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일을 따르는 민주노동 연구소
정세와 투쟁방향
전태일을 따르는 민주노동연구소의 <정세와 투쟁방향>입니다.

국내정세(노동운동 동향) | 노동자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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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전대석 작성일07-03-31 00:00 조회1,34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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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 노동자가 없다!

-한미FTA저지 농성 일기

 

                                             전 대 석 (사무금융연맹 수석부위원장)

 

 1월 15일부터 시작된 한미 FTA 6차 협상이 끝났다 애초에 6차 협상은 경주에서 개최되는가 싶었는데 서울 신라호텔로 바뀌었다. 한미FTA 저지 범국민운동본부(이하 범국본)는 한 달 전부터 6차 협상 대응방안을 준비해왔다.

 6차 협상 대응 투쟁은 주체적 조건이 그리 녹록하지 않았다. 농민진영은 지난 11월 민중총궐기로 인해 20명이 구속되었고, 10명 넘게 체포영장이 떨어져서 합법적으로 집회를 개최할 공간 확보가 중요하다고 피력하였는데 이미 합법적 집회는 불가능한 상태였다. 노동진영은 이미 민주노총 선거일정이 공지되어 동력이 줄어들 거라고 걱정하고 있었다.

 그러나 객관적 전망은 밝았다. 우리 투쟁의 성과로 전 국민의 50% 이상을 반대여론으로 뒤집은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게다가 고위급 회담에서 FTA 선결조건으로 내주었던 4대 선결조건이 하나둘씩 파행으로 치닫고 있는 점도 긍정적이다. 정부 주무 부처들은 범국본의 집요한 문제제기와 여론홍보 때문에 섣불리 4대 선결요건을 수용할 수 없었다.

 6차 협상 전까지만 해도 스크린쿼터, 자동차 배기가스, 보험약가 산정제도 등이 관계부처의 반발에 막혀 있고 특히 광우병 쇠고기 수입제도는 광범위한 민중적 저항에 부딪쳐  수입쇠고기가 3차례나 전량폐기 반송처리 되었다.

 미국은 애초에 약속한 4대 선결조건을 이행하라고 하고 있으나 민중적 저항 전선이 워낙 거세어 전 국민적 이슈로 돌변한 터라 그리 만만한 문제가 아니었다. 급기야 6차 협상이 진행중인 1월17일에 미국의 막스 보커스 등 상원의원 11명이 나서서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하지 않으면 좋지 않을 것이라고 협박까지 일삼았다.

 또한 미국의 무역 촉진권한(TPA)의 시한이 6월말로 되어 있고 미국의 법률을 개정해야 하는 협정은 6개월 전에 미 의회에 보고되어야 하는데 이미 2006년도는 지나갔다.  우리 정부가 그토록 간절하게 요구했던 무역구제(반덤핑관련) 관련 내용은 미국의 법률의 개정 없이는 아무런 결과를 볼 수 없으므로 정부에서 그토록 홍보해왔던 모든 사안이 물거품이 되기에 이르른 것이다.

 이러기에 정부도 아무 실익 없이 이대로 FTA를 밀어붙이기 어렵게 됐고 또한 대선정국을 감안할 때 국민 50%가 반대하는 사안을 여야가 합의로 통과시키기는 무리였다. 게다가 미국의 민주당이 상하 양원을 장악한 탓에 보호무역과 환경, 노동분야에 더 강화된 안을 우리 정부에게 요구할 것이기 때문에 FTA 타결의 전망이 더욱 불투명해 보였다. 그래서 범국본은 2007년 새해의 구호를 ‘FTA는 이미 끝났다!’로 채택한 것이다.

  

 이러한 형편을 살펴서 6차 협상 저지투쟁은 집회보다는 전 국민에게 널리 알리는 서명운동과 대국민 홍보전에 중점을 주었다. 1월14일 웬디 커틀러 일행 입국 규탄을 시작으로, 15일 신라호텔앞 기자회견, 16일 민중총궐기, 17일 각 부문별 기자회견, 18일은 노동조합 전상근간부 투쟁의 날로 지정하여 전국적 서명운동 및 홍보활동을 벌이기로 했다.

 

 그러나 정작 협상 시작되는 날부터 상황은 급변하였다. 광우병 조항이 이미 그전부터 조짐을 보인 대로 뼛조각 크기와 뼛조각이 발견된 상자만을 반송폐기할 것을 주장하는 미국의 주장을 받아들이는 분위기로 가면서 빅딜론이 등장했다. 미국이 무역구제에서 대폭(?) 양보하고 우리는 의약품, 자동차 관련 모든 분야를 넘겨주는 것으로 2월 고위급회담을 통해 매듭짓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빅딜론은 사실상 날조된 것이다. 미국의 법률개정 없는 무역 구제는 아무 효용이 없다. 그저 우리 것만 내주는 셈이다. 우리 주체 역량이 미약했기 때문에 이런 빅딜론까지 나돌았다.

 협상 첫날 기자회견장에 500명이 모이기로 했으나 60여명이 참석하여 오히려 경찰 병력에 포위당해 버렸으며 둘째 날 민중총궐기는 2만명이 목표였으나 5천으로 크게 줄었다. 급기야 협상 첫날 민노당 국회의원마저 협상장 출입이 봉쇄되어 단식농성에 들어갔다. 범국본은 장충단공원에 근거지를 마련하여 노숙 농성에 들어가자는 지침을 내렸지만 첫날 농민 50명, 둘째 날 학생 60명, 셋째 날 민노당원 40명만이 참여하는 왜소한 투쟁에 머물렀다. 나는 사흘 동안 그들과 노숙하였지만 노동자는 서너 명이 고작이었다. 우리 실력이 여실히 드러난 것이다.

  이런 상황을 정권이 모를 리 없다. 정부는 무역 구제가 관철되지 못할 때 지렛대로 활용할 셈으로 우리가 완강하게 거부해온 여러 분야들마저 속속들이 내주었다. 범국본이 호기롭게 내세운 ‘FTA는 끝났다’는 구호가 무색해져 버렸다. 우리더러 보란 듯이 정권이 치고 나갔다. 모든 집회를 원천봉쇄하고 구속과 연행의 강공 드라이브로 나아갔다. 우리는 속수무책으로 바라보았고 그나마 민노당 의원들이 애를 썼을 뿐이다. 

 

 이러구러 7차 협상이 다가왔다. 2월11일부터 14일까지. 범국본의 투쟁은 왜소하게 끝났다.

그러나 원래 7차 협상은 범국본 계획 속엔 들어있지 않았다. 모든 FTA가 마지막 협상을 미국에서 개최하는 것이 관례라서 당연히 3월에 미국에서 열릴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이다.  설날을 앞둔 2월의 7차 협상투쟁은 처음부터 버겁게 시작됐다. 기획하는 것도 어려웠다. 급작스럽게 조직하는 부담도 있지만 분위기가 이미 처질 대로 처져 있었기 때문에 이렇다 할 파열구를 낼 수 없었다.

 종묘공원 3보 1배 행진은 1000명 대오를 조직했으나 투쟁대오는 200 명을 넘지 못했고 원천봉쇄로 끝났다. 보신각 및 명동성당 집회는 5백 명에 머물렀고 철야 노숙농성도 100여명의 대오로 마무리되었다. 노동자들의 모습은 거의 찾아보기 어려웠다. 미국 원정투쟁도 투쟁단이 파견된 것이 아니라 대표단 수준으로 준비했기에 큰 투쟁은 기대할 수 없었다.

 왜 이렇게 밀렸을까? 문제는 노동진영에 있다. 가장 낮은 단계의 투쟁인 서명운동조차 민주노총은 겨우 13만 7천여 명이 동참했다. 애초 조합원 1인당 5명을 의무적으로 서명 받아 최소 400만 명을 받기로 되어 있었건만, 해도 너무했다. 수요일 촛불문화제, 거리 선전전, 역 앞의 서명전등 일상의 낮은 투쟁에도 노동자는 얼씬하지 않았다. 심지어 총연맹위원장도, 산별연맹 위원장도, 산별노조 위원장도, 단위지부 위원장, 지부장도 없었다.

 

 이제 마지막 3월 투쟁이 기다리고 있다. 지난 2월 22일 범국본 집행위가 열렸다. 어느 때보다 비장한 각오로 결합이 요구되었는데 실무단위 책임자들이 대신 왔다. 언제부터인가 공동집행위원장들은 회의에 나타나지 않았고 회의는 주로 지역 집행책임자들과 범국본 중앙 민중연대 동지들이 꾸려갔다.

 3월 투쟁은 3월1일부터 8일까지 준비기를 두고 이 기간 동안 3.1절 차량시위, 3.8일 비상시국회의를 배치하고 지역에서 동시다발로 투쟁 기세를 높이는 기간으로 삼았다. 그 여세로 3.10일 1차 민중총궐기(중앙 집중), 3.24일 2차 민중총궐기(광역동시다발)로 잡고 끝장투쟁을 결의했다. 지도부의 결연한 선도투가 있어야 해서 3월8일 또는 10일에 대표자 집단 단식에 들어가 4월2일까지 가자는 결정을 내렸다.

 

 이번 3월 끝장 투쟁에서 파열구를 내지 못할 경우 FTA는 통과된다. 여론조사에서 찬성이 점차 올라오고 있고 미 하원의장 넨시 펠로시는 노골적으로 체결 압력을 넣고 있다. 이제 미의회의 거부권은 기대하지 말아야한다. 투쟁은 미국이 아니라 한국정부, 정확하게 노무현 대통령에게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그날 회의에서 나타났던 합법적 집회 공간 요구와 민노총의 다양한 일정을 이유로 한 주체역량의 한계를 이 시점에서 돌파하지 못한다면 끝장이다,

 농민 단위는 줄곧 민노총의 분발을 요구해 왔고 수십 명의 구속과 수배로 동력이 현저히 떨어졌는데도 3만의 동지들이 결합할 것이라고 했다. 노동도 이제는 말이 아니라 실천으로 보여줘야한다. 언제는 (위원장) 임기 말이라서 어렵고 이제는 임기 초반이라 어렵다면 언제 투쟁한다는 말인가?

  범국본은 이런 상황이 예견되어 민노총 후보자들에게 누가 당선되더라도 FTA싸움을 즉각 수행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주문했었다. 그러나 민주노총 위원장 후보자들은 FTA 반대 성명을 협상장과 멀리 떨어진 민주노총에서 했었다. 협상장앞 투쟁 현장에 노동자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나 후보자들이 주도하려는 의지도 사실 부족했다.

  한미FTA 투쟁은 특정정파가 주도하고 있다고 비칠 수도 있다. 그러나 투쟁의 대열에서 적극적으로 나선다면 이 문제는 해결 된다. 정파를 떠나서 나부터 조직해 들어가야 한다. 서울의 노동조합 상근자만 규합해도 1천 대오는 너끈하다. 의지의 문제요, 특히 지도부의 의지 문제다.

 할 수 있는 모든 투쟁방안을 제시하라!!! 범국본은 이를 무조건 받아들여라!!! 투쟁을 하자는데 이의가 없다. 어떤 투쟁이건 각 단위별로 각 부문별로 각 정파별로 FTA를 저지하고 노무현 정권에 타격을 줄 수 있는, 실천 가능한 투쟁방안을 제시하고 조직하라!!!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뒤로 빠져 있다가 이제는 실패의 책임을 떠넘기면서 다음을 준비하자고 속삭이는 이야기는 정말 운동판에서 사라져야 한다. FTA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11, 12월 민중총궐기 이후 정권의 무자비한 탄압에 다소 주춤거리기는 하나 저들도 무력에 의존하지 않고는 버텨내기 힘들다는 반증이 아닌가.

 

 이제 막판이다. 정권은 임기 내 치적을 위해서 미친 거래를 합의하려는 것이다. 투자자 정부 제소권한 부여로 사법권이 침해되고 의무이행 강제 금지규정으로 입법권이 농락 당한다.  자동차세제, 의약품, 지적 재산권을 자발적으로 수용하고 수도와 전기 심지어 물까지 사유화하면 정부의 가버넌스 및 행정력도 무너진다. 한미FTA는 “다” 넘겨주는 것이다. 그 대신에 아제국주의의 단초로 활용하려는 국내 재벌 자본의 거대한 프로젝트다. 그리되면 하! 노동이 없다! 노동이 설 자리는 어디에도 남지 않는다!

 나는 농민들과 노숙하면서 노숙장에 ‘노동자가 별로 없다’고 개탄하는 소리를 자주 들었다. 그러나 대다수 농민들은 FTA반대투쟁보다 더 강력한 노농 연대투쟁은 없었다고 말했고, 노동자는 또 늦게 발동이 걸리는 점을 이해하고 있었다.

 새벽3시 천막도 없이 그냥 은박지 위 침낭 속에서 추위를 견뎌내는 노숙투쟁 현장을 촬영한 YTN 뉴스를 본 어느 할머니 한분이 아침에 죽 한보따리를 무겁게 들고 오셨다. 너무 추울 것 같아 밤새워 끓였다며 정성스레 건네주는 죽을 받아들며 ‘아직 우리 편에  희망이 있다’고 생각했다.(2007. 3.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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