바닥에서 냉정을 갖추어 비판하기는 쉽지 않다. 숱한 실천 경험이 빚어낸 ‘저들은 원래 그래’ 하는 선입견이 앞을 가려서, 대중조직의 자주적 절차도 묵살하고 성급한 반대 행동에 나설 때가 있다. 그런데 투쟁은 다른 일이다. 노조의 공적 체계를 통하지 않고 투쟁을 일으키기는 무척 어려운 일 아닌가. 조직 내의 따가운 분위기를 ‘선수(選手)’는 견디겠지만 분노와 의지로 동참한 보통 조합원들은 견디기 쉽지 않다. 노조 집행부의 잘잘못을 날카롭게 따지는 것이야 옳은 일이지만 그들을 ‘적보다도 더 미운 대상’으로 몰아붙인다면 ‘불임’의 논쟁으로 빗나간다.

논쟁의 기이한 치열함을 성찰하려면 이성과 과학의 프리즘이 작동되어야 한다. 우리는 지금의 과정이 현장과 투쟁 주체들에게 힘이 되는가의 여부를 이성과 과학의 잣대로 삼고 싶다. 비판과 논쟁이 하이닉스 노동자들의 투쟁을 고무했는가. 아니면 금속 노조 전체의 투쟁 전선을 가열시켰는가. 논쟁이 내부가 아닌 적을 타격하고 있는가? ‘집중하겠노라’던 금속 노조의 약속이 유예되고, 지부 집회에 수많은 연대 동지들이 있었지만 결국 누구도 동반해주지 않아 저희끼리 경비실 옥상에 올라야 했던 고독한 기륭 여성노동자들의 눈물이 이 꼬리를 무는 의문에 부정적인 답을 보여주고 있다. 과연 우리는 투쟁하는 현장 동지들에게 힘이 되는 진정한 연대와 단결의 길로 가고 있는가?(2007. 6. 8)

 

* 하이닉스 투쟁 관련한 보조자료 첨부

 

1. 하이닉스매그나칩 2년6개월 투쟁(전국금속노동조합연맹 제 71호 선전홍보)

 

고통 전담만을 강요하던 하이닉스반도체에서 2004년 10월, 5개의 하청업체 250여명의 노동자가 노동조합을 만들었다. 이들의 요구는 임금 5만원 인상이었다. 그러나 제대로 된 교섭 한 번 못해본 채 그 해 크리스마스 선물로 직장을 폐쇄당했고, 이듬해 1월 1일 계약해지를 당한 뒤 길거리로 쫓겨났다. 2년6개월 동안 86명의 동지들은 끝까지 남아 "공장으로 돌아가겠다"는 일념으로 투쟁을 해왔다.

 

금속노조 총파업, 확대간부 파업, 민주노총 전국노동자대회 등 연대집회만 해도 23번이고, 충북지역 차원의 파업만 해도 6번이나 됐다. 단식농성도 이어졌다. 지난해에는 금속노조 위원장과 지부장이 단식농성에 돌입하기도 했다.

 

점거농성도 6차례나 했다. 청주지방노동사무소를 두 번 점거했고, 서문대교 20미터 높이 고공농성을 했고, 16만 볼트 송전탑에서 고공농성을 벌이기도 했다. 지난 해 5월에는 조합원 38명이 11일 동안 서울 본사 사장실을 점거했고, 9월에는 15명이 충북도청을 점거해 7일 동안 싸웠다. 이런 처절한 투쟁에도 하이닉스나 매그나칩 자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 동안 조합원들에겐 구속, 수배 등 크고 작은 별들이 하나 둘씩 달려갔다. 경찰과 용역깡패와 대치하면서 실명, 골절 등 부상도 잇따랐다. 이 과정에서 11명이 구속됐고, 40명이 집행유예를 받았다. 손해배상 소송으로 14억, 손해배상가압류가 34억원, 불구속 약식 기소만 해도 1억 2천만 원이다.

 

금속노조는 하이닉스투쟁을 이어나갈 수 있는 힘이 됐다. 재정사업도 했고, 대전충북지부 전 조합원들이 2005년 11월부터 매월 1만원씩을 지원했다. 금속노조 영구적립금에서 석 달 동안 금속최저임금수준의 생계비를 지원하기도 했다. 하지만 30대 중반이자 가장인 이들의 생계비에는 턱없이 모자랐다. 때문에 대부분 전세금, 가전제품까지 차압당하는 신용불량자로 살아야 했다. 애가 열이 펄펄 나고 아파도 당장 병원에 가지 못하고 다음 날 노가다 해서 간신히 병원에 데리고 갔고, 담배가 없어 애들 저금통에서 천 원짜리 두 장 꺼내서 담배 사서 피우면서 버텨왔다.

 

지회는 그 과정에서 생살을 도려내는 아픔도 겪었다. 조합원 24명을 제명한 것이다. 출석률이 저조했던 이들은 '투쟁 그만 두면 회사에서 얼마 준다더라'는 헛소문을 퍼뜨리기도 했기 때문이다. 송대균 지회 회계감사는 "2년 6개월을 버틴 것은 억울했기 때문이나, 가장 무서웠던 것은 감방에 가는 일이 아니라 생계비였다"고 털어놨다.

신재교 지회장은 "앞으로 우릴 본보기로 제대로 해야 한다. 비정규직 싸움이 얼마나 힘든지 알고, 같이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느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2. 하이닉스매그나칩 합의 관련 사과문(전국금속노동조합연맹 제 72호 선전홍보)

 

금속노조 5기 집행부는 오늘로 약 2개월 보름여의 집행기간을 가졌습니다. 인수인계 시간을 제외하면 2달여 정도의 시간이었습니다. 그 동안 5기 집행부는 4만에서 15만으로 거대해진 조직적 위상을 갖추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해왔지만 미흡한 부분이 없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넘치는 열정을 금속노조 강화 산별완성으로 조직화하고 미흡한 부분은 채워서, 자본의 신자유주의 공세에 정면으로 맞설 수 있는 금속노조를 만들어나가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우리는 하이닉스매그나칩 사안으로 금속노조 내에 존재해오던 불협화음을 제거하는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하이닉스매그나칩 사내하청지회 동지들은 극한적인 생계의 어려움과 거듭되는 자본과 정권의 탄압에도 굴하지 않고 2년 6개월 여 동안 투쟁해 왔습니다. 또한 지부와 지역 본부 동지들이 보여준 헌신적인 지원과 연대는 노동자계급은 하나라는 진리를 확인하는 과정이기도 했습니다. 집행부는 하이닉스매그나칩 동지들의 투쟁이야말로 산별정신을 몸으로 보여준 하나의 모범적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투쟁에 금속노조5기 집행부는 집행 초기였지만, 비정규직 동지들의 입장에서 부단히 노력하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현장 동지들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이번 합의과정에서 고용승계 등 원칙적인 문제를 올바르게 해결하지 못한 부분은, 차후 집행과정의 노력으로 채워나가도록 하겠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동지들의 절차상 비판을 겸허히 받아들이며, 5차 중앙집행위원회에서 ‘합의안’에 대해 불승인하기로 결정 했습니다. 앞으로 어려운 조건에서 투쟁을 벌이고 있는 장기투쟁사업장 동지들의 투쟁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 적극적인 투쟁계획을 수립하고 최선을 다한 집행을 해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우리의 이러한 노력이 전개된다면 비록 개별투쟁에서 우여곡절이 있겠지만, 비정규직을 철폐하기 위한 우리의 정당한 투쟁은 반드시 승리할 것입니다.

모든 노동자는 하나라는 정신을 담고 있는 금속노조 깃발, 노동자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서든 힘차게 나부낄 수 있도록 5기 집행부는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전국금속노동조합 조합원 여러분! 15만 산별노조의 원년인 올해 민족의 운명을 좌우할 한미FTA 저지투쟁과 산별 중앙교섭, 비정규직투쟁 승리의 벅찬 과제가 우리 앞에 놓여 있습니다. 우리는 한미FTA 저지투쟁, 산별 중앙교섭 쟁취, 비정규직투쟁 승리를 위해 내부 분열은 자제하고, 더욱 크게 단결하고 힘차게 전진해 나가야만 합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시대적 과제이기도 합니다. 적전 분열 양상은 자제되어야 합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금속노조 내부의 차이를 지혜롭게 극복하고, 금속노조의 하나 됨을 위해 노력하는 우리 모두가 되었으면 합니다.

 

끝으로 15만 조직을 이끌고 있는 집행권자로서, 이번 사안 전체를 올바르게 해결하지 못한 점에 대해서는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산별노동조합 전국금속노조! 기업별노동조합운동이 처해있던 위기를 극복하고자 뭉쳐 제도적 기반을 다진 만큼, 흩어진 15만의 힘을 제대로 모을 수 있는 힘찬 투쟁을 전개하는 조직으로 거듭나도록 하겠습니다.
                                     
                                                                         2007.5.19


                                                             전국금속노동조합 위원장 정갑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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