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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와 투쟁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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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 <영화평>광주민중항쟁의 정통성을 왜곡시킨 \'화려한 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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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은교(민주노동연구소 이사) 작성일07-08-31 00:00 조회1,55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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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광주항쟁을 다룬 영화 ‘화려한 휴가’가 8월 13일 현재, 불과 20일만에 관객 5백만 명(!)을 돌파했다. 인터넷에서 전하는 소식에 따르면 이 영화를 본 관객들이 다들 눈시울을 붉히며 극장문을 나섰다고 한다. “정말로 한국 군대가 그런 일을 벌였어요?”하고 궁금해 하는 질문들도 인터넷에 많이 올랐다. 앞으로도 학생들의 단체관람이 줄을 이을 거라고 하니, 그 점을 높이 산다면 이 영화는 나름대로 성공을 거둔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이쯤에서 흐뭇한 느낌으로 이야기를 접는다면 너무나 안이한 수박 겉핥기 식의 비평에 그치게 된다. ‘폭압적인 신군부가 죄 없는 민중을 함부로 짓밟았다. 그래서 양순하기 그지없는 민중이 목숨을 내걸고 저항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만으로 역사 교육이 온전하게 이뤄진 것일까? 더 깊은 깨우침을 공유해야 하는 것 아닐까?

광주항쟁을 ‘항쟁이게 하는’ 핵심이 들어있지 않은 어떤 광주 영화도 역사의 교재로 쓰일 게 못 된다. 그런데 이 영화는 어떠한가. ‘죽도 밥도 아닌’ 이야기로 시부저기 끝나 버렸으니 이 영화를 불편해 할 작자들이라고는 한 웅큼도 안 되는 전두환과 전사모(?) 밖에 없다. 광주민중항쟁의 원죄를 잉태한 독재자의 딸 박근혜가 이 영화를 관람한 뒤에, “가슴이 아팠다. 광주의 아픔을 내가 풀겠다.”고 세치 혀를 놀렸다 하니, 이 사회에서 ‘광주항쟁’의 의미가 어느 정도로 공유되고 있는지 새삼 알겠다. 
 이 영화가 선보이기 얼마 전에 광주항쟁의 고집스런(?) 계승자 윤한봉 선생이 광주 어느 병원에서 오랜 투병생활을 끝으로 세상을 떠났다. 노무현 정부는 뒤늦게 선생의 영전에 훈장을 추서했다. 그러나 그 훈장은 ‘광주항쟁의 투사로 기린다’는 뜻이 아니었다. 선생의 영결식장 앞자리를 메웠던 자유주의 개혁분파의 지도자들은 사실 윤한봉의 이름을 광주항쟁과 더불어 기억하고 싶지 않았다. 그들이 윤한봉 선생에게 건네준 (‘광주항쟁 유공자’가 아니라 막연히 ‘민주화 유공자’라는) 증명서는 실상 그들이 그를 ‘배제하고 싶다’는 속내의 표현이었다.
 열사 윤상원도, 투사 윤한봉도 까맣게 잊혀져 가는 허허로운 21세기의 벽두에 ‘화려한 휴가’가 화려하게 조명받고 있다. 그러나 영화를 찾는 사람들의 행렬이 지금도 꼬리를 물고 있어도 ‘죽어서 살았던’ 마지막 도청의 투쟁, 그 핏빛 선연한 항쟁의 정신은 27년 세월의 벽을 넘어 대중들의 가슴 속에 온전히 전해지지 않았다. 핵심 주체들을 내쫓고 펼치는 광주 영화는 거짓 영화다. 후세에게 우리의 현대사를 제대로 가르치려면 변변하고 칠칠한 광주항쟁 영화가 새로 만들어져야 한다(2007. 8.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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