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일을 따르는 민주노동 연구소
정세와 투쟁방향
전태일을 따르는 민주노동연구소의 <정세와 투쟁방향>입니다.

민족정세 | 북미 군사회담 제안의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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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민경우 작성일07-07-31 00:00 조회1,78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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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총련 기관지 조선신보 인터넷판에 따르면 조선인민군 판문점대표부 담화를 통해 북은 “우리의 핵문제란 본질에 있어서 미국의 핵문제”이고 “미국은 우리의 적대적 교전 일방이며 조미 두 나라는 기술적으로는 의연히 전쟁상태에 있다”고 전제한 뒤 “조선인민군측은… 정전협정 제17항의 요구에 따라 협정 제60항을 포함한 조선반도의 평화와 안전보장과 관련한 문제들을 토의하기 위하여 쌍방이 합의하는 임의의 장소에서 아무 때나 유엔대표도 같이 참가하는 조미 군부 사이의 회담을 진행할 것을 제의”하였다고 한다(출처 통일뉴스).
 북의 북미 군사회담 제의는 7월 18일 열린 6자회담과 더불어 북미 공방이 새로운 양상으로 발전해 가고 있음을 말해준다. 아래에서는 북의 북미 군사회담 제안을 여러 갈래로 분석한다.

 첫째. 북의 북미 군사회담 제안은 한반도 평화체제에 대한 북의 일관된 인식의 연장선에 있다.
 74년 3월 대미 평화협정을 제의한 이래 한반도 평화체제에 대한 북의 인식은 53년 정전협정을 북미 사이의 평화협정으로 대체하고 남북 사이에 불가침선언을 채택하고 군축을 단행하는 것이다. 74년 북미 평화협정 제안은 84년 3자회담 제안, 96년 잠정협정 제안 등 명칭이나 방식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30년 이상 본질적으로는 53년 정전협정 이후 지금까지 일관되게 계속되고 있다.
 특징적인 것은 7.13 제안에서 UN 안전보장이사회를 거론하며 UN 대표의 참가를 강조하고 있는 점이다. 이는 북의 제안이 단순한 선언이 아니라 실질적인 성과를 기대하는 구체적인 제안임을 말해줄 뿐 아니라 최근 한미동맹 재편 과정에서 UN 사령부의 지위를 조정하려는 움직임에 대한 대응이기도 하다. 
 북의 입장에 상응하는 한국과 미국의 인식은 평화체제의 당사자는 남북이고 미·중은 이를 보증하는 지위라는 것이다. 평화체제의 당사자 문제는 한반도 평화체제 논쟁에서 핵심 중의 하나인데 북이 북미 평화협정을 주장하는 것은 평화협정의 실질적인 당사자가 미국임을 명확히 하여 주한미군의 지위 변화 또는 철수를 강제하려는 것이고 미국이 굳이 남북이 평화체제의 당사자임을 강조하는 것은 미국이 평화체제의 과녁이 되는 것을 회피하여 주한미군의 지위가 위협받는 것을 방어하려는 뜻이다.
 이는 핵문제에 대한 인식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미국은 북핵은 세계평화를 위협하는 일탈국가의 비정상적인 대량살상무기 보유의 문제로 주한미군과 무관하게 폐기되어야 할 문제라 단언하는 반면, 북의 입장에서 북핵은 미국의 대북 핵 위협과 대북 적대시 정책의 산물로 북핵을 폐기하려면 미국의 대북적대정책 전체가 해소되어야 한다. 즉 북과 미국의 기술적인 전쟁상태인 정전협정이 평화협정으로 대체되고 이를 담보하는 구체적인 장치로 주한미군이 철수되어야 풀릴 문제다.

 둘째. 북의 7.13 제안이 주목되는 이유는 북미 공방이 민감하고 예민한 시점에서 제기되었기 때문이다. 
 6자 회담은 미국이 이라크에서 전쟁을 하고 있는 조건에서 다자 협상을 통해 북을 어중간한 대화 공간에 묶어 두고 북을 고립시키려는 정치적 목적을 띤 회담이다. 이는 북과의 대화를 마냥 거부할 수도 없고 북과 본격적으로 대화할 수도 없는 미국의 난감하고 이중적인 입장을 반영한 회담 형식이다. 그래서 그 동안의 6자회담은 대체로 공리공담의 장이 되었을 뿐이다.
 6자회담의 성격이 변하기 시작한 까닭은 6자회담의 진전 때문이라기보다는 6자회담 장외에서 진행된 북미 사이의 역관계의 변화 때문이다. 2005년 9.19 공동성명이 채택될 수 있었던 것은 2005년 2.10 북의 핵 보유 선언, 6월 이란 대선에서 아마디네자드 반미 정권의 출범 등 중동 정세의 악화, 부시 2기 행정부에서 라이스 국무장관 등 이른바 현실주의 세력의 등장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비슷한 맥락에서 2007년 2.13 합의는 북의 대미 공세(2006년 7.5 미사일 실험, 10.9 핵실험), 11월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의 패배, 중동정세의 파탄 등을 배경으로 한다. 6자회담 장외에서 벌어진 북미 사이의 역관계 변화는 6자회담의 형식과 내용에도 의미있는 변화를 일으켰다. 2007년 2.13 합의는 그해 1.16~1.18일 독일 베를린에서 진행된 북미 양자회담 결과를 추인한 결과였고 2007년 7.18일 열린 6자회담은 6. 21~22일 힐의 방북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7.18일 베이징에서 열린 6자회담에서 김계관과 힐 수석대표가 북미 양 대사관을 오가며 북미 양자 회담을 가진 것은 6자회담이 북미 양자회담으로 변화되는 과정을 잘 보여준다. 북미 역관계가 변화하면서 6자회담은 형식, 껍데기만 남고 북미 양자회담이 서서히 정세의 핵심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북미 사이의 역관계의 변화는 형식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내용적인 측면의 변화도 강제하고 있다. 6자회담 초기 국면에 대화의 중심이 북핵을 어떻게 폐기할 것인가에 맞춰져 있었다면 후반으로 갈수록 회담의 내용은 북핵 폐기의 대가로 미국이 무엇을 주어야 하는가로 옮아가고 있다. 미국이 6자회담 초반 대책 없는 ‘선 핵폐기’만을 주장했다면 상황이 진전되면서 이전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양보안, <종전선언, 부시 임기 중 평화협정 체결>과 같은 의미있는 협상안을 내놓고 있다.
 7.13 북의 북미 군사회담 제안은 6자회담이 내용과 형식면에서 ‘북미 사이의 평화공존’이라는 본질을 향해 발전해 가고 있는 전환적 국면에서 제기되었다. 그리고 현재 조성된 역관계로 보면 이러한 양상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분명해질 것이다. 아마도 북미 양국은 멀지 않은 시간에(필자가 보기에 2007~12년 사이) 북미 사이 평화체제가 주한미군과 한미동맹을 변형된 형태로 유지시키는 평화인가 아니면 주한미군과 한미동맹이 철수·해체되는 평화인가를 놓고 중대한 갈림길에 설 것이다.

            남북관계에 파란이 예상되다 

 북미 관계와 함께 주목해야할 요소는 남북관계의 발전 양상이다. 2005년 9.19 성명에 즈음하여 남북 양 정부는 의미 있는 쟁점에 직면했다. 북은 화해협력, 사회경제적 교류 위주의 남북관계를 뛰어 넘어 남북관계를 정치·군사적인 문제로 발전시키자고 제안했다. NLL, 국가보안법, 금수산 기념궁전 참배, 한미합동군사훈련 등 이른바 근본문제 해결을 통한 남북관계의 질적인 발전구상이 그것이다. 2005년 8월 김기남 당비서가 현충원을 참배한 것은 이러한 북의 구상을 단적으로 보여 준 것이다. 
 반면 남은 북핵 폐기를 전면에 걸고 여타 문제를 이에 종속시켰다. 남북대화의 모든 중심이 북핵 폐기에 맞춰졌고 심지어는 북미 공방이 퇴보했다는 이유로 쌀, 비료 지원과 같은 인도적 지원을 중단하는 이해할 수 없는 행보를 거듭했다. 2006년에는 7.5 미사일 발사를 이유로, 2007년에는 BDA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쌀, 비료 지원을 중단하거나 유보했는데 이는 이른바 햇볕정책을 계승했다는 노무현 정부의 호언과 전혀 동떨어진 보수적인 정책이었다. 
 이에 따라 남북관계는 완화와 개선, 나아가 정상회담으로 발전하기는커녕 긴장과 갈등의 양상을 띠고 있다. 남북관계의 경색이 덜 알려지고 있는 까닭은 북미 공방이 워낙 큰 의제인데다 남의 정치지형이 전반적으로 보수화되었고 북미 관계가 긴장된 조건에서 북이 어느 선을 넘는 행동을 자제했기 때문이다. 앞으로 북미 사이의 정치·군사적 담판이 진행되는 속도와 양상에 따라 남북관계에도 파란이 예상되는데 아마도 파란의 진원지는 북이 될 가능성이 크다. 
 먼저 북은 북미 군사문제의 해결과 더불어 남북 사이에 해결해야 할 군사적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려 할 것이다. 이는 북미 평화협정, 남북 사이의 불가침선언과 군축이라는 북의 전통적인 상황 인식의 자연스러운 결과이다. 이를 통미(通美) 봉남(封南) 따위로 설명하는 경향이 있는데 북은 봉남이 목적이 아니라 북미 사이에 해결해야 할 과제와 남북 사이에 해결해야 할 과제가 다르다고 보고 있다. 단지 북미 문제가 워낙 첨예한 조건에서 남북 사이의 군사적 문제를 후순위로 보고 있었던 것뿐이다.
 북의 이러한 태도는 북의 현실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북이 핵, 미사일과 같은 전략무기를 선택한 이유는 재래식 무기로는 미국의 대북압박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같은 맥락에서 남의 군사력이 점점 첨단무기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는 형편에 북이 전략무기를 폐기할 수 있으려면 남북 군축으로 남북 사이의 군사적 문제를 해소해야 한다. 그리고 남북관계의 질적인 발전을 위해 남북 사이의 군사대화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 동안 남이 주로 비정치·군사적인 문제를 선호하고 북핵 폐기에만 집중해 왔다면 북은 NLL, 국가보안법 등 남북 사이의 정치·군사 문제의 적극적인 의제화를 통해 남북관계의 질적인 발전을 꾀하고 남의 보수적인 정치지형을 변화시키려고 노력해 왔다. 
  이러한 쟁점이 부각되지 않았던 이유는 북미 관계가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인데 북미 사이의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의 가닥이 잡혔다고 판단되면 북은 남북관계의 질적인 개선을 위해 파격적인 행동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이는 북미 사이의 평화공존이 어떤 방향으로 해결되어야 하는가와 관련이 있는 중요한 쟁점이다. 한미의 구상은 북미가 평화체제를 수립하더라도 한미동맹은 유지되어야 하며 이를 위해 남북은 두 개의 국가 사이의 관계로 남아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 북은 북미 평화협정과 더불어 한미동맹이 해체되어야 하며 남북관계는 통일지향적인 관계로 바뀌어야 한다고 여긴다. 이는 남이 남북관계를 북핵 폐기 뒤에 북을 점진적으로 흡수통일하는 문제로 보는 데 반해 북은 한반도 남쪽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제거하는 문제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남의 정치지형이 점차 보수화되고 있는 조건에서 북은 보수적인 정치지형을 돌파할 적극적인 행보에 나설 가능성이 커 보인다.

              머지 않아 닥칠 격변에 대비해야

 7.13 북미 군사회담 제안은 공리공담의 공간이었던 6자회담이 점차 북미 사이의 정치·군사회담으로 발전해 가고 있는 와중에 제기되었다. 그리고 이는 앞으로 몇 해 안에 첨예하고 의미 있는 쟁점으로 발전할 것이다. 그리고 남북관계를 포함해 한반도 통일정세를 전반적으로 재조정하려는 각축이 본격화될 것이다. 상황은 일견 느슨하고 평온해 보이지만 태풍을 예고하는 전야라고 할 수 있다. 머지않아 닥칠 격변에 능동적으로 맞설 태세를 한시바삐 갖추어야 한다(2007. 7.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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