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 노동자 자주관리운동의 경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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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허석열 작성일06-11-30 00:00 조회3,440회 댓글0건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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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자주관리운동1061103.hwp (40.5K) 30회 다운로드 DATE : 2015-06-29 17: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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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 자주관리운동의 경험(1)
허 석 열 (충북대 사회학과 교수)
1. 머리말
많은 사람들이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가 노동자 계급과 민중에게 끼친 해악을 말한다. 민중운동의 지도자들은 민중에게 WTO나 IMF에 대한 저항의 조직을 호소하고, 그들의 국가가 양자간 또는 다자간 자유무역협정을 맺는 일에 반대할 것을 주장한다.
그러나 신자유주의가 세계 자본주의 전개의 최근 국면임을 인정한다면,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는 자본주의의 변형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자본주의 자체의 극복을 통해서만 지양될 수 있음이 분명하다. 신자유주의자들은 ‘대안은 없다(There is no Alternatives)’고 말한다. 부분적으로 그들의 주장은 옳다. 즉 자본주의 내에서 신자유주의에 대한 대안은 없다. 그러나 노동자계급과 민중은 진정한 대안, 즉 사회주의라는 대안을 가지고 있다.
아마 ‘사회주의는 실패한 이념이 아니냐’ 하고 의문을 표명할 사람도 많을 것이다. 소련의 해체와 중국혁명의 굴절과 그 나라의 재자본주의화라는 역사적 사실을 겪고서도 사회주의적 전망을 이야기할 수 있는가?
이 글에서는 사회주의의 핵심을 “생산과 경제활동의 노동자 통제와 노동자 자주관리”제도에 있다고 보고, 과거 신자유주의의 모순이 지역적으로 가장 많이 응축되어 있던 곳, 즉 라틴 아메리카, 그 중 베네주엘라에서 노동자 자주관리 제도가 어떻게 발전하고 있는가를 검토한다. 그래서 이 제도가 사회주의와 인간해방의 새로운 역사적 전망이 될 수 있는지 생각해 본다.
2. 노동자 통제와 자주관리의 변증법
우리는 ‘노동자 통제’를 사회주의의 보증서로 보는 관점에 익숙해져 있다. 그리고 노동자 통제를 노동자계급의 직접 민주주의적 통제로 보기보다는 이른바 “노동자계급의 당”에 의한 생산의 통제로 이해하는 관점(레닌주의나 스탈린주의, 다양한 부류의 트로츠키주의, 서구식의 사회민주주의)을 많이 보아왔다.
또한 노동자통제와 노동자 자주관리를 개념적으로 구분하지 않고 혼용해오기도 하였다. 그러나 실제 노동자 자주관리는 노동자 통제보다 더욱 포괄적 개념으로, 노동계급이 생산과정을 통제는 하되 관리는 관료제가 장악하는 상황이 있을 수 있다. 이 경우 생산의 정치가 ‘이중 권력’의 상황에 놓여 있는 셈이고, 이런 모순적 상황은 전면적인 노동자 자주관리로 발전하든가, 노동자계급이 생산의 통제권마저 잃어버리든가, 두 길 중 어느 한 경로를 밟아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소련의 역사는 바로 후자의 경로를 보여준다.
단어의 의미로 생각해 본다면 “관리”한다는 것은 주체적 개인으로나 집단적으로, 모든 관련 사실에 대한 지식을 토대로 스스로 결정을 내리는 것이다. 이에 반해 통제한다는 것은 다른 사람이 행한 결정을 감독하고, 결정하고, 검토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통제”는 기껏해야 어떤 사람이 결정내린 사항에 대해, 그것이 적절한 수단을 통해 달성되었는지 다른 사람이 검토하는데 지나지 않으며, 의사결정의 주권에 대한 제한을 의미할 뿐이다.
노동자 자주관리의 경우 노동자 계급, 즉 집합적 생산자는 모든 기본적 의사결정을 직접 민주주의적 방식이나 자신의 완전한 지배 하에 있다고 느끼는 조직(노동자 평의회, 공장위원회)을 통해 행한다. 집합노동자의 직접 지배 하에 있는 노동자단체는 다시 지역적으로, 산업적으로, 전국적으로, 국제적으로 연합하여 사회적 욕구를 점검하고 이에 따라 조정한다. 노동자 통제만 있는 경우, 생산의 모든 근본적 결정들이 생산과정에 깊이 뿌리내리지 않은 국가, 당 등과 같은 외부에서 행해지고, 이에 따라 생산자와 생산수단의 분리가 여전히 지속된다. 혁명적 당이나 혁명 지도자가 선의(善意)를 품고 있고, 이런 결정들이 노동자 계급의 대표가 모인 의회에서 추인되거나 수정된다 하더라도 직접 생산자에 대한 이런 구조의 억압적 효과는 금방 드러난다.
이런 관점에서 그동안의 노동자 통제와 노동자 자주관리의 역사적 경험을 검토해보자.
3. 노동자 통제와 노동자 자주관리의 역사적 경험
사회주의의 핵심을 ‘노동자 자주관리’에서 찾는 시각은 이미 파리 코뮌에서 나타났다. 그 후 러시아 혁명과정에서 노동자들은 스스로 소비에트라고 불리는 공장위원회를 조직하였고, 레닌은 이 소비에트가 노동자 권력의 핵심임을 재빨리 파악하였다. 생산현장에서 부르주아적 관리가 후퇴한 공간을 노동자 소비에트가 채우고 있었고, 소비에트는 직접 민주주의적 방식으로 생산을 조직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노동자들이 조직한 소비에트는 부르주아만이 아니라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 이상으로 혁명이 발전하기를 원하지 않았던 멘셰비키에 의해 방해받았다. 볼셰비키의 경우도 소비에트가 기존의 지배구조를 파괴하는 데까지는 소비에트를 용납하고, 이용했으나, 노동자들이 관리 기능을 장악하려 하자, 철저히 이 시도를 분쇄하기 시작하였다. 볼셰비키들은 노동자 자주관리가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것을 매우 위험한 무정부적 상황으로 간주하였고, 어디까지나 계급적 전위 당이 혁명적으로 생산 현장을 통제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그 결과는 계급투쟁에 그대로 반영되었다. 많은 부르주아들이 생산수단은 몰수되었으나 전문관리자로 당 구조에 다시 들어오고 노동자 계급에 대한 관리적 권력을 회복하였으며, 당과 국가기구의 관료들도 노동자계급과 관리권력의 측면에서, 또는 생산현장 통제의 측면에서 대립하게 되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소련의 노동자들에게 소외된 노동은 그대로 유지되었고, 국가관료제는 노동자와 대립하게 되었다(적대적이건, 비적대적이건).
여기에서 우리는 국유화를 곧바로 사회주의로 치환하는 발상이 얼마나 잘못되었는가를 알게 된다. 생산수단의 국가적 소유가 바로 사회주의적 생산양식의 확립으로 연결되지는 않는다. 더 본질적인 것은 노동자가 전면적으로 생산과정을 통제하고 관리하는 시스템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점이다.
1차 세계대전 후, 혁명적 기운이 감돈 서유럽에서는 노동자에 의한 공장점거와 공장위원회나 노동자평의회의 결성, 점거된 공장에서의 노동자 자주관리와 같은 많은 시도가 있었다. 그람시는 이러한 상황에서 노동자 자주관리와 노동자 헤게모니에 대한 사상을 다듬었다. 노동자 자주관리사상의 발전에서 그람치가 기여한 바는, 사회주의로의 이행에서 단순한 노동자 자주관리만으로는 부족하며, 노동자 자주관리가 ‘노동자계급의 역사적 의식의 발전’과 결합되어야 한다는 점을 밝힌 데 있다. 유고슬라비아의 경험을 검토해보면 이 점을 이해할 수 있다.
유고의 자주관리는 유고 공산당과 국가의 공식적 지원을 받고 전국적 규모에서 체계적으로 시행되고 발전되었다는 점에서, 자본주의 국가의 노동자들에 의해 자생적으로 전개된 자주관리와 다르고, 새로운 사회의 건설을 위해 투쟁하는 노동자 계급에게 매우 중대한 의의를 던진다. 우리는 노동자 계급이 성취한 내용이 무엇이며, 어떤 역사적 조건에서 자주관리운동이 변형되고 좌절되었는지를 유고의 경험에서 배울 수 있다. 이런 검토는 자연히 신자유주의 세계화 속에서 벌어지는, 자주관리를 지향하여 투쟁하는 노동자 계급이 이 경험을 어떻게 소화하고, 대안적 자주관리 시스템을 세워가야 하느냐는 문제에 우리의 관심을 집중하게 한다.
유고의 자주관리 운동은 바로 유고 인민의 반파시스트 투쟁과 스탈린주의에 대한 유고 공산당 지도부의 반대에서 형성되었다. 유고 공산당 지도부의 한 사람인 카르데지는 유고적 시스템은 소련 시스템 -필연적으로 국가주의와 중앙 국가권력의 강화로 귀결되는-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했음을 내비친다. 중앙 국가권력의 강화는 공장이나 작업장 수준에서 관료제의 강화로 이어지고, 관리 카스트의 형성으로 귀결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노동자 자주관리와 결합한 분권적 정치, 경제관리 시스템은 스탈린주의에 대한 대안을 추구하는 많은 민주적 사회주의자나 무정부주의자들의 관심을 받았다.
유고의 자주관리 시스템은 구체적으로 직접 민주주의적 방식으로 조직된 각급의 자주적 기구들을 기반으로 구축되었다. 자주관리의 권한을 직접적으로 수행하는 노동자 총회와 조직 전체의 노동자들에 의해 직접 선출되고, 생산과 성과의 분배, 작업조건에 대해 규율하는 노동자 평의회, 노동자 평의회에서 호선되는 집행부, 그리고 노동자 통제가 노동자 자주관리의 조직적 요소들이다.
이런 구성은 자본주의 국가나 소련 노동자들과 비교해서 유고 노동자들의 자주성과 권리를 훨씬 높여준 요인이었다. 그러나 정치적으로 유고 공산당은 노동자들의 직접 민주적 통제와는 무관한 조직 원리를 기초로 구성되고 운영되었다. 즉 유고 노동자들은 공산당 관료제까지 통제할 수 있는 힘은 보유하지 못하였다.
공장 수준에서의 자주관리와 정치권력의 분리의 결과는 자주관리가 개별공장을 넘어서서 사회전체적인 노동계급과 근로인민의 ‘연대’를 기초로 한 사회주의적 경제적 질서에로 발돋움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1970년대 초반 공산당에 의한 전면적인 시장의 도입은 자주관리 기업들간의 시장경쟁을 촉발시켰고, 이윤이 기업의 최종적 목표가 되도록 만들었으며, 자본주의적 관리 관행과 전문관리계층의 기업지배를 초래했다. 유고 사회는 실업이 크게 늘어났고 인플레이션과 재정, 금융 시스템의 혼란은 IMF의 개입을 초래했다. 이런 혼란을 틈타 세르비아와 크로아티아 민족주의가 준동하여 구성 공화국 간의 내전과 연이은 연방의 해체라는 비극적 결말로 이어졌다.
유고의 경험에서 우리는 “노동자 계급의 전면적 연대 없이” 공장단위의 자주관리에만 의존해서는 사회주의 발전이 벽에 부딪히게 되고, 결국 자본지배의 복귀로 이어진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노동자 자주관리는 사회적 변혁과정에서 자본가 권력이 대부분 붕괴한 사회적 조건에서 자생적으로 발전한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해방직후 일본 자본가들이 철수한 주요 공장에서 노동자 자주관리가 시도된 경험이 있다. 인민전선과 의회를 통해 집권한 칠레의 아옌데 정권과 민족주의적 봉기가 일어났던 볼리비아와 페루, 신자유주의 하에서 국민경제가 붕괴직전까지 몰렸던 아르헨티나 등에서도 전국적으로나 국지적으로 자주관리 운동이 일어났고, 특히 아르헨티나의 자주관리운동은 아직 지속되고 있다. 이 모든 경우에 자주관리 운동은 유고와 같이 전면적인 국가권력의 지원을 받지 못하였고, 대부분 실패하였다. 그러나 아르헨티나의 경우는 부분적이기는 하나 자주관리운동이 지속되고 있고, 이 운동이 국가적으로 자주관리를 지원하는 차베스 정권에까지 영향을 주고 있다.
아옌데 정권(1970-1973) 하의 칠레에서는 125개 공장이 노동자 자주관리체제를 갖추었다. 이들 공장들은 중앙집권적 관리 시스템 하에 있던 국영 공장보다 훨씬 높은 생산성과 낮은 결근율 등을 기록했는데, 이는 노동자 자주관리가 효율의 면에서도 다른 관리체제보다 성공적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칠레의 자주관리운동은 부르주아 국가체제 하에서 자신을 방어할 장치를 갖추지 못하였다. 아옌데는 노동자들의 자체 무장요구를 기각하였고, 기껏해야 의회에서 다수당을 차지했을 뿐이다. 필연적으로 국내 독점자본가와 미국의 정부전복 계획에 의해 칠레 자주관리 운동은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피노체트의 우익 군사쿠데타는 자주관리운동을 철저하게 파괴하였다.
칠레의 경험은 국가권력의 완전한 장악이 없는 자주관리운동이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볼리비아의 경우 1950년대 민족주의 혁명운동의 성공과 함께 주요 산업의 국유화가 단행되었고, 민족주의 세력과 동맹을 맺은 노동계급의 일부가 국유화된 공장의 자주관리를 요구하는 데까지 사태가 진전되었다. 특히 볼리비아의 주 산업인 광업의 경우 광산노동자들의 자주관리 운동은 직접 광산을 장악하고 운영하는 데까지 나아갔으나 볼리비아 정부는 국영 광업회사(COMIBAL)를 설립하고 관료적 방식으로 회사를 운영하였다. 그러다가 1964년 우익 쿠데타와 함께 노동자자주관리 운동은 종말을 고한다. 볼리비아의 경우 광산노동자들은 자주관리를 관철하기 위해 무장할 준비까지 되어 있었으나 지역적으로 고립된 채 국가기구의 탄압을 받게 되었다.
볼리비아와 함께 페루도 민족주의 좌파에 의한 혁명과정에서 한때 노동자 자주관리가 시도되었으나 제대로 뿌리내리기도 전에 페루가 경험한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과 함께 자주관리운동은 주변화되고 탈국유화와 함께 종말을 맞았다.
페트라스는 라틴아메리카 여러 나라에서 노동자 자주관리의 역사적 경험이 지닌 의의를 다음과 같이 정리하였다.
1) 노동자 관리 공장의 성공은 공장의 노동자 전체회의에 기초한 수평적 구조의 확립에 달려 있었다. 특히 칠레와 유고슬라비아에서 노동자 자주관리의 성공은 노동자 평의회와 공장 의회에 기초하고 있었다.
2) 한 부문의 성공은 노동자 자주관리를 다른 부문으로 확장하고 다른 계급과의 동맹을 확립하는데 달려 있었다.
3) 노동자 자주관리운동의 국지적 성공과 이중권력은 계급의식을 고양하고, 노동조건을 개선하였지만 지배계급의 폭력적인 반응을 촉발한다. 결국 이런 반동을 이겨낼 수 없을 때 노동자 자주관리운동은 실패하였다.
4) 노동자 자주관리가 성장하는 역사적 배경은 매우 다양하다. 약 30년간 노동자 자주관리 체계를 공고하게 유지한 유고슬라비아와 단편적인 실험에 그친 라틴아메리카의 경험을 비교하면, 노동자 자주관리가 국지적인 현상에서 전국적인 규모로, 공장수준에서 국가로, 취업 산업 노동자의 운동에서 실업자, 청년, 여성, 소수민족의 운동으로 고양될 때 성공할 가능성이 생긴다.
노동자 자주관리는 결국 사회적 연대를 기초로 한 생산체제가 최소한 전국적 수준에서 더 나아가 국제적 수준에서 이루어질 때까지는 불완전한 상태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노동자 자주관리가 겪고 있는 근본적인 어려움은 노동운동이 달성해야 할 궁극적 목표와 관련된 것임을 보여준다. 현 단계에서 우선 초보적 수준에서나마 노동자 자주관리를 달성하고 그것이 사회전체 수준에서, 또한 세계적 수준에서 달성될 수 있도록 투쟁하는 일이 노동자 계급의 어깨에 걸려 있는 셈이다.
이런 관점에서 아르헨티나의 노동자 자주관리 운동의 경험은 자생적 자주관리가 어떻게 ‘계급의식적 자주관리’로 발전되어 가는가를 보여줌으로써 베네주엘라의 자주관리운동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베네주엘라의 자주관리운동에 앞서 아르헨티나의 경험을 살펴보자.
2000년 이후 아르헨티나는 새로운 노동자 자주관리의 물결을 겪었다. 신자유주의가 초래한 파멸적인 경제상황에 대응하는 노동자 계급의 자구책으로 노동자 자주관리운동이 일어났다.
자주관리 운동을 시작한 노동자들은 대부분 몇 달 동안 임금을 받지 못했거나 임금삭감을 경험한 노동자들이다. 공장 소유주들은 공장파산을 인위적으로 유도하고, 공장을 비우고 기계를 해체하는 등 노동자들의 희생을 강요하였다. 자신의 일자리를 지키려는 노동자들의 결사적인 노력은 공장 점유로 이어졌다. 노동자들의 자발적인 공장조직화가 일어나면, 곧바로 정치의식 있는 노동자들이 생산과 판매를 자본가 대신 조직하도록 노동자 대중을 설득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런 공장들은 많은 진보적인 경제학자들과 전문가들의 관심을 끌었고, 그들은 노동자들에게 기술적, 경영적 자문을 제공하게 된다. 이러한 자주관리의 실천은 노동자 계급의식의 새로운 고양을 낳는다. 예를 들어, 노동자 자주관리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많은 선진 노동자들은 다른 운동, 그리고 대중 부문과의 연대의 필요성을 인식하게 된다. 만약 국가가 공장을 폐쇄하려 하면, 일터를 지키기 위해 실업자운동이나 지역사회 의회의 지원을 요청하게 된다. 이들은 전국적 수준에서 노동자 자주관리운동을 하는 노동자들의 대표회합을 조직하고, 실업자 운동과의 동맹을 추구했다. 2002년 8월 24일 노동자 점거 공장을 대표하는 3000명이 넘는 노동자들이 노조 지도자들의 지원 하에 파산한 모든 생산 공장의 노동자 자주관리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아르헨티나의 경험 역시 많은 한계를 보이고 있는데, 자주관리운동의 지도자들이 기성 정당구조에 편입되어 자주관리운동을 전체 사회운동에서 분리시키고, 그들 자신이 관료화한다든지, 자주관리 운동이 기껏해야 자본주의 기업의 실패로부터 생긴 틈새에서만 일어나고, 더 중요하고 전략적인 부분에서는 일어나지 않는 결정적 한계를 보여주고 있다. 또한 5,6백만의 실업자 중 기껏해봤자 1,2 십만 정도의 실업자만 이 운동에 조직적으로 결합하고 있다.
베네주엘라의 경우, 자본가에 의해 폐쇄된 공장을 협동조합식으로 조직하여 자주관리를 실행하고 있으나 훨씬 의식적이고 체계적이며, 사회변혁적 방식으로 자주관리운동이 일어나서 유고슬라비아 이후에 가장 의미 있는 실험이 진행되고 있다. (후속)
참고문헌
James Petras and Henry Veltmeyer, Worker self management in historical perspective. in Rebelion, September 25, 2002
The Bolshevics and Workers Control 1917-1921, http://www.spunk.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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